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95
#1194.
받아치다 (4)
탁.
휴대폰이 조금은 과격하게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고풍스러운 원목으로 만든 테이블이 부르르 떨렸다.
탁자 위에 휴대폰을 던지듯 내려놓은 손이 허공을 두어 번 휘젓다가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움켜잡았다. 단숨에 뜨거운 차를 들이켠 수령이 조금은 진정된 손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건방진 놈.”
수령의 눈이 일그러진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간은 제 주제를 알고 복종하는 이였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인간은 작은 재주만 믿고 거만을 떠는 이다.
하지만 실제로 수령이 가장 믿고 쓰는 이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였다.
인간됨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만, 능력은 배를 불리게 만들어준다. 마음의 평안 따위보다는 재물과 곡식이 배는 더 중요한 사람이 바로 수령이다.
지금 그가 물처럼 마셔 버린 차도 웬만한 이의 몇 달 치 월급은 줘야 구할 수 있는 고급품이 아니던가.
이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실 수 있는 위치에 그가 올라올 수 있던 이유는 과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다.
언제나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이가 자신보다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에 그는 이 가파른 곳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저 차이커창이라는 자는 결코 아래에 두고 쓸 수 없는 놈이다. 개처럼 복종하지는 못하더라도 고양이처럼 안겨들 줄은 알아야 하는데, 뱀처럼 차갑기만 하다.
‘뱀 중에서도 독사겠지.’
저 치명적인 독을 품은 놈을 종처럼 부릴 수 있는 홍왕은 얼마나 대단한 자인가.
살짝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수령은 솟구치는 질투심을 억눌렀다. 홍왕은 홍왕, 수령은 수령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방식이야 어찌 되었든 동일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으면 그만 아닌가.
“신야.”
숨을 죽이고 있던 스기야마 신야가 고개를 들었다.
“예, 수령.”
“연락은?”
“끊겼습니다.”
“흐음.”
수령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대체로 좋지 않은 소식이지만, 지금은 반대다. 요시노부와의 빠른 연락을 위해서 수령은 그들로 하여금 5분에 한 번씩 이쪽으로 신호를 보내도록 했다.
총회에 오르는 중이라는 연락이 마지막으로 신호가 끊겼다는 말은 전투에 돌입했다는 뜻이다.
전원이 군산으로 집결한 상황에서 연락을 하지 못하는 전투가 벌어졌다면?
“강진호를 물었군.”
“그런 듯합니다.”
수령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계획대로 움직였고, 계획대로 강진호와 조우했다. 일이 계획대로 풀려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좋은 소식에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오르지 못한 수준에서 공방이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차이커창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일이 풀려 버리지 않았는가.
차이커창의 말대로라면 한국에서 적어도 이현수와 위긴스는 차이커창의 전략을 알아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강진호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이상한 말이 아닌가.
예측하고 짐작할 텐데, 일은 그대로 흘러갈 것이라니.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실제로 차이커창의 말대로 일이 흘러갔다.
불편하다.
‘이래서 천재 놈들이란…….’
때로는 차이커창이 보고 있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굳이 거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천재가 되는 것보다는 천재를 부리는 입장이 더 나으니까.
“도망가지 않았다는 말이로군.”
“……예.”
수령의 시선이 분재로 향했다.
“다행이로군. 야마시로구미와 관동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 수 있겠어.”
스기야마 신야가 납작 엎드렸다.
‘희생이라…….’
그래, 그건 희생이다.
물론 자발적 희생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목숨으로 일본의 미래를 만들었으니 희생이라 할 만하다. 과연 그들이 저승에서 웃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수령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천오백이다.
야마시로구미가 동원한 이들의 수는 무려 천오백에 달했다. 그 많은 이들이 강진호의 목숨을 노리기 위해 미끼로 희생됐다.
차이커창의 과감함?
글쎄.
전략 자체는 대단했지만, 그건 그냥 머리가 뛰어난 것뿐이다. 스기야마는 이 작전에서 정말 대단한 것은 차이커창이 아니라 수령이라 생각했다.
타국의 병력 같은 건 그저 숫자일 뿐이다.
자신이 관련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머리로 계산하고 전략을 내놓는 건 그리 대단할 게 없는 일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수백 명의 목숨이 날아가든 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진짜 대단한 것은 천오백이라는 정예를 미끼로 과감하게 던져 강진호에게 비수를 날릴 틈을 번다는, 이 미친 작전을 승인한 수령이다.
신야에게 그 작전에 대한 권한이 주어진다면, 신야는 과연 허가할 수 있을까?
‘무리다.’
아무리 적이나 다름없는 야마시로구미의 무사들이라곤 하나, 그만한 이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작전 따위 신야는 감히 승인하지 못할 것이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쏟아질 비난까지 고려한다면 더더욱.
하지만 수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작전을 승인했다. 차이커창의 감과 계산 말고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작전에 생떼 같은 천오백의 목숨을 쑤셔 넣어버린 것이다.
이 과감함을 감히 누가 따를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수령은 지배자였다.
“한국을 점령하는 모습을 저승에서 지켜본다면, 그들 역시 만족할 것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수령이 나직하게 웃었다.
“내가 짐승같이 느껴지겠지.”
“겨,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
수령이 태연하게 웃었다.
“짐승. 그래, 짐승이지. 하지만 뭐 어떤가. 수라도를 걷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겠다는 건, 어린아이의 망상이나 다름없는 소리지. 비난이 두려웠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렇습니다, 수령!”
“그들은 지옥을 보았겠지.”
신야가 슬쩍 고개를 들어 수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소를 짓고 있는 수령의 얼굴에서 광기마저 느껴진다. 차마 더는 그 얼굴을 보지 못한 신야가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강진호에게도 지옥을 보여줄 수 있게 됐구나. 그들이 본 것 이상의 지옥이 지금 강진호에게 펼쳐지고 있겠지. 궁금하구나, 그가 어떤 비명을 지를지. 그 비명을 내 귀로 듣고, 그 일그러진 얼굴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쉽기는 하다만.”
수령이 쿡쿡 웃었다.
“요시노부가 입담이 좋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군.”
“그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가?”
수령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 비수는 꽤나 날카로울 게다.’
손끝으로 심장을 가르는 감각을 직접 느끼는 것도 좋지만, 손짓 하나로 심장을 가르는 감각 역시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모른다.
수령은 강진호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가길 바랐다.
그게 지금까지 그를 괴롭힌 대가일 테니까.
* * *
촤아아아아아악!
피가 비처럼 쏟아진다.
“으아아아아악!”
“죽어어어어어어!”
비명과 고함 소리가 귀를 찢을 듯 파고든다.
터덕.
요시노부는 자신의 얼굴에 날아와 붙은 것을 떨리는 손으로 떼어냈다.
육편.
누군가의 잘려진 살덩어리가 비산하여 그에게까지 날아왔다.
“…….”
그의 수염이 파르르 떨린다. 쏟아지는 피의 비는 이미 그의 머리와 수염을 붉게 적신 뒤였다.
‘이곳은 지옥인가.’
지옥이 인간에게 형벌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면, 이보다 더 지옥에 어울리는 광경은 없을 것이다.
코끝이 저린다.
너무 진한 피 냄새를 계속 맡았더니, 코가 마비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감각도 점차 무뎌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감각이란 현실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현실이 아닌 곳에 발을 붙이고 있다면, 감각 같은 것은 당연히 무뎌지기 마련이다.
눈으로 보는 것을 믿을 수가 없고, 귀로 듣는 것을 의심해야 하며, 코로 맡는 것은 이 세상의 것 같지가 않은데,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한단 말인가.
강진호는 그들을 불속에 뛰어드는 부나방이라고 했다.
‘부나방이라…….’
함정이 아니라 불.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부나방.
요시노부의 이가 부러질 듯 맞물렸다.
함정이란 빠져나갈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나방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은 스스로의 날개를 퍼덕여 불로 돌진하니까.
마찬가지가 아닌가.
강진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함정일지 모른다는 것을 이해했어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불속에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강진호에게 달려들 뿐이다.
돌아갈 수 없으니까.
등 뒤를 가로막는 이가 없다 해도 돌아설 수 없다. 이곳까지 와서 강진호를 죽이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달려들 수밖에 없다.
눈앞에 있는 저 무지막지한 무언가에게 달려드는 대가가 오로지 죽음이라고 해도.
“으…….”
“참으셔야 합니다.”
날카로운 목소리에 요시노부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의 참모가 질린 얼굴로 오들오들 떨면서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힘을 충분히 빼놓지 않으면 되레 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참으셔야 합니다. 아무리 속이 뒤집어진다고 해도.”
웃어버릴 뻔했다.
지금 이놈의 눈에는 요시노부가 강진호에 대한 분노로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겠지?
하기야.
분노로 몸을 떠나, 공포로 몸을 떠나 떠는 것은 동일하니,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겠지.
차라리 그게 다행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는가?’
요시노부는 덜덜 떨리는 턱을 억지로 닫았다. 이 모습만은 보여서는 안 된다.
파아아아아앙!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음이 고막을 후려친다. 귀에서 느껴지는 욱신한 통증을 채 실감하기도 전에 잘려진 상반신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
허리가 잘린 이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모습이 요시노부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경악과 공포에 질려 버린 눈, 급격하게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는 그 눈이 요시노부와 마주쳤다.
털썩! 털썩!
분수처럼 피를 뿜어내던 하반신들이 무너져 내린다. 훤히 뚫려 버린 시야. 시체와 피만으로 채워진 그 공간을 넘어 강진호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불타오르듯 솟구치고 있다. 형태는 불꽃과 같으면서도 그 질감은 불꽃과는 전혀 다르다. 마치 진득한 타르처럼 짙고 어두운 것이 무게도 없는 불꽃처럼 타오른다.
“…….”
검은 불꽃 속에서 피처럼 붉은 두 줄기의 안광이 흘러나온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 요시노부는 자신의 영혼이 얼어붙는다고 느꼈다.
‘악마.’
그 말 외에 무엇으로 저걸 설명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악마였다.
그리고 그들은 악마의 만찬장에 차려진 공물이나 다름없다.
스르릉.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던 악마의 검이 검은 불꽃에 천천히 뒤덮여 갔다.
그런 후에…….
쇠를 긁는 듯한 거친 음성이 넋 나간 요시노부의 귀로 파고들었다.
“왜 겁을 먹지?”
“…….”
“어차피 죽을 텐데.”
요시노부의 눈에 핏발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