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67
#1166.
요격하다 (1)
“예?”
성주찬이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러고는 이내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시선이 일제히 몰린 탓이었다.
‘아오, 씨발.’
사람이 이만큼 모여 있는데 그만 반문했으니 시선이 쏠리는 게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성주찬은 전형적인 한국인이고, 타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이렇게 몰리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야, 니가 그래 버리면 내가 뭐가 되냐?
성주찬이 고개를 들어 그 대신 대답한 김원혁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이만큼 쏠렸음에도 김원혁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방진훈이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다. 총회를 나가고 싶은 놈들은 지금 나가라고.”
“……그냥 말입니까?”
“그럼? 탈퇴서라도 따로 쓰게 해주랴?”
모여든 시선이 방진훈에게로 돌아간다.
“그래도 됩니까?”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애초에 총회는 탈퇴가 자유로운 곳 아니냐.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라도 그만둬도 된다.”
총회는 회원들의 탈퇴를 막지 않는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 뿐이다.
총회를 그만둔 이는 무학을 써서는 안 된다. 무학을 사용하다 걸리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
굉장히 무서운 소리로 들리지만, 그냥 무학을 쓰지 않고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면 다시는 총회나 무인계와 얽힐 일이 없다.
그동안 총회를 나간 이들 중 무학을 사용하다 걸려서 처벌을 받은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학을 사용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
“이제 곧 전쟁이 벌어지는데 말입니까?”
“‘이제 곧 전쟁이 벌어지니까’지.”
방진훈이 가볍게 웃었다.
“너희 중에 나는 죽어도 무인의 길을 걸어보겠다고 여기에 있는 놈들? 아, 있겠지. 분명히 있겠지. 죽더라도 무인으로 죽겠다고 하는 놈이야 분명히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도 반드시 있다.
“하지만 부모가 무인이여서, 우연히 사부를 만나서,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이 길을 걷는 놈들도 있을 거다. 지금도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놈도 있을 거란 말이지.”
성주찬이 입을 꾹 다물었다.
방진훈이 마치 자신을 두고 말하는 것 같아 고개를 들기가 껄끄러웠다.
“나는 무학의 길을 택한 적도 없고, 무인으로 살아갈 확신도 없고, 그냥 어쩌다 보니 무인이 됐는데, 전쟁이 벌어지니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는 할 수 없잖아. 안 그래?”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진훈도 딱히 대답을 듣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만두려면 지금 그만두라고. 치사하게 지금까지 받아먹은 게 있으니까 무조건 목숨 걸고 싸우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까.”
성주찬이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고 말았다.
“왜 그 말씀을 지금 하시는 겁니까?”
“응?”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으시면 저희는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최소한 전력에 보탬은 될 텐데요?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어…….”
방진훈이 머리를 긁었다.
이유야 확실하다. 하지만 그 이유를 말로 만들어내는 것은 방진훈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긴스나 이현수라면 농담을 섞어가며 유창하게 말하겠지만, 그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었다.
그럼 그냥 생각나는 말을 진심으로 던질 수밖에 없다.
“난 그거 싫거든.”
“……예?”
“이건 어쩌면 내가 좀 꼬인 인간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적어도 여기서 같이 피를 흘리고 등을 맡기고 싸울 사람이라면 최소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각? 뭐라고 하지? 여하튼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억지로 끌려와서 도망갈 궁리만 하는 새끼랑 등 맞대고 싸우고 싶지는 않단 뜻이지.”
투박한 말이었다.
하지만 투박한 만큼 그 안에 담긴 뜻이 좀 더 명확하게 전달된다.
“니들도 그렇잖아. 지금도 그런 생각 하는 놈 있을걸? 무학이고 나발이고 죽으면 다 끝인데, 내가 미쳤다고 전쟁터에 끌려가서 싸워야 하나?”
“…….”
성주찬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까부터 자꾸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사실은 사실 아닌가.
그가 총회에서 많은 것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그가 원치 않았음에도 무인이 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철이 들었을 때, 이미 그는 무인이었다. 무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방법이 없다.
“나같이 닳고 닳은 것들이야 다른 방법이 없겠지만, 니들은 그런 게 아니잖아. 아직은 무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걸 할 수 있는 나이지. 그러니 괜히 주변에 휩쓸려서 전장으로 나갈 생각 하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라는 뜻이다.”
방진훈이 모두를 한 번 쭉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많이 못 준다. 오늘 저녁 아홉 시까지 그만두고 싶은 놈은 내 사무실로 찾아와. 그리고 그만둘 생각 없는 새끼들은 당장 내일 현장에 투입될지도 모르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운공 다 해놓고 컨디션 최상으로 맞춰놔.”
김원혁이 손을 들었다.
“뭐?”
“그만두면 정말 아무 불이익이 없는 겁니까?”
“그럼 씨발, 그만둔다 그랬다고 내가 패기라도 하겠냐? 새끼야, 나도 전쟁 앞두고 있어. 체력 빼지 말아야 하는 건 나도 똑같아.”
“리스크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만두는 놈들은 지금까지 총회에 받아먹은 돈이나 지원을 다 꿀꺽하고 도망가는 거 아닙니까?”
“괜찮아.”
방진훈이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까워서 각오도 안 된 놈들이랑 계속 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 물론 이게 그만두겠다는 놈들을 비하하는 건 아냐. 다만, 좀 다르다는 거지.”
방진훈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야 상관없어, 지금까지는.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라. 이제는 너희도 총회에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총회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할 시기다. 그러니까 지금 한 번 선택하라는 거야. 정말 내가 진정으로 무인으로서 살아갈 건지,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총회에 소속되어 있을지,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할지. 어차피 니들, 내가 판 안 깔아주면 이런 거 못 고르잖아.”
“…….”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선택해. 그리고 남아 있겠다고 다짐한 새끼들은 절대로 그만두는 애들 괴롭히거나 욕하지 마라. 욕하는 새끼는 내가 직접 패 죽여 버릴 거다. 알았어?”
“예!”
우렁찬 대답을 들은 방진훈이 씁쓸하게 뇌까렸다.
“마찬가지야. 어차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남아봤자,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더 강해질 수가 없다. 나아갈 수도 없고,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것도 용기다. 말했다. 오늘 저녁 아홉 시까지다. 그리고 이번에 못 그만두는 새끼는 죽어도 억울할 거 없는 거야. 알았어?”
“예!”
“그래.”
방진훈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천태훈이.”
“예.”
“안 그만둔다는 새끼들 따로 골라내서 편제 짜. 아까 지시해 둔 대로.”
“미리 말입니까?”
“선편성을 해둬야 시간을 줄일 거 아냐. 고민 안 하는 새끼들도 있을 거고.”
“알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방진훈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진훈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다들 주변의 누군가를 붙들고 격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광장이 순식간에 시장 통이 되어버렸다.
“잠시만, 할 말만 마저 하고!”
천태훈이 목청을 높였다.
완전히 조용해진 것은 아니지만, 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천태훈이 바로 말을 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남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제2수련장으로 집합해 주십시오. 편제 짤 겁니다.”
“지금 바로 가면 되냐?”
“좀 있어봐. 아직 거기 준비 안 됐어. 30분 뒤부터 받을 거야.”
“오케이.”
천태훈은 할 말이 끝났다는 듯 단상에서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성주찬은 복잡한 내심을 감추지 못했다.
“야, 원혁아.”
“응?”
“넌 어쩔 거냐?”
“어쩌긴 뭘 어째. 나는 수련장으로 간다.”
“……고민도 안 해보고?”
“고민은 지랄.”
김원혁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무인이야. 지금까지 무인이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살아놓고 지금 와서 무섭다고 도망간다고? 나는 그렇게 쪽팔리게 못 살아.”
“방 이사님이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용기라잖아.”
“그렇겠지. 그런데 그건 다른 사람 이야기고, 나한테는 그게 용기가 아냐. 내일 당장 뒈지더라도 나는 무인으로 산다. 그리고 살아남아서 높은 데까지 올라갈 거다.”
“…….”
“넌 그만둘 거냐?”
“아직 안 정했다.”
김원혁이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인데, 너는 그냥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
“……왜?”
“보이냐?”
성주찬이 김원혁이 턱짓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광장에 모인 이들 중 절반이 넘는 인원들이 제2수련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30분 뒤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그 30분의 고민조차 시간 낭비라고 느끼는 모양이다.
“남는 건 저런 새끼들이다.”
“…….”
“그만둬라. 솔직히 나도 너 하는 꼴 보니 방 이사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다. 너는 친구로서는 좋지만, 너한테 등 맡기고 전쟁터로 가고 싶지는 않다.”
신랄한 말이었다.
하지만 성주찬은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전쟁이 벌어지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총회에 소속된 모두가 죽을 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 어떻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장으로 나갈 수 있을까?
성주찬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나는…….”
“됐어.”
김원혁이 손을 내저었다.
“나한테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이거, 너 무시하는 거 아냐. 사람에게는 적성이라는 게 있잖아. 니가 여길 나간다고 해도 나는 네 친구야. 총회에서 만나지 말라고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내가 너를 무시하고 경멸할 일은 없어. 그냥 선택인 거지. 그러니까 잘 생각해 봐.”
김원혁은 두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제2수련장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성주찬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전쟁이 나면?
사람이 죽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저들이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전쟁에 너무 과민반응하는 건지……. 그게 아니면 성주찬도 몰랐지만, 알고 보니 자신이 겁쟁이였던 건지.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광장에 남은 인원 중 삼분의 이 정도가 제2수련장으로 바로 이동했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 중 절반 정도는 광장을 이탈해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그 어디로도 가지 못한 이들이 광장에 남아 미묘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닥.
그래, 볼 곳은 바닥밖에 없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민망하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까. 이곳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약함을 들킨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성주찬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광장에서 벗어났다.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 결정이 된 건 아니지만, 이곳에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하늘을 덮기 시작하는 노을을 바라보며 성주찬이 질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