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09
#1208.
정리하다 (3)
“죄송합니다, 회주님. 제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서 회주님을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이 죄는 목숨으로…….”
“야.”
“넹?”
바토르가 이명환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보고도 좋은데, 팬티만 입고 진지한 얼굴 하지 마라. 속이 울렁거리니까.”
“…….”
이명환이 우울한 얼굴로 아래쪽을 가렸다.
하필이면 이명환의 체구가 강진호와 가장 비슷하다는 게 문제였다. 그게 아니면 이게 벌이거나.
벌이라면 너무 가혹한 벌이다.
“아, 꼴 보기 싫다.”
“저런 게 부장인 건 좀 심하지 않나?”
“추하다, 추해.”
이명환이 이를 갈았다.
“이 새끼들아, 보고만 있지 말고, 누가 기숙사 좀 가서 바지 한 벌만 가지고 와!”
“내가 왜?”
“지랄한다. 지가 무슨 대장인 줄 아나.”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이명환 어린이.”
이명환의 머리에 스팀이 차올랐다.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으며 이명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한 명 가서 옷 챙겨 와라.”
“……쟤가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가 살짝 반발했지만, 이현수는 깔끔하게 반발을 억눌렀다.
“이 새끼가 입던 더러운 바지를 회주님께 계속 입혀둘 생각이라면 그냥 있고.”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제가 갑니다, 제가!”
“히이이이익! 소름 끼쳐!”
가장 뒤에 있던 이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리나케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이현수가 그 모습을 보며 이명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됐지?”
“되긴 했는데…….”
뭘까, 이 서글픔은?
“이현수.”
“예, 회주님!”
강진호의 부름에 이현수가 손을 떼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담배.”
“……아, 예.”
이현수가 주섬주섬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강진호가 두말없이 담배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
누군가가 눈치 좋게 가져온 의자에 강진호가 걸터앉았다.
‘정신이 없군.’
아직도 전신에서 격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고통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전투가 끝나고 몰려오는 이 고통과 나른함은 익숙하면서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감각이 오히려 살아 있다는 실감을 가져온다고 하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하겠지.
강진호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입을 열었다.
“왜 여기 있지?”
위긴스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군산에 상륙한 적의 병력을 몰살시켰습니다. 피해는 거의 전무합니다.”
“음.”
“방진훈 이사가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지금 방 이사가 군산에 남아 뒤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이상의 대승을 거둔 모양이다.
“다행이군.”
그때, 장민이 침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존이시여.”
“음?”
“이번에는 너무 위험한 일을 하셨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얼굴이었다.
평소 장민은 강진호의 앞에서 얼굴을 굳히지 않는다. 사소한 표정 하나, 작은 동작 하나도 불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강진호의 대한 충성심은 사람에 대한 충성심이라기보다는 종교에 대한 신앙심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자신이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건함을 표한다. 이런 부분들이 정형화되면 종교의 의식이 되는구나, 하고 실감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장민이 지금 강진호를 향해 굳은 얼굴로 낮은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까딱했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마존이시여, 마존께서는 그저 흔한 무인이 아니십니다. 일만의 마교도가 오로지 마존만을 좇고 있습니다. 저희에게서 태양을 빼앗지 말아주십시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할 말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 장민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변명이 나오지 않는다. 확실히 이번에는 강진호도 위험했다.
“반성하고 있다.”
이현수가 그 광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주님.”
강진호의 시선이 이현수에게로 향한다.
“‘위험했지만 이겨냈다’, 그렇게 말할 상황이 아닙니다. 신니치카이도, 지원을 오는 우리도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게 위험한 겁니다. 이곳에 회주님이 혼자 계시다는 사실이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게 문제라는 거죠.”
“……음?”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행동 패턴이 읽힌다는 겁니다. 회주님이 적을 마주하면 절대 달아나지 않는다는 걸 이제 모두가 안다는 거죠. 특히나 이번 작전을 지시했을 놈을 생각해 보면…….”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상대하는 적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미리 안다는 것은 굉장한 이점이 된다. 거꾸로 말하면 적에게 자신의 행동을 읽힌다는 건 어마어마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다음에는 달아나 주십시오.”
“…….”
“맞서는 것만이 용기가 아닙니다. 달아나는 것도 용기입니다. 대체 어느 왕이 선두에 서서 칼을 휘두릅니까? 그러다 눈먼 화살 맞으면 나라 망합니다. 제발 자기가 어떤 입장인지 자각을 좀 하십시오.”
강진호가 힘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 나도 동감한다. 이번에 주인이 한 짓은 미친 짓거리다.”
“제정신으로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
강진호가 잔소리 중 제일로 치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사들이 둘러싸고 잔소리를 해 대자 겨우 붙잡아둔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로드.”
위긴스가 낮게 말했다.
“말해.”
“몸은 괜찮으십니까?”
강진호가 살짝 어깨를 휘둘러 보았다. 뻑뻑하긴 하지만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다. 부러진 발목이 문제긴 하지만, 방향만 잘 잡아주면 붙는 데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당장 전투는 무리겠지만, 후유증은 없을 것 같군.”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로드…….”
또 잔소리가 시작된다 생각한 순간, 위긴스가 조금 다른 말을 꺼냈다.
“이 일은 로드께서 계획하신 일이지요?”
“…….”
모두의 시선이 위긴스에게로 집중된다.
“뭔 소리야?”
“로드께서 총회에 혼자 남았다는 건 저들이 알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로드께서 이곳에 계시다는 건 이사들 말고는 아는 이가 없었으니까요. 다들 로드께서 따로 움직인다는 것만 알았을 뿐, 총회에 있다는 건 몰랐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토르들의 얼굴이 살짝 심각해졌다.
맞는 말이다.
“이사들은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겠죠. 배신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입니다. 로드시죠.”
강진호가 살짝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의 표시다.
“맞다.”
“……로드.”
위긴스가 가만히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본다.
참상.
그야말로 참상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이 참상을 강진호 혼자 만들어냈다.
전과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전과다. 총회의 정예 전체가 출동하여 야마시로구미를 정리했는데, 강진호는 혼자서 신니치카이를 뭉개 버렸다.
야마시로구미보다 더 강한 신니치카이를 말이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전과를 보면서도 위긴스는 강진호를 경배할 수가 없었다.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로드께서도 나름의 생각이 있으셨겠죠. 하지만…… 로드, 다음에는 어떤 작전을 하든 저희와 상의해 주십시오. 이게 지켜지지 않는다면, 저는 더 이상 로드의 수하가 될 수 없습니다.”
강경한 발언이었다.
어찌 보면 무례한 발언에 가깝다. 하지만 강진호에 대한 예의를 발작적으로 챙기는 장민조차도 위긴스의 이 발언을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지.”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알았다니까.”
여전히 못 미덥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사들을 보며 강진호가 묵묵히 담배를 빨았다.
‘혼났네.’
과거의 마교에서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과거, 마교에서는 강진호가 어떤 일을 해내는가가 더 중요했다. 과거에도 마교도들은 강진호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지만, 그건 강진호가 강하기 때문이지, 강진호를 인간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다.
압도적인 전과를 이뤄내고도 욕을 먹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 청마마저도 강진호가 제 말을 듣지 않는 것에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결과가 압도적일 때는 깔끔하게 입을 닫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힘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음에도 칭찬이나 경의는 단 한 마디도 들어보지 못하고 싸그리 욕만 퍼먹고 있다.
그럼에도…….
뭐랄까.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허억! 허억! 허억!”
그때, 옷을 가지러 간 이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이명환에게 옷을 넘겼다. 이명환이 옷을 받아 들고는 강진호에게 부리나케 달려왔다.
“여기 있습니다, 회주님.”
“음.”
강진호가 옷을 받아 들어 몸에 걸쳤다. 바지도 대충 갈아입고는 이명환에게 갈아입은 바지를 내밀었다.
“자.”
“……감사합니다.”
이명환이 재빨리 바지를 입었다. 그 광경을 보며 몇몇이 혀를 찼다.
“이명환.”
“예, 회주님.”
“늦었어.”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온다고 왔는데…….”
강진호가 뚱한 눈으로 이명환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늦긴 했지만, 아주 늦지는 않았다.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위긴스, 이현수.”
“예, 회주님.”
“예, 로드.”
“상황을 다시 파악하고 주변을 정리해라.”
“예!”
“그리고…….”
강진호가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됐지?”
“진행 중입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이미 도착했을 겁니다.”
위긴스가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얻어맞기만 했지.’
전과는 압도적이다. 이미 전쟁의 승패는 반쯤 갈렸다고 볼 수 있다. 저들의 1진과 2진을 별 피해 없이 완전히 전멸시켜 버렸으니까.
특히나 신니치카이로 구성된 2진은 저들이 가장 신뢰하고 믿던 전력이다. 그만한 전력을 박살 냈으니, 승기는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웃을 수 있는 상황인가.
그렇지는 않다.
전력상으로야 이득을 취했지만, 전쟁이 시작된 후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휘둘리기만 했다. 저들의 전략을 파악하고 헐레벌떡 뛰어가 대응하는 상황만 이어졌다.
기본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전력의 차이가 있기에 막아낼 수 있던 것뿐이지, 저들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압도적으로 박살이 나는 건 이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위긴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전략에서는 패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위긴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차이커창.’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건 일본의 짓이 아니다. 차이커창이 일본을 도운 덕분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위긴스를 위로해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위긴스를 더욱 열 받게 만들고 있었다.
“신나게 얻어맞았으니…….”
강진호가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돌려줘야지.”
“물론입니다, 로드.”
저들은 이쪽이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여 총회를 당황시켰다.
그렇다면 똑같이 돌려주면 된다.
아니, 이미 돌려주고 있다.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설마 서로 같은 전략을 쓸 줄은 몰랐으니까요.”
위긴스가 살짝 음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강진호를 마주 봤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웃었다.
그 광경을 보며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악당은 우리 쪽인 것 같은데…….’
겉모습만 본다면 빼도 박도 못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