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25
#1124.
전달하다 (4)
“모르는데요?”
“…….”
이현주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위긴스가 호랑이도 씹어 먹을 것 같은 얼굴로 이현수를 노려보았다.
“자, 잠깐만.”
이현수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너, 너, 할아버지 무공은 거의 다 전수받았다며?”
“그렇죠.”
이현주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양의심공을 알고 있었고.”
“그것도 그렇죠.”
“그, 그런데 왜 몰라?”
“무슨 소리예요? 양의심공은 할아버지나 우리 이가의 독문 무학이 아니잖아요. 그건 그냥 잡기죠.”
“…….”
“할아버지가 익히고 있던 무학이 한두 갠 줄 알아요? 할아버지는 한국에 퍼진 무학을 모아서 집대성한 분이란 말이에요. 그분이 익힌 무학만 백 종은 넘어갈 거예요. 그런데 그 잡기 하나하나를 어떻게 다 익혀요. 많이 익히는 건 적게 익히는 것만 못하다고 어설픈 건 전수도 안 해주셨어요. 제가 익힌 건 할아버지의 독문 무공과 그분이 인정한 무학들이죠.”
“…….”
다른 상황이었다면 과연 이중걸이라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후손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더 많은 것을 전수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그런데 알고 있는 것도 일부러 전수하지 않다니, 무척이나 올바른 스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중걸이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턱.
위긴스의 손이 이현수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자, 잘 생각해 봐. 혹시 배웠을 수도 있잖아?”
니 남자 친구 죽는다, 이 여자야!
“전 안 익혔어요. 익힌 사람을 알기는 하는데…….”
“누, 누구?”
“이성휘요.”
걔는 빼고!
걔가 익혔다는 게 뭔 의미가 있어! 잡아와도 절대 말 안 해줄 건데! 차라리 혀를 깨물겠지!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근데 뭐, 이성휘는 의미가 없을 것 같고.”
“무, 무고는?”
“예?”
“총무고 있잖아! 거기 비급들이 모여 있을 텐데?”
“아, 그거요? 할아버지가 예전에 무고 정리하면서 후대에 전하지 않아도 되는 쓸데없는 것들은 다 정리해 버렸어요. 그때 아마 양의심공도 불태웠을 텐데.”
“부, 불태워?”
대답을 잘해, 대답을!
니 남자 친구도 불탈 수가 있어.
“워낙 오래된 무학인데다 중국에서 건너온 거라 원본 훼손이 심했어요. 그래서 변형으로 익히고 있었는데, 이리저리 손을 많이 대다 보니 좀 많이 난잡해졌거든요. 비급이 있었다고 해도 익히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중국이라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중국은 삼왕계가 지배하는 땅이다. 총회가 중국에서 비급을 구한다는 소문이 돌면 홍왕계가 거품을 물고 방해할 것이다.
돈만 있으면 총도, 폭탄도, 심지어 사람마저도 구할 수 있는 곳이 중국이지만, 그 중국에서도 감히 홍왕계의 이목을 속이고 한국으로 비급을 유출할 만큼 간 큰 놈은 없다.
죽는 건 안 무서워도 홍왕과 차이커창은 무서울 테니까.
“그럼…….”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구할 방법이 없다는 건가?”
“워낙 사장된 무학이니까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못 구할 거예요. 예전 이사님들…….”
“죽은 사람 이야기는 빼고!”
“그럼 별수 없죠. 살아 있는 이사님에게 가보세요.”
“살아 있는 이사님?”
“네.”
이현주가 덤덤한 눈으로 대답했다.
“방 이사님이요.”
“…….”
“아…… 방 이사님이 계셨지?”
위긴스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위긴스가 조금 멍한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뭐가 상황이 이렇게 되지?’
이현수가 필사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위긴스의 심정은 매우 복잡미묘했다.
방진훈이 양의심공을 모른다고 해도 실망이고, 안다고 해도 상황이 그리 즐겁지 않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위긴스가 강해지는 것에 목을 매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방진훈이 아닌가.
그런데 방진훈이 양의심공을 알고 있으면?
‘내, 내가 방진훈에게 무학을 배워야 하는 건가?’
이거 미묘하다.
미묘하게 굴욕적이다.
아니, 물론 무학에 왕도가 어디에 있겠는가.
진정으로 강해지겠다는 마음을 품었다면, 소태를 씹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고, 거름 더미 위를 구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방진훈이 양의심공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그에게 배움을 청할 것이고, 그의 지시를 따를 것이다. 따르긴 따르는데…….
‘근데 왜 이리 찝찝하지?’
미묘하다. 매우 미묘하다.
사정을 들은 방진훈이 슬쩍 위긴스를 돌아본다.
위긴스가 굳어버린 얼굴을 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위긴스의 턱이 조여졌다.
전신이 절로 긴장한다.
“저는 모릅니다.”
“후우…….”
일순 긴장이 풀리며 숨이 뿜어진다.
‘불행은 불행인데…….’
불행 중에는 그나마 나은 불행이었다.
“그, 그럼 혹시 알고 있는 이는 없나?”
방진훈이 고개를 저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한국에 퍼져 있던 양의심공은 익힐 만한 가치가 없거든요. 중국에서 넘어온 무학이라 그런지, 꽤나 많이 변형되어 본래 가지고 있던 효능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라고 하면 이해가 되시려나?”
“…….”
“나도 혹해서 들여다보기는 했는데, 그건 정말 가치가 없는 무학입니다. 설사 익힌 이를 찾아내 전수받는다고 하더라도 원하시는 효과를 볼 수는 없을 거라…….”
“아…….”
위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풀렸다고 생각한 일이 다시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그럼 그 양의심공의 원본을 손에 넣지 않는 이상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그 원본은 중국에서밖에 찾을 수 없고, 중국은 그들이 갈 수 없는 땅이다.
“뭔 일이 이렇게…….”
위긴스가 참담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혹시나 하는 심정을 담고 고개를 돌려 바토르를 바라봤다.
“설마 내가…….”
“……그렇겠죠.”
바토르의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바토르의 성향상 양의심공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잡기를 익히느니, 그 시간에 육체를 조금이라도 더 단련하고자 했을 테니까.
모든 희망이 끊겼다.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는다.
양의심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리도 흥분하던 위긴스가 저리 어깨를 늘어뜨린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게다가 괜스레 희망 고문을 해버린 격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어떻게 잘 찾아볼 방법이 있을 겁니다.”
이현수가 위긴스를 위로했다.
그러자 위긴스가 고개를 획 돌려 이현수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
평소라면 위로라는 걸 알고 고개를 끄덕였을 위긴스지만, 지금 위긴스의 반응은 평소와는 영 달랐다. 눈을 희번덕거리는 꼴이, 살기가 번들댄다.
“……아니, 뭐, 어떻게 잘. 중국에라도 한 번 정보를 넣어보죠. 원본을 구할 수 있는지.”
“중국이 잘도 주겠다.”
“…….”
그야 그렇지.
사실 상황이 좀 꼬이기는 했다.
사람이 정말 미칠 때는 목이 마른데 물이 없을 때가 아니다. 목이 말라 죽겠는데 먼 곳에 오아시스가 보일 때다.
그 오아시스가 신기루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가 없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오아시스가 실존할 가능성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체력을 낭비해 가며 오아시스를 쫓다가 결국에는 말라 죽고 마는 것이다.
지금의 위긴스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양의심공이 존재하는 것을 몰랐다면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면 십 년이 넘게 그를 좌절시키고, 결국 더 강해지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벽을 넘을 방법을 알아냈는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다시 포기해야 한다?
그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이다.
평소라면 낄낄 웃어 제꼈을 바토르도, 쿡쿡 찔러 댔을 방진훈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무인이기에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위긴스가 얼마나 애타는 심정일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 방진훈이 넌지시 물어왔다.
“……변형된 양의심공이라도 한 번 구해봅니까?”
“구할 수는 있는가?”
“샅샅이 뒤지면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뭐, 나름 명문이라는 놈들한테 연락을 넣어서 무고를 뒤져 보라고 해야죠.”
“어떻게 생각하나?”
“예?”
“그걸 익히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방진훈이 한숨을 쉬었다.
“말했듯이 솔직히 도움은 안 될 거라고 봅니다. 그 변형된 부분을 되짚어서 원본을 복원해야 하는데, 그쯤 되면 거의 새로운 무학을 창안하는 수준이라…….”
“으음.”
“대종사급이더라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회주님 정도는 되어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일인데, 아시다시피 회주님은 정공에 대한 이해도는 영 꽝이라서.”
“끄응.”
위긴스가 앓는 소리를 냈다.
다시 말하자면, 현실적으로는 양의심공을 익힐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포기해야 하는가?’
쓰리다.
이건 너무도 쓰렸다.
차라리 몰랐다면 나았을 것을, 한 번 잡았다고 생각한 실마리가 잘려 나가는 것은 창자를 자르는 고통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신경 써주어서 고맙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게지.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네.”
“아…….”
다들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덜컥!
문이 과격하게 열리더니, 한 사내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음, 장로님?”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위긴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네놈이냐?”
“……예?”
“양의심공이 필요하다는 놈이 네놈이냐고.”
“그, 그렇습니다만?”
“쯧쯧쯧.”
장민이 영 마뜩찮다는 얼굴로 말했다.
“약해 빠진 놈이 또 사술에 손을 대려고 하는구나. 야, 이놈아! 너는 너무 많이 먹었어. 처먹은 걸 다 소화도 못하는 놈이 또 뭘 처먹겠다는 것이냐?”
“…….”
“쯧쯧쯧, 마존께서 들여다보라고 한 이유가 있구나. 그래, 양의심공을 익혀 그걸 정리하겠다고?”
“일단 계획은…….”
빤히 위긴스를 바라보던 장민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뭘 내놓을 테냐?”
“예?”
장민이 거침없이 걸어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다리를 꼬고 등을 기댔다.
“얻어가려면 뱉어내는 것도 있어야지. 양의심공을 주면 너는 내게 뭘 줄 테냐, 이 말이다.”
“헉!”
위긴스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서, 설마?”
“그래.”
장민이 피식 웃었다.
“내가 알고 있다, 네놈이 찾는 양의심공의 구결을.”
위긴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그게 왜 장민에게 있는가. 장민은 마교의 장로인데, 왜 그가 정파의 무학을 알고 있단 말인가.
“저, 정말입니까?”
“무당이 망할 때, 비고에 들어가서 쓱삭했지.”
“…….”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인 법이다. 적의 무학을 알아야 적을 상대할 수 있는 법이지. 아마 웬만한 정파 놈들의 무고보다 마교의 무고에 정공이 더 많을 거다. 그래서 각설하고, 네놈은 뭘 내놓을 테냐?”
“뭐, 뭘 드려야 합니까?”
“허어, 이놈 보게? 빤한 걸 묻는구나. 양의심공이 어디 보통 무학이냐? 그만한 무학을 사려면 당연히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지.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네게 제일 중요한 걸 내놓거라.”
제일 중요한 것?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이 뭐였지?
위긴스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서, 설마 제 딸을?”
“미친놈이 지랄을 한다.”
장민이 한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내놔.”
“뭐, 뭘요?”
“돈.”
“…….”
장민의 눈이 빛을 뿜는다.
“한 푼도 남김없이 싸그리 다 내놔라.”
“…….”
순간적으로 무학을 포기할까 고민하는 위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