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32
#1231.
장악하다 (1)
“배송은요?”
“자, 잠시만요. 지금 물류장에…….”
지점장이 뛰쳐와 이규하를 밀어냈다.
“배송은 내일 당장 가능합니다!”
“지, 지점장님, 물류 센터에 확인을 해야 하는데…….”
“확인은 무슨 확인이야! 내가 물류 센터 가서 가져오면 되지!”
“……!”
지점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총알배송하겠습니다! 내일 오전 중에 배송 가능합니다!”
“지점장님, 내일 오전중은…….”
“어허! 거참. 왜 자꾸 끼어드나!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넵!”
이규하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완전 달아오르셨네.’
그럴 만도 하다.
세탁기가 열 대, 건조기가 열 대다. 거기에 공기청정기, 청소기와 식기 세척기까지 하면 이게 돈이 얼만가.
“설치는 깔끔하게 되겠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완벽하게 설치하겠습니다! 친절과 봉사가 저희의 모토 아니겠습니까!”
“흐음.”
“혹시 다른 가전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겨울철을 맞아 TV와 냉장고를 특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겨울철과 냉장고가 과연 무슨 관계인지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이번에 설치하는 것 보고, 괜찮으면 또 올게요.”
“아, 그러시겠습니까?”
평소 조금 무뚝뚝한 편이던 지점장이 세상 다시없을 호인이 된 모습을 보며 이규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 그럼 여기 주소가…….”
주소지를 확인한 지점장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이거…… 아! 좋은 일 하시는군요. 제가 이야기 잘 해놓겠습니다!”
“이야기?”
“최연하 씨 아니십니까? 최연하 씨가 연말에 좋은…….”
최연하가 가볍게 지점장의 말을 끊었다.
“지점장님이시죠?”
“네!”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저는 여기 온 적 없는 거예요. 아셨죠?”
“아…… 아, 예!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이상한 소문 나돌면 다 반품할 거니까, 입단속 잘해주세요. 이해하셨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아무것도 못 봤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요즘 치매가 왔는지 자꾸 깜빡깜빡하네요. 제 이름까지 까먹을 판입니다.”
“네, 좋네요.”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대신 사인 좀…….”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에 반쯤 홀려 버린 지점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제는 일시불로 하시겠습니까?”
강진호가 살짝 한 걸음 나섰다.
“결제는 제가…….”
“이걸로 해주세요. 일시불요.”
최연하가 핸드백에서 카드를 꺼내 지점장에게 내밀었다.
“아, 결제는…….”
강진호가 뭔가 말을 하려 하자 최연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강진호 씨.”
“네.”
“돈 많은 건 아는데, 이건 내가 결제하는 거예요. 왜 내가 애들한테 해주는 걸 강진호 씨가 결제를 해요? 강진호 씨는 따로 하세요.”
“따, 따로?”
“오다 보니 승합차도 많이 낡았던데, 차나 한 대 새로 뽑아줘요. 애들 학교 태워 다니고 할 건데.”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도 몇 가지를 추가로 더 주문한 최연하가 몸을 돌려 매장을 빠져나갔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또 들러주십시오!”
우렁찬 목소리를 뒤로하며 최연하가 차에 오른다.
강진호와 조미혜도 차에 올랐다.
부우우우웅.
차가 과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미혜가 반쯤 비명을 질러 댔다.
“오빠! 차 좀 살살 몰아!”
“살살 몰고 있어.”
“아악! 내려! 내려줘!”
“…….”
강진호가 고개를 내젓고는 최대한 차를 천천히 몰기 시작했다. 왜 저리 비명을 질러 대는지 알 수가 없다. 최연하는 이렇게 태연한데.
차가 속도를 줄이자 조미혜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넌지시 최연하에게 말했다.
“언니, 돈 너무 많이 쓰신 것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해?”
“네. 좀 죄송해서…….”
“미혜야.”
“네, 언니.”
“언니가 돈이 많을까, 적을까?”
“……많으시죠.”
“그럼 이 정도 쓰는 게 아까울까, 안 아까울까?”
“안 아까우실…….”
“아까워.”
“…….”
단호한 목소리에 조미혜가 입을 닫았다.
“카드 긁기 바로 전까지도 심장이 콩닥콩닥해. 야, 부자가 돈 펑펑 쓴다는 건 그냥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야. 돈을 펑펑 안 쓰니까 부자가 되는 거지.”
“맞는 말이네요.”
조미혜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깝지. 당연히 아깝지. 부모가 자식한테 뭘 사 줄 때도 돈이 아까울 때가 있는데, 왜 안 아까워. 당연히 아깝지. 내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반품할까요?”
“반품은 얼어 죽을! 아깝다고 돈 못 쓸 것 같으면 밥은 어떻게 먹어! 쓸데 쓴 거면 아까울 거 없는 거야!”
“아깝다면서요, 언니?”
“알아서 알아들어!”
“예.”
조미혜가 조신해졌다.
강진호가 그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세상의 먹이사슬은 꽤나 촘촘하게 짜여 있다. 한진성을 잡아먹을 듯 구는 조미혜가 최연하 앞에서는 얌전한 아이가 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너는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그리고…….”
최연하의 시선이 강진호에게 꽂혔다.
“돈은 걱정하지 마. 사장님이 더 벌게 해주시겠지.”
강진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 오빠가 사람은 좀 한심해서 그렇지, 능력은 확실하잖아요.”
“모르지, 능력이 확실한지. 이제 새로 사업 시작해서 케어 한창 해야 할 때인데, 갑자기 문자 하나 남기고 잠수 타는 사람을 믿고 일해야 할까 싶다.”
“그랬어요? 설마?”
“내가 없는 말 하겠어?”
“오빠, 제정신이야?”
아직까지는 그래.
그런데 곧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강진호가 눈을 끔뻑이며 운전에 집중했다.
“이번에는 너도 반성해.”
“네?”
“선생님들이 해주는 것만 기다리지 말고, 환경이 안 좋으면 알아서 환기를 한다든가 대책을 세워야지. 그냥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죄송해요, 언니.”
“가만히 앉아서 남이 해주기만 바라는 사람은 평생을 가도 남이 해주는 것만 받아먹는 거야. 부족한 게 있으면 달라고 소리치고, 주는 게 없으면 찾아내고 파내야지. 안 그래?”
“네!”
최연하가 선글라스를 살짝 밀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알아들었는지 그냥 대답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말을 잘 들어서 좋다. 꼬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 느낌이다.
“오늘 성적표 나오는 날이지? 진성이 어떻게 됐어?”
“진호 오빠가 재수하라고 했어요.”
“재수?”
“네.”
“걔는 어떻게 한 번에 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뭔가 변명을 해주고 싶은데, 뼈를 때리는 말이라 변명을 못하겠네요. 진성이 오빠가 여기에 없어서 다행이에요.”
말에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
“걔는 평생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타입이다. 알아서 잘 챙겨. 나중에 고생하기 싫으면.”
“제, 제가 왜 챙겨요?”
최연하가 말없이 룸미러를 바라보았다. 룸미러를 통해 날아드는 시선에 조미혜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한진성에 관해 몇 가지를 물어본 최연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생각하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언니, 그러고 보니 이번에 사장 되셨다면서요?”
“이사, 이사. 사장은 지금 운전하고 계신 분이고.”
“여하튼 소속사 만드신 거죠?”
“그렇지.”
“언니, 혹시 연습생 안 뽑아요?”
“……왜? 너, 해보게?”
“저는 안 되죠. 그런데 애들 중에 관심 있는 애가 있어서.”
“아서라.”
최연하가 손을 내저었다.
“원래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빠진 게, 속으로는 곪아 터져 있는 거야. 연예계가 어떤 덴 줄 알아? 거기 전쟁터야.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가 실패하면 꽃다운 나이는 통째로 날아가고, 경력이고 스펙이고 전혀 없는 몸뚱이 하나 남는다.”
“에이, 그래도…… 성공하면 보상받잖아요.”
“그 성공이라는 게 제멋대로라 문제지. 예쁘다고 뜨는 것도 아니고, 노래 잘한다고 뜨는 것도 아냐. 사람들의 취향이라는 건 정말 이해하기 힘들어. 얘가 왜 뜨지 싶은 애도 있고, 얘는 도대체 왜 안 뜨지 싶은 애도 있지. 어떤 분야든 그렇겠지만, 실력만으로 공정하게 승부하는 건 쉽지 않아.”
운전을 하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생각 외로 그런 분야가 많다. 가진바 무학만으로 깔끔하게 승부를 가르는 무인계는 그래서 직설적이고 공평한 곳이다.
“나는 너희가, 음…….”
최연하가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평범하게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무대 위에서 산다는 건 과한 행복과 과한 우울감이 교차하거든. 무대에 서는 순간에는 내가 세상의 왕이라도 된 것 같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주변에 아무도 없는 느낌이야. 그 감정의 기복을 느끼며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시트에 등을 기댄 최연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대학도 가보고, 남자 친구도 사귀고, 데이트도 하고…… 그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평생 겪어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단다. 그건 좀 슬픈 거야.”
강진호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왜요?”
“아닙니다.”
최연하의 말이 마치 현대의 생활을 그리워하던 과거의 강진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랬지.’
별것 아닌 일상.
아무것도 아닌 일상.
그 소중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너무도 평범하고 당연한 것은 없어지기 전까지는 아쉬움의 대상이 될 수 없으니까.
“니들이 정말 진심으로 생각하는 거라면, 언니가 도와줄 거야. 그런데 그냥 대충 나도 스타가 되어보고 싶다는 어설픈 각오로 시작하는 거라면, 언니가 가만 안 둬. 알았어?”
“네, 언니. 잘 말할게요.”
“그래.”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도착했나?”
차창 밖으로 보육원이 보인다.
보육원 앞에 멈춰 서자 조미혜가 차에서 내렸다.
“언니, 안 내리세요?”
“언니는 뭐 좀 하고 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선생님들한테 말해서 내일 세탁기랑 건조기 올 테니까 세탁실 비워두라고 말씀드리고.”
“네, 언니!”
“그래.”
조미혜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강진호가 차를 대려고 하자, 최연하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진호 씨.”
“네?”
“우리 따로 할 말이 좀 있지 않아요?”
“……네?”
최연하의 손이 선글라스를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는다.
“…….”
선글라스 안에 감춰져 있던 눈빛을 본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이 거기에 있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강진호가 입을 꾹 닫았다.
“그동안 내가 이해해 주려고 했거든요.”
“네?”
“그런데 이제는 이해의 영역을 좀 넘어간 것 같아요. 이렇게 있다 보면 평생 못 들을 것 같아서 그냥 대놓고 이야기할게요.”
“…….”
“조용한 데 가서 이야기 좀 하죠? 이제는 들어야겠어요. 대체 강진호 씨가 뭐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지.”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하나도 숨김없이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아니면 나 빡칠 테니까.”
“……네.”
강진호의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