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02
#1201.
응징하다 (1)
“……단단하군.”
츠키카게의 눈이 살짝 가라앉았다.
공격을 가한 이는 핏물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강진호의 경우, 약간의 타박상을 입었을 뿐이다.
못해도 팔 하나 정도는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한 공격이 겨우 타박상이라…….
‘정말 보면 볼수록 괴물이 따로 없군.’
강진호는 그가 알고 있는 무학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나쁜 소식은 아니다.
‘어쨌든 상처를 입는단 말이지?’
츠키카게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상대가 상처를 입는다는 걸 확인했다는 게 고무적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그 당연한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상처를 입는다는 건 공격이 먹힌다는 뜻이고, 공격이 먹힌다는 건 지속적인 공격으로 쓰러뜨릴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여야 한다.’
츠키카게가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의 신호를 받은 그림자들과 츠키하의 눈에 필사적인 결의가 어렸다.
욱신.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신경을 긁어 댄다.
강진호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분노가 그를 자극해 대고 있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핏물을 보자 분노가 더 치밀어 올랐다.
‘자폭이라…….’
수단을 욕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어찌해도 이길 수 없는 자를 맞상대하는 입장에서 수단이나 방법을 고려할 수는 없으니까. 정정당당하게 맞붙어서는 그저 죽을 뿐이다. 정정당당하게 죽으라는 말을 할 수는 없잖은가.
강진호가 화가 난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카미카제라…….’
한국인으로 살다 보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는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말을 끔찍할 정도로 싫어했다.
목숨을 버려서 이득을 얻는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 이득은 남아 있는 이들의 이득일 뿐이다.
죽은 이의 목숨을 무슨 수로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각오는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로만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저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의 의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생리적 혐오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저런 방법으로 신니치카이가 세상을 제패한다고 해도 죽어간 이들에게 대체 무엇을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퉤!”
강진호가 찢어진 입안에서 흘러나온 피를 뱉어냈다.
그러고는 말 없이 적루와 청루를 들어 올렸다.
“배려인지도 모르겠군.”
강진호의 눈이 붉게 빛났다.
정말 제대로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미묘하게 달아오르지 않던 기분이 사라졌다. 눈앞에 보이는 걸 모두 으깨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츠키카게의 신호와 함께 츠키하들이 괴성을 지르며 강진호에게 달려들었다.
어둠이 검은 제복을 입은 그들과 어우러졌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새파랗게 빛나는 일본도뿐이다.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며 이를 드러냈다.
적루와 청루가 검은 불꽃에 휩싸인다. 보기만 해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디검은 불꽃이 적루와 청루를 완전히 감싼 채 달려오는 츠키하들에게 떨어진다.
악이 세상에 현신하는 광경이다.
달려들던 츠키하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뭔가 다르다.
분명 지금까지의 강진호의 모습과 달라진 게 없다. 모습이야 동일하다. 하지만 전해져 오는 감각은 조금전과 명백하게 달라졌다.
심장이 오그라든다.
피부가 조여오고, 숨이 턱 막힌다.
거칠게 밀려오는 살기가 그들의 뇌를 하얗게 탈색시키고 있었다.
“끅!”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의지 같은 게 아니다. 전장에 나섰을 때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수천수만 번 들어온, 세뇌와도 같은 가르침이 그들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컸다.
콰드드득!
검기를 뿜어내는 검.
검수에게 있어서 검이란 절대적인 믿음의 상징이다.
인간이 검을 들고 싸울 수 있는 이유는 그 검이 절대 부러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카롭다고 한들 면도칼을 들고 싸우는 이가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상대의 공격에 부러지지 않을 것.
자신의 내력에 부러지지 않을 것.
그렇기에 검수에게 검이란 목숨을 걸 수 있는 절대적인 불멸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그 믿음이 무너진다.
까가가강!
일본도가 마치 수수깡처럼 부러진다.
장인으로 인정받는 이가 혼신의 힘과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 최상급의 일본도가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허무하게 꺾이고 부러졌다.
부릅뜬 눈.
믿음이 깨어진 인간의 반응은 비슷하기 마련이다.
경악은 의심으로 바뀌고, 의심은 절망으로 바뀐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들은 그 참담한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경악이 의심으로 바뀌기도 전에 강진호의 적루가 그들의 심장을 갈라 버렸으니까.
스슷.
검이 육체를 가르고 지나간다.
소음조차 없다.
마기가 터질 듯이 실린 강진호의 적루를 감당하기에 인간의 육체는 너무도 나약했다.
힘이란 그런 것이다.
츠키하들은 지옥과도 같은 수련을 버텨낸 이들.
스스로가 가진 힘과 경지에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이들이다.
하지만 힘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
그들이 아무리 거대한 힘을 쌓았다고 해도 더 강한 힘 앞에서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강진호를 상대하는 것이 이들의 불행이었다.
강진호는 전장에서만큼은 언제나 포식자이고, 약자를 유린하는 악마니까.
촤아아아아악!
피 분수가 사방으로 뿌려진다. 반으로 갈린 육체가 무너지며 검은 화염으로 뒤덮였다.
“흐아아아아앗!”
하지만 반응이 조금 다르다.
저들 역시 강진호의 강함을 인지한 상황. 앞서 달려든 이들이 강진호를 막아낼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앞에서 동료의 몸이 검은 화염에 뒤덮여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독기에 가득 찬 눈으로 달려들었다.
“신니치카이 만세!”
뜬금 없이 터져 나온 고함이 강진호의 신경을 거슬렀다.
날카로운 일본도가 강진호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생명을 건 혼신의 일격이 빗나간 대가는 목숨으로 갚을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앙!
강진호의 주먹이 달려든 이의 턱을 가격했다.
턱부터 머리끝까지 커다란 구멍이 뚫린 몸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압도적인 힘.
그저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대항의 의지를 앗아갈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이다.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달려들 듯하던 강진호가 몸을 빙글 돌렸다.
그의 눈에 바닥을 뚫고 솟아오르는 그림자가 보인다.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서걱!
눈으로 확인하고 머리가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청루가 솟아오르는 이의 목을 쳐 날렸다.
그림자는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보았다.
목이 날아간 그림자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그리고 그 손안에 무언가 쥐어져 있다는 것도 말이다.
꾹.
엄지손가락이 무언가를 누르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림자의 몸이 폭발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충격이 강진호의 몸을 덮쳤다.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강진호가 피를 뿌리며 바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목을 날렸는데?’
순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운이라는 것은 의지. 목이 날아간 이는 더 이상 의지를 이어갈 수 없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고, 아무리 의지력이 강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죽은 이의 의지 같은 건 현실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그런데 이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무학의 상식을 뒤엎는 일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이건 무학이 아니다.
그 순간, 강진호의 발아래서 누군가가 불쑥 솟아 올랐다. 채 반응하기도 전에 튀어나온 손이 강진호의 발목을 움켜잡는다.
살기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강진호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솟아오른 이에게서는 조금의 살기도, 조금의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진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의 발목을 잡은 이가 강진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굴 대부분을 가린 복면 사이로 보이는 것은 두 눈뿐이었다. 그리고 그 두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확인한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다.
“어머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폭발이 강진호를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살짝 검게 물든 시야가 되돌아온다. 밝아진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커다란 달이었다.
강진호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탓!
몸을 돌려 바닥에 착지한 강진호에게 츠키하들이 사방에서 덮쳐든다.
“으!”
순간, 강진호의 발끝에서부터 마기가 불타올랐다. 지옥의 겁화처럼 타오른 마기가 악마의 혓바닥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 달려드는 츠키하들을 뒤덮었다.
“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전신이 녹아내리는 고통은 정신력만으로 감내하기에는 너무도 컸다. 마기에 뒤덮인 이들이 꿈에 들을까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쿨럭!”
강진호가 마기를 거둬들이며 입을 가렸다.
그의 손에 진득한 핏물이 묻어난다.
“후우…….”
깊게 숨을 토해낸 강진호가 몸을 일으켰다.
상처가 깊다.
폭발을 고스란히 받아낸 육체는 화상을 입었고, 가장 가까운 데서 폭발을 받아낸 허벅지는 찢겨져 피를 뿜어내고 있다.
상처가 조금만 깊었으면 대퇴동맥이 찢겨 나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이건 지금까지 강진호가 겪어본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위기였다.
아이러니가 있다.
무학을 쓰는 이들의 속도는 인간의 반사 신경을 깔끔하게 초월한다.
하지만 무학을 쓰는 이들은 그 어마어마한 속도로 뿌려지는 공격들을 피하고 방어해 낸다. 복싱 선수가 눈으로 보고 막는 게 불가능한 잽을 고작 위빙으로 피해내듯이 말이다.
같은 원리였다.
무인들 역시 상대의 공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공격은 사전 작업이 존재한다. 기운이 돌고, 그 기운이 뻗어 나갈 방향을 정한다. 그것만 미리 감지할 수 있어도 피해내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이 폭발은 그렇지 않았다.
전조도, 준비도 없다. 어느 순간 터져 나온다.
그리고 강진호도 이제는 이 충격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열기와 매캐함이 말해주고 있다.
“……폭탄인가?”
소매로 얼굴을 쓸어낸 강진호가 뇌까리자, 츠키카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다.”
츠키카게가 슬쩍 눈짓을 했다.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던 무인이 더듬거리는 말투로 통역을 시작했다.
“비겁하다고 할 셈인가?”
“비겁?”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비겁이라…….
그렇게 따지면 무학도 비겁한 거겠지.
무학이든 무기든 그 근본은 같다. 상대를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 무인이라고 해서 화기나 무기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건 무학에 휘둘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 이들이 내뱉는 말일 뿐이다.
하지만…….
“이건 비겁이 아니지.”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비열이라고 하는 거다.”
강진호의 적루가 츠키카게를 가리켰다.
“이런 방법을 쓰고 싶다면, 네가 직접 달려들었어야지. 가만히 서서 수하를 보내는 게 아니라.”
츠키카게가 어깨를 으쓱했다.
“방법의 차이라고 해두지.”
방법의 차이라…….
“흐…….”
강진호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알려주지.”
그 방법의 차이가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