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87
#1186.
치고받다 (1)
“보고드립니다!”
강진호가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작해.”
“예! 현재 군산에서 일본의 상륙부대와 조우, 전투를 치르고 있다는 연락입니다! 상황은 압도적인 우위. 대략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에 적의 전멸이 예상됩니다.”
“알았다.”
“예! 다음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바로 재보고드리겠습니다! 그럼!”
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한참 동안 천정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던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생소하군.’
미묘한 불안감이 떠나지를 않는다.
싸우고 있는 이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바토르와 위긴스가 있다. 방진훈과 장민도 있다.
그리고 그가 최선을 다해 키워낸 이들이 그들을 돕고 있었다.
패배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안함을 떨쳐 낼 수 없는 건,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이건 감정의 영역이었다.
과거 마교를 이끌 때는 없던 일이다.
강진호라고 해서 모든 전장에 설 수는 없다. 자신이 선 전장에서는 언제나 선봉에서서 모두를 이끌었지만, 그가 갈 수 없는 전장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불안감에 시달렸나?
그렇지 않다.
그가 없는 곳의 승패는 강진호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승리한다면 그걸로 좋은 것이고, 패배한다면 그가 있는 곳에서 만회하면 된다.
그 정도의 의미였다.
하지만 총회는 다르다.
강진호는 새삼 자신에게 있어 지금의 총회가 과거의 마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전장으로 달려가고 싶다.
승기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승리한다고 해서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함께한다면 피해는 반 이상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무조건 보듬고 지키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총회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세계에 퍼져 있다. 전장이 넓어지는 이상 강진호가 매번 그들과 함께 움직일 수는 없다. 스스로 알아서 싸우는 법을 익혀야 한다.
‘알고는 있지만…….’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아는 것과 지키는 것은 다르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게 이리 힘든 일일 줄이야.
게다가…….
강진호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흐음.”
그때, 전화가 울렸다.
손을 뻗은 강진호가 액정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회주님, 석동수입니다.]석동수의 목소리에 완벽한 공경이 묻어난다. 장관이라는 지위를 감안하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다.
“말해.”
[지시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은 지금 지속적으로 확인 중입니다.]“알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제대로 처리가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괜찮아. 그 정도로 충분하다.”
[다른 특이 사항이 생긴다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강진호는 두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석동수는 좋은 패가 되어주고 있다. 한 나라의 장관이 맹목적으로 강진호를 따른다는 사실은 활동의 폭을 넓혀주었다.
그렇기에 때로는 강진호도 충동을 느낀다.
굳이 그에게 적대하는 이들뿐 아니라 어느 정도 친화적인 이들도 섭혼을 통해 그에게 종속되도록 만든다면, 세상일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아마 중국 놈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겠지.’
섭혼은 마교만의 것이 아니다. 사술이란 이름으로 천대받기는 하지만, 인간을 조종하고 세뇌하는 기술은 당시 수많은 사파와 사교에 널리 퍼져 있었다.
대부분은 조잡하기 짝이 없는 사술에 불과했지만, 제대로 된 섭혼술이 반드시 전해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삼왕계가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강진호는 섭혼을 남용하지 않았다.
사람의 뇌리에 강박을 심는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섭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사람이 백치가 되어버릴 수도 있고, 설사 백치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섭혼이 잘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사람은 자연스레 자신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존재다. 그 합리적인 판단이 강제로 뒤틀리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겪는다면, 인간은 결국 망가지고 만다.
무엇이든 남용한다면 밸런스가 깨지기 마련. 당장 편하자고 정계를 뒤흔들어 버린다면, 그 피해는 강진호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그러니 석동수 같은 인간에게나 쓰는 것이다.
망가져도 상관이 없는 자니까.
그게 아니면 바토르처럼 절대 망가지지 않을 인간에게 사용하든가.
강진호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불 꺼진 방이 점점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 * *
“정지!”
경광봉이 재빨리 뒤흔들어졌다.
쭉 늘어선 경찰들이 새벽의 어둠을 뚫고 접근하는 불빛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음주예요?”
“아닙니다. 어디로 가시는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이 시간에 택배차가 어디 가겠어요. 물류장 나가는 길이지.”
경찰이 고개를 들어 뒤쪽을 확인했다.
소형 트럭이 줄을 지어 멈춰 선다. 트럭에 랩핑된 택배사의 로고를 확인한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브 터미널로 가십니까?”
“예. 늦었어요, 지금.”
경찰이 살짝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굳이 검문은 안 해도 되겠지.’
수상한 이를 발견하면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오긴 했지만, 택배차가 이 시간에 물류 허브 터미널로 가는 건 일상적인 일이다. 게다가 보아하니 기업 소속 택배차 같은데, 별일이야 있겠는가.
“야, 저기 다 열어봐.”
“택배차를요?”
“일일이 확인 다 하라는 말 못 들었어?”
“예, 알겠습니다.”
경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들으셨죠? 안쪽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왜요?”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물류장에 짐 실으러 가는 찬데, 뭐가 있다고 조사를 해요?”
“그래도 확인해야 합니다.”
순간, 운전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저거, 다 열어보실 거예요?”
경찰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서른 대에 가까운 트럭을 보고는 눈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늦었는데, 저걸 일일이 다 확인한다구요? 아, 경찰관님. 우리 회사 아시잖아요. 이 새끼들 조금만 늦어도 일단 뱉으라고 하는 새끼들이라구요. 새벽부터 나와서 설치는데, 일당도 못 받으면 어쩌라구요.”
“죄송합니다만…….”
“하…….”
운전수가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서 열어보세요. 뒤쪽에서 열 수 있으니까.”
“협조 감사드립니다.”
경찰관이 천천히 걸어 택배차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잠금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야! 뭐 하고 있어?”
“예? 이거, 검문 중입니다.”
“저 뒤쪽에 수상한 애들 발견됐단다. 얼른 합류해.”
“예!”
경찰관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통과! 통과!”
“가도 돼요?”
“예. 가세요.”
경광봉이 흔들어지며 택배차들이 검문을 통과하여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슬쩍 백미러를 바라본 운전사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십 년 감수했네.”
택배차들이 검문대를 모두 빠져나온 것을 확인한 그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별걸 다 시키네, 개새끼들.’
일단 위험한 관문은 지났다.
여길 지났으니, 이제는 검문이 따로 없을 것이다.
약속된 두둑한 보너스를 생각하니 절로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간다.
“나야 돈만 벌면 그만이지.”
스르릉.
요시노부가 뽑은 검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불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좁은 화물칸 안이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검문은 통과한 것 같습니다.”
“꼴이 말이 아니군.”
“큰일을 위해서는 참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요시노부가 코웃음을 쳤다.
배를 타고 올 때는 어창에 들어가지를 않나, 한국에 들어와서는 트럭 화물칸에 타고 이동하고 있다. 일본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들 자존심이 말이 아니겠군.”
“목적만 이룬다면 모두 보상될 겁니다. 덕분에 쓸데없는 충돌을 피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요시노부가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국인들은 정말 기묘한 놈들이란 말이야.’
과거, 그들이 한국을 지배할 때도, 가장 앞장서서 한국인을 탄압한 것은 일본인이 아니라 같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상황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상황도 꽤나 아이러니했다.
그들에게 차량을 제공하고 검문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한국의 기업이다. 미리 공조가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요시노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 기업이 일본인을 도와 공권력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니.
아무리 기업인 놈들이 돈만 되면 사람도 내다 파는 놈들이라고는 하나, 이건 정도가 심하지 않은가.
덕분에 계획한 바를 이룰 수 있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잘도 협조를 얻어냈군.”
“정계가 바지런히 움직여 준 덕분입니다. 저들도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일본에 수출을 할 수 있게 되면 남는 장사라 생각했겠죠.”
“디딘 땅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말인가?”
“그리 먼 곳을 볼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이쪽은 원래 일본에 친화적인 기업이라고 하더군요.”
“흐음.”
요시노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것은 그가 알 바 아니다. 그는 수령이 정해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령이 마련해 준 수단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럼 얼마나 남았지?”
“두 시간 내에 도착할 겁니다.”
“느리군.”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주변은 경계가 심합니다. 이쪽을 벗어나면 속도를 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참모가 한국어로 몇 마디를 중얼거리더니, 전화를 끊는다.
“총장님.”
“음.”
“목표가 목적지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좋아.”
요시노부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과장된 그의 반응이 지금 그의 심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전쟁은 결국 누가 장수의 목을 치는가로 승부가 갈리기 마련이지.”
그들이 선발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동에 말한 것과 달리 그들의 목적은 먼저 진입하여 후속 상륙대가 안전하게 상륙할 시간을 버는 게 아니었다. 야마시로구미 놈들이 안전하게 상륙하든 말든 그게 신니치카이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실제로는 거꾸로다.
야마시로구미가 저들의 시선을 끈다.
물론 야마시로구미는 짐작도 못하고 있겠지만, 진짜 미끼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야마시로구미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총회 놈들과 야마시로구미 놈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요시노부는 그 틈을 노린다.
“무슨 배짱으로 따로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해가 뜨기 전에 강진호의 목을 딴다.”
“예!”
국도를 가득 채운 택배차들이 굽은 도로를 따라 거대한 이무기처럼 총회로 전진하고 있었다.
목표는 오직 강진호의 목.
수령이 날린 비수가 지금 강진호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