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27
#1126.
다가오다 (1)
“오래도 걸리는군.”
차이커창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얼굴로 그의 앞을 채우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벌써 중국과 일본을 오간 게 십여 차례나 되어간다.
‘병신 같은 놈들.’
일본인들이 신중하다는 말이야 심심찮게 들었지만, 이건 신중함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지독할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지독하게 겁이 많을 뿐이다.
일전에 한국을 침략할 때는 순식간에 준비가 끝났건만, 좀 더 전격적으로 나서야 할 지금은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채 손만 까딱대고 있다.
차이커창을 더욱 짜증 나게 하는 것은 지금 이놈들이 단순히 시늉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을 쳐야 한다는 의식은 모두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것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만약 중국에서 같은 일을 진행했다면, 그들은 이미 한국 땅에 도착해 전쟁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일본 놈들은 도무지 움직일 줄을 몰랐다.
‘겁쟁이 놈들.’
이유와 당위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무슨 일을 진행하더라도 실패했을 경우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 방법부터 찾는다.
일본의 지독한 관료 문화도 어쩌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향에서 시작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수령이 차이커창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 재촉할 것 없소. 준비는 거의 끝나가니까.”
“끝나가?”
차이커창이 코웃음을 쳤다.
“이봐, 강진호가 늙어 죽기를 기다리는 걸로 전법을 바꿨나? 그럼 아주 잘하고 있다고 해야겠군. 이대로 백 년만 기다리면 강진호가 죽을 테니, 그때 한국을 치는 건 어떤가?”
“매번 느끼는 거지만, 당신은 중국인 같지 않군. 중국인들은 비꼬는 데는 소질이 없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중국인 나름이겠지.”
차이커창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병신 놈들의 엉덩이를 다 걷어차 버리고 싶지만, 이곳은 중국이 아닌 일본이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저들을 재촉하는 것이지, 지시하는 게 아니다.
“관동에서 연락이 왔소.”
“음?”
차이커창이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관동.
일본 무인계의 중심은 관서다. 하지만 바깥세상에서의 중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관동 지방이다.
무인계로만 본다면 아직은 관서가 관동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경제력과 인구를 바탕으로 관서가 관동을 추격하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대답은?”
“합류하겠다는군.”
“흠.”
차이커창이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전력이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다.
‘굳이 내가 더 깊은 부분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중국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명령 체계가 일원화되지 않는 병력이 추가된다는 건 반드시 긍정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 부분은 차이커창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완벽한 승리를 바란다면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차이커창이 바라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소모였다.
“다른 수작을 부릴 확률은?”
“그리 멍청하지는 않겠지.”
“흐음.”
관서와 관동의 관계를 감안한다면, 협조하는 척하고 뒤통수를 칠 확률도 있다.
‘그건 저자의 능력을 믿어야겠군.’
차이커창이 가만히 수령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소식이군.”
수령이 살짝 미소 짓는다.
“이쪽을 재촉할 일이 아니지. 그래서, 말한 지원은 어떻게 되었나?”
“준비는 끝났다.”
“벌써?”
“벌써라니. 네놈들이 과도하게 느린 거다.”
수령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서 그 지원은 언제 도착하지?”
“배로 넘어오고 있다.”
“과연.”
차이커창과는 다르게 수령은 여전히 느긋한 모양이었다.
“약속한 지원은 해줬다. 이제는 네놈들이 약속을 지킬 때다.”
“물론이다. 일본인의 신용은 의심할 필요가 없지.”
차이커창이 비릿하게 웃었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있군.’
가장 못 믿을 족속이 이놈들이다. 지금이야 협력 관계니 서로 웃고 있지만, 뒤에서는 서로 칼을 갈아대는 관계다.
‘차라리 한국 놈들에게 정이 더 간다.’
일본에서 활동하며 차이커창은 새삼 관계와 친밀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주적은 한국이다.
그리고 강진호다.
그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차이커창은 강진호와 총회의 파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강진호를 죽일 수 있다면, 웃으면서 실행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게 강진호를 증오한다는 말과는 또 다르다.
강진호를 죽이기 위해서는 무슨 짓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하자면, 차이커창이 강진호라는 남자를 그만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인정하기에 경계하고, 인정하기에 두려워한다.
강진호뿐만이 아니다.
차이커창은 강진호의 주변인들도 인정하고 있었다. 바토르는 물론이고, 그 짜증 나는 이현수와 위긴스마저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들의 능력은 물론이고, 다른 부분까지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이놈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음에도 영 정이 가지 않는다. 저 부드러워 보이는 얼굴 뒤에 얼마나 더러운 것이 숨어 있을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능력이 뛰어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놈들과는 성향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말인데…….”
수령이 느긋하게 목소리를 냈다.
“이제 그만 중국으로 돌아가 줬으면 좋겠군.”
“음?”
차이커창이 고개를 들어 수령을 바라보았다.
“아아, 오해할 건 없네. 그쪽을 배제하겠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저 말일세…….”
수령이 미묘한 미소를 띠었다.
“아무래도 자네는 중국인이 아닌가. 직접 움직여야 할 때는 눈이 많단 말이지.”
“…….”
“이끄는 이들이야 계산이라는 걸 하니까 중국의 지원을 받거나 동맹을 맺는다는 걸 이해한다만, 아랫것들은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지. 그저 기분 나빠 한단 말일세.”
“그러니 빠져라?”
“그런 말은 아니지만, 전면에 나서는 건 좀 어렵지 않겠나.”
차이커창이 비릿하게 웃었다.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성질 같아서는 저 미소 띤 얼굴을 후려쳐 버리고 싶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해주지.”
“흠?”
“왜? 쉽게 받아들여서 이상한가?”
“아니. 그렇지는 않아. 이해할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껄끄럽다는 뜻이군.
차이커창은 자꾸만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눌렀다.
수령은 그런 타입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쥐고 흔들어야 하는 사람.
자신의 계산에서 벗어나는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
그렇기에 이만한 조직을 꾸려 나갈 수 있겠지만…….
‘그릇이 작아.’
한심할 정도로 그릇이 작다.
스스로는 굉장히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애초에 위에 서는 이는 그저 합리적이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합리를 포기할 줄 알아야 사람을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차이커창은 수령을 탓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작은 소국을 이끄는 이에게 홍왕이나 강진호급의 포용력을 바라는 게 무리다. 그 정도의 능력이 되었다면 일본의 무인계는 진즉에 통합이 되었을 것이다.
어설프게 신니치카이를 필두로 한 연합체를 구성하고 있지는 않겠지.
수령의 시선이 차이커창을 훑었다.
차이커창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닌가 의심하는 눈초리다. 적어도 저런 눈초리를 보낼 때는 상대가 그 의도를 알아차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흠.”
차이커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써먹는 도구.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 바라야 할 부분이 있고, 개에게는 개에게 바라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수단으로 써먹고 버릴 놈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불편하다면 떠나줘야겠지.”
“지금?”
“왜? 덕담이라도 나누고 싶은가?”
수령은 아무 말 없이 차이커창을 바라보았다.
떠나 달라고 요구해 놓고서는 막상 그 요구를 받아들이니 불안해한다. 전형적인 소인배다.
하지만…….
‘소인배는 소인배 나름의 가치가 있는 법이지.’
저만큼 의심이 많고 소심한 이라면 적어도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을 거다.
“나는 너희에게 할 만큼 했다. 원하는 것을 해주었고,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었지. 이제 남은 건 너희의 일이다. 지켜보며 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부담이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누구나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지.”
“이해한다.”
살짝 미련을 내보이자마자 칼같이 끊어온다.
“다만…….”
차이커창이 살짝 으르렁대듯 말했다.
“이만큼의 지원을 해주었는데도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목을 붙여놓고 싶으면 최선을 다하도록.”
“이!”
“건방진!”
발악을 하는 것은 수령이 아니라 주변인들이었다.
수령이 손을 들어 그들을 만류했다.
“놔둬라.”
“하나 수령!”
“놔두라 했다.”
다들 입을 닫는다.
차이커창의 평가가 어떻든 수령은 완벽하게 저들을 장악하고 있다.
하기야.
저 의심 많은 인간이 이리 오랫동안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면, 반대의 목소리를 낼 만한 이들은 이미 진즉에 숙청되었을 것이다. 따르는 이들은 오로지 수령의 말을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이들뿐.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그럼 또 볼 일이 없길 바라지.”
“아니. 우리는 곧 다시 보게 될 걸세.”
차이커창이 가만히 수령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좋겠지.”
그러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차이커창이 밖으로 나가자 분노한 이들이 입을 열었다.
“수령, 저 건방진 자를 저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명령만 내려주시면 저자가 살아서 열도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됐다.”
“수령!”
“쯧, 되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
수령이 가만히 차이커창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이용 가치가 있는 자다. 쓰임새를 생각하면 조금의 건방짐 정도는 참아줄 수 있지.”
“하나!”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수령이 손짓으로 모두의 말을 일축했다.
“집중하라.”
“…….”
“한국 정벌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운명을 건 결전이 될 것이다. 지금은 우선 거기에 집중해야 할 때다. 관동과의 협의를 서둘러라. 최대한 시간을 당긴다.”
“예! 수령!”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수령이 눈을 가늘게 떴다.
‘차이커창.’
그 눈에 어린 경멸을 눈치채지 못할 수령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 중국 놈들이 대국이니 어쩌니 하면서 이상한 명분과 대의를 부르짖다가 망하는 꼴을 한두 번 보는 게 아니잖은가.
‘너는 지금 나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수령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끌어냈다.
대의라든가 원대한 계획 같은 것에 집착하는 놈들이 저지르는 짓거리다.
이제 곧 저놈들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 과실도 따먹지 못하는 놈들이 먼 미래에 수확할 곡식만 보고 있으면 결국 굶어 죽는다는 걸 말이다.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겠지만.’
한국을 정벌하고 나면 저들이 어떤 눈으로 그를 바라볼지 매우 궁금해지는 수령이었다.
“박차를 가해라.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이 달이 끝내기 전에 총회에 신니치카이의 기를 꽂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