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34
#1133.
쉬어 가다 (3)
“…….”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건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눈앞의 사람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깨어졌을 때, 사람은 관계를 단절하기 마련이다.
관계라는 것은 그렇다.
상대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굳이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 기본적으로 모든 관계는 자신을 우선시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면?
상대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준다고 해도 그 관계를 꿋꿋이 이어가는 것. 그런 관계에 있는 이들을 세상은 ‘친구’라 부른다.
“그러니까…….”
주영기는 포장해 온 피자판을 통통 두드렸다.
“이틀 밤새서 게임할 거라고?”
“응.”
“……여기서?”
“응.”
주영기가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쾌적하다.
뭐, 쾌적하겠지. 요즘 피시방들은 다 그러니까. 흡연실도 따로 있고.
문제는 여기가 피시방이라는 거지!
“부라더스.”
주영기가 살짝 짜증을 목소리에 담았다.
“나이를 이만큼 처먹은 인간들이 친구 손 붙잡고 피시방에서 이틀 밤을 새겠다는 게 할 짓이냐? 집안에서 이제나저제나 너희가 잘되길 빌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 않냐?”
“허락받았어.”
“나 부모님 안 계시는데?”
“여, 영민아, 미안하다. 내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내가… 미친! 주둥아리!”
“지, 진정해.”
본의 아니게 불꽃 패드립을 날려 버린 주영기가 피자 박스가 뒤집어지도록 들썩거렸다.
“미안하다! 요즘 그런 생각이 안 들어서!”
“진정 좀 해. 내가 더 부담스럽다.”
박유민이 기겁을 한 주영기를 진정시켰다. 주영기가 몇 번 심호흡을 하고는 안색을 바로 했다.
“여튼간에 갑자기 뭐 하는 짓이냐?”
“진호하고 게임 좀 하려고.”
“너희 연습실 있잖아.”
“다른 애들 있으면 방해돼. 그냥 피시방이 편해.”
주영기가 미간을 좁혔다.
‘악취미네.’
강진호의 경제력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호텔방을 잡아서 실시간으로 피시방으로 세팅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굳이 다른 사람들이 오가는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겠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점을 떠나…….
“뭔 게임을 밤을 새서 해! 니들도 이제 성인이야!”
“성인이 게임하는 게 뭐 어때서. 나는 프로게이먼데.”
“으…….”
말문이 막힌 주영기가 움찔했다.
하기야 프로게이머가 밤새서 게임하는 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주영기가 박유민에게 시선을 떼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왜?”
“너, 너는…….”
“나는.”
강진호가 당당하게 말했다.
“전역한 이후로부터 취미 생활을 가지고 놀아본 적이 없다. 군대에서도 열심히 했고, 3년 정도를 일만 했지.”
“…….”
“이틀이 문제가 되나?”
“하, 하시지요.”
주영기가 침몰했다.
그런 주영기를 보며 박유민이 피식 웃었다.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 지금도 공원 같은 데 가면 할아버지들이 장기 두고 바둑 두잖아.”
“그게 왜?”
“그분들이 처음 장기 두고 할 때는 그것도 논다고 욕먹었을 거야.”
“……아?”
“게임을 하는 게 어린 시절 잠깐이 아니라는 거지. 아마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게임 할걸?”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주영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목을 젖혔다.
“뭐, 그거야 이해한다고 치자.”
주영기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너, 다음 주에 결승전 아니냐? 그런데 진호랑 놀고 있어도 돼? 결승 포기한 거야?”
“아니!”
박유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결승이라서 진호랑 게임하는 거야. 필요하거든.”
“하…….”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얘랑 게임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응.”
“얘가 뭔데?”
공방양민.
주영기가 머리를 벅벅 긁는다.
강진호가 자신이 맡은 모든 면에서 웬만큼 두각을 드러낸다는 건 주영기도 잘 알고 있다. 군대에서 본 강진호란 인간은 뭔가 규격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평범한 이들의 눈에서 봤을 때다.
프로가 왜 프로인가.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한 분야에서 눈 돌아갈 만큼의 뛰어남을 보이는 이들이 거르고 걸러져 올라가는 게 프로다.
심지어 프로가 되었다고 해도 끝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프로에서 빛나는 건 1군뿐이다.
그 1군이 되기 위해 지금 천재 중의 천재 소리를 듣던 이들이 2군에서, 그리고 연습생으로 기계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게 빤하지 않은가.
프로의 세계는 일반인 수준에서 잘한다는 게 의미가 없는 동네다.
더구나 박유민은 그 프로 중에서도 빛이 나는 존재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강진호가 박유민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쪽 세계에서 강진호는 티끌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그런 강진호와 연습을 한다고?
“유민아,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고 싶은데, 솔직히 지금 네가 제정신으로는 안 보이거든.”
“이해해.”
“이해하는 얼굴이 아니잖아, 인마!”
박유민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주영기의 반응이 이상한 게 아니다.
팀원들이나 감독님이 지금 박유민이 하고 있는 일을 봐도 똑같이 반응했을 것이다. 확실히 지금 박유민이 하려는 일은 상식이라는 측면에서 벗어났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이 시간에 휴식을 하거나 팀원들과 게임을 하는 쪽이 맞다. 하지만 박유민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냐.’
지금 박유민에게 필요한 건 자극이다. 그리고 공격성이다.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플레이 스타일이 변해봐야 얼마나 변하겠는가.
프로라는 건 그렇다.
투구폼을 1㎜ 단위로 조정하는 데 며칠이 걸리고, 슛 폼을 한 번 바꾸는 데 시즌을 날려 먹는 게 프로의 세계다. 차곡차곡 쌓아진 연습은 때로는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이틀 만에 스스로를 바꾼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박유민은 그걸 해낼 작정이었다.
스스로 바꾸려고 한다면 어려울지 모르지만, 바로 옆에 존재감 하나로는 프로도 씹어 먹는 강진호가 있고, 그걸 적극적으로 모방하고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해야 하는 일이야.”
“……끄응.”
주영기가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박유민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고맙네.’
주영기가 딴죽을 건 게 아니다. 주영기는 지금 필사적으로 박유민을 걱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둘이서 피시방을 갔다는 말을 듣고는 말하지도 않은 피자를 싸 들고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게 아니겠는가.
주영기는 나름대로 결승을 앞두고 있는 박유민이 제대로 연습을 하지 못할까 봐 마음이 싱숭생숭한 거다.
‘참…….’
이상하게 가슴이 따뜻해졌다.
성적이라든가 경쟁이라든가, 그런 세계에 들어가 있다 보니 실감하지 못했는데, 자신에게는 이런 친구들이 있다.
게다가 반응을 보아하니 다들 말은 안 해도 자신의 경기를 챙겨 봐주고 있던 모양이다.
박유민이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힘이 나네.’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고 있는 최근이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사실 박유민은 슬럼프가 온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다. 그리고 박유민이 생각하는 슬럼프의 원인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의외의 곳에서 기회를 잡아냈다.
‘그러니 더 미안하지.’
민망하고.
“어쨌든 네가 도움이 된다니까… 도움이 되겠지. 내가 뭘 아나. 게임이야 네가 잘 아니까.”
주영기가 강진호를 보며 인상을 썼다.
“농땡이 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도와, 인마!”
“내가 농땡이 치는 거 봤어?”
“너무 많이 봐서 뭐부터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너 이 새끼, 원래 한 번씩 와서 주방 도와주기로 했잖아!”
“…….”
“신메뉴 개발하는 것도 도와주기로 했고! 중간중간 맛 안 변하게 잡아주는 것도 하기로 했고!”
“…….”
강진호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동업을 했으면 제 할 일은 해줘야지! 네가 뭔 주식 투자자냐? 가만히 앉아서 배당금만 받아 처먹게?”
“미안.”
강진호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괜히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찾게 생겼다.
“잘해.”
“예!”
강진호가 은근히 물었다.
“그런데 피자 식을 것 같은데, 먹고 시작해도 되냐?”
“닥쳐. 게임 하고 먹어.”
“어… 나도 배고픈데.”
“유민이, 너는 먹어라. 자, 내가 피클이랑 소스도 챙겨 왔다.”
“…….”
강진호가 괄시를 받는 곳은 집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게임이라, 오랜만이네.’
한때는 강진호도 게임을 취미로 삼은 적도 있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집에 돌아오면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게임이 재미있어서?
물론 그런 것도 있다.
중원에서 유희거리라고는 찾을 수 없던 강진호에게 게임이란 백 년에 가까운 시간 만에 즐겨보는 놀이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게임과는 점점 멀어졌다. 흥미를 잃었다기보다는 느긋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잃었다는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접속했어?”
“음.”
강진호가 메인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게임 화면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예전에는 이게 뭐가 재밌다고 하루 종일 게임을 했던 걸까?’
어차피 가상은 가상이다.
그리고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조금 미안한데.’
박유민은 그에게 뭔가를 바라는 모양이지만, 어쩌면 강진호는 박유민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예전과 같은 열정이 그에게 남아 있지 않으니까.
“일단 기본으로 첫 겜 한 번 돌려보자.”
“응.”
강진호가 조금 무심한 시선으로 게임에 접속했다.
매치가 잡히고 깔끔하게 게임에 들어간 강진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픽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라…….’
마우스 클릭을 따라서 움직이는 캐릭터를 활용하여 적을 죽여 나간다. 이런 간단한 룰이 재미를 주는 것이겠지.
뭐, 이제는 흥미를 잃었다고는 해도 어쨌든 박유민을 돕는 일이니 나름 열심히…….
“어? 너 죽었다.”
“…….”
실수, 실수다.
이제는 마음을 잡고…….
“어? 너 또 죽었다.”
“…….”
리젠된 지 일 분도 되지 않아 다시 회색 화면이 떴다. 길바닥에 철푸덕 쓰러져 있는 자신의 캐릭터를 보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오랜만에 하다 보니 제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으음, 물론 괜찮다. 이번 판은 연습 삼아 하는 거니까.
“야, 또 죽어?”
강진호의 얼굴이 멍해졌다.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세 번을 죽었다. 이쯤 되면 회생이 불가능하다.
“지, 진호야, 침착하게.”
“응, 괜찮아.”
박유민의 반응이 재미있다.
게임.
그깟 게임,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거지. 한동안 쉬었으면 감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질 수도 있는 거지. 게임 캐릭터 몇 번 죽었다고 흥분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야, 쟤가 너한테 뭐라고 하는데?”
“응?”
주영기의 말에 강진호의 시선이 채팅창을 향했다.
― 야, 대리 받았냐? X도 못하는 새끼가 왜 여기서 노냐. 상대해 주기 귀찮으니까, 빠른 항복하고 니 수준 맞는 데 가서 놀아라.
강진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손에 들어간 힘을 이기지 못하고 마우스가 끼긱끼긱, 뒤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