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
#11.
학교 가다 (4)
교실로 돌아가자 정인규가 호들갑을 떨며 강진호에게로 다가왔다.
“야, 진호야. 소식 들었냐?”
“소식?”
“세연이. 이번에 기획사에 캐스팅됐다는데?”
“세연이?”
“응, 한세연.”
“기획사?”
“연예 기획사! 연예인 된다고.”
“그렇군.”
강진호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연예 기획사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고, 그중 연습생으로 뽑혀가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데뷔하는 이들은 극소수고, 그 속에서 살아남는 이들은 더욱 극소수였다.
‘그리고…….’
강진호의 기억 속의 그녀는 연예인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 길을 택한다고 해도 끝이 좋지는 못할 것이다.
연예인이 되든 아니든 그와는 별 상관이 없겠지만.
“안 놀라?”
“왜 놀라야 하는 거지?”
“야! 한세연이야, 한세연! 걔 연예인 되면 니가 어떻게 잘해볼 수도 없다고!”
강진호는 기억 속의 한세연이란 아이를 끌어냈다.
예쁘장한 얼굴에 좋은 성격.
확실히 괜찮은 아이였다.
그리고 한때 그녀에게 연애 감정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강진호는 졸업하는 순간까지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했고, 졸업식에 가기 전에 사고를 당했다. 그 이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른다.
과거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을까?
아니었다.
과거의 풋내 나는 감정이 남아 있기엔 강진호의 가슴은 너무 메말라 버렸다.
말라붙은 가슴 덕에 자라나던 감정의 나무들은 모조리 말라 죽은 뒤였다. 지금 강진호가 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싹이 날 수 있도록 물을 주고 있는 일이었다.
다만, 아직은…….
“내 알 바 아냐.”
“이 자식, 진짜 이상해졌네.”
“뭐가?”
“말투도 그렇고…… 너 머리 다쳤냐?”
“멀쩡하다.”
“아닌 것 같은데?”
“괜찮다.”
“……진짜 아닌 것 같단 말이야.”
“괜찮다니까.”
“어려운 것 있으면 이 형님한테 얘기해라. 내가 그래도 니 친구 아니냐! 어려운 게 있으면 같이 나눠야지.”
강진호는 슬쩍 웃었다.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정인규는 강진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진호가 정인규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은 학교에 대한 정보와 과거 자신이 다른 이들과 형성했던 관계를 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라는 말에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쁠 것도 없으니까.
“됐다.”
“어? 이게 비웃네?”
“비웃은 거 아니다.”
“뒈질라고. 됐고, 피방이나 가자.”
“안 간다니까.”
정인규가 강진호의 머리에 손을 대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얘가 머리를 다쳤나? 너 그리 좋아하던 피시방을 왜 안 간다고 그러냐? 설마 공부하려고?”
강진호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피시방이라는 곳에 미련은 없지만, 과거의 강진호가 즐겨 했던 기억은 있다. 그렇다면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야 않겠지.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평범한 삶을 위해서는 피시방도 갈 필요가 있었다. 피시방은 젊은이들의 놀이터였다. 어색하다고 해서 피할 곳이 아니었다. 경험을 계속해야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를 다시 건드려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죽기 전까지 자신의 친구가 되어준 것이 컴퓨터였으니까.
하반신이 마비된 후, 강진호는 봉사원이 찾아오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폐인처럼 컴퓨터만을 하고 살았다. 아무리 그 후로는 무척이나 오랫동안 컴퓨터를 하지 않았다지만, 몸에 새겨진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기할 건데, 돈 좀 들고 왔냐?”
강진호는 쉴 새 없이 쫑알대는 정인규를 내버려 두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너무도 평화롭다.
과거의 이들이 이러한 삶을 알 수 있다면 그들은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다만, 단점이 하나씩 있었다.
예를 들면…….
휙!
강진호의 몸이 섬전처럼 뒤로 돌아갔다.
“뭐야!”
등 뒤로 다가오던 사람이 깜짝 놀라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어? 야, 왜 그래?”
강진호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이들에게는 위협에 대한 걱정이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들을 위협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한 감각도 없었다.
강호에서라면 등 뒤에서 다가오는 것은 금기였다. 등 뒤는 아무래도 시선이 닿지 않고 감각이 둔한 만큼 암습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상식이 없었다.
만약 강진호가 단전을 형성했다면 등 뒤의 행동도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을 테니 별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지금은 기척을 느끼는 것이 다였다.
낯선 이의 기척이 갑자기 느껴지게 되면 지금도 안심하지 못하고 반드시 등 뒤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별것 아냐.’
강진호는 자신을 다독였다.
세상은 평화롭지만 강진호는 아직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조금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피시방은 요란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음…….”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자리 비었다. 저리 가자.”
강진호는 정인규의 말에 따라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야, 뭐해? 로그인해.”
“음…….”
강진호는 로그인에 애를 먹었다.
“뭐하냐?”
“아이디를 치라는군.”
“치면 되잖아.”
“기억이 안 나.”
“찾기 해.”
“휴대폰 번호를 치라는데?”
“치면 되잖아.”
“기억이 안 나.”
“이게 진짜 미쳤나?”
정인규는 헛웃음을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너 그냥 카드로 해.”
“카드?”
“됐다! 됐다고! 내가 간다!”
정인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카운터에서 카드를 들고 와 입력하고는 강진호의 PC를 열었다.
“됐냐?”
“음…….”
“접속이나 해.”
“뭘 접속하라고?”
“갤럭시 해야지!”
건너편에 앉은 민재가 볼멘소리를 낸다.
“야, 그냥 AOS 하자니까. 또 갤럭시야?”
“넷이서 뭔 AOS야! 4인 팟에 낄 한 명이 불쌍하지도 않냐? 갤럭시 해, 갤럭시.”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탕 화면의 아이콘을 클릭했다.
갤럭시 크래프트.
나중에는 힘이 좀 빠지기는 하지만, 이때만 해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이들이 즐기던 게임이었다.
세계에 진출하여 활약하는 프로 게이머들을 배출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리얼 타임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접속해.”
“음…….”
강진호가 멍하게 로그인 창을 바라보았다.
접속해야지, 접속.
근데 내 아이디가 뭐더라?
“너, 뭐하냐?”
“내 아이디가 뭐냐?”
“이게 미쳤나, 진짜.”
정인규가 친구 목록에서 강진호의 아이디를 찾아주었다.
그러자 이제는 비밀번호가 문제였다.
“너 뭐하냐고!”
“내 비밀번호가 뭐지?”
“……진짜 미쳤나?”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걸친 끝에 폭발한 정인규가 강진호의 마우스를 뺏어 들었다.
“야! 너 그냥 내 부캐로 해! 이게 사고를 당하더니 뇌가 날아갔나, 지 아이디랑 비번도 기억 못해!”
“당황스럽군.”
“너 어쨌든 오늘 잘해야 된다. 민재랑 태호가 저번에 피방비 냈다고, 이번에는 꼭 이긴다고 이를 갈더라.”
“지지 않는다.”
“당연하지!”
강진호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갤럭시 크래프트라면 그도 재밌게 즐기던 게임이다. 게다가 그는 학교에서도 적수를 찾기 힘들 만큼 나름 고수였다.
예전 기억대로라면 그는 적당히 져주면서 게임이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게 조절했다. 그만큼 다른 아이들과는 압도적인 차이가 있던 것이다.
게임이든 싸움이든 일단 시작했으면 이겨야 한다.
강진호의 지론은 그러했다.
평범한 삶이라고 해서 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야, 너 뭐해?”
“……유닛을 뽑고 있다.”
“일꾼은?”
“뽑았다.”
“다섯 마리?”
“뭐가 잘못됐나?”
“너 진짜 미쳤어?”
그때, 미니 맵에 시뻘건 점들이 가득 찍혔다. 적들이 쳐들어온 것이다.
“야, 막아!”
“아직 유닛이 나오지 않았다.”
“아, 이 병신아!”
정인규가 소리를 지르자 피시방 알바가 다가왔다.
“조용히 좀 해주세요.”
“예, 죄송합니다.”
무안을 당한 정인규가 핏발이 설 것 같은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너, 나 엿 먹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설마.”
“제대로 좀 해! 봐주지 말고. 이겨야 한다니까.”
“알았다.”
강진호는 미소를 머금었다.
문제는 일꾼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일꾼을 지속적으로 뽑아야 자원이 수급되고, 자원이 수급되어야 유닛이 많이 나온다.
“이제 괜찮다.”
“그래, 믿고 간다.”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강진호는 이번에는 일꾼을 지속적으로 뽑았다. 한 번 깨달은 것은 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강진호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인규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야!”
“왜?”
“광전사만 뽑고 있으면 어떻게 해!”
“잘못됐나?”
“공중 유닛 오잖아!”
“음?”
강진호는 병력을 많이 뽑아놓았다. 그러나 그 병력들은 하늘로 날아온 태호의 공중 병력 앞에서 그저 춤을 추고 있을 뿐이었다.
강진호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이게…….”
“아, 너 진짜 왜 그러냐! 조합을 해야지!”
“조합…….”
“그래!”
그렇게 두 번째 판도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났다.
강진호는 한숨을 쉬었다.
‘조합이다, 조합. 전쟁에서도 보병만으로 이길 수 없듯이 상성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조합이 필요해. 예전에 조합 많이 했잖아. 기억해라, 강진호.’
강진호는 눈에 힘을 주고 화면을 노려보았다.
경험이 있어서인지 점차 손이 빨라지고, 전술을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다. 빠르게 적응한 강진호는 상대가 뽑아낸 병력과 자신의 병력을 비교해 보았다.
‘생산력은 내가 더 나아. 조합만 갖추면 이긴다!’
“다음 판!”
강진호의 말에 정인규가 역정을 냈다.
“너 진짜 이번 판도 장난치면 때려죽인다?”
“걱정 마.”
강진호도 오랜만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승부.
그것은 언제나 남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세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강진호의 양손이 번개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정확한 동작과 완벽한 입력.
무공을 익히며 전에 비할 수 없이 상승한 육체의 컨트롤 능력이 게임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손 빠르기라면 과거 밥 먹고 게임만 하던 때보다 더 빠른 경지였다.
다양한 유닛을 조합한 강진호의 병력이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해!’
한 방 싸움에 절대 밀리지 않을 것 같은 위용이었다.
강진호는 그동안의 울분을 담아 어택을 찍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
“왜!”
“병력이 도는데?”
“무슨 소리를…… 야! 너 디텍터는?”
“그게 뭔데?”
“은신 유닛 있잖아! 병력 다 죽는다! 디텍터! 아, 없어?”
“그러니까…….”
“아…… 다 죽었다.”
“…….”
그렇게 세 번째 판이 끝나고, 강진호는 의자 깊숙하게 몸을 파묻고는 풀려 버린 동공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열이 올랐다.
목숨을 건 승부를 벌일 때도 느끼지 못하던 감정이다. 억울함이나 분노보다는 온전히 짜증으로만 점철된 감정이 강진호를 끓어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아, 좀 잘하라고!”
“노력했다!”
“노력? 너 씨바, 솔직하게 말해봐. 장난치는 거지? 아니면 니가 디텍도 안 뽑고 일꾼도 안 뽑는 게 말이 돼?”
“…….”
“아, 피방비 다 내게 생겼네. 어떻게 할 거야! 나 돈 없다고.”
“내가 내지.”
“그럼 니가 내야지!”
“그런데 끝인가?”
“세 판 졌으니까 우리가 진 거지.”
“끝……이라고?”
“그래.”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한판 더.”
“졌다니까.”
“알았으니까 한판 더 해!”
“……이게 왜 이러나?”
그날 저녁.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너라.”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 강진호는 굳은 얼굴로 방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그의 발걸음은 다급하고도 힘이 있었다.
“밥은?”
“먹었습니다.”
“친구랑 놀고 왔니?”
“예.”
어머니는 이상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보통 저렇게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애가 아니었다.
강진호는 옷을 번개처럼 벗어 젖히더니 컴퓨터를 켰다.
“…….”
그러고는 갤럭시 크래프트를 실행시키고 가공할 기세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진호야.”
“예?”
“졌니?”
“…….”
“적당히 하거라.”
“예.”
강진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니터를 씹어 먹을 기세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 자세가 너무도 간절해 보여 진호의 엄마는 차마 집에 오자마자 게임부터 한다고 아들을 나무라지 못했다.
“오빠, 왜 저래?”
“졌단다.”
“그래서 저렇게 게임 안에 뛰쳐 들어갈 기세로 하고 있는 거야?”
“그러게.”
“하여튼 남자들이란.”
어머니와 강은영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강진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를 악물고 열심히 마우스를 움직여 댔다.
십전 전패.
의욕만으로 게임을 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강진호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예전 실력을 찾기 위해 수련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