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64
#1163.
고조되다 (3)
회의실 안으로 들어간 위긴스가 살짝 호흡을 가다듬었다.
총회의 이사진 회의라는 건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반쯤은 놀이와 다름없었다.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들 딱히 회의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건 강진호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공기가 달랐다.
‘당연하지.’
이사들이 평소에 여유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가장 평탄한 삶을 살아온 이조차도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는 지옥도를 걸어온 사람이다.
바토르는 일평생을 싸우고 또 싸우는 수라도를 걸어온 이고, 장민은 그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마교를 지켜온 괴물이다. 강진호야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사람답게 살아온 방진훈조차 이중걸이라는 괴물과 적대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목숨의 위협을 받던 사람이 아닌가.
우습게도 원탁이라는 절대적 위치에서 수많은 역할을 수행해 온 위긴스가 이 중 가장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이다.
그만큼이나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은 산전수전을 겪어온 이들이다. 자신들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강진호가 턱짓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위긴스는 두말없이 자리에 가 앉았다.
“상황은?”
“일본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은 확실합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 한국으로 들어올지에 대한 것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다소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끝까지 추적하기로 했습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탁에서 해준답니까?”
방진훈의 말에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준다는군.”
“좀 쪽팔리긴 하군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총회는 많은 부분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정보력이라는 측면에서는 타국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과의 관계적 측면 때문도 있지만, 설사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적국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정보원을 양성하는 건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얼마 전까지 총회는 타국으로 시선을 돌릴 여력이 전혀 없었다. 총회는 영남회의 정보를 수집하느라 바빴고, 영남회는 총회의 정보를 수집하느라 바빴다.
그 정보원들을 해외로 돌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자국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타국의 정보를 수집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정보원들을 해외로 보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그 교육과정을 모두가 잘 수료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절대적인 정보원의 수도 부족했다.
“보강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는군.”
“뭐, 어쨌든 지금이야 서로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 새끼들도 우리 쪽에 정보원 제대로 파견 못했잖아요.”
“그나마 다행이지.”
한국이 일본에 집중하지 못한 것처럼 일본 역시 한국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력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럴 가치가 없던 쪽에 가깝지만, 어찌 됐든 결과는 같다.
‘장님끼리 칼부림을 하는 격이군.’
21세기의 전쟁이 정보전이라 불릴 만큼 서로를 얼마나 파악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전쟁은 무척이나 이례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논의할 일은 아닌걸 알지만…….”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중국 쪽으로는 정보원이 투입되고 있나?”
“아직 기초적인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이 지나면 최우선적으로 정보원을 보강하겠습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인 문제든, 그게 아니든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것을 탓하는 건 옳지 않다. 탓해야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음에도 그걸 고쳐 나가지 못하는 일이다.
당장 일본에 대한 정보는 습득하기 어렵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적이 될 중국에 대한 정보는 반드시 자체적으로 얻어낼 수 있어야 했다.
“한국으로 어떻게 들어올지 모른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비행기 타고 들어오면 되는 것 아닙니까?”
“…….”
위긴스가 조금 허망한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자네, 공항에는 가봤나?”
“저번에 같이 갔잖습니까.”
“……공항에는 입국심사라는 게 있네. 그 심사를 통과해야 한국 땅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거지. 심사에서 거절을 해버린다면 자국으로 돌아가야 하네. 한국 정부가 그 정도의 힘은 있지.”
“그냥 공항에서 탈주하면 되잖습니까?”
“그만한 인원이 공항에서 탈주를 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 아무리 무인계의 일이라지만, 공항과 입국은 바깥세상의 일이네. 그 정도의 외교적 파장을 초래하면서까지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일본 정계는 완전 그 새끼들 밥이라고 하던데?”
“그러니 더 그렇겠지. 일본의 무인계는 정권을 창출하며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고 있네. 문제를 일으켜 돈줄이 막힐 만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 거란 말이지.”
방진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
“여하튼 공항으로는 못 온다는 소리죠?”
“그렇다네.”
“그럼 배 타고 오겠네요.”
“일전에 한 번 그러다 피를 보지 않았는가. 세 살 아이 수준의 지능만 있어도 거듭 하지는 않을 텐데?”
“세 살 아이 지능이면 전쟁을 벌이지도 않습니다.”
“…….”
“저는 솔직히 이사님이 저 새끼들이 공항으로 못 들어올 거라는 말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봅니다. 보아하니 저 새끼들도 이번에는 총력을 기울이는 것 같은데, 원래 전쟁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닙니까? 절대 하지 않을 거라는 걸 하는 놈들이 이기는 게 전쟁이죠. 그 뭐지? 알렉산더 대왕이 알프스를 넘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처럼!”
“알렉산더가 아니라 나폴레옹일세.”
“……그거나 저거나.”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방진훈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서로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상황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대의 대응에 전쟁이 기묘하게 흘러가 버리는 경우는 꽤나 벌어진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잦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희귀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역사라는 게 결국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측면을 고려했을 때, 생각 이상으로 그런 경우가 많았을 수도 있다.
더구나 장님처럼 서로를 잘 모르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비상식적인 대응이 한 번만 나와도 전체가 혼란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
“확실히 그건 내가 안일했네. 좀 더 신중을 기하지. 사과하겠네.”
“사과는 뭔 놈의 사괍니까. 그냥 좀 더 조심하자는 거죠.”
“맞는 말일세.”
위긴스가 자신의 머릿속에 공항을 다시 밀어 넣었다.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라고는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그 이상 좋은 방법은 없다. 몇 천에 달하는 무인이 수도권과 가까운 인천에 동시 상륙하게 된다면?
‘끔찍하지.’
그건 정말 지옥이다.
게다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항공편은 인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공항이라면 보안도 그만큼 허술할 수밖에 없다.
그때, 강진호가 입을 연다.
“저번에 우리가 썼던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넘어올 가능성은?”
“그때처럼 인원이 적지 않습니다.”
“대신 거리가 짧고 동원할 수 있는 항공편도 훨씬 많은 것 아닌가?”
“음…….”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두 시간을 넘지 않아. 일전에 그들이 배를 타고 넘어올 때도 우리가 대응을 시작한 시점은 이미 두 시간을 넘긴 뒤였다.”
“그렇습니다.”
“기습적으로 이동했을 시, 확실하게 대응할 수 있나?”
위긴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단 한 대의 항공기를 보내기 위해서 총회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일본의 구미들은 총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자금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 원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총회의 영국 원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무리를 해서라도 진행해 볼 가치가 있었다.
“확인하고 대응하겠습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사진들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예.”
“우리는 각자 싸웠다.”
“…….”
“하지만 이번은 아니야. 너희는 너희가 가르친 이들을 이끌고 싸워야 한다.”
이사진들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혼자 싸우다 실수한다면 스스로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면 된다. 하지만 아이들을 이끌고 싸운다면, 그들의 실수의 대가는 그 아이들이 치르게 된다.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바토르.”
“예, 주인!”
바토르가 말투를 바꾼다.
“준비는?”
“적은 뼈도 추리지 못하게 될 겁니다.”
“장민.”
장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복했다.
“하명하십시오, 마존이시여.”
“교도들은 죽음으로 몰아넣지 마라.”
“…….”
“싸울 의지가 있다고 해서 전장으로 교도들을 내모는 것은 교를 이끄는 이가 할 일이 아니다. 싸울 수 있는 이들만을 전장에 내보내라.”
“감히 속하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마존이시여, 나약하다고 해도 그들은 교의 교도이며, 마존의 수하이옵니다. 전장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더없는 치욕이 될 것입니다.”
“치욕?”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욕으로 여겨야 할 것은 전장에 나갈 수 없는 게 아니라, 전장에 나갈 수 없을 만큼 나약한 게 아닌가?”
“……그렇습니다.”
“똑똑히 전해라. 교는 단 한 번도 약자에게 관대한 적이 없었다. 치욕을 논하고 권리를 논하고 싶다면…… 강해져라. 충분히 우대받을 수 있을 만큼.”
“마존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장민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장민의 성정이라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이들이라면 모조리 끌어 총알받이라도 시키려 들 것이다.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적이 정예로 온다면 전력이 되지 않는 인원들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니 그 상황은 피해야 한다.
“위긴스.”
“예, 로드!”
“마법 부대는 준비가 됐다고 들었다. 슈발리에들은?”
“그들 역시 전쟁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총회의 무인이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가르친 이들도 이번에 반드시 뛰어난 활약을 보일 겁니다.”
“기대하지.”
강진호의 시선이 방진훈에게 가닿았다.
“어떻지?”
방진훈의 표정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강진호의 질문도 다른 이들에게 한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이사진들이 무인들을 가르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총회에 소속된 대부분의 무인들은 방진훈에게 무학을 배우고 있다. 그들을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가 아닌가로 전쟁의 향방이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가만히 생각에 빠져 있던 방진훈이 고개를 들고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력으로는…….”
방진훈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지금 제게 배운 놈들은 전력이 되지 못합니다.”
“음.”
“하지만!”
방진훈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투입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이건 총회의 전쟁입니다. 전원 투입하겠습니다.”
방진훈의 눈에 확고한 의지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