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48
#1147.
권유하다 (2)
“뭐 하는 새끼지, 진짜?”
“거참…….”
머리를 벅벅 긁는 하광식을 보며 박규연이 혀를 찼다.
“아직 그러고 계십니까?”
“뭐, 인마.”
“적당히 좀 하십시오, 적당히 좀.”
“너, 대가리 많이 굵었다? 선배한테 그런 말 할 줄도 알고?”
“아, 십 년 차나 십이 년 차나 뭐 그렇게 차이 난다고 아직까지 선뱁니까, 선배는.”
“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야, 새끼야.”
“어휴.”
박규연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MK의 개업식에서 돌아온 이후로 며칠이 지났건만, 하광식은 아직 저러고 있었다.
자신의 조사가 잘못됐으니 새로 정보를 얻어봐야 한다며, 하루 종일 강진호에 대해 조사를 하고 다녔다.
“선배.”
“왜?”
“뭐가 나오기는 합니까?”
“…….”
하광식은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뭐가 나왔다면 저런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거 아무리 판다고 뭐가 나오겠냐구요?”
“왜 안 나와?”
“그렇게 허술하게 일처리를 할 사람들이 아니라니까요. 보셨잖아요. 만약 선배가 생각하는 대로 거기에 정계고 재계고 다 물려 있으면, 그 양반들이 선배가 파서 나올 정도로 허술하게 일을 하겠어요?”
하광식이 짜증 섞인 눈으로 박규연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야, 그 철벽을 뚫고 들어가는 게 기자가 할 일 아냐? 너처럼 생각할 거면 기자는 왜 해?”
“왜 하긴 왜 합니까? 먹고살려고 하지.”
“아니, 이 새끼가 진짜?”
그 순간, 다른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왜? 뭐, 틀린 말이라도 했나?”
고개를 돌린 하광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배우현 부장이 그를 보며 혀를 찼다.
“그럼? 기자는 풀만 뜯어 먹고사나? 돈을 벌어야 먹고살 거 아냐, 돈을 벌어야!”
“……아뇨. 뭐, 틀린 말이라고는 안 했습니다.”
“아는 놈이 그래, 아는 놈이? 야, 너 요즘에 뭐 하냐? 회사에서 월급 받아서 놀러 다니냐?”
하광식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아니라…… 최근에 추적하고 있는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거, 잘만 하면 큰 거 하나 나올 거 같습니다.”
“큰 거?”
“예. 커다란 거. 어쩌면 대한민국이 들썩…….”
“이보세요, 하광식 씨.”
“예?”
“언제 회사가 당신한테 큰 거 물어오라고 했어?”
“…….”
배우현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광식아, 광식아. 정신 좀 차려라, 인마. 니가 무슨 열정 가득한 새내기도 아니고, 이 바닥에서 십 년이 넘게 굴러먹은 놈이 아직까지 그런 말을 하고 있냐?”
“아니, 이번에는 정말…….”
“그래, 큰 거. 큰 거 좋지. 그런데 그 큰 거 하나 물어온다고 네가 도둑질해 간 월급 값이 되냐?”
하광식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큰 거 하나 찾아서 내보내면 뭐 할 건데? 5분도 안 돼서 카피 기사 쏟아지고, 대형 언론사에서 분석이니 뭐니 하고 개소리 붙여서 내면 걔들이 1위 다 먹는데. 시대가 어느 시댄데 큰 거 찾고 있어?”
“그래도 처음 기삿거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으니까 카피 기사라도 나오는 거 아닙니까.”
“그걸 왜 우리가 해? 돈 더 받고, 돈 더 잘 버는 기자님들이 대한민국에 넘쳐 나시는데. 무슨 자체 열정 페이도 아니고, 큰돈 받는 기자님들도 안 하시는 걸 왜 우리가 하냐고? 어?”
배우현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인마, 너 다른 후배들 보기에 민망하지도 않냐? 너는 쟤들이 벌어오는 돈으로 월급 받고 사는 거야. 니가 그놈의 기자 정신이 어쩌고 하면서 시간 낭비하고 놀러 다닐 동안, 쟤들은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기사 만들고 워드 쳐서 돈 벌어온다고. 무슨 말인지 몰라?”
“압니다.”
“아는 놈이 왜 그래?”
하광식이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이런 대화를 할 때마다 답답하다. 더 짜증 나는 것은 그는 충분히 배우현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현이 틀렸고, 그가 옳은 길을 간다면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하광식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큰 거 하나 터뜨리면 회사 인식도 달라지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하나 잡아서…….”
“광식아.”
“예.”
“따라 나와.”
“……예.”
배우현이 앞장 서 걸어가자 하광식이 한숨을 쉬며 그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규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광식아.”
“예, 부장님.”
“너 언제까지 이럴 거야?”
커피에서 뿜어져 나온 김이 눈앞을 살짝 가렸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두 남자가 커피를 앞에 두고 대화하는 일이 그리 흔한 건 아니지만, 하광식은 눈앞에 보이는 게 술이 아니라 커피임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이게 술이었으면 좀 더 험한 말이 나왔을 것이다.
“커버 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너 이러고 다니는 거 다른 데스크는 모를 것 같냐? 국장님은 모르고? 야, 하루 종일 기사 승인하는 게 그 양반 일이다. 니 이름으로 나가는 기사가 안 보인다는 걸 왜 모르겠냐.”
하광식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뜨겁다.
하지만 하광식의 속처럼 들끓지는 않았다.
“위에서 무슨 말 나오는지 몰라?”
“……압니다.”
“아는 놈이 왜 그래, 아는 놈이. 마, 우리 나이 대는 승진 못하면 밀려나는 거야. 그런데 니가 이제 더 올라갈 데가 어딨어? 너, 이번에 승진하면 데스크 맡아야 하는 거 몰라?”
“…….”
“그런데 너처럼 일하는 놈한테 데스크를 맡기겠냐고. 평생 현장직? 야, 이 새끼야.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나이는 먹어가지, 체력은 줄어들지, 감은 떨어지지……. 나 같아도 같은 돈 주고 나이 든 애들 현장 안 돌려. 그런데 너는 애초에 받는 돈도 젊은 애들보다 많잖아.”
하광식이 슬쩍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마주하기가 껄끄럽다.
하광식 같은 사람이 고통스러울 때는 타인의 경멸을 마주할 때가 아니다. 호의와 우려가 섞인 시선이 자신에게 와닿을 때다.
“광식아.”
“예, 부장님.”
“사람은 꿈을 꾸면서 살지. 그래, 나도 안다. 너나 나나 처음 이 바닥에 들어올 때야 당연히 열정 넘치는 사람 아니었냐. 그놈의 펜대 하나 들고 이 썩어 빠진 나라 바꿔보겠다, 그런 열정으로 넘쳐 나지 않았냐고.”
“…….”
“그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냐. 그게 옳을 수도 있지. 아니, 그게 옳겠지.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옳은 일만 하고 사냐? 당장 입에 풀칠은 해야 할 거 아냐. 내가 꿈 좇다가 망하면 나만 죽냐? 나도 내 한 몸 건사하는 입장이면 지금 여기 안 있어. 저 새끼들 비리 캐고 있겠지.”
“예, 그러시겠죠. 그런 분이시죠, 부장님도.”
배우현이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데 나나 너도 먹여 살려야 할 사람이 있잖아. 내가 실직하면 내 새끼들은 누가 먹여 살려? 내 마누라는? 우리 부모님은?”
“…….”
“나만 그래? 너는? 너는 처자식도 없고, 부모님도 없냐?”
“아니, 뭔 갑자기 패드립을.”
“장난이 나와, 새끼야?”
하광식이 입맛을 다셨다.
분위기가 풀리지가 않는다.
“그만해라, 이제. 충분히 할 만큼 했다. 그거 하고 싶으면 데스크에 올라와. 아니면 더 올라가든가. 네가 충분히 힘을 가지고 뭔가 할 수 있을 때 해라. 아니면 너 짤려, 새끼야.”
배우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부장님. 이러고…….”
“난 할 말 끝났어.”
“부장님.”
하광식이 일어나 자리를 뜨려는 배우현의 소매를 잡았다.
“안 놔?”
“……얼마 남았습니까?”
“뭐?”
“저 얼마 남았냐구요.”
배우현이 눈을 크게 뜨고 하광식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하광식은 배우현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미친 또라이 같은 새끼.”
“아시잖습니까, 저 또라인 거.”
소매를 놓은 하광식이 피식 웃었다.
“부장님이 하신 말씀이 옳다는 거 압니다. 그렇게 살아야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사람 구실이나마 하고 산다는 소리 듣는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하광식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천성이 이런 걸 어쩌겠습니까?”
“그게 천성이야, 천성? 책임감이 없는 거지, 새끼야. 니가 무책임한 걸 천성 탓으로 돌리지 마. 남들은 태어날 때부터 돈에 미쳐 사냐?”
“에이, 그런 의미는 아니구요.”
하광식이 너스레를 떨었다.
“여하튼 대답이나 해주십쇼. 저 얼마 남았습니까?”
“하, 진짜…….”
배우현이 말도 없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하광식도 어슬렁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카페에서 나와 한적한 구석으로 들어간 배우현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광식이 말없이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길어야 두 달.”
“두 달이요? 너무 짧은 거 아닙니까? 그래도 제가 해온 게 있는데…….”
“뭘 했는데?”
“……뭐 있겠죠, 뭐든.”
배우현이 정신 나간 놈 바라보는 시선으로 노려보자, 하광식이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피웠다.
“두 달은 고사하고, 한 달도 애매하다. 두 달까지 가려면 나도 자리 걸어야 돼.”
“거기까지는 오번데.”
“그럼 한 달.”
“한 달이라…….”
하광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한 달 동안 프리로 놔주십쇼. 규연이 붙여주시구요.”
“……너, 제정신이야?”
“뭐, 여기 짤리면 갈 데 없겠습니까? 정 안 되면 포장마차라도 하죠. 그 정도는 모아뒀으니까.”
하광식이 담배를 물고 씨익 웃었다.
그 대책 없는 모습에 배우현도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애초에 이놈은 말이 통하지는 않는 놈이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냐?”
“모릅니다.”
“……뭐?”
하광식이 어깨를 으쓱한다.
“보물 상자 같은 거죠. 안에 뭐가 들었다는 건 확실한데, 깠을 때 보물이 나올지, 도깨비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너, 그런 거에 직장 거는 거야?”
“기자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닙니까.”
“야, 인마.”
“압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거. 그런데 부장님, 저는 기자가 아닌 직업으로 먹고살면 모를까, 기자라는 이름 달고 돈 좇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뭐 얼마나 준다구요. 어차피 월급도 쥐꼬린데.”
“뭐, 이 새끼야?”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둬 주십시오. 제가 한 거 생각하면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습니까.”
“…….”
한참을 말없이 하광식을 바라보던 배우현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니 마음대로 해, 새꺄. 그리고 제대로 된 거 못 물어오면 한 달 시간 맞춰서 사직서 들고 와.”
“열흘 더 주십시오.”
“니 맘대로 해, 인마.”
배우현이 혀를 차며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하광식이 깊게 담배를 빨았다.
세상 어디도 도와주지 않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가 상대하는 이들은 한없이 깊고, 한없이 어둡다.
하지만 뭐.
그게 기자 아닌가.
엄살 피울 생각은 없다. 과거, 군사정권 당시에 그의 선배들은 목숨의 위협을 받고 가족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진실을 향해 눈을 감고 뛰어들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엄살을 피운다면, 그건 기자도 아니다.
“니미, 씨발. 좆 나게 외롭네.”
담배를 튕겨낸 하광식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사무실로 걸어갔다.
쌀쌀해진 바람이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