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89
#1188.
치고받다 (3)
“방 이사님!”
어디선가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다급함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 방진훈에게로 집중되었다.
“으…….”
방진훈이 뒤로 물러나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손이 옆구리를 움켜잡고 있다. 벌어진 옆구리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
“방 이사…….”
“소란 떨지 마!”
방진훈의 호통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아오, 씨발.’
방진훈이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늦었으면 허리가 두 동강 났을 것이다. 너무 늦지 않게 눈치챈 덕분에 허리가 완전히 잘리는 것은 피했다.
대신 도를 후려친 손이 뼈가 드러날 정도로 베였고, 옆구리도 근육까지 상했다.
스스로 터프하다고 자신하는 방진훈도 이를 악물어야 할 정도의 상처이지만, 이 정도면 싸게 먹혔다.
“경험이 부족하군.”
가즈히로가 도로 방진훈의 목을 겨눴다.
“한국 무인 주제에 그 정도면 잘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법이지.”
“뭐래, 저 새끼. 퉤!”
방진훈이 바닥에 피가래를 붙었다.
‘빌어먹을.’
상대가 강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 것이라 대책 없이 믿어버렸다. 그 멍청함의 대가로 이 정도의 상처는 당연한 것이다.
방진훈이 몸을 일으켰다.
옆구리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힐끔힐끔 그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시선을 느낀다면 말이다.
‘이거 좀 엿 같네.’
방진훈이 어깨를 쭉 펴다가 순간 주저앉을 뻔했다. 이만한 상처를 입어본 적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만한 상처를 입고 싸워야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방진훈이 이를 악물었다.
‘다른 놈들에게 책임이 어쩌고 할 일이 아니었군.’
그도 몰랐다.
누군가를 지탱하며 싸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의 패배는 그 혼자만의 패배가 아니다. 그를 믿고 싸우고 있는 모두의 사기를 꺾는 짓이고, 이 전장의 전세를 뒤바꿀 만한 사건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정신이 날아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방진훈은 어깨를 쫙 폈다. 지금 그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가 지켜보던 것과 같은 등을.
그만큼 믿음직스러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초라하지는 않아야 한다.
“일어나?”
가즈히로가 방진훈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옆구리에 칼이 제대로 박혔다.
몸에 힘도 제대로 안 들어갈 텐데, 일어난다?
‘대단한 정신력이군.’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전장이 아니었다면 상대에게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전장. 그가 꾸물거리고 있는 틈에도 그의 조직원들이 죽어 나간다.
“이걸로 끝이다!”
가즈히로가 방진훈을 향해 재차 돌진했다.
방진훈은 날아드는 가즈히로를 보며 가만히 자세를 취했다.
욱신!
뒤로 한 발을 빼는 동작만으로도 끔찍한 통증이 뇌를 찔러 댄다. 하지만 지금은 엄살을 떨 때가 아니었다.
“가장 위험할 때?”
‘뭐지?’
잡생각을 버려야 하는데…….
“이겼을 때지. 상대를 완전히 잡았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일격을 가할 때, 방심이란 것은 의식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법이니까. 특히나 전장이라면…….”
그 말을 하던 강진호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 비릿한 미소.
“죽어도 할 말이 없지.”
“하아아앗!”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 올린 방진훈이 우수에 모든 기운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손이 새하얗게 물들 정도의 기운이 손바닥에 밀려들었다.
방진훈이 그의 목을 찔러 들어오는 도를 향해 우수를 날렸다.
콰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도가 방진훈의 손바닥을 그대로 꿰뚫었다. 그의 전력을 다한 일격도 가즈히로의 도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되레 방진훈의 의도한 바였다.
도가 틀어박힌 손을 옆으로 확 젖혔다. 그의 목을 찔러오던 도가 제대로 목을 꿰뚫지 못하고 살가죽만을 베고 스쳐 갔다.
촤아아악!
목이 길게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목과 우수를 내줬다.
옆구리는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져 흉하기 짝이 없다. 좌수도 검을 막다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베여 버렸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잡았다, 이 새끼.”
방진훈은 처음으로 가즈히로의 가슴팍까지 파고들 수 있었다.
“이!”
“어딜!”
가즈히로가 방진훈의 손에 틀어박힌 도를 빼내려 하자, 방진훈이 힘을 주어 도날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남은 손으로 가즈히로의 허리를 감싼 채 들어 올렸다.
“이 개자식이!”
가즈히로의 팔꿈치가 방진훈의 머리를 연속으로 후려쳤다. 하지만 방진훈은 이를 악문 채 가즈히로를 안고 바닥으로 뛰어들었다.
쿵!
이종격투기에서 테이크다운을 하듯 바닥에 가즈히로를 처박은 방진훈이 허리를 들어 올린 채 주먹을 내려쳤다. 그가 주먹을 내려친 곳은 가즈히로의 육체가 아니라 도에 찔린 그의 반대쪽 손이었다.
챙!
강철보다 더 단단해진 손을 전력으로 내려치자, 도가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물론 그의 손도 보기에 끔찍할 정도로 망가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도를 잃은 가즈히로는 공격 수단을 잃었지만, 그는 한 손을 잃었을 뿐, 아직 다른 것들이 남아 있으니까.
예를 들면…….
쿠웅!
방진훈의 머리가 가즈히로의 얼굴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끄으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 방진훈이 가즈히로의 허리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천근추를 응용해 가즈히로를 내리눌렀다.
“퉤.”
입안 가득 차오른 피를 뱉어낸 방진훈이 피식 웃으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고상하신 분이라 그런지, 개싸움에는 소질이 없으시네. 대가는 치러야지?”
“이, 이놈! 수치를 모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하겠는데 해석은 된다, 이 개새끼야. 싸움에 더러운 게 어딨냐. 이기면 장땡이지.”
방진훈이 그나마 멀쩡한 왼쪽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맞아 죽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려주마!”
가즈히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쿵!
“끄윽!”
얼굴에 틀어박히는 주먹의 힘에 가즈히로가 발악을 했다.
죽는다.
이러면 정말 죽는다.
하지만 저항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의 애도(愛刀)만 있다면 방진훈쯤이야 순식간에 갈라 버리고 일어나겠지만, 그의 도는 손잡이만 남기고 부러져 버렸다.
맨손인 그는 권사인 방진훈을 이길 수 없다.
‘아, 안 돼!’
다시 주먹이 날아든다.
손을 들어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그 순간 주먹이 얼굴이 아닌 목에 틀어박혔다.
“끅!”
순간적으로 숨이 끊어진다. 열린 얼굴로 이번에는 방진훈의 팔꿈치가 경기를 머금고 날아들었다.
콰드드득!
턱뼈가 으스러진다. 이어진 주먹에 광대뼈가 내려앉는다.
“끄으으…….”
방진훈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산산이 분쇄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으려는 그를 방진훈이 주먹으로 만류해 주었다.
콰아아아앙!
방진훈의 주먹이 그의 입에 틀어박혔다. 부서진 이가 입천장을 뚫고 뇌로 파고든다.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방진훈의 목소리가 멀게 들려왔다.
“좆도 아닌 새끼가. 깝치네.”
한국어를 모르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을 것이다.
“후욱!”
방진훈이 휘청이며 일어났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지,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뒈지겠네.’
이게 대련이었으면 방진훈의 패배다. 하지만 목숨을 건 싸움이기에 이길 수 있었다. 평범한 방법이었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었겠지만, 방진훈이 누군가.
강진호가 온갖 수단으로 다양하게 적의 목을 치는 것을 언제나 실시간으로 옆에서 구경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그 역시 방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살아남은 이가 강자다.
그리고 방진훈은 살아남았다.
“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쓰러질 수 없다. 방진훈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승리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승리를 모두가 똑똑히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누구는 그저 승리만으로, 그리고 쫙 편 등만으로 모두를 이끌 수 있지만, 방진훈은 아니다.
그러니 외쳐야 한다.
방진훈이 고개를 젖히고 소리를 질렀다.
“다 처 죽여 버려! 이 쪽발이 새끼들!”
사기가 하늘을 꿰뚫었다.
“총장!”
“총장께서 패하셨다!”
일본의 무인들이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졌다.
가즈히로가 누구인가.
그 이름 높은 야마시로구미의 총장이다. 이제는 현장에 나오지 않는 조장을 제외한다면, 야마시로구미의 실질적인 지배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가즈히로가 이름도 모르는 한국의 무인에게 패해 처참한 시체가 되었다. 눈으로 그 광경을 목격했는데, 어찌 동요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평범한 다른 이가 패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가즈히로는 야마시로구미의 총장이자, 이곳의 실질적인 지휘관이다. 그런 이가 죽었다.
절대 죽어서는 안 되는 이가 죽고 만 것이다. 머리가 있고, 생각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모를 수가 없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총회의 전열은 더없이 단단하고, 바토르는 지금 이 순간애도 성난 거인처럼 날뛰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은 그들의 발목을 잡아대고, 전신을 갑주로 무장한 기사들이 기계처럼 눈앞에 보이는 모두를 도륙하고 있다.
전멸.
일순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더 이상 이 전장은 희망이 없다. 이를 악물고 버틴다고 해도 죽음을 조금 연장할 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모두가 머릿속으로는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한 말. 그 말이 나와 버리는 순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 달아나!”
신음 같은 목소리.
굉음이 가득한 전장에서라면 아주 작게 들릴 수밖에 없는 목소리이지만, 이상하게 그 목소리는 선명하게 전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작은 목소리가 불길을 지폈다.
“달아나!”
“모두 죽는다! 퇴각! 퇴각하라!”
“도망쳐! 지금 당장!”
패닉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아주 작게 시작하지만,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져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가즈히로의 죽음은 전장에 있는 모든 관동의 무인들을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달아나아아아아아!”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이 한국 땅에서 달아나면 어디로 달아난단 말인가. 그들은 이미 포위되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바다! 바다로 뛰어들어!”
계산은 빠르게 끝났다.
바다.
물론 저 바다를 통해 일본으로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저들의 포위망이 육지에 한정된 이상, 바다로 뛰어든다면 지금 이 포위망을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는 있다. 그 뒤에 일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으면 된다.
“으아아아아아!”
“비켜어어!”
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순간이 바로 한쪽이 무너져 달아나기 시작할 때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이들은 등 뒤의 칼날보다 앞을 가로막는 아군을 더 거추장스럽게 느끼기 마련이니까.
기껏 유지되고 있던 전열이 무너지며, 일본 무인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선봉에 섰던 가장 용감한 이들이 되돌아 아군을 밀치며 바다로 달리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어디 가느냐, 이 쓰레기 놈들아!”
바토르가 날뛰고, 불꽃이 사방으로 터진다. 달아나려는 이의 발목을 나무뿌리가 솟구쳐 휘감았다.
아비규환.
차라리 지옥이 고요해 보일 만큼 수라장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기민한 자들은 재빠르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경비정이 해안에 떠 있기는 하지만, 저 경비정은 절대 그들을 잡을 수 없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살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어?’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든 이들이 물 안에서 빛나는 붉은 불빛들을 발견했다.
붉은 불빛.
너무도 붉어 핏빛처럼 느껴지는 그 불빛을 보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촤아아아아앗!
수면을 가르고 솟아오른 칼날이 바다로 뛰어든 이들의 몸을 꿰뚫었다.
“끄르륵.”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배가 뚫린 이가 천천히 물 안으로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수면 위로 수백의 무인이 동시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앞에 선 백발의 노인이 양손으로 젖은 머리를 깔끔하게 넘기며 입을 열었다.
“모두 죽여라.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는다. 감히 마존의 땅을 밟은 이들의 피로 바다를 붉게 물들여라!”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마교의 마인들이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며 일본인들에게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