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16
#1215.
종결짓다 (5)
“연락은?”
“…….”
후루타 아키노리의 눈이 일그러졌다.
“1진도, 2진도 연락이 끊겼단 말인가?”
“송구스럽습니다만…….”
“음?”
“본토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
아키노리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본토와도?”
“예.”
“통신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오가와 고헤이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숙였다.
“혹시 그럴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어서 다른 곳과 연결을 시도해보았습니다만, 다른 곳과는 문제없이 통신이 이어졌습니다. 통신의 오류가 난다 해도 그쪽과만 오류가 날 확률이…….”
아키노리도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 세 곳만 통신 장애가 일어날 확률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연속 세 번 얻어맞는 확률보다 적을 것이다.
정황은 명확하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1진과 2진이 당했다는 건 납득할 수 있다.’
적의 전력이 생각 이상이어서 투입된 병력들이 모조리 몰살당할 수도 있으니까. 희박한 확률이지만,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토와 연락이 끊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총회가 반도에서 1진과 2진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신니치카이를 습격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아키노리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아무리 미리 대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일본으로 역공을 들어가는 건 한국의 힘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저 강대한 삼왕계와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단 하루 만에 본토로 반격해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단 말인가.
“국장님.”
“으음.”
아키노리가 침음을 삼켰다.
‘안 좋아.’
전쟁이라는 건 가진 전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건 전력보다는 정보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아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아키노리는 적을 알 수 없고,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적을 모르고 나를 모르면 패배밖에 남는 게 없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상륙을 시도해야 합니다만…….”
고헤이가 살짝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키노리는 고헤이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지금 너무나 복잡했으니까.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계획대로라면 지금 당장 상륙을 해야 한다. 상륙이 늦어진다면 먼저 투입된 1진과 2진이 고립되거나 자칫 전멸할 수도 있다. 만약 아키노리가 오판하여 먼저 상륙한 이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전쟁이 끝난 후 문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먼저 들어간 이들이 이미 전멸했다면?
그리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한국이 본토로 쳐들어가 신니치카이를 공격했다면?
‘저긴 사지가 된다.’
멀리 보이는 한국 땅이 더없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아키노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3진.
그가 맡고 있는 3진은 실질적으로 본진이라 불릴 만한 진영이다. 하지만 본진이라 해서 이전에 투입된 이들에 비해 확연히 뛰어난 전력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수가 많을 뿐.
정예들이 다 빠져나가고 남은 잔여 병력을 다 끌어모아 놓은 것이 3진이다. 그 힘은 신니치카이가 주축이 된 1진은 물론이거니와, 야마시로구미의 2진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수가 많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 된다.
이건 점령전이니까.
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한 명의 강자가 열 명의 약자보다 더 큰 효율을 내기 마련이지만, 특정 지역을 점령하는 데 있어서는 열 명의 약자가 한 명의 고수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현대의 군대가 기계화되면서도 끝끝내 보병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점령이 가능한 건 보병뿐이기 때문 아닌가.
다만…….
‘그건 1진과 2진이 제 역할을 해주고 있을 때의 이야기지.’
아키노리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국장님, 결정하셔야 합니다.”
“으음.”
아키노리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나를 생각하지 말자.’
어떤 쪽이 보신에 나은가를 따질 때가 아니다. 지금은 전체를 보고 움직여야 한다.
아키노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둠이 내린 바다. 저 멀리 반도의 땅이 보인다.
“상륙한다.”
“예!”
아키노리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상륙한다면 돌이킬 수 없다. 저 땅을 점령하든가, 이곳에 있는 이들이 모두 죽어 나가든가, 둘 중 하나다.
과거와는 다르다.
타고 온 선박을 정박시켜 놓을 수 있던 몇 백 년 전의 전쟁에서는 배를 타고 본토로 후퇴한다는 선택지가 있었다. 그 바다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별개로, 일단 도주라는 시도는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항구를 대놓고 점령할 수 없으니, 배를 정박시켜 두는 것도 불가능하다. 적절히 공해상에 띄워놓은 배를 불러 타는 방법도 있겠지만, 적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걸 두고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극단의 선택.
전멸이냐, 승리냐.
아키노리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반도의 땅을 노려보았다. 오로지 그의 선택으로…….
“음?”
그때, 아키노리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뭐지?’
뭔가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고헤이!”
“예, 국장님!”
“전방에서 선박이 접근하고 있다. 확인해라!”
“예? 아, 알겠습니다!”
고헤이가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뱃머리 쪽으로 달려 나갔다.
‘경비정인가?’
아키노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설사 경비정이 그들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접근하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경비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
접근하는 선박이 겨우 몇 사람 탈 수 없어 보이는 작은 선박이라는 것, 그리고 이쪽으로 망설임 없이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소형 선박으로 보입니다. 누가 타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경비정인가?”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경비정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음.”
경비정이 아니라고?
아키노리가 안력을 돋웠다.
확실히 경비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피커나 사이렌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이쪽으로 접근한단 말인가.
“격침할까요?”
“바보 같은 소리.”
아키노리가 짜증을 냈다.
이제 상륙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한 일은 벌이고 싶지 않다.
“대기해.”
“하나…….”
“변수는 최대한 줄이는 쪽이 낫다. 대기해! 대신 선실에 있는 놈들 갑판으로 집결시켜!”
“전원은 못 올라옵니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 그런 것 하나하나 내가 일일이 지시를 해야 한다는 말이냐! 임기응변은 어디다 팔아먹었어!”
“죄, 죄송합니다.”
고헤이가 화들짝 놀라 달려 나가자 아키노리가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같이 작전을 할 수 있는 놈을 붙여줘야 할 것 아닌가.’
핵심이 되는 이들은 다 데려가고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아놓으니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만약 아키노리까지 1진에 합류했다면 이 병신들은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을 떠도는 잡념들을 날려 버린 아키노리가 다가오는 배를 바라보았다. 그새 거의 접근한 배가 그의 눈에 똑똑히 들어온다.
‘음?’
갑판이 비어 있다.
소형 선박이라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웬만큼은 타고 있을 줄 알았는데, 갑판이 말 그대로 휑하다. 보이는 것은 겨우 몇 사람.
‘대체 뭐지, 저것들은?’
배가 더 접근하자 상황이 더 자세하게 보인다.
갑판에 몇 사람이 앉아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뱃머리 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였다.
‘내가 지금 뭘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원근감이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사내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소형 선박이 소형이 아니라 미니어처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만큼이나 사내의 몸은 거대했다.
“거대…… 잠깐. 거대?”
아키노리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한국에서 저만한 덩치를 가진 사람이야 한 명밖에 더 있겠는가.
‘바토르?’
알아챘다.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저 선박에 앉아 있는 이가 바토르라는 사실은 알아챘지만, 대체 왜 바토르가 배에 타 이곳으로 오고 있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곳의 위치를 어떻게 알았는가.
그리고 대체 어떻게 저들이 이곳에 있는가.
‘바토르가 이곳에 있다는 건?’
아키노리의 시선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가 배 위에 있는 이들을 뚫어져라 살폈다.
있을 것이다.
반드시!
“아…….”
그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바토르의 뒤쪽, 한 사내가 갑판에 앉아 있다.
살짝 무심한 듯 풀어진 자세.
머리카락과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바람에 휘날린다.
“강…….”
알 수 있다.
저 사내다.
선박이 완전히 접근해 오자 확연히 느껴진다. 저 배 위에 타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강한지. 그저 보는 것만으로 강함이 선명하게 피부로 전해진다.
하지만 저 사내는 그중에서도 확연히 이질적이다.
주변의 공기가 다르다.
“강진호…….”
신음 같은 목소리가 아키노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아키노리를 바라보았다. 아직 거리가 있음에도 둘의 시선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오싹.
돋아나는 소름에 아키노리가 몸을 떨었다.
이 먼 거리를 격하고 바라보았음에도 시선을 느낀 순간 전신이 얼음 구덩이에라도 떨어진 듯 차게 식어버렸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저건 강진호다.
하지만 강진호가 왜 이곳으로 온단 말인가.
“준비를 마쳤습니다, 국장님!”
고헤이의 목소리에 아키노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격침시킬까?
했던 말은 번복하는 것은 꽤나 꼴사나운 일이지만,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아키노리는 금세 그 생각을 지웠다.
저들은 배가 부서진 정도로 어찌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배가 부서지면 물 위를 달려서라도 이곳에 도달할 것이다.
“전투 태세를 갖춰라.”
“예?”
“빌어먹을,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전투 태세 갖추라고, 이 병신 새끼야!”
“예! 예!”
고헤이가 혼비백산하여 뛰어갔다.
“빌어먹을.”
욕설을 뱉어낸 아키노리가 손에 들린 창을 움켜잡았다.
‘저 미친 새끼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그리고 1진과 2진은 대체 뭘 하기에 저놈들이 이곳으로 올 여유를 준단 말인가.
정말 전멸한 건가?
단 하루 만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다.
어느새 다가온 배가 천천히 그들의 거대한 선박 옆으로 밀고 들어온다. 그러고는 갑판 위에 있던 이들이 배 위로 뛰어오른다.
탓, 타탓.
뱃머리에 오른 이들이 가만히 아키노리를 바라보았다.
아키노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다.
마주 보고 있으니 그 위압감에 몸이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저벅저벅.
가장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이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비한다면, 이딴 위압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천천히 걸어 나온 사내.
강진호가 아키노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가 대표인가?”
바짝 마른 입은 이제 삼킬 침도 남겨두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아키노리의 몸을 날카롭게 후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