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40
#1139.
증명하다 (4)
부우우우우우웅!
모두의 고개가 일순 돌아간다.
주변이 딱히 조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끄러운 축에 속했다. 하지만 저 낮은 엔진 배기음은 사람의 시선을 절로 잡아끌었다.
‘회장?’
하광식이 조사한 바대로라면, MK의 대표는 강진호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20대 남성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 있다.
가족 중 딱히 대단한 재력을 가진 이도 없고, 그렇다고 고위층과 혈연이 이어져 있지도 않다. 재경이라는 명문대학을 다닌다는 것 말고는 특이 사항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말이야.’
흔치 않은 일이다.
특히나 재계에서는 웬만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유?
간단하다. 결국 돈을 버는 것은 돈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그게 가능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세상이었으니까.
본디 난세는 영웅의 시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이 가진 본질을 때때로 간과한다.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는 말은, 난세가 아닌 치세에는 영웅이 태어나더라도 그저 흔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뜻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난세를 넘어 치세에 접어들었다.
유조선을 침몰시켜 바다를 막아냈다는 영웅담이 더 이상은 들려오지 않는 시대라는 뜻이었다.
그런 시대에 듣도 보도 못한 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이만한 기업을 세운다?
‘그럴 리가 없지.’
반드시 어딘가에는 커넥션이 있다. 하광식도, 다른 기자들도 아직 밝혀내지 못한 커넥션이!
하광식이 입술을 핥았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낯짝부터 보자.’
하광식이 유일하게 신봉하는 지론은 단 하나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강진호가 어떤 놈이든,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든 포기하지 않고 달라붙는다면, 반드시 그 뒤를 캐낼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부우우우웅.
스포츠카가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앞쪽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막아선다.
유리창이 내려가고, 강진호가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왜?”
“저희가 주차하겠습니다. 회주…… 아니, 회장님.”
“음.”
강진호가 그대로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다가오는 이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몸을 돌렸다.
‘폼 나네, 새끼.’
하광식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일단 저 새끼는 분명 있는 집 자식이다.’
정보와는 다르다. 그가 얻은 정보대로라면 강진호의 집은 재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정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정보와 감이 맞부딪쳤을 때, 하광식은 정보보다는 자신의 감 쪽을 조금 더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정보는 조작이 가능하지만, 감은 조작할 수 없으니까.
‘절대 가난한 집 놈이 아냐.’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저 태도 때문이다.
이제 겨우 군대나 전역했을까 싶은 놈이 아랫사람 다루는 게 너무 자연스럽다. 저건 벼락부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적어도 십여 년 이상은 사람을 두고 부린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여유다.
저 어린놈이 십 년 이상 아랫사람을 두고 부렸다면, 있는 집 자식일 수밖에 없다. 일명 재벌 3세라 불리는 어린놈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여유니까.
‘아니, 그 정도가 아닌가?’
여유는 그들 이상일지 모르겠지만, 그놈들에게서 보이는 풋내 어린 오만함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과 오만을 나누는 요소은 하나뿐이다.
근거.
재벌집의 개념 없는 어린놈들은 자신이 왜 그런 지위를 누릴 수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의 행동에는 치기가 어린다. 스스로도 알게 모르게 자격지심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놈에게는 그런 치기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는 것 같다. 스스로 창업해 성공한 1세대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자신감이 저놈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뭐지?’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저 나이에 저런 여유는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저 태도는 또 이상하게 들어맞는다.
마치…….
‘젊은 사람 몸속에 노인이 들어가 있는 것 같군.’
하광식이 피식 웃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그만큼이나 강진호라는 자가 보여주는 태도는 하광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일단 무엇보다…….
“드라마 찍나, 씨발.”
“선배님, 제발 입 좀…….”
“짜증 나잖아.”
“아니까, 입 좀!”
박규연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 인간을 따라다니다 보면 제명에 못 죽을 게 빤하다. 당장 옆에 실장이라 불린 양반이 있는데 그 앞에서 욕지거리라니.
물론 저 욕은 진짜 욕이라기보다는 감탄이나 열폭에 가깝긴 하지만 말이다.
‘잘생겼네.’
하광식이야 다른 생각이 있어서 왔다지만, MK고 나발이고 아무 관심 없이 사진 셔틀로 끌려온 박규연은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이 된다.
검은 정장을 빼입은 덩치들 사이로 강진호가 걸어오는 모습이 정말 느와르 영화 같았다.
엑스트라가 되는 이들은 다들 한 덩치 하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고, 주인공은 길쭉길쭉한 비주얼에 톱스타급 외모를 갖추었다는 것도 느와르 영화와 같다.
“마치 영화 촬영장 온 느낌인데요? 연예부가 와야 하는데 우리가 잘못 온 거 아닙니까?”
“너나 입 다물어, 인마.”
하광식이 짜증 섞인 핀잔으로 박규연의 입을 닫고 고개를 들었다.
강진호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하광식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잠깐. 내가 긴장을 해?’
하광식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는 이래 봬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흥미가 가는 사건만 있다면 부서고 나발이고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습성 탓에 수많은 이들을 겪어보았다.
그중에는 재계을 뒤흔드는 재벌가의 총수도 있고,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거물 정치인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 목숨을 개미 목숨처럼 여기는 범죄자도 있고, 대한민국의 밤을 지배하는 조직의 지배자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만나며 면역을 길러온 하광식이다. 그런데 그런 하광식이 저 어린 녀석을 보며 긴장한다고?
‘이거,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닌데?’
상식은 저놈을 애송이 바지사장이라 판단하지만, 그의 감은 저놈이 말도 안 되는 거물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다시피 하광식은 상식과 감이 충돌할 때면 감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강진호가 거물이라는 판단이 서자 상황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자리는…….
“오셨습니까?”
이현수가 강진호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강진호가 가벼운 턱짓으로 이현수의 인사를 받고는 하광식을 가리켰다.
“이쪽은?”
“아, 소식을 듣고 온 기자님들이십니다.”
“기자?”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딱히 기자를 부르라는 지시는 없던 것 같은데?
강진호의 표정을 읽은 이현수가 살짝 눈짓했다.
“알아서 확인하고 오신 모양입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광식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진호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하광식입니다.”
악수를 하며 두 사람이 서로 살짝 마주 웃었다. 속내야 어떨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꽤나 화기애애한 광경이었다.
“이렇게 환대를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별말씀을.”
“그냥 공치사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보통 이만한 기업의 사장쯤 되는 분들은 기자를 날파리 정도로 생각하시거든요. 아니, 날파리라기보다는 모기에 가깝겠네요. 자기들의 피를 빨아서 연명하는 모기. 뭐, 그리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하광식이 씨익 웃으며 안경을 쓱― 올렸다.
강진호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럼에도 이리 전향적으로 나와주시니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떻게, 앞으로도 종종 뵐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강진호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기자분들은 기삿거리가 있어야 취재하는 수고를 보상받을 수 있으실 텐데, 저희가 그런 걸 제공해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딱히 큰일이 있을 수 없는 회사라서 말입니다.”
“에이, 큰일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죠. 예를 들면…….”
하광식이 능글능글한 얼굴로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기업의 실소유주라든가, 은연중에 받은 혜택이라든가.”
하광식의 눈이 재빠르게 강진호를 훑었다.
하지만 강진호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옅은 미소를 띤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재미있네요.”
이것 봐라?
하광식이 이채를 띠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취재 대상은 기본적으로 온화하게 대해야 하는 법이다. 취재 대상 역시 사람이기에 친근감이 느껴지고, 편하게 느껴지는 이에게 좀 더 많은 것을 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친절하게 대해줘 봐야 딱히 얻어낼 것이 없어 보이는 이에게는 지금처럼 살짝 자극을 가하기도 한다.
사람은 당황했을 때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면전에다 대고 도발을 했음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는 놈인데?’
좀 더 흥미가 동한다.
어쩌면 이 일, 그의 생각 이상으로 큰일일지도 모르겠다.
“취재를 허락하시는 겁니까?”
“허락을 안 하면 안 하십니까?”
“에이, 그럴 리가요. 저도 밥 먹고 살아야죠. 그런데 대표님이 허락을 해주신다면 저희가 취재하기 용이하지 않겠습니까?”
“뭐든 쉬우면 재미가 없는 법이죠.”
“하하, 그렇죠. 그 말도 맞죠.”
하광식이 입술을 핥았다.
강진호가 그런 하광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말씀을 나누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왕 오신 거, 잘 찍어주십시오.”
“예. 걱정 마시죠. 제가 얼짱 각도로 사진발 쩔게 찍어드리겠습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이현수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강진호를 따라 건물로 향한다.
“선배님.”
두 사람이 적당히 멀어졌다 싶자 박규연이 입을 열었다.
“왜?”
“선배가 자살에 관심이 있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애꿎은 후배 끌고 죽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혼자 목매시면 안 됩니까?”
“뭐, 인마?”
“아니…….”
박규연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얘들, 누가 봐도 조폭 아닙니까. 그것도 사람 여럿 죽여본 놈들 같은데, 무슨 배짱으로 이런 애들 앞에서 그렇게 뻗대시는 건데요?”
“조폭?”
“누가 봐도 조폭이잖아요.”
“너는 기자로 대성하긴 글렀다.”
“예?”
하광식이 혀를 찼다.
‘조폭은 얼어 죽을.’
그런 단순한 게 아니다. 이들에게는 조직폭력배에게서 느껴지는 마이너함이 없다.
이런 놈들이 조폭이라면 이미 대한민국을 회 쳐 먹었을 것이다.
‘대체 이놈들 정체가 뭐지?’
하광식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대충 짐작을 하고 왔는데, 생각한 모든 것이 헝클어지는 느낌이다.
그럼 조금 더…….
“어? 선배!”
“왜?”
“저거, 의전 차량 아닙니까?”
“응?”
하광식이 고개를 들었다.
‘의전 차량?’
여기에 의전 차량이 왜?
건물 앞으로 검은색 세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하광식이 입을 슬 벌렸다.
“저, 저 사람…… 총리님 같은데요?”
“…….”
하광식의 눈 아래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대놓고?’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