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54
#1153.
약진하다 (3)
부우우우우웅.
버스가 줄지어 도로를 달렸다.
아침 일찍 고속도로를 달린 버스가 서울로 접어든다. 막히기 시작하는 도로를 보며 배재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서울 생활은 영 적응이 안 된다니까.’
촌놈처럼 굴 생각은 없지만,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빽빽하게 박혀 있는 차들을 볼 때마다 여기는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나마 운전을 하는 게 그가 아니라 다행이다.
아침마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서울 사람들은 이 답답함을 어떻게 견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총회 사람이라 그런가?’
생각해 보면 그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총회에서는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산에서 적당히 업무를 보고, 수련을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이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을 경험해 볼 일이 잘 없었다.
‘그만큼 총회가 사회와 유리되어 있었다는 말이겠지.’
쓴웃음이 나왔다.
총회가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여우가 닿지 않는 곳에 달린 포도를 바라보는 심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총회에는 미묘한 선민의식이 있다.
우리는 평범한 이들과 다르다. 그러니 우리는 저들보다 더 뛰어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저들과 섞이고, 저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상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이곳의 세상이 더 우월하기에 저쪽으로 손을 뻗지 않을 뿐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의식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내심은 다들 알고 있다.
총회를 구성하는 이들은 평범한 사회에 섞여들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에는 그 말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이리 발전하고 앞서 나가기 전에 무학을 익힌다는 건 평범한 이들이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수단이었으니까.
한 걸음에 강을 뛰어넘고, 한주먹에 바위를 깨는.
때로는 신선이라 불리고, 때로는 귀인이라 불리는 삶.
그들의 선조들은 그런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평범한 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고속열차로 무인보다 빨리 이동하는 세상이다.
말보다 빨리 달리고, 배를 타지 않고 강을 뛰어넘던 무인들은 이제 평범한 이들보다 느린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점점 멀어지는 간극을 보고 느끼면서도, 이미 유리되어 버린 간극을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밝은 세상에는 눈을 돌리고 그저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살아갈 뿐이다.
강진호가 오기 전까지의 총회는 그랬다.
하지만 강진호가 오고 나서부터 정말 말도 안 되는 변화가 삽시간에 벌어지고 있다.
‘예전에 개항한 이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강진호는 닫혀 있던 총회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고 그들을 바깥세상으로 이끌었다.
‘어이없다니까, 진짜.’
불과 육 개월 전만 하더라도 배재민이 이렇게 서울로 출근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적당히 총회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며 뻐기다가 가는 인생.
그게 육 개월 전까지 배재민이 생각하던 자신의 미래였다.
물론 크게 바뀐 건 없다.
하는 일이 조금 달라지고, 출근하는 곳이 달라졌을 뿐, 배재민의 인생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배재민은 들뜬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확장되는 것 같은 경험을 말이다.
세상이 넓어졌다고 해서 그가 움직이는 공간이 넓어진 것은 아니지만,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다.
‘느려 터진 버스로 이동한다는 것만 빼면 말이야.’
배지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 재민이.”
“예, 대리님?”
곽현태 대리가 피식 웃으며 자신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너, 방 알아본다는 건 어떻게 됐냐?”
“쉬는 날이 있어야 방을 알아보죠.”
“둘러보기는 했을 거 아냐.”
“좀 보기는 했는데, 이게 영 그래요. 가까운 데는 방값이 너무 비싸고, 먼 데는 싸기는 한데 출퇴근이 걱정이고.”
“돈도 많이 버는 놈이 뭘 그리 아껴싸.”
“벌기는 대리님이 더 버시잖아요.”
“관둬라. 니가 애 키워보면 그런 말 안 나온다. 애 둘이 먹는 것만 해도 내 월급은 쪽쪽 다 빨린다.”
“엄살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엄살 같으냐?”
곽현태의 너스레에 배재민이 피식 웃었다.
“그거보다 대리님도 집 알아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서울에? 관둬라.”
“그 정도 돈은 있으시잖아요.”
“하, 이래서 총각 놈들은. 야, 인마. 그게 돈만 있다고 되는 일이냐? 애들 학교는 어쩔 거고, 마누라 직장은 어떻게 하냐. 총각들처럼 방 한 칸 마련하고 덜렁 옮긴다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인마.”
“그렇긴 하겠네요. 그런데 결국 옮기긴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지……. 근데 그건 나중 일이야. 한동안은 기러기 아빠 생활 해야지. 하, 총회로 출퇴근하면서 주말 부부 생활만 삼 년 했는데, 이제 겨우 집 사서 이사했더니 서울로 갈 줄 누가 알았겠냐.”
“그런데 왜 지원하셨어요?”
“인마, 당연히 지원해야지! 뭐 빤한 걸 묻고 그래.”
배재민이 피식 웃었다.
“여하튼 어떻게든 해야 돼. 아침마다 이렇게 버스 타고 출퇴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렇죠.”
배재민도 곽현태의 말에 동의했다.
평범한 이들이 아침마다 두 시간씩 버스로 출퇴근을 하면 체력적인 문제가 생기겠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은 일단 무인이다.
체력적인 문제는 없다.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체력이 버틴다는 게 다른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잖은가.
MK에서 일하는 시간이 적은 것도 아니고, 하루에 네 시간가량을 출퇴근에 빼앗기다 보면 다른 활동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지금 다들 회사 근처에 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라 좀 당황스럽긴 하다. 나는 평생 총회 근처에서 살다 죽을 줄 알았다.”
“다 마찬가지지요, 뭐.”
배재민이 쓴웃음을 지으며 다른 쪽을 슬쩍 돌아보았다.
다들 표정이 나쁘지 않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가 벌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이 변화에 만족하는 중이었다.
‘그렇겠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총회 내에서 잉여 전력처럼 취급받던 그들이 새로운 물결을 이끄는 존재가 되었다는 게 고무적일 것이다.
배재민도 그 사실이 가장 뿌듯했으니까.
“너, 업무 잘하고 있냐?”
“완벽하죠, 완벽.”
“……애가 허세가 붙었어.”
“아, 진짜 완벽하게 하고 있습니다. 연수에서 개고생한 거 생각하면 잘해야죠. 아니면 교관님들 다시 쫓아올까 봐 무섭습니다.”
“안 그래도 업무 실적 부족한 애들 재연수 보내는 거 계획 중이라고 하더라.”
“진짭니까?”
“소문이 그래, 소문이.”
배재민이 질린 얼굴을 했다.
‘그 지랄 같은 과정을 한 번 더 해야 한다고?’
죽어도 사양이다.
물론 재경의 연수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던 건 아니다. 일정이 하드하고 교육 시간이 길기는 했지만, 무학을 수련해 온 그들에게 그 정도는 가벼운 운동과도 같은 강도니까.
하지만 진짜 사람을 괴롭히는 건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었다.
무엇이든 일단 몸으로 받아들이고 익히는 데 익숙해진 그들에게, 책과 컴퓨터와 씨름하는 건 반쯤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쓸모 있는 인간이 되겠다는 의지로 버텨내기는 했지만,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해야겠네요. 연수 다시 안 끌려가려면.”
“쯧쯧, 너는 안 되겠다.”
“……예?”
곽현태가 혀를 차며 말했다.
“한 번 배워놓은 걸로 앞으로도 먹고살겠다고 생각하면 도태되는 거야, 인마. 자기 개발이 없는 사람은 못 살아남는 게 세상 아니냐.”
“……그렇긴 하죠.”
“인마, 무인으로 사는 것도 똑같잖아. 좋은 무공 익히고 초반에 앞서 나간다고 수련 안 하면 어떻게 되냐? 추월당하고 도태되는 거 아냐?”
배재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너무 당연한 상식이다.
“여기라고 뭐 다를 거 같냐? 지금이야 우리밖에 없지. 조금 있으면 2차 연수 받은 애들도 들어올 거고, 그 뒤로도 신입 사원이야 꾸준하게 계속 뽑을 텐데, 걔들이 우리보다 잘하면 우리는 밀려나는 거야. 회사 그만두는 그 순간까지 평생 배우고 공부해야 돼.”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세상에 쉬운 분야가 없네.’
예전에는 배재민도 무학을 익혔다는 것에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탈락하기는 했지만, 그 뼈를 깎는 수련을 버텨냈으니 세상 어떤 일을 맡더라도 근성 하나는 뒤지지 않는다는 묘한 자신감이라고 할까?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런 자부심은 여지없이 박살이 난다.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다.
그저 종사하는 분야와 그 형태만 다를 뿐이지, 세상을 살아 나가는 이들은 다들 제 나름의 근성으로 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도착했다. 내리자.”
“예.”
건물 앞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배재민도 그 인파에 합류해 밖으로 나갔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보며 배재민이 피식 웃었다.
출근하는 곳이 낡은 총회의 건물이 아니라 새로 지어진 신사옥이라는 건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번쩍번쩍거리는 건물을 볼 때마다 남의 집에 온 느낌이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건물로 들어가며 마주친 이들이 씩씩하게 인사를 한다.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활기다.
총회에서 사무를 보던 당시에 그들은 서로에게 데면데면했다.
‘무시하는 거지.’
사람이란 참 이상하다.
어차피 총회의 사무직들은 무인의 길에서 이탈한 낙오자들이다. 서로가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를 그리 존중하지 않는다.
웃긴 점은 자신도 낙오자인 주제에 다른 낙오자들을 무시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다르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는 게 싫었든가.
여하튼 그러던 이들이 연수를 마치고 MK에 출근하게 되면서 예전에는 없던 활력이 생겼다. 출근을 하며 서로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게 사는 맛이겠지.’
이런 말은 조금 우습지만, 요즘은 사는 맛이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절로 휘파람이 나온다.
“어?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배재민이 그의 앞에 있는 이현수를 발견하고는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했다.
“음, 배재민이?”
“예, 배재민입니다!”
“잘됐다. 너, 실장실로 올라와.”
“……예?”
“올라오라고.”
“…….”
사는 맛은 얼어 죽을.
오늘 무슨 마가 꼈나?
왜 아침부터 이현수를 만나고, 실장실까지 끌려 올라가야 한다는 말인가. 요즘 착하게 살았는데.
“시, 실장님, 재민이가 뭔 잘못이라도?”
“어…… 네 이름이?”
“곽현태 대리입니다.”
“아, 그랬지. 너도 같이 올라와.”
“네?”
곽현태의 얼굴이 급격하게 썩어갔다. 하지만 이현수는 가차 없었다.
“올라오라고.”
“……예.”
배재민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곽현태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혼자 죽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