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22
#1221.
정리하다 (1)
누누이 말했듯이 전쟁이라는 건 벌이는 것보다 수습하는 것이 더 힘든 법이다.
싸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전투를 치른다는 것 자체는 그저 가진 무기를 들고 달려들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간 전장을 정리해서 다시 일상으로 되돌리는 데는 수많은 인력과 돈, 그리고 심력이 소비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총회는 그런 문제들에서는 잠시 벗어나 있었다.
저 바다 멀리 사라지는 커다란 배를 바라보며 항구에 일곱 사람이 모여 있다.
강진호, 바토르, 위긴스, 장민, 방진훈, 이현수.
그리고 남은 한 사람은…….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걸까?’
아키노리가 무척 풀이 죽은 얼굴로 모두의 눈치를 살폈다.
따지고 보면 그는 패장이고,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이들은 점령군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떳떳하게 어깨를 펴려고 해도 도무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 새끼는 왜 남은 겁니까?”
포화를 연 것은 방진훈이었다.
담배 한 모금을 맛있게 빨아 제낀 방진훈이 연기를 훅훅 불어내며 아키노리를 노려보았다.
“같이 보내기는 애매하니까.”
“거, 기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배에 같이 태워 보내면 되지, 뭐 하러 남겨둡니까?”
“그럼 죽을지도 모르잖나.”
“그야 지 사정이고.”
자신에 대한 악감정을 풀풀 뿜어 대는 방진훈을 보면서 아키노리가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놈이 죽는 거야 알 바 아니지만, 그럼 일본을 관리할 이를 따로 뽑아야 하지 않나. 그것도 귀찮은 일이지.”
아키노리가 슬쩍 고개를 들어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나름 인자하게 생긴 것 같은데…….’
착각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 중 제일 미친놈은 이 별것 아닌 대화를 시시콜콜 통역해 주고 있는 이현수였다. 굳이 듣지 않아도 될 욕까지 번역하는 저의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일단 배배 꼬인 성격이라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겠다.
“뭘 봐, 이 새끼야!”
방진훈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현수도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인다.
확실히 쌍으로 제정신은 아니다.
“그런데 이 새끼, 믿어도 되는 겁니까?”
방진훈이 넌지시 묻자,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도 된다.”
“일본 놈들은 도통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새끼들, 겉과 속이 다른 걸로 유명하잖습니까. 겉은 깔끔하고 멀쩡한 척하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 하고!”
아키노리가 울컥했다.
저 말을 한 번씩 들을 때마다 속이 뒤집어진다.
아니, 그게 나쁜 건가?
겉으로도 깽판 치고 속으로도 깽판 치는 것보다는, 겉으로나마 착하게 구는 게 낫지 않은가.
울컥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아키노리는 솟구치는 욕설을 꾹꾹 눌렀다.
앞으로는 이들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게 좋을 게 없어서이고, 무엇보다 강진호가 그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방진훈이 입을 열었다.
“우린 왜 모인 겁니까? 애들은 다 돌려보내 놓고.”
방진훈의 말에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곳저곳을 향하던 시선이 마지막에 닿은 곳은 강진호지만, 강진호도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모이라기에 모였는데?”
“누가 모은 거야?”
“전 아닙니다.”
“저도 아닌데요?”
그때, 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제가 모았습니다.”
이현수.
그가 부드러운 얼굴로 환희 웃었다.
하지만 그 이사들은 그 웃는 낯에 침을 뱉어버리고 싶은 심정인 모양이었다.
“손 내려라.”
“부러뜨려 버리기 전에.”
이현수의 손이 슬그머니 내려갔다.
“그러니까…….”
바토르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이 아니라 니가 제멋대로 이사들을 오라 가라 했다?”
“이, 일단 진정하시고 말을 들어보십시오!”
“듣고 때리나 때리고 듣나 별 차이 없을 것 같은데.”
“확연하게 다르지 않습니까!”
바토르가 주먹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
“호오, 그럼 맞지 않을 만큼의 이유는 갖췄겠지?”
“물론입니다! 이대로 또 총회로 돌아가 버리면 보나마나 다들 제 할 일 하러 가버릴 것 아닙니까?”
“……응?”
“바토르 님은 수련하러 가실 거고!”
바토르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이번 전투에서 느낀 미진함을 빨리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돌아가기만 하면 바로 수련장에 틀어박힐 생각이었는데…….
“위긴스 님은 연구하러 가실 거고!”
“으음.”
“장민 장로님이야 말 안 해도 빤하죠. 그리고 방 이사님은 병원 가실 것 아닙니까! 병원!”
“……야, 나는 경우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방 이사님이 이해해 주십쇼. 뭐 어쩌겠습니까?”
방진훈은 치솟아 오르는 묵은 악감정을 꾹꾹 내리눌렀다.
‘내가 저 새끼 한 번 털었어야 하는데.’
한때는 세상에서 찢어 죽이고 싶은 인간 순위 3위권은 확고하게 지키던 인간이었는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냅 뒀더니 이제는 뒤가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여하튼 이번에는 안 됩니다. 제가 일하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뒤처리 안 하고 그냥 가시면 기껏 먹은 일본 다 날립니다.”
“으음.”
바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일본이라는 땅은 먹음직스러운 땅이지만, 그만큼 관리가 쉽지 않다.
다른 무엇보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게 크다. 한국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 랭킹에 일본이 빠질 일이 없듯이, 일본이 싫어하는 국가 랭킹에서도 한국이 빠질 일이 없다.
그런 한국이 자신들의 영역을 지배한다는 걸 좋게 받아들일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일단 확고하게 눌러두기는 했지만.’
강진호의 기세에 혼이 달아났으니 한동안 반항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게 지배당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방진훈이 턱짓으로 아키노리를 가리켰다.
“그래서 이놈을 포섭한 거잖아. 회주님이 믿어도 된다고 하시는데?”
“믿어도 되겠죠. 회주님이 그리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저놈이 이제 좀 무능력합니다.”
모두가 아키노리를 바라보았다.
한국어로 이어지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아키노리가 뜬금없는 시선의 집중에 눈을 끔뻑였다.
“그래도 저쪽에서는 나름 고수 같던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회주님이 신니치카이의 기둥뿌리를 뽑다 못해 땅에 제초제를 뿌려서 싸그리 박멸시켜 버린 게 문젭니다. 저놈이 신니치카이 이인자면 뭐 합니까, 남아 있는 신니치카이가 저놈밖에 없는데.”
모두의 시선이 이번에는 강진호에게로 쏠렸다.
그 비난의 눈을 받은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뭔가 좀 억울한데…….”
“그러게 적당히 좀 죽이시지.”
“거, 백정도 아니고…… 그게 뭔가, 주인.”
“회주님, 좀 정도를 알고 삽시다.”
“마존이시여, 위대하십니다!”
마지막 말은 깔끔하게 무시한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제 일본은 관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관리라는 게 영 쉽지가 않다. 한국의 두 배에 달하는 영토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야 하고, 중간 중간 일어날 수 있는 소요와 반란을 진압해야 한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한국의 무인들은 총회에 소속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문제가 있다면 총회를 개혁하려들지, 자신만의 조직을 만들어 총회와 싸우려 들지 않는다.
소속감이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억압하여 수족으로 부린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문제였다.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일단 호재가 두 가지 있습니다.”
“두 가지?”
“예. 일단은 회주님께서 웬일로 그놈들을 다 살려 보내줬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아키노리 국장이 우리에게 투항했다는 점입니다.”
“그게 호재가 되나?”
“물론입니다. 완전한 지배를 위해서는 순응하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는 당근을 먹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공포라는 건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지배하는 목줄은 공포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득인 법이죠.”
“으음.”
“살아 돌아간 이들은 고개만 조아리고 바칠 것만 바치면 살려준다는 말을 모두에게 전할 겁니다. 그리고 그 위에 아키노리 국장이 군림하게 된다면, 저희는 딱히 힘을 들이지 않고도 일본에서 나오는 이득을 빨아들일 수 있습니다.”
바토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키노리를 바라보았다.
‘하기야…….’
중국이 몽골을 지배했다면 어떨까?
중국인이 직접 몽골을 다스리는 것보다, 중국에 친화적인 몽골인을 수장으로 내세우는 게 반발이 적을 것이다. 결과는 같더라도 느낌이 다르니까.
‘조삼모사군.’
하지만 그 조삼모사에 누구보다 혹하는 건 원숭이가 아니라 인간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놈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뜻이군.”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신니치카이는 이제 무력화됐지 않나?”
“일반적인 무인들은 거의 털려 나갔지만, 아직 조직원들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힘이 되어줄 강자만 보충해 주면 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게 좀 고민이라 이사님들을 모신 겁니다.”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난립한 구미들을 적당히 통합하고 그중 쓸 만한 놈들은 신니치카이의 이름으로 끌어들이면 되니까요. 확실한 이득을 보장해 주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좀 문제입니다.”
이현수가 땀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누군가는 일본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누가?”
“그게 어렵습니다. 이번에 아키노리와 함께 일본으로 가야 하는 이는 한동안은 실질적인 일본의 지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건 생각하시는 이상으로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배신하지 않아야 하니 회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이 있어야 합니다. 반란이 일어나면 바로 진압이 가능해야 하니 가진바 무력이 굉장히 뛰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일벌백계로 감히 두 번 다시는 반항할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야 하니 심성이 잔혹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살짝 뜸을 들인 이현수가 모두를 둘러보았다.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이현수의 말이 끝났을 때.
모두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진호?
아니다.
“……뭐.”
장민이 떨떠름한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뭘 봐?”
바토르가 피식 웃었다.
“있네.”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군요.”
방진훈이 피식 웃는다.
“나는 사람 정해두고 설명하는 줄 알았네. 그린 듯한 사람이 있구만.”
“……으응?”
장민이 상황을 이해하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멍청한 것들! 나는 교의 장로다! 나는 교를 이끌고, 마존을 보필하고, 교도를…….”
“장민.”
“예, 마존이시여!”
강진호가 부르자 장민이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잠깐 다녀와.”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 장민, 마존의 명을 완벽하게 완수하겠습니다!”
바토르가 그 광경을 보며 혀를 찼다.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지.”
강진호에 관해서는 일관성이 존재하지 않는 장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