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13
#1212.
종결짓다 (2)
딱히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동정하긴 하지만 적을 위로해 주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 상황이 조금만 뒤틀렸어도 절망하는 건 수령이 아니라 위긴스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입을 열 수밖에 없던 건, 수령의 모습이 너무도 비참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대가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잘못된 거요.”
“……여기에?”
“여기는 전장이 아니지.”
위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로드는 전장에 서는 이들을 상대하는 사람이지. 전장에 서지 않는 이는 무인이라고 할 수 없소.”
“전장에 서야 무인이다?”
“그렇소.”
위긴스가 조금은 차가운 눈으로 수령을 바라보았다.
동정 어린 시선이 사라져 간다. 강진호가 왜 수령을 인정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하다 보니,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이 전쟁은 당신에게도 가장 중요한 전쟁이었겠지. 이긴다 해도 수많은 희생자가 생길 것이고, 패한다면 모든 것을 잃겠지. 그런데 왜 이곳에 있소? 당신만 한 무인이라면 반드시 도움이 될 터, 전장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베어 넘겨야지.”
“멍청한 소리!”
수령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나는 왕이다! 내가 죽으면 전쟁도 끝난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에 서는 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왕은 가장 안전한 곳에서 전세를 보아야 한다! 그게 병법이고! 그게 이치다!”
“그럴지도 모르지.”
위긴스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대답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당신은 틀리지 않았소.”
“…….”
“당신의 말은 이치에 맞고, 병법에 맞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신은 최선의 선택을 한 거겠지.”
“그렇다면 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냐!”
“……모르겠소?”
위긴스가 조금은 안타깝다는 눈으로 수령을 바라보았다.
“로드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부정한 게 아니오. 당신이 무인임을 부정한 거지. 가장 안전한 곳에서 지휘를 하는 건 왕의 역할이지, 무인의 역할이 아니오.”
수령의 눈이 뒤흔들렸다.
“딜레마지.”
위긴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이건 가혹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위가 오르고 모두를 지휘하는 상황이 되어서도 검을 들고 피를 마시던 무인의 야성을 유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수령은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치고, 가장 상식적인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선택은 무인의 선택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보고 있지 않은가.
원한다면 어떠한 권세도 누릴 수 있고,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자가 누구보다 앞서서 적과 싸우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총회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가 누구보다 앞에서 적과 맞선다.
심지어 강진호는 그게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왕이기에 누구보다 큰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강진호는 그저 자신이 강하기에 선두에 서는 것이다.
무인은 싸워야 하고, 싸운다면 강한 자가 이끈다.
그 단순무비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의 사고방식이 강진호를 움직이는 주체다.
그런 강진호의 시선으로 볼 때, 수령은 무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집어삼킨 권력과 힘으로 주변을 두르고, 안전한 곳에서 이득만을 받아먹는 권력자에 불과하다.
그러니 흥이 나지 않았겠지.
“당신은 무인이 아니기에 이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겠지.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오. 다만…….”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상대가 나빴소. 설사 이보다 더한 참패를 했더라도 그대가 무인으로서 로드를 상대했다면, 로드는 웃으며 당신의 목을 베었겠지. 하지만…… 당신의 방식으로는 절대 로드를 자극할 수 없소. 아무것도 아닌 것. 그래,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 그뿐이오.”
수령의 고개가 천천히 내려갔다.
힘이 풀린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령.
색이 바래 버린 것 같다.
위긴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런 모습을 종종 보았다. 삶을 지탱해 온 모든 것을 잃고, 삶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린 모습.
이대로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그들이 이대로 두고 돌아간다고 해도 수령은 며칠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은 죽어버릴 것이다.
“마스터.”
“알고 있네.”
그런 이에게 내려줄 수 있는 자비는 하나뿐이다.
마스터가 검을 들고 수령에게 걸어갔다.
사형집행관이 걸어오고 있음에도 수령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삶에 대한 집착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비어버린, 꺼멓게 죽은 눈으로 그저 멍하니 무언가를 중얼거릴 뿐이다.
얼핏 무인이라든가, 삶 같은 말이 들리는 것 같지만, 위긴스는 굳이 그 말을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무의미하다.
이제는 무의미하다.
“수려어어어어어엉!”
정신을 차린 신야가 발악을 하며 수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원 바깥에 충원된 이들도 발작적으로 기사단을 덮쳤다. 하지만 그들의 손길은 수령에게 닿지 못했다.
기사단의 철통과도 같은 방어 속에서 마스터가 묵묵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 살짝 가늘어 보이는 수령의 뒷목이 똑똑히 들어왔다.
“잘 가시오.”
할 말은 많고, 물어볼 말도 많았다.
하지만 고민 끝에 마스터가 선택한 말은 이것이었다.
서걱.
섬뜩한 소음과 함께 수령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툭.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한 마스터의 머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위긴스가 담담한 시선으로 그 머리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어가 머리를 집어 들었다.
‘다른 분야였다면 당신은 승리자로 죽었겠지.’
무인계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면 말이다.
수령은 확실히 유능한 자였다.
세력을 움직일 줄 알고, 적절한 귀계를 활용할 줄 알았다. 상식과 비상식을 뒤섞어 이득을 찾아낼 줄 알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승리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만들어진 인간이나 다름없다.
그의 실수는 오직 하나.
무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인이 사는 세상은 평범한 세상과는 다르다. 이곳에서는 때로는 머리보다 가슴이 우선하고, 때로는 똑똑한 것보다 멍청한 것이 나을 때가 있다.
그 뛰어난 머리로 피해를 최소화하며 다른 이들을 짓밟고 올라선 이는 수령이 되었고, 멍청하기 짝이 없게 피할 수 있는 전투도 마다하지 않고 언제나 사선에서 살아온 이는 강진호가 되었다.
둘은 거기서 갈린 것이다.
“정리해야겠죠.”
“그렇다네.”
마스터와 위긴스의 시선에 미묘한 비애가 오갔다.
일본의 왕처럼 군림하던 절대의 무인은 이토록 비참하게 죽었다.
* * *
우우우웅.
갑자기 나타난 빛무리에 이현수가 고개를 홱 돌렸다.
수령을 처단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간 이들이 돌아오는 소리였다.
하지만 넘어간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우우우웅.
빛무리가 잦아들며 강진호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현수가 서둘러 강진호에게 달려갔다.
“회주님, 다녀오셨습니까?”
“음.”
“위긴스 이사님은 같이 안 오셨습니까?”
“뒷정리를 하고 올거다.”
“수령은……?”
“글쎄.”
“……예?”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불을 붙였다. 깊게 빨아들인 강진호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그의 얼굴에는 살짝 허무함이 어려 있었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자였다. 알아서 하라고 두고 돌아왔다.”
“아…….”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진호가 그냥 돌아왔다는 것은 그곳에 남아 있는 이들만으로도 충분히 수령의 목을 벨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강진호는 홀로 돌아오지 않았을 테니까.
“일이 잘 풀린 모양이군요.”
“음.”
강진호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잘 풀렸다면 잘 풀렸겠지만…….
딱히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겨우 그따위 놈 때문에 이 많은 이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나도 많이 변했군.’
예전이었다면 죽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진호의 세상은 셋으로 나뉘어 있었으니까.
나, 그리고 친구, 마지막으로 적.
적에게는 그 어떤 이유도 사정도 없다. 그저 적일 뿐이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이들의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다. 그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이곳에서 죽어간 이들에게 조금의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좀 더 의미 있는 것에 목숨을 걸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위긴스는 곧 돌아올 거다.”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음?”
“원탁을 일본으로 보낼 생각은 언제부터 하신 겁니까? 예상은 했지만, 너무 전격적이라서 말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요청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원탁에 요청을 한 것치고는 원탁이 동원한 병력이 너무 작았다는 것.
저들이 일본을 거의 비우다시피 하고 한국으로 쳐들어온 덕분에 그 병력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예상이 조금만 어긋났다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강진호는 요행에 기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진짜 일본으로 원탁을 상륙시킬 생각이었다면, 원탁의 모든 병력을 동원했을 것이다. 어떤 부작용이 있다 해도.
다시 말하자면…….
이현수의 예상으로 강진호는 저들을 병력으로 활용한 게 아니었다.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게 확실하다.
“전에 한 번 이야기하지 않았나?”
“……예?”
“내가 직접 갈 거라고.”
“…….”
“게이트인가 뭔가는 꽤나 편리하더군. 적절한 시기에 넘어가려고 했는데, 딱 맞춰서 저들이 먼저 쳐들어온 것뿐이야.”
“…….”
이현수는 말문이 막혀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걸 아직?’
예전 신니치카이가 유람선에 병력을 태워 한국으로 원정을 시도했을 때, 강진호는 그 모두를 바다에 수장시키고도 모자라 일본으로 직접 가 수령의 목을 베려 했다.
하지만 모두의 만류로 그만두었던 일인데…….
“아니, 사람이 얼마나 쪼…….”
“음?”
“아, 아닙니다. 협객은 원한을 잊지 않는 법이죠.”
강진호가 미묘한 시선으로 이현수를 바라본다.
자신도 모르게 쪼잔하다는 말을 할 뻔했던 이현수가 식은땀을 흘린다.
‘절대 원한 사지 말아야지.’
그 원한을 잊지 않고 어떻게든 일본으로 넘어갈 계획을 짜고 있었다는 것도 두렵지만, 이 몸 상태로 기어코 일본에까지 다녀온 것도 놀랍다.
강진호의 시선을 느낀 이현수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미묘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던 강진호가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인다.
“가야겠지.”
“병원 말입니까?”
“아니.”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전쟁을 끝내러 가야지. 준비해라. 바로 이동할 테니까.”
“예!”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총회의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아직 다 치워지지 못한 시체 사이로, 그들이 흘린 피를 밟으며 걸어가는 강진호의 뒷모습. 그 뒤로 새하얀 담배 연기가 뿜어진다.
‘적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한때는 강진호의 적이었지만, 이제는 강진호의 수하라는 게 더없이 안도가 되는 이현수였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아직 강진호의 적으로 남아 있는 이들이 있었다.
이젠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강진호의 적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