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50
#1149.
권유하다 (4)
‘피곤하네.’
한진성이 터덜터덜 걸으면서 보육원으로 향했다.
어깨가 천근만근이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의 수업이 끝나는 대로 보육원으로 돌아갔지만, 한진성은 고3이다 보니 수업만으로는 학업량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자체적으로 남아 공부를 더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보육원에도 학습실이야 있지만, 보육원 학습실이라는 게 다 그렇듯 진지하게 공부를 할 만한 곳은 못 된다.
그리고 습관을 들여놓지 않아서인지, 보육원 안에서는 집중이 되지 않기도 하고.
“으…….”
한진성이 손을 들어 어깨를 주물렀다.
근육이 뭉친 게 그의 손으로도 느껴진다.
‘이제 한 달 정도 남았나.’
빌어먹을 수능.
남들도 다 친다는 수능이 그에게는 왜 이렇게 힘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열심히만 하면 공부할 부분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는데, 공부라는 건 이상하기 짝이 없어서 하면 할수록 해야 할 게 늘어난다.
남은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목표한 분량을 다 마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휴우.”
한진성이 고개를 들어 보육원을 바라보았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대학을 간다는 것.
다른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에 불과하지만, 한진성에게는 굳은 결심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학비야 학자금 대출을 낸다고 해도…….’
다른 이들에게는 학비가 가장 큰 문제겠지만, 한진성에게 학비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대학을 다니면서 먹고살 돈을 마련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부모가 있는 친구들이 그런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대학을 안 가는 것도 문제지.’
평생 후회할 테니까.
지금 그가 대학에 간다는 선택을 한 것도 나중에는 후회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학에 가지 않는 선택을 한다면 더 큰 후회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후회가 적은 쪽이 낫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당장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니까.
보육원 현관을 열고 한진성이 계단을 올라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한진성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뭐야? 내가 시간을 잘못 알았나?’
그럴 리가 없는데?
한진성의 시선이 격하게 시계로 돌아갔다. 시간은 밤 열한 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아니, 그럼 맞는데?
그런데 왜 이 초글링들이 잠을 안 자고 여기서 이러고 있지? 그것도 남의 생활관에서?
“뭐, 뭐야? 뭔 일 났어?”
한진성의 목소리에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관심을 끊어버린 아이들이 다시 사방으로 뛰어놀기 시작했다.
“조, 조미혜! 미혜 어디 갔어?”
“왜?”
방문을 열고 나온 조미혜가 태연한 얼굴로 한진성을 바라봤다.
“뭐야? 얘들 왜 안 자?”
“안 잘 거래.”
“……왜?”
조미혜가 어깨를 으쓱했다.
“선생님들은?”
“퇴근하셨어.”
“전부 다?”
“응.”
“어, 어쩌자고?”
조미혜가 고개를 돌려 한쪽을 가리켰다. 한진성의 시선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돌아갔다.
“어?”
그의 눈에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벽에 등을 기댄 채 TV를 보고 있는 남자.
한 손으로 칭얼대는 애를 토닥거리고, 다른 손으로는 애들에게 과자를 먹여주고 있는 남자.
“진호 형?”
“오늘 자고 간다고 선생님들 다 퇴근시키셨어.”
“그래도 돼?”
“안 될 건 뭐 있어.”
“그, 그런가?”
하기야.
강진호는 사실 성심보육원의 원장이나 다름없다.
명목상은 원장이 따로 있지만, 이곳의 원장이 실질적으로는 강진호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퇴근하라는데, 퇴근 못할 건 뭔가.
“그래서 얘들이 이리 미쳐 날뛰는 건가?”
“제 세상 만난 거지.”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귀를 파고드는 발소리를 들으며 한진성이 질린 얼굴을 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니까.’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상식이 깨지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체력이라는 건 성장하면서 더 늘어나는 법이 아닌가.
보통은 아이 때부터 체력이 성장하다가 이십 대와 삼십 대에 절정을 찍고, 그 뒤로부터 서서히 낮아진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그 상식은 현실과는 도무지 맞지가 않았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아이들은 지치지 않는다.
미친 듯한 출력으로 말도 안 되는 활동량을 보이다가 갑자기 배터리가 나가 버린 듯 픽 쓰러지고,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충전을 마치면 다시 최고 출력으로 뛰어다니기를 반복한다.
“그, 그만.”
그 가공할 출력에 한진성이 질린 얼굴을 했다.
“혀, 형!”
“왔어?”
“애들! 애들 좀 어떻게 해줘! 다 자야 돼, 이제!”
“왜?”
“내일 학교 가잖아! 이러면 내일 학교 가서 존다고.”
“그래?”
강진호가 과자를 내려놓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자, 이제 가서 자.”
“응!”
뭐지?
강진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최면에라도 걸린 듯 쪼르르르 방을 빠져나간다.
보통은 더 놀고 싶다고 칭얼대거나 소리를 질러 대거나 할 텐데?
‘무시무시하군.’
돌이켜 보면, 그도 어릴 때는 강진호가 하는 말이면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 대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다행스럽게도 초글링들의 반란은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아이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본 한진성이 반쯤 넋을 놓은 얼굴로 강진호에게 다가갔다.
“언제 왔어, 형?”
“아까 저녁에.”
“웬일로?”
“……구박 엄청 받았으니까, 너까지 안 그래도 된다.”
조미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미혜가 구박했다면, 벌써 뼈와 살이 분리되도록 맞았겠지.
한진성이 매번 당하는 거니까.
가방을 내려놓은 한진성이 한숨을 쉬며 강진호의 옆에 앉았다. 그런 한진성을 빤히 바라보던 강진호가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피곤해 보인다?”
“고3이 다 그렇지, 뭐. 형, 커피 먹을래?”
“음, 그럴까?”
한진성이 일어나려고 하자, 조미혜가 한진성의 어깨를 꾹 눌렀다.
“됐어. 내가 타 올게.”
“……너, 내가 한 잔만 타달라고 할 때는 엿 먹으라더니.”
“오빠랑 진호 오빠랑 같을 수는 없지.”
“…….”
조미혜가 혀를 쏙 내밀고는 커피를 타러 갔다.
“공부는?”
“음,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한진성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는 타고난 머리가 형이나 미혜처럼은 안 되는가 봐. 아무리 해도 한계가 있네.”
“흠.”
강진호가 가만히 한진성을 바라보았다.
몸에 탁기가 쌓여 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탁기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연히 쌓이는 것이다. 탁기가 쌓이게 되면 총명이 흐려지고 피곤해진다.
그래서 무학을 익히지 않는 이들은 수면과 휴식으로 평온한 상태를 만들어 탁기를 배출한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하지만 한진성은 지금 수면과 휴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상황이 이렇지 않다면 조금쯤 쉬라고 조언해 줄 수 있겠지만, 고3에게 쉬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설사 그게 옳은 조언이라 하더라도 한진성이 듣지 않을 것이다.
강진호가 손을 뻗어 한진성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아, 왜? 나 애 아냐.”
“……가만히 있어.”
“응?”
스읏.
강진호가 한진성의 몸에 쌓인 탁기를 순식간에 뽑아냈다. 예전이라면 탁기를 뽑는 과정에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든가 요란스러운 과정이 필요했겠지만, 지금 강진호의 경지에서는 딱히 그런 게 필요치 않았다.
“뭐 한 건데?”
“음…….”
강진호는 굳이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귀찮은 걸 피하고 싶어서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게 조심스레 빼냈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몸이 거뜬해질 것이다. 지금 강진호가 한진성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 없었다.
가벼운 심법 같은 무학을 전수해 준다면 항상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건 강진호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힘은 반드시 책임을 동반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수한 무학 때문에 한진성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강진호는 그런 결과는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어도 할 수 있지.’
무학을 익힌 이가 무학을 익히지 않은 이들에 비해 딱히 우월한 건 아니다. 세상을 발전시키고 경영해 온 것은 무인들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니까.
무인들은 그저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기생해 사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에 강진호는 보육원의 아이들이, 그리고 그의 주변인들이 무학과는 관련 없는 삶을 살기를 원했다. 과거에는 그마저도 무학을 멀리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딱히 공정한 경쟁이라든가, 특권이 어쩌고 하는 말을 꺼낼 생각은 없다. 세상에 진정한 의미의 공정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다만,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
“왜?”
“아니. 음…… 아무것도 아냐.”
한진성이 목을 이리저리 꺾어본다. 몸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 모양이다.
“쉬어 가며 해.”
“말이 쉽지.”
한진성이 뭔가 말을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형.”
“뭐가?”
“사람이 피곤하면 날카로워진다잖아. 대답이 영 좋지 않게 나가네. 그러면 안 되는데. 쏘리.”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한진성을 바라보았다.
‘얘도 이러네.’
겉으로 보기에는 좋다.
개념 차다. 그리고 마음을 곱게 쓴다.
조금 전, 조미혜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가 보기에는 딱히 사과할 일도 아니었다. 다른 평범한 집 아이들 같으면 대놓고 짜증을 부리고도 남았을 일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자신이 사과한다.
철이 일찍 들어서? 어른스러워서?
아니겠지.
설사 그게 맞다고 해도 문제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아이가 일찍 철이 들 필요는 없다.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고, 그 나이에 맞는 사고를 할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한 법이다.
일찍 철이 들고, 일찍 둥글어진다는 건 그만큼 세상에 두들겨 맞아 모난 부분이 깎여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곤란한 부분 같은 건 없고?”
“아냐, 형.”
한진성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진짜 형이 해준 게 너무 많아서 과분할 정도야. 학원도 정말 좋고, 학교 다니는 것도 문제없어.”
“학교는?”
“그때 이후로는 편안. 아주 편안.”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행이다. 남은 한 달의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나만 열심히 하면 돼. 어떻게든 서울권 학교는 가야지. 지방까지 내려가는 건 부담이니까.”
“음.”
“일단은 외곽권이라도 가볼 생각이야. 그것도 내가 열심히 하고 잘됐을 때 이야기겠지만.”
“외곽으로 가면 학교 다니기가 힘들 텐데?”
“아, 안 그래도 그거…….”
한진성이 머리를 긁었다.
“나, 대학 붙으면 보육원 나가려고.”
“응?”
강진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진성을 바라보았다.
“야!”
그때, 커피를 들고 오던 조미혜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또 그런 소리 하고 있네.”
“오빠한테 야라니.”
“오빠는 그런 소리 좀 들어도 돼!”
커피가 담긴 쟁반을 내려놓는 손이 거칠다. 몇 방울의 커피가 튀어 쟁반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