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46
#1145.
개업하다 (5)
“아니!”
“…….”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이게!”
“…….”
“그러니까, 바로 위에 옥상이 있는데! 왜 거기서!”
“…….”
강진호는 옆을 돌아보지 않고 액셀을 밟아 댔다.
‘내가 뭐 그럴 줄 알았나.’
퇴근은 예상보다 늦어졌다.
딱히 업무가 늘어나서는 아니다.
“소방관들 얼굴 보셨습니까? 예? 보셨냐구요!”
“…….”
강진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21세기에! 예? 뭔 쌍팔년대도 아니고, 21세기에 실내에서 흡연해서 소화전이 울리고! 소방차가 출동하는 사태를 눈으로 봐야 합니까! 얼굴이 화끈거려서 말도 못했습니다, 말도!”
절대 시선을 돌리면 안 된다.
지금 강진호는 이현수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새 건물이라 센서가 민감했던 모양이지.”
“새 건물이고 헌 건물이고, 실내 흡연은 원래 금지라구요!”
“……너도 총회에서는 피웠잖아.”
“거기랑 여기랑 같습니까!”
내로남불이다.
이건 진짜 내로남불이었다.
하지만 저지른 죄가 있다 보니 뭐라고 딱히 반론을 하기가 힘들다.
“그놈의 담배. 몸에 좋지도 않은 거, 좀 끊으십쇼. 열심히 피워 대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닙니까!”
“……나는 괜찮잖아.”
“남들은요? 간접 흡연은 흡연도 아닙니까?”
무인의 몸은 무척이나 편리하다.
무인들이 익힌 심공은 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한다. 몸 안에 들어온 독소는 알아서 배출하고, 상처를 입으면 저 스스로 치유한다.
덕분에 강진호는 아무리 담배를 피워 대도 흡연의 폐해에 시달리지 않았다.
‘물론 담배야 끊는 게 좋지.’
그건 세 살짜리 어린이도 안다.
하지만 여자 친구나 가족도 아닌, 이현수에게 담배로 잔소리를 듣는 강진호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주의할게.”
“사무실 내에서 흡연은 이제 안 됩니다. 저는 그 소방관이 짓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안 그래도 바쁘신 양반들이 쓰잘데기 없는 일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데 도움은 못 줄망정!”
“…….”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소방차가 몰려왔을 때, 강진호 역시 제대로 당황했다. 상황이 파악이 되고 나서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런데 보통 소방차라는 건 신고해야 오는 거 아닌가?”
“소화전이 울리면 자동으로 연락이 가게 해뒀습니다. 야간에 건물을 통째로 비우는 일이 흔하잖습니까. 아직 경비도 제대로 안 세웠고.”
“음.”
“시스템은 바꿀 생각입니다만, 여하튼 이제는 안 됩니다.”
“그거 말인데…….”
“예.”
“회장실에서 화재경보기를 떼어내면 되지 않을…….”
“아, 회주님! 제발 좀!”
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 액셀을 밟았다.
뭔가 안 풀리는 하루였다.
“비싼 거 먹는다더니…….”
“이 시간에 비싼 거 파는 데가 어딨습니까! 다 문 닫았지!”
강진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냄비를 바라보았다.
감자탕이 천천히 끓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강진호의 얼굴은 그보다 더 빠르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현수가 입을 삐죽이며 궁시렁댄다.
“밥 사 준다더니, 소방차를 부르시네요. 이게 뭔 엿 먹이는 것도 아니고…….”
“…….”
뭐가 잘 풀린다 했다.
그럴 리가 없지. 하, 인생 참.
부글부글 끓어 대는 감자탕을 보며 강진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침에는 아버지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에는 개업식을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사고를 치고, 밤이 되어서는 이현수와 이렇게 마주 앉아 있다.
참 버라이어티한 하루다.
“감자탕이 뭡니까, 감자탕이! 이 부장은 호텔 가서 코스 요리 먹었다는데, 우리는 감자탕이라니!”
그리고 이현수도 무척이나 버라이어티했다.
그 불만이야 십분 이해한다지만, 그래도 강진호가 회주고 회장인데, 어찌 저렇게 사람을 구박할 수가 있나.
왠지 서글프다.
“감자탕 싫어하나?”
“아, 뭐, 좋아하기는 합니다. 예전에 자주 먹었죠.”
이현수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등뼈 한 조각을 접시에 옮겨 담았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호도 피식 웃었다.
돌이켜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이 세상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만난 적이 바로 이현수였다. 그전에도 나름 이것저것 트러블은 있었지만, 강진호를 죽이겠답시고 작정하며 달려든 이는 이현수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강진호는 이현수 덕분에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강진호의 행동방식대로라면 이현수는 죽어야 했다. 하지만 이현수는 살아서 지금 강진호의 앞에서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그것도 어떤 사람도 하지 못하는 형태로 말이다.
이 이상한 관계를 떠올리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고생 많았다.”
“고생은요. 대부분은 이 부장이 한 거죠.”
“뒤에서 이 실장이 고생한 거 알고 있어.”
“뭐, 알아주신다면 겸양은 떨지 않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월급이나 올려주시죠.”
“……그게 부족해?”
“회주님.”
이현수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돈은 얼마가 되도 부족한 법입니다.”
“…….”
“재산이 수십조가 넘는 재벌들도 한 푼 아끼겠다고 직원들 월급 깎아 제끼는 세상 아닙니까. 돈이란 건 충분이란 게 없습니다. 언제나 부족하고, 언제나 더 벌고 싶죠. 회주님도 돈 많은데 지금 돈 더 벌려고 하잖습니까?”
“딱히 돈을 더 벌려고 시작한 일은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그렇죠.”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역시 사실이다.
이중걸이 만들어놓은 막대한 재산은 총회에 완벽하게 편입되었다. 이현주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리겠다는 듯 그 모든 것들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총회의 통장에 밀어 넣었다.
덕분에 총회는 현금 보유량만 따진다면 재벌의 귀싸대기를 날려 버릴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법인화를 추진하며 그 절반에 가까운 재산들이 MK의 자산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MK의 소유주가 강진호다.
물론 여러 가지 규제와 세금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형태를 꼬아놨기에 그 전체가 강진호의 재산으로 잡히지는 않겠지만, 그렇다 해도 어마어마한 양의 돈이 한 번에 강진호의 소유가 된 건 사실이다.
주식의 형태라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돈이야 많지 않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저번에 한 번 올려줬던 거 같은데?”
“회주님.”
“응?”
“총회가 동아시아를 먹고, 원탁을 정리하고, 세상을 평정하면 좋은 날이 올까요?”
“……좋은 날은 모르겠지만, 안전한 날은 오겠지.”
“안전한 날이라……. 그렇죠. 맞는 말이죠. 그런데요…….”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회주님이 생각하시는 것과 아랫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좀 다를 겁니다. 회주님의 입장에서는 그게 궁극적인 목적이 되겠지만, 아랫사람들은 그냥 오늘 한 푼 더 버는 것과 오늘 하루 더 행복한 게 중요합니다.”
“…….”
“저열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게 당연한 겁니다. 아랫사람들이 위기의식을 가진다고 해서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잖습니까. 쓸데없는 걱정이 될 뿐이죠. 일반 사원더러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평사원에게 그런 일을 떠넘길 거면, 이사진이나 사장단은 왜 비싼 연봉 받아 처먹습니까? 그런 일 하라고 돈 주는 건데.”
“그건 그렇지.”
“그러니 그런 대비는 윗사람이 하는 거고, 아랫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게 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삶에 충실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올려줄게.”
“감사합니다. 단, 제 월급만이 아닙니다. 지금 총회의 회원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충분한 월급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체계가 애매하긴 합니다. 이번 기회에 애들 월급 문제도 재정비하겠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마당에 인건비가 올라간다는 건 조금 우려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건 나보다 이현수가 더 잘 알겠지.’
강진호가 뭐라고 돈 문제에 입을 떼겠는가.
강진호는 금전 감각에 관해서는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첫 번째 삶에서도 돈에 쪼달리기는 했지만, 살아가는 것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마교에 투신했을 때는 돈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고, 지금 삶에서도 초반을 제외하고는 돈 문제에 얽힐 일 자체가 없었다.
경영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래봐야 실무를 맡아오던 이현수나 이현주에 비하면 조족지혈 수준이다. 두 사람이 알아서 잘 협의할 것이다.
“이 실장에게 맡기지.”
이현수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맨 정신으로 할 이야기는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이현수가 소주를 시켰다.
빈 잔에 소주를 받으며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이 실장이랑 술 먹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저 술 별로 안 좋아합니다.”
“몸에 안 받나?”
“그렇다기보다는…….”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워낙에 원한을 많이 샀잖습니까. 지금이야 옛이야기가 됐지만, 이중걸이랑 김석일이 싸워 대던 시절에는 절 죽이려고 추적하던 이들이 백 단위는 넘었을 겁니다. 이중걸이 가장 껄끄러워하던 게 저였으니까요.”
“음, 그렇지.”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의식이 좀 흐려진다 싶으면 덜컥 겁이 나더라구요. 혹시 지금 암살자가 오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그럼 대처 못해 죽는 거 아닌가 싶고…….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고민이죠. 암살자가 주변에 접근할 정도라면 저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진데, 제 실력으로는 저항도 못할 텐데 말입니다.”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꼭 그렇게 상식적이지는 않더라구요. 그 때 그런 경험을 몇 번 한 이후로는 술을 가까이하는 게 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맥주나 한 캔씩 하는 걸로 만족하며 살고 있죠.”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기분이다.
지금이야 다들 즐겁게 떠들고 있지만, 이현수 역시 험난한 삶을 살아왔다.
그걸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불안한가?”
“아닙니다.”
이현수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다만, 트라우마라는 게 그리 쉽게 극복은 안 되더라구요. 괜찮습니다. 술은 잘 못하지만, 그래도 밤에 잘 때 발 뻗고 잘 수 있게 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제 적어도 한국인이 저를 죽이려 들 거라는 생각은 안 해도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현수가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회주님.”
“……왜 이래?”
“아뇨. 인사는 받으셔야 합니다. 이건 제가 대표로 드리는 인사니까요.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회주님에게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부담스럽다.
“총회의 회원들은 여러모로 회주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회주님께서 나서주신 덕분에 더 강해질 길이 열렸고, 외국 놈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게 되었다는 걸 감사했습니다만, 최근에는 조금 다릅니다.”
이현수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다들 알게 된 거죠. 안정적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건지, 길에서 마주치는 누군가가 내 목을 노리러 온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게 어떤 건지 말입니다. 회주님이 전쟁을 종식시켜 주신 덕분에 다들 제 삶을 되찾고 있습니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억지로 공치사를 받는 것 같군. 내가 의도한 게 아니잖아.”
“의도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결과죠.”
이현수가 조금 더 진지해진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