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23
#1122.
전달하다 (2)
문이 열리고 음료가 들어온다.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덕분에 마스터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보게.”
마스터가 나이트 베슬리를 보며 말했다.
“자제는 내가 지금 독재를 하는 게 아니냐고 묻고 있는 건가?”
“조금 돌려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다르지 않습니다.”
마스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독재를 하고 싶은 게 아닐세.”
“…….”
“그저 시스템을 바꾸고 싶은 거야. 이제는 너무 낡고 오래되어 둔중해져 버린 이 체제를 바꾸고, 원탁을 한층 발전시키고 싶은 걸세. 원탁이 누천년을 이어왔듯이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 이어질 수 있게 말일세.”
“무슨 뜻인지는 압니다. 다만, 마스터…….”
나이트 베슬리가 가만히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위협도, 불신도,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이트 베슬리는 그저 무감정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스터께서 원탁을 발전시키기 위한 길이 결과적으로 마스터께서 원탁을 독재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게 독재자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다르다네.”
무감정해 보이는 나이트 베슬리와는 다르게 마스터의 얼굴에는 확신이 있었다.
“독재자가 왜 독재자인지 아는가?”
“권력을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닐세. 권력으로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기 때문이지.”
“…….”
마스터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보게, 베슬리. 내 나이가 몇인지 아는가? 나는 가족도 없네. 재산도 딱히 없지. 내가 이 나이에 지킬 것이라고는 명예밖에 없다네. 그깟 재산 몇 푼? 얻으려고 하면 원탁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네. 그깟 권력?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내가 권력을 쥐면 뭐 하겠는가. 오히려 오직 하나 남아 있는 명예마저 사라지겠지.”
“음…….”
“자네도 알지 않는가. 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마스터.”
“말하지 않아도 되네. 각오한 일이니까.”
마스터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여유를 보이려는 행동이 아니다. 지친 그의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내 삶은 그리 오래 남아 있지 않네. 어쩌면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적당히 원탁을 이끌다가 은퇴한다면 나는 명예로운 원탁의 마스터로 남을 수 있을지 모르네. 나 역시 그런 삶을 더 바라기도 하지. 하지만…… 외면할 수가 없는 걸세. 나는 외면할 수가 없어. 원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 그 균열에서 눈을 돌리는 짓 따위는 나는 할 수 없네.”
나이트 베슬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스터의 말에서 느껴지는 무거움이 그의 입술을 내리누른다. 마스터가 선택한 길이 옳은지 그른지, 그는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마스터가 짧은 욕심으로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엘더 나이트를 잃었네. 그리고 많은 나이트들을 잃었지. 외부의 세력들은 나날이 강대해져 가지만, 우리는 나날이 약해져 가고 있네. 지금이야 괜찮지. 지금이야 괜찮겠지. 하지만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면? 그때도 우리가 지금과 같은 위상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마스터, 그게 원탁입니다.”
“알고 있네. 그러니 부수려 하는 걸세.”
“실패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도리가 있겠는가?”
마스터가 어깨를 으쓱한다.
“실패한다면 원탁에 더 큰 균열이 가겠지. 하지만 그건 그저 정해진 결과를 앞당기는 것뿐일세. 후세는 나를 욕하겠지만, 그것 역시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지.”
나이트 베슬리가 피식 웃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씀은 그 욕을 나눠 먹자는 거군요.”
“그렇지는 않네. 자네는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되니까. 그저…….”
“아니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호한 목소리가 그 말을 끊어냈다.
“그런 어설픈 마음으로 끼어들 생각은 없습니다.”
무뚝뚝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해야 한다면 제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마스터, 제게 명해주십시오.”
나이트 베슬리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탁.
문이 닫히고 나이트 베슬리가 밖으로 나갔다. 닫힌 문을 꽤나 오랫동안 바라보던 강진호들이 서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걸로 한시름은 덜었습니다.”
“음.”
위긴스의 말에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는 확실하게 했다.
이제 그 어떤 나이트도 감히 마스터와 강진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었다. 부수었다면 새로 만들고 정립해야 한다. 나이트 베슬리의 협조는 그 과정을 좀 더 원활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생각보다 수월하네요.”
이현수의 말에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리로 오는 동안 이미 정리를 끝냈을 테니까.’
이현수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저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나이트 베슬리의 반응이 와닿지 않는 거겠지. 강진호가 저들을 어떻게 압박했는가를 직접 눈으로 본 이들은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이나 강진호는 저들을 가열차게 몰아붙였다. 설사 위긴스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압도적인 힘을 통한 위압이란 그런 것이다.
“나이트 베슬리가 도와준다면 나이트들의 협조를 끌어내기가 좀 더 쉬워집니다. 지금도 물론 저들은 반항하지 못하겠지만, 반항하지 못하는 것과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마스터.”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마스터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
‘복잡한 기분이시겠지.’
어차피 마스터가 감당해야 할 짐이다. 마스터의 처지를 동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끔찍한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도 바로 회의에 끌려와야 하는 것만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문제는 폐인이 된 나이트들인데…….”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트라는 존재들이 감당해야 할 일은 결코 적지 않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그만한 업무를 소화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나이트를 교체해야 한다.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현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껏 좋은 기회를 잡아 나이트들을 말 잘 듣는 개로 만들어놨는데, 그런 이들을 교체해 버리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들은 절대 바꿔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그만둔다고 해도 발목에 족쇄를 채워 나이트의 자리에 묶어둬야 합니다.”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번 일에서 가장 위험했던 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현수다. 일이 잘 풀려서 망정이지, 일이 조금만 어긋났다면 지금 이 자리에 이현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한 일을 ‘좋은 기회’라고 표현해 버리는 저 무던함에는 아무리 위긴스라고 하더라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걸 모르더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그런 거지.”
“가능하게 만들면 됩니다. 나이트 후보를 선정하시죠.”
“……후보?”
이현수가 싱긋 웃는다.
나쁜 생각을 할 때의 표정이다.
“나이트들이 건강이 좋지 않으니, 다음 나이트가 될 후보를 선정한다고 하시고 업무를 그쪽으로 돌려주십시오. 대신 나이트들을 완전히 물러나게 하는 건 안 됩니다. 결정권은 그들이 쥐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회주님에게 가지고 있는 공포심을 십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으음.”
위긴스가 불편한 침음을 흘렸다.
‘지독하게도 빼먹는군.’
몇 번이고 느끼는 일이지만, 저놈이 적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었다.
“확실히 그쪽이 낫겠군.”
강진호가 이현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로드, 너무 과한 압박은 반발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
“착각하지 마라, 위긴스.”
위긴스가 고개를 들고 강진호를 바라봤다.
“원탁을 지배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마스터다. 나는 그저 압박이 필요할 때 들러서 그 역할을 해주는 것뿐이야.”
“……옳은 말씀이십니다.”
강진호가 아무리 압박의 강도를 올린다고 해도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면 그만이다. 마스터가 원탁을 운영할 때는 강진호와 같은 강도로 저들을 내리누를 수 없으니, 걱정할 게 없다는 뜻이었다.
강진호의 말을 이해한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발 물러섰다.
그는 원탁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한때 원탁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이다. 어쩌면 그의 마음속에서 아직 원탁에 대한 소속감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강진호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다.
“마스터.”
“예, 회주님.”
강진호가 마스터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런 얼굴 할 것 없다. 따지고 보면 겨우 네 명 죽은 것에 불과하니까.”
“…….”
겉으로 본다면 그렇겠지.
이번 일로 원탁이 입은 가장 큰 피해는 죽음이 아니다. 살아 있는 이들도 모조리 자신감을 잃고 충격에 빠졌다는 점이다.
“저들이 앞으로 회복하는가는 네게 달려 있다.”
마스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회주님.”
“음.”
“더는 원탁에 관여하지 말아주십시오.”
“…….”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마스터를 바라본다.
“나이트들은 원탁의 소중한 전력입니다. 비록 아직은 깨어나지 못해 답답한 면이 있다고 해도, 원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저들의 성장 역시 동반되어야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이 이상 회주님께서 저들을 내리누른다면 저들은 망가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건…….”
손을 들어 마스터의 발언을 막는다.
살짝 냉기가 흘렀다.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겠지.”
“…….”
“타인을 탓하지 마라. 모든 것은 네가 원탁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탓이다. 애초에 네게 저들을 완전히 다룰 수 있었다면 굳이 내가 올 필요도 없고, 이런 일이 벌어질 일도 없었다.”
마스터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요청을 한 건 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마스터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회주님. 감정에 휩쓸려 실언을 했습니다.”
“알면 됐어.”
강진호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회는 원탁의 동맹이다. 해를 끼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야. 네가 원하지 않는 이상 내가 너희에게 간섭하는 일 따위는 없다.”
“회주님, 저는…….”
“여기까지 하지.”
강진호가 가볍게 웃고는 방을 나섰다. 이현수가 마스터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강진호를 따라나섰다.
“하아…….”
나가 버린 둘을 보며 마스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실언을…….”
“아, 아닙니다.”
위긴스가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로드께서 기분이 상해서 저러시는 게 아닙니다. 정말 이제 할 말을 다 하신 거지요.”
“…….”
“로드를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죠. 하지만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겠지.”
“다만…….”
위긴스가 빙그레 웃는다.
“한 가지는 정정해야겠습니다. 로드께서 하신 말 중 제대로 전달이 안 된 부분이 있습니다.”
“으음?”
위긴스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로드의 말씀대로 총회는 원탁에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저희가 동맹의 입장에서 원탁에 하는 부탁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의 이야기겠지요. 이제 그 ‘부탁’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마스터는 위긴스의 미소가 독사의 그것 같다고 생각했다.
독니를 드러낸 독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