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99
#1198.
베어내다 (3)
기척도 없었다.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검이 등에 거의 닿아 있는 수준이었다.
선택은 두 가지.
피한다.
그리고 맞선다.
하지만 강진호의 선택은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타앗!
강진호의 발이 땅을 박찬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츠키하들을 향해 광속으로 돌진했다.
“흡!”
헛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등 뒤에서 갑자기 검이 날아들면?
사람은 보통 굳어버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침착하게 대처한다고 해도 피하는 게 고작이다. 강진호쯤 되는 고수라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앞에서도 츠키하들이 달려들고 있지 않은가.
앞에서는 무인들이 목숨을 걸고 달려들고, 등 뒤에서는 암살자들의 칼이 스며든다. 이런 상황에서 대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합격은 그동안 수많은 고수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하지만 강진호의 선택은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한 그 어떤 이와도 달랐다.
찔러 들어가는 칼보다 빠르게 돌진해 버리면 공격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림자들이 그 황당한 대처에 눈을 크게 떴다.
그 뒤를 쫓아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생겨날 무렵, 강진호는 이미 츠키하들과 충돌 중이었다. 그림자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 츠키하들의 운명은 너무도 빤한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둑이 터져 급류가 쏟아져 나오는 듯 어마어마한 굉음이 일었다. 그 굉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강진호의 검에 어린 검은 마기였다.
검은 불꽃이 소용돌이치듯, 검은 물결이 휘몰아치듯…….
이곳에 있는 누구도 인간의 몸에서 뽑아낸 기운이 저리 밀도 높은 형상을 띌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강진호의 전방을 가로막은 이들이 휩쓸려 나간다.
검도, 기도, 육체도…….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막지 말아야 할 것을 막으려 든 대가는 츠키하들이 그 몸으로 치러야 했다.
거대한 마기의 급류에 휩쓸린 이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육체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말 그대로 가루가 되어버렸으니까. 강진호를 상대하고도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축복을 받은 건 당연히 아니었다.
“끄으으읍!”
“으윽!”
완전히 마기에 휩쓸린 이들은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었지만, 반쯤 휩쓸려 버린 이들은 팔이 날아가거나 다리가 날아가는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그리고 강진호는 그들의 숨통을 끊어주는 자비조차 베풀어주지 않았다.
참격을 날린 반동을 이용하여 강진호가 몸을 돌려 뒤로 돌진한다.
“흡!”
그림자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이해했다.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의 그들은 강진호조차 당황하게 만들 수 있지만, 달빛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들은 그저 손쉬운 먹이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언제나 공격과 은신의 밸런스를 맞춰왔지만, 순간적인 강진호의 대응에 눈을 빼앗겨 다시 은신해야 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 대가는 결국 하나밖에 없다.
서걱!
두 개의 목이 하늘로 솟구친다.
둘을 잃는 대가로 다시 어둠에 숨어든 이들은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강진호에게 들리지 않기를 기도해야 했다.
순식간에 다섯이 넘는 이가 죽었다.
그리고 또 몇몇이 부상을 입었다.
단 한 번의 교환.
그것만으로 이 정도의 피해다.
이 상황이 두어 번만 더 반복되어도 그들은 반수에 가까운 전력을 잃게 될 것이며, 포위진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럼 남는 것은 일방적인 학살밖에 없다.
심장이 멎는다.
호흡도 멎는다.
완벽한 은신.
그걸 위해서라면 심장조차 멈출 수 있는 이들이 바로 그림자들이다.
강진호가 가만히 아래를 바라보다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강진호의 시선.
붉게 물든 강진호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 그림자가 표정을 굳혔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강진호라고 할지라도 완전히 기척을 숨긴 그를 찾아낼 수는 없…….
푸욱!
섬뜩한 감각.
땅을 뚫고 들어온 검이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다는 걸 깨달은 그림자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강진호에게는 보일 리가 없겠지만, 마치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체온은 숨길 수 없는 법이지.”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면 자신이 왜 죽었는지 이해하고 죽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림자에게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았다. 심장을 꿰뚫은 검의 감촉이 듣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뜨겁다는 게 그가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었다.
푸욱.
검을 뽑아낸 강진호가 가볍게 휘둘러 검끝에 묻은 피를 뿌렸다.
저벅저벅.
그 광경을 보며 츠키카게가 차가운 눈으로 천천히 강진호에게로 다가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무리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신니치카이 최고의 전력이다.
아니, 일본 최고의 전력이라는 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 이들이 강진호의 방어를 전혀 뚫어내지 못하고 있다.
‘설사 날이 닿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의 공격조차 피해 없이 막아낸 강진호다. 그런 강진호가 그림자들의 공격에 피해를 입을 리가 없다. 이 공격의 목적은 강진호를 쓰러뜨리는 데 있지 않았다.
‘두 가지.’
여섯의 목숨을 버리며 츠키카게는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
츠키하들은 강진호의 공격을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다. 완전히 막아내거나 대치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일격을 어찌어찌 막아내는 건 가능하다. 단숨에 쓰러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둘.
접근이 가능하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들은 강진호의 먹이가 될 뿐이지만, 은신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그 타이밍만큼은 강진호의 이목을 속이고 그의 지척까지 접근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확인했다.
그렇다면?
츠키카게가 씹어뱉듯 말했다.
“화(火)형으로 전환한다.”
츠키하들의 시선이 순간 츠키카게에게 쏠렸다가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간다. 적에게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는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진리를 순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딱히 그 틈을 노리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정신력으로 채우면 되는 법이지.”
츠키카게의 눈에서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서 강진호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강진호가 가만히 그런 츠키카게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부족해.”
이들은 부족하다.
실력이, 능력이, 그리고 무위가.
이들의 단호한 의지는 엘더 나이트 이상이다. 저 눈빛과 기세에서 느껴진다. 이들은 목숨을 버려서라도 강진호를 막겠다는 확연한 의지에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있던가.
일본의 무인들은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다.
‘그게 아니면 원탁이 강했던 건지도 모르지.’
엘더 나이트들은 강진호를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아갔다. 이 세계로 돌아온 이후, 그를 그 지경까지 몰아간 이는 홍왕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만한 실력이 없다.
정신력?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어떤 정신력도 없는 실력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정신력은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로 발휘하게 만드는 요소일 뿐, 실력을 늘려주지는 못하니까.
더 숨긴 것이 없다면, 이 전투는 이미 승부가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강진호가 양손에 든 적루와 청루를 늘어뜨렸다. 바닥에 닿은 적루와 청루가 강진호의 걸음에 따라 그극대는 소음을 만들어냈다.
검으로 바닥을 긁으며 강진호가 천천히 전진했다.
“흥이 깨졌다고 해서 대충 상대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츠키카게가 이를 드러냈다.
시간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죽여라!”
그 순간, 츠키하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강진호에게 돌진했다. 양손으로 잡은 도를 얼굴 옆까지 치켜올리고는 열을 맞춰 돌진했다.
강진호는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죽음을 알고 있음에도 피하지 않고, 그 죽음을 향해 맹렬할 수 있는 의기?
멍청한 소리.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죽은 이들을 칭송하는 것은 살아남은 이들의 위안일 뿐이다. 죽음은 그저 죽음. 어떻게 죽느냐로 포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용기라면, 죽음을 피해 달아나는 것도 용기다.
이들의 의지에는 무언가가 비어 있다.
스스로 이루려는 것이 없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회피하지 않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분명 의미는 있겠지만, 강진호는 이들에게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기분 나쁜 싸움이군.’
처음이다.
이만한 전투에서 전투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끓어오르던 흥이 빠르게 식었다가 미묘하게 다시 끓기를 반복한다.
냉정해진 정신이 육체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빨리 끝내야겠어.’
강진호가 적루를 빙글 돌려 움켜잡았다.
손끝에 잡히는 애검의 감각만은 변한 게 없었다. 그리고 이 감각이 변하지 않는 이상, 강진호의 전투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츠키하들이 핏발 선 눈으로 강진호를 향해 달려든다.
강진호가 적루를 들어 달려드는 이들을 맞았다. 그의 검이 가장 먼저 달려들어 오는 이를 내려쳤다.
콰아아아아앙!
검이 사람을 쪼개는데 폭음이 터진다. 반으로 갈라진 시체는 쏘아낸 것처럼 좌우로 튕겨 나갔다.
“흐아아앗!”
눈앞에서 동료가 반으로 쪼개져 죽는 것을 보면서도 츠키하들은 물러섬 없이 강진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눈에 어린 독기와 살의.
강진호는 그 모든 감정들을 짓뭉개며 달려드는 이들에게 동일한 결말을 안겨주었다.
죽음이라는 결말을 말이다.
파아아아아아앙!
검이 공간을 가른다. 검이 출발하여 공간을 찢은 후 멈춰 서고 나서야 파공음이 울려 퍼진다. 음속을 초월한 검끝이 소리보다 빠르게 뼈와 살을 갈라낸다.
그와 동시에…….
강진호는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나는 기척을 느끼며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변하지 않는 패턴.
정형화되고 효율이 좋은 사냥법일지는 모르겠지만, 강진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걸 모른 것이 저들의 패착…….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폭음이 울려 퍼졌다.
강진호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져 나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퉁! 퉁!
바닥에 두어 번 튕겨 오른 강진호가 몸을 뒤집어 바닥으로 착지했다.
하지만 균형을 잡지 못하고 한쪽 무릎이 바닥을 찧었다.
‘뭐지?’
강진호가 손을 뻗어 어깨를 움켜잡았다.
왼쪽 어깨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대체?’
강진호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충격을 받았다는 것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대체 뭐가 그를 공격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강한 공격은 반드시 강한 내력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고수들은 상대의 움직임이 아니라 기의 움직임을 보고 상대의 공격에 대처한다.
하지만 저들에게서는 전혀 기운이랄 게 느껴지지 않았다. 강진호에게 이만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공격이라면 막대한 내력을…….
그때, 강진호의 눈이 흔들렸다.
후드드득!
뭔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게 하늘로 튕겨 올라간 피와 육편이라는 것을 알아챈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그에게 공격을 가한 이가 지금 시체라고도 할 수 없는 몰골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이…….”
자살 특공.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강진호의 눈에 싸늘한 냉기가 어렸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