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10
#1209.
정리하다 (4)
도쿄 시로이 시[白井市] 외곽.
우우우우우웅.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닫지 않는 커다란 물류 창고. 폐쇄된 지 몇 달은 되어 허연 먼지가 뒤덮여 있는 물류 창고 안이 새하얀 빛으로 뒤덮였다.
완벽하게 닫힌 문은 새어 나가는 빛을 원천 차단했다.
그리고 곧 그 빛무리 안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흠.”
마스터.
갑옷으로 전신을 두른 그가 평소답지 않게 굳은 얼굴로 걸어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스터!”
“음.”
한 사내가 뛰어와 마스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마스터가 가볍게 고갯짓으로 그의 인사를 받고는 입을 열었다.
“준비는 끝난 모양이군.”
“게이트가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전이에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추가 좌표는?”
“추가 좌표는 반대쪽에서도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최대한 서두른다고 해도 최소 48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시간이 너무 걸리는군.”
마스터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시간이 걸린다는 건 좋은 소식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촉할 일도 아니었다.
마도학이란 정밀기계 같은 것이라 서두르다가는 수식이 어긋날 위험성이 있었다. 한 번 어긋나 버린 수식은 수정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토대가 잘못 세워진 건물은 아무리 보강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추가 좌표는 급할 것 없으니, 일단은 게이트를 안정화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예, 마스터.”
대답을 들은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철컥.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갑옷이 철걱대는 소리가 난다.
‘어색하군.’
이렇게 완전무장을 갖춰본 게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원탁이 꽤나 큰 사고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우습게도 마스터는 그 사건들에서 부외자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기이한 일이다.
원탁을 대표하는 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마스터다. 하지만 마스터는 원탁이 대격변을 겪는 동안 단 한 번도 검을 들고 싸워본 적이 없다. 그저 타인의 싸움을 제3자가 되어 구경했을 뿐이다.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그 울분 때문인지 지금 마스터의 가슴은 기이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철컥.
귀를 파고드는 금속음을 들으며 마스터가 미소를 지었다.
“다 늙어서 주책이군.”
“그런 것치고는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십니다만?”
마스터가 고개를 돌렸다.
나이트 베슬리가 천천히 게이트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 역시 풀 플레이트 메일로 전신을 두른 상태였다.
“그런가?”
“예. 보고 있자니 저도 이상하게 가슴이 들끓는 느낌이군요.”
“자네에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것참 감개가 무량하군.”
마스터가 고소를 지었다.
“마스터를 모시고 원정에 나서는 것은 저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말게나.”
“진심입니다, 마스터.”
한마디쯤 더 농담을 던지고 싶었지만, 나이트 베슬리의 얼굴이 너무도 진지해서 입을 다무는 마스터였다.
“다른 나이트들에게도 이런 영광을 누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직은 너무 이른 이야기지.”
마스터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금은 함부로 나이트들을 움직일 때가 아닐세. 너무 민감한 상황 아닌가. 일부만 데리고 움직인다면 내가 마음을 두고 있는 나이트들이 따로 있다는 말이 나올 테고, 그렇다고 다 데리고 오자니 그 수가 너무 많네. 일이 복잡해지지.”
“그건 그렇습니다.”
“귀찮은 일이야. 한 번 움직이는 데도 생각할 것이 이리 많아지다니.”
예전이라면 고민할 일도 아니었다.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나이트들을 뽑아 협조를 요청하면 그만이었다. 모두가 원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합의가 있을 때는 그게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나이트들은 마스터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다. 마스터의 별것 아닌 행동 하나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낳는다.
“마치 루이 14세가 된 기분이로군.”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요.”
“슈발리에들이 여기에 없는 게 다행이군. 그거, 꽤나 민감한 발언인데 말이지.”
“설마 딴지야 걸겠습니까? 나이트 르보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겠죠.”
“못 말리겠군.”
마스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이트 베슬리는 예전보다 말이 많아졌다. 정확하게는 말이 많아졌다기보다 농담이 늘었다. 마스터가 과거와 달리 말을 조금 조심하는 편이 되었다면, 나이트 베슬리는 그런 마스터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듯 농담을 늘리는 중이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아주 무거워지지는 않는다. 내심으로는 마스터도 꽤 감사하고 있었다.
“어쨌든 전력은 최대한 받아 왔으니, 그걸로 괜찮겠지.”
“기사단 둘로는 부족해 보입니다만.”
“괜찮네. 평시라면 모를까, 지금 이곳은 무주공산이니까.”
마스터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확실히 평시라면 두 개의 기사단으로 일본을 친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의 전력은 만만히 볼 수 없으니까.
하지만 조금 전에 말한 대로 일본은 지금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였다. 핵심적인 전력은 한국을 침공하기 위해 모조리 일본을 빠져나갔다.
남아 있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와 어중이떠중이들뿐.
“이런 상황이라면…….”
마스터가 게이트에서 걸어 나오는 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나?”
가터 기사단과 튜튼 기사단.
철걱대는 금속음과 함께 육중한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한 기사들이 절도 있게 걸어 나온다.
나이트 베슬리조차 그 광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강인해 보이는군요.”
“자, 서두르지. 늦었다가는 회주님을 뵐 면목이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마스터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정보원들의 안내를 받아 천천히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이트 베슬리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면목이라…….’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동맹의 이름으로 일본에 대한 상륙을 요구한 건 위긴스다. 하지만 그 위긴스의 지시가 누구의 의중인지는 굳이 따져 묻지 않아도 빤한 일이었다.
강진호.
한국의 마왕인 그의 허가를 받지 않고서 위긴스가 요구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그들의 원정은 총회의 회주인 강진호의 첫 번째 요구이자 지시였다. 이 명령을 얼마나 완벽하게 수행해 내는가에 따라서 앞으로 원탁이 가지는 입지도 달라질 것이다.
‘입지라…….’
나이트 베슬리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원탁이 가지는 입지가 한 사람을 만족시키는가, 만족시키지 못하는가로 결정 나는 세상이 올 줄이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나이트 베슬리?”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나이트 베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한다.”
생각은 나중.
지금은 싸워야 할 시간이었다.
* * *
우둑.
나뭇가지의 끝을 잡고 있던 손끝에 힘이 들어가며 애꿎은 나뭇가지가 그대로 부러져 나갔다.
“뭐라 했느냐?”
그 목소리에는 의구심과 경악이 묻어났다.
신야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말해보라.”
“……수령.”
“어서!”
신야가 눈을 질끈 감았다.
“군산으로 상륙을 시도한 2진은 총회의 합공을 받아 완벽하게 전멸했습니다.”
수령은 아무런 말 없이 신야를 노려보았다.
그가 듣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다. 그는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신야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힘겹게 뒷말을 이었다.
“총회에 홀로 남아 있는 강진호를 공격해 들어간 1진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온 연락에는 강진호를 상대하느라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는 전언이었습니다. 그 이후 20분이 넘도록 연락이 오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뚜두둑.
귓가를 파고드는 이질적인 소음에 신야가 고개를 들었다. 분재의 줄기가 통째로 뜯겨 나가고 있었다.
수년 동안 공을 들인 귀한 분재가 뜯겨 나간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지금은 저런 분재 따위를 아까워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연락이 없다고?”
“그렇습니다, 수령.”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는 알고 하는 소리더냐?”
신야가 입을 닫았다.
왜 모르겠는가.
연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수없이 강조했다. 이곳에서 타국에서 벌어지는 전투 상황을 일일이 전달받을 수는 없다. 그러니 최소한이라도 확인 절차를 만들어둔 것이다.
최소한.
말 그대로 최소한이다.
하지만 지금 저들은 그 최소한마저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강진호를 죽이고 그 기쁨에 취해 연락을 잊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전과라는 건 그걸 알아줄 이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최고의 전과를 올렸다면 바로 보고를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나 이치적으로나 합당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연락이 없다는 것은 단 하나만을 의미한다.
대패.
그게 아니면 전멸.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대패했다면 뿔뿔이 흩어졌다는 뜻이고, 타국의 땅에서 도주해 봐야 갈 곳이 있을 리 없으니까.
“수령…….”
수령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의 얼굴에 저만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은 맹세코 처음 보는 일이었다. 지금 수령은 그만큼 분노하고 있었다.
“내가 들은 정보가 잘못된 것이냐?”
“…….”
“분명 총회에는 강진호 혼자 있다고 들었다.”
“예, 수령.”
“그런데 대패했다고?”
수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손에 잡힌 분재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강진호가 혼자 그들을 모두 잡아 죽이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
신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역시 알지 못하니까.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상황까지 와버린 것인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마치 거대한 암흑에 빠진 것 같군.’
한국이라는 땅.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갈 수 있는 땅이 이리 어둡게 느껴질 줄이야. 어쩌면 그들은 너무 서둘렀던 것일지도 모른다.
“확인해라.”
“예, 수령!”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황을 확인해라! 상륙하는 3진을 총회로 진군시켜서라도 지금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당장!”
“예!”
수령의 얼굴이 파들파들 떨렸다.
최악이다.
만약 그들이 예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이미 이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사 본진이 한국을 정복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신니치카이에는 그 영광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예! 수령!”
그 순간이었다.
수령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정원 끝으로 이어졌다.
“이…….”
날카로운 병장기 소리와 고함 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신야도 이변을 알아채고 눈을 부릅떴다.
누군가가 정원 안으로 달려와 부복했다.
“보고드립니다! 침입자가 있습니다. 지금 전력을 다해 막고는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침입자?”
침입자라니.
누가 이곳으로 쳐들어온단 말인가.
수령과 신야가 급변하는 상황에 아직 생각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정원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박살 나며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러고는 한 사내가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