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68
#1167.
요격하다 (2)
산속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총회는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는 방진훈의 눈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무인의 특성상 조명이 크게 필요치 않다 보니, 총회는 조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워진 산에서 불빛이 새어 나가는 것을 경계할 필요도 있으니까.
평소에는 딱히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어둡기만 한 창밖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흐음.’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벌써 꽤나 많은 이들이 그의 사무실을 다녀왔다.
방진훈의 기분을 다운시키는 것은 총회와 운명을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들어서가 아니다. 그 수가 많아서도 아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방진훈이 고개를 돌렸다.
‘시간은?’
9시 1분.
아마 지금 들어오는 이가 마지막일 것이다.
“들어와.”
들어오란 말을 했음에도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성격이 급한 편인 방진훈이지만, 이번만큼은 방진훈도 말없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주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이내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이는 방진훈과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방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답답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 모습이다. 오늘 이 방에 들어오는 이들은 다들 한결같이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인죄를 저지른 범죄자도 카메라나 법정을 향해 쌍욕을 퍼붓는 세상인데,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저리 죄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단 말인가.
“마지막인가? 뒤에 사람 더 있어?”
“……뒤에 없습니다.”
“그래. 여기 와서 앉아.”
“예.”
사내가 방진훈의 책상 건너편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방진훈이 안경을 슬쩍 밀어 올렸다.
무인이다 보니 딱히 시력이 나빠질 일이 없고,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방진훈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서류 작업을 해야 할 때는 안경을 쓰는 게 마음에 안정이 된다.
“이름이?”
“성주찬입니다.”
“어, 그래. 성주찬이.”
방진훈이 자판을 두드려 검색을 했다.
“하, 요새는 참 편하단 말이야. 옛날에는 이런 거 한 번 하려면 눈 빠지게 명부 뒤져야 했는데.”
“…….”
“그래, 성주찬이. 결심은 섰고?”
“…….”
성주찬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방진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숙인 고개와 처진 어깨를 보고 있으려니 열불이 치밀었다. 하지만 방진훈은 그저 입을 꾹 닫았다.
“저…….”
한참을 말이 없던 성주찬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간 사람도 있습니까?”
“있지.”
방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눈물 빼고 콧물 빼며 난리를 치면서 죄송하다고 하는 놈들도 있고, 와서 몇 마디 하다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고 돌아가 버리는 놈들도 있고. 사람이야 뭐, 원래 천태만상 아니겠냐?”
“……그렇죠.”
“왜? 돌아가게?”
“…….”
방진훈이 가만히 성주찬을 바라보다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서랍을 열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 피우냐?”
“예?”
“담배 피우냐고.”
“아, 조금…….”
“자, 한 대 피워라.”
“아, 아닙니다.”
“그럼 나만 피운다?”
“…….”
우물쭈물하는 성주찬을 보며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줄 때 피워. 자.”
성주찬이 머뭇대다가 방진훈이 주는 담배를 받아 들었다. 방진훈이 담배에 불을 붙여주자 고개를 돌려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낸다.
찰칵.
자기 입에 물린 담배에도 불을 붙인 방진훈이 깊게 연기를 뿜어냈다.
“이사님, 담배 피우셨습니까?”
“잘 안 피우지.”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요새야 담배 하나도 눈치 보고 피워야 하는 세상 아냐. 담배 피우고 집에 들어가면 잔소리가……. 아우.”
방진훈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잘 안 피우려고 하는데, 살다 보면 그래도 한 대씩 피워야 하는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 말이다. 안 그래?”
“예, 그렇습니다.”
성주찬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방진훈의 말이 성주찬처럼 그만두고 나가려는 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소리로 들려왔다. 그리고 아마 그게 사실이겠지.
“고개 들어, 인마. 사내새끼가 왜 자꾸 고개를 숙여?”
“……죄송합니다.”
“죄송은 얼어 죽을.”
방진훈이 깊게 담배를 빨았다.
“총회가 뭔 너희 부모라도 되냐? 너희한테 총회는 회사야. 회사 그만두는 게 죄송할 이유가 어디에 있냐. 안 맞으면 나가는 거지. 지금이 무슨 쌍팔년대도 아니고, 그게 뭐가 문제야?”
“…….”
“뭔 죄 지은 것처럼 굴지 마, 인마.”
“예.”
방진훈이 허공으로 천천히 퍼져 나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았다.
“답답하냐?”
“……예.”
“하기야 그렇겠지.”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몰아치기는 했지만, 성주찬의 기분이 이해가 안 가는 건 또 아니었다. 방진훈이 총회에 가지는 감정만큼은 아니지만, 성주찬 역시 총회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 삶의 방향을 하루아침에 뒤튼다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성주찬.”
“예.”
“그만둔다고 생각하지 마라.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고 생각해.”
“…….”
“너, 제일 비참한 무인이 어떤 애들인지 아냐?”
“잘 모르겠습니다.”
“너처럼 그만두는 놈들? 탈락하는 놈들?”
“…….”
“아니야.”
방진훈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담배를 비비는 그의 손길에 살짝 짜증이 묻어났다.
“진짜 비참한 놈들은 그만둘 시기를 놓쳐 버린 놈들이야.”
“시기요?”
“그래.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두지 못한 사람들. 너는 지금 그만두면 네가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여기고 있겠지만, 천만에. 네 나이에 그만둘 수 있는 건 축복이야. 마흔이 넘고 쉰쯤 된 이들이 더 이상 다른 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실감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사람이 산 채로 썩어.”
“…….”
“나도 무인이지만, 무인 이거? 좆같은 거야. 야, 평범한 사람들은 서른쯤 되면 자기가 뭐가 될 줄 알게 돼. 그쯤 되면 싸움이 끝나거든. 계속 싸워 나갈 사람들이랑, 세상에 순응할 사람들이 나뉘게 되지. 이 바닥에서 계속 싸울 수 없다 싶으면 다른 길을 찾을 수라도 있잖아.”
“예.”
성주찬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런데 무인은 안 그렇다니까. 무학은 아주 엿 같은 거라서 사람이 마흔이 되고 쉰이 되도록 계속 강해져. 그러니까 희망을 못 내려놓는단 말이야.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깨닫게 되면 이미 돌이킬 수가 없어.”
“…….”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오십 평생 무학만 익힌 사람이 어디 가서 뭐 하겠냐? 다른 오십들은 사회 경험이라도 쌓고, 뭐라도 배우지. 못해도 기술이라도 생기는데, 무인은 아냐. 나이 오십이 돼서 트랙에서 이탈한 사람들은 할 줄 아는 게 사람 패고 죽이는 것밖에 없어.”
방진훈이 씁쓸한 얼굴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불을 붙였다. 두 대째 담배를 쭉 빨아들인 방진훈이 고개를 내저으며 연기를 뿜었다.
“그러니까 여길 벗어나는 게 실패라고 생각하지 마. 아마 삼십 년쯤 뒤에서 너를 따라 이 짓거리를 그만두지 못한 걸 후회하는 놈이 무지하게 나올 거다.”
성주찬이 방진훈을 가만히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이사님.”
“왜?”
“그럼 그 이야기를 왜 미리 해주지 않으셨습니까?”
“하면?”
“……예?”
“하면 뭐가 달라져?”
“…….”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너도 지금 같은 상황이니까 내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하는 거지, 당장 일주일 전에 내가 이 말 했으면 들었겠냐? 아, 말은 그럴듯하게 들었겠지. 다만, 너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겠지. 아냐?”
성주찬이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방진훈의 말이 맞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성주찬은 자신이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성주찬이.”
“예, 이사님.”
“고개 숙이지 말라니까.”
“…….”
성주찬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어린 독기를 본 방진훈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지금 니가 겁쟁이라서 다른 놈들은 다 하는 걸 못한다고 생각하지?”
“……예.”
“그거 반은 맞다.”
“…….”
“근데 반은 틀린 말이야.”
방진훈의 고개가 천천히 내저어진다.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지. 하지만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용기가 없으면 못하는 짓이야. 용기가 생기는 법? 간단해. 그냥 어떻게든 머리 싸매고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돼. 눈앞에서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들이 있는데 안 싸울 것 같냐? 야, 개미 한 마리 못 죽이는 사람도 사람 모가지에 칼 쑤셔 박는 데가 전쟁터야.”
방진훈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알고 있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이들을 억지로 끌어다가 전장에 가져다 놓으면 다들 어느 정도 제 몫은 할 것이다. 있어서 방해가 될 만큼 멘탈이 나쁘다면 지금까지 총회에서 버티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렇게 그들을 단련시키는 것 역시 한 방법이다.
하지만 방진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내가 너희를 거르는 게 아냐. 채로 걸러서 쓸 만한 놈만 남기겠다고 이 지랄하는 거 아니라고.”
방진훈이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평범한 회사라고 치자. 그럼 지금까지 그만두는 놈이 하나도 없었을 것 같냐?”
성주찬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이 질문에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있었겠죠.”
“그렇지?”
방진훈이 피식 웃는다.
“야, 나도 여기가 그냥 평범한 회사였으면 지금까지 안 다녔을 수도 있어. 이중걸, 그 새끼가 지랄할 때 벌써 때려치우고 나갔겠지. 그런데 안 그렇잖아. 다들 발이라도 묶인 듯이 여기 있단 말이야.”
방진훈이 콧김을 내뿜었다.
“그러니까 한 번 정리하자는 거야. 기회가 왔을 때,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도 못할 테니까. 그러니까 아직 니들이 다른 길 갈 수 있을 때, 아직은 뭔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하는 게 맞아. 무슨 말인 줄 알겠냐?”
성주찬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다.
서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자꾸 목이 멘다.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성주찬.”
“예, 이사님.”
“고생했어.”
“…….”
“총회를 그만두고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이 따로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애매하게 미련 가지지 말고 가.”
“이사님, 저는…….”
“야.”
“……예?”
“니 인생 니가 결정하는 거야. 남 눈치 보지 마, 새끼야. 너, 지금 주변에서 너 보는 눈이나 내가 앞에 있는 상황 아니었으면 고민이나 했겠어?”
방진훈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채근했다.
“……안 했을 것 같습니다.”
“거 봐, 인마.”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미련 가지지 마. 말했듯이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것도 용기야.”
“……예.”
“가봐. 정리해 둘 테니까. 총회 벗어나는 대로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에 가. 연락은 따로 갈 거야. 그리고 오늘부터 무공 쓰면 안 된다.”
“……예.”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주찬을 보며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주찬이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결국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방진훈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