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01
#1200.
베어내다 (5)
“고민을 좀 하기는 했지.”
“고민요?”
“그래, 고민.”
방진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한 번에 확 싸버리는 게 나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질끔찔끔 갈겨서 티가 안 나게 만들어볼까.”
“……예?”
“오줌 말이야, 오줌. 이 새끼야.”
김원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무슨 소린가.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다고.”
방진훈이 짜증 난다는 듯 김원혁을 한 번 노려보았다.
“야, 나는 사람 아닌 것 같냐? 까딱 한 번 실수하면 목 날아가는 상황인데 안 쫄게?”
“그런데 어떻게 그리 싸우실 수 있습니까?”
“내가 뭘 어떻게 싸웠는데?”
“제 실력을 다 발휘하셨…….”
쿵!
방진훈이 김원혁의 머리를 후려쳤다. 김원혁이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아야야…….”
“이 새끼, 웃긴 새끼네? 내가 그렇게밖에 안 보여? 마, 내가 제 실력 발휘했으면, 그 새끼쯤은 십 초 만에 찢었어.”
“……예?”
“실전에서 제 실력 발휘하는 놈이 어딨냐? 다 제 실력 발휘 못하는 거지.”
김원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그럼 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셨는데 그 일본 놈을 이기셨단 말입니까?”
“그 새끼도 제 실력 발휘 못한 건 마찬가지야.”
“예?”
“하, 이 새끼……. 예, 예, 뭐가 그렇기 이상한데, 인마? 축구 선수고 농구 선수고 연습 때 실력을 실전에서 백 프로 발휘하는 애들이 있냐? 너, NBA 애들 연습할 때 3점 넣는 거 봤어? 백 개 던져서 백 개 다 넣더라. 그런 애들이 실전에만 들어가면 40%를 못 넘겨요. 실전이란 건 애초에 그런 거야.”
김원혁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니까 영화 작작 보라고, 새끼야. 실전에 강한 타입? 그런 게 어디 있냐? 그건 그냥 영화라고. 모든 사람은 실전에 들어가면 제 실력을 발휘 못해. 그게 너무 당연한 거야.”
“…….”
“니가 겁쟁이인 게 아니다. 원래 그런 거니까.”
김원혁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사님 말씀은 제가 쫄은 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거네요.”
“그래.”
“그 말은 곧…….”
김원혁은 방진훈의 말속에 숨어 있는 참뜻을 이해했다.
“……실력이 문제네요.”
“잘 아네.”
방진훈이 혀를 차며 말했다.
“사람이란 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이유를 찾기 마련이지. 야, 니가 오늘 완전히 쫄았는데, 한 열 놈 때려잡았다고 쳐봐. 그럼 네가 지금 고민하고 있겠냐?”
“아니죠.”
“그래. 결과가 마음에 안 드니 이유를 찾는데, 이유 중에 제일 만만한 게 그런 거야. 긴장했다, 운이 없었다, 컨디션이 나빴다. 엿 까는 소리 하고 있네. 이 새끼야, 마이클 조던은 독감 걸리고도 결승에서 날아다녔다. 실력이 있으면 컨디션이나 운 같은 건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는 거야.”
“……예.”
“멘탈? 멘탈 중요하지. 그런데 그 멘탈이란 것도 실력이 있어야 발휘가 될 거 아냐. 걱정하지 마. 니가 오늘 하나도 안 쫄았어도 결과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런 쓸데없는 고민 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수련이나 해. 방법은 하나뿐이다. 실력을 키워. 알았어?”
“예, 이사님!”
김원혁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문제가 해결되었다기보다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새로운 문제는 그가 생각하고 있던 문제보다 조금 더 심각했다.
하지만 김원혁은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실력이 모자라다면 키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멘탈적인 부분은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은가. 노력할 여지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이었다.
“병원 꼭 가보고.”
“예!”
김원혁이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서자, 방진훈이 미소를 지으며 그런 김원혁의 등을 바라보았다.
‘쉽게 해결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래도 좋다.
어쩌면 바쁜 와중에 시간만 잡아먹은 건지도 모른다. 이 다급한 상황에 저런 고민을 들어주는 건 과도한 여유다.
하지만 방진훈은 이 시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강진호 없이 이 전투를 치르고, 위험을 감수하며 일반 무인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다 이런 것을 위함이니까.
‘고민해라.’
무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무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짊어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두가 그런 고민을 하고 나름의 답을 찾는다면 총회는 지금보다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이 전쟁을 이겼을 때의 문제지.’
방진훈이 조금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강진호가 화를 입기라도 한다면 이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강진호를 지원하는 일은 다른 이들이 할 것이다. 일단 방진훈은 이곳을 정리해야 한다.
‘경찰 쪽과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군.’
여길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농땡이 부리지 말고 빨리빨리 퍼부어, 새끼들아! 해 뜨기 전에 못 끝내면 니들이 끝장날 테니까!”
“예!”
부지런히 물탱크를 날라 오는 이들을 보며 방진훈이 얼굴에 어린 근심을 조금 풀었다.
* * *
“후욱! 후욱! 후욱!”
이현수는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보았다.
‘빌어먹을, 아직 밤이라고!’
해가 뜨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그런데도 하늘이 노랗다. 그만큼 한계에 달해 있었다.
평소의 그라면 엄살을 부려 댔겠지만, 지금의 이현수는 불만 한마디 없이 이를 악물었다.
억지를 부려 따라붙은 것은 다름 아닌 그다. 그런데 이제 와 다른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다 못해 심장이 터지더라도 쓰러지기 전까지는 달려야 한다.
‘그렇다고는 한들…….’
가공할 속도다.
아마 이현수 혼자였다면 이 속도로 달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보조를 맞춰 달리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한계치까지 힘을 내는 게 가능했다.
그러니 이 속도에 발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어두운 산길.
평범한 이들이라면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도 버거워할 길을 고속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주변의 경관이 빠른 속도로 뒤로 지나간다.
발이 땅을 박차는 소리와 뿜어지는 거친 호흡이 이현수의 귀를 파고들었다.
“후욱! 후욱!”
선두에 선 이는 장민이었다.
장민의 등이 그들을 재촉한다. 강진호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장민은 평소처럼 안달복달하지 않았다. 그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두를 이끌기 시작했을 뿐이다.
“어느 쪽!”
애매한 길이 나오자 장민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친다. 이현수가 재빨리 휴대폰 화면을 보며 대답했다.
“좌측입니다!”
방향이 틀어진다. 순간, 휘청한 이현수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처박혔다.
아니, 처박혔어야 했다.
덥석.
그 순간, 무언가가 이현수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아…….”
“쯧.”
거대한 손.
이현수를 들어 올린 손이 그를 쭉 끌어당기더니 옆구리에 낀다. 남자의 옆구리에 매달리는 건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방향이나 똑바로 말해라.”
“예!”
이현수가 헐떡거리는 숨을 가누며 힘겹게 대답한다.
‘빌어먹을.’
속이 뒤집어진다.
스스로가 전투원이 아니라는 인식이야 있지만, 이리 짐 덩이가 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필요할 때 쓸 수 없는 도구는 아무리 유용해도 소용이 없다.
조금 더 강해져야 한다. 이들과 발을 맞춰 나가려면 말이다.
“거리는?”
“거의 다 왔습니다.”
“음.”
위긴스가 살짝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양손은 새하얗게 빛나는 중이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위긴스는 마법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이들의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발이 마치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듯이 나아간다.
이게 가능하다면 더 많은 이들을 데리고 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위긴스의 얼굴을 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
“후!”
위긴스가 손을 들어 얼굴을 닦는다.
창백해진 그의 얼굴 위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이현수는 단 한 번도 이리 힘겨워하는 위긴스를 본 적이 없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하지만…….”
“바토르 님의 옆구리가 안락한 모양이군, 입이 열리는 걸 보니.”
“…….”
“괜찮고 말고를 따질 때가 아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예.”
이현수가 입을 꾹 닫았다.
‘필사적인 거다.’
이현수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말이다.
위긴스는 군산에서 치러진 전투로 인해 마나를 대량으로 소모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마나를 사용하는 중이다. 이대로 총회까지 달려간다면, 위긴스는 전투에 참여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위긴스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전투 같은 건 다른 이들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오직 그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 남은 마나 한 방울까지 짜내서 도착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위긴스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총회로 달려가는 이들 중 강진호가 쉽게 당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진호는 그런 사람이다. 위긴스들이 강진호를 상대하더라도 대체 어떻게 죽여야 할지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절대적인 강함.
압도적인 무위.
하지만 전쟁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전쟁에서는 언제나 예상외의 변수가 발생한다. 절대 지지 않을 것 같던 병력이 순식간에 몰살당하기도 하고, 절대 이길 수 없는 전투가 천운이 닿아 대승으로 끝나기도 한다.
애초에 전쟁이라는 것이 이치와 병법만으로 완벽하게 계산될 수 있는 것이라면 벌어지지도 않는다. 시작도 하기 전에 승부가 나 있을 테니까.
다시 말하자면…….
제아무리 강진호라고 하더라도 일본 놈들에게 당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특히나 저놈들이 무얼 숨겼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그 변수를 줄이는 게 그들의 일이다.
만약 강진호가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 여파는 상상하기도 싫다.
그리고 단순히 결과의 문제도 아니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강진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강진호는 이제 그들에게 단순한 상관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허억! 허억! 허억!”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는다.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모습으로 위긴스는 무거워지는 다리를 재촉했다.
위긴스를 제외한 이사들은 그나마 어느 정도의 체력을 보존하고 있지만, 그들을 따르는 이들은 이제 지쳐 가고 있었다.
그 순간, 장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도를 높여라!”
‘여기서 더?’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장민의 더없이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히 마존을 노리는 이들을 지옥 밑바닥에 처박아 찢어 죽일 것이다! 달릴 수 없는 놈들은 기어서라도 쫓아와라!”
“예!”
위긴스가 히죽 웃고는 마력을 돋웠다.
‘가다 죽자.’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마력을 뿜어낸다. 이리되면 그는 절대 총회에 걸어 도착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무래도 좋다.
저 믿음직한 노인의 등을 보고 있으면 말이다.
“20분 내로 도착합니다! 마지막 힘을!”
이현수의 고함 소리에 모두가 다리에 힘을 실었다.
목표는 총회.
강진호가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