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33
#1232.
장악하다 (2)
“이쪽입니다, 장로님.”
아키노리는 살짝 긴장된 얼굴로 장민을 안내했다.
통역의 말을 들은 장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키노리가 안내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한 발 뒤에서 장민을 따르는 아키노리의 얼굴에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괜찮을까?’
아키노리는 장민에 대한 의구심이 꽤 컸다. 강진호의 앞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노망난 늙은이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일단은 복장부터가…….’
무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살짝 밝은 느낌의 회색 정장.
넥타이 없이 단추를 두 개 푼 새하얀 셔츠.
그리고…….
‘저걸 뭐라고 하더라?’
행거 치프라는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는 아키노리였다. 정장 앞주머니에 꽂혀 있는 빨간 손수건이 눈을 잡아끈다.
새하얀 투 블록 백발은 포마드를 발라 멋들어지게 넘어가 있다.
‘이탈리아인인가?’
도무지 동양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복장이다.
누가 이 사람을 총회의 이사이자 마교의 장로라고 생각하겠는가. 어여쁜 할멈을 찾아 거리를 누비는 한 마리의 제비 같다.
물론 강함은 인정한다.
그 총회의 이사들을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사람이 평범할 리가 없지 않은가.
굳이 그런 상황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장민에게서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와 끈적한 느낌은 그가 무인으로서 얼마나 완성되어 있는지를 절로 짐작하게 만들었다.
하나 무인으로서의 능력과 그 성정은 관계가 없다. 지금 아키노리에게…… 아니, 정확히는 일본을 지배해야 하는 총회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강한 무인이 아니라 독한 무인이다.
아키노리는 일본 무인계의 본성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강압적인 압제자에게는 자존심을 들이댈 생각도 하지 못하지만, 조금만 틈을 보인다면 언제든 윗사람을 물어뜯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 든다.
그렇기에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강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때로는 폭력적이고, 때로는 독선적인.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장민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인님과 이 실장이 엉뚱한 사람을 보냈을 리도 없고…….’
아키노리에게 있어서 강진호를 의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충성심은 굳이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고, 물고기가 물속에서 숨 쉬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 아키노리를 괴롭히는 것은 강진호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각오와 강진호가 틀릴 리 없다는 믿음의 충돌이었다.
“기다리고 있다고 했나?”
장민의 말을 들은 아키노리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통역이 말을 전해주자 아키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앞에서 유력가들이 장로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아키노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만,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전할 필요는 없다.
“아키노리라고 했나?”
“예, 장로님.”
“흐음.”
장민이 살짝 장난기 어린 눈으로 아키노리를 바라봤다.
“충성심은 의심할 필요가 없겠지. 마안(魔眼)을 마주하고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대가 세 보이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통역부터 정확하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다음 말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는 법. 잊지 말거라. 네가 마존에 대한 충성심을 잊는 순간, 너는 내 손에 죽는다. 네가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마존께 네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임을 잊지 말아라.”
아키노리가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좋군.”
장민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다 보니 왜놈과도 함께 움직이게 되는구나. 양놈에, 왜놈에, 몽골 놈까지. 뭐, 아무래도 좋겠지. 마존의 위엄이 그만큼 세상을 뒤덮고 있다는 말이니까. 교의 위상 역시 높아지겠지.”
“저…… 장로님.”
“말하거라.”
“외람된 말씀이지만, 지금 장로님께서 보아야 할 이들은 회주님과 총회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장로님께도…….”
“지배당한 이들이 우호적일 리가 없지. 걱정하지 말거라. 그런 이들을 다루는 방법은 잘 알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마존께서 저들을 복속시키라 명하셨으니, 내 열과 성을 다해 저들을 굴복시킬 것이다.”
아키노리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된다면 다행이지만, 영 미덥지가 않다.
목재로 만들어진 복도를 지나자 두 명의 호위가 지키고 있는 문이 나타났다.
“문을 열어라.”
“예.”
두 사람이 문을 좌우로 열자, 다다미가 깔린 커다란 방이 드러났다. 그 방의 좌우로 사람들이 정좌한 채 도열하고 있었다.
“흠.”
장민이 그 모습을 좌우로 훑어보더니, 거침없는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상석에 마련되어 방석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앉으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군. 이게 일본의 문화인 모양이군. 하지만 마존께서는 너희의 문화를 존중하란 명을 내리지 않으셨다. 의자를 가져와라. 지배자가 굴복하는 이들과 같은 높이에 앉는 법은 없지.”
아키노리가 살짝 주저했다.
이 자리에서부터 의자를 통해 다름을 보여주려 한다면, 그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의자를 가져와라.”
아키노리의 말에 문을 지키던 이들이 눈치를 살피더니, 재빠르게 달려가 의자를 가져왔다.
탁!
장민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다.
“음.”
“크흠.”
여기저기서 낮은 기침이 흘러나온다. 미묘한 불편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지만, 장민은 딱히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전권은 아키노리에게 넘겼다는 듯 그저 의자에 등을 기댈 뿐이다.
아키노리가 상황을 살피다 입을 열었다.
“먼저…… 이곳에 모여주신 분들게 감사의…….”
“빤한 소리는 됐습니다, 아키노리 총장. 오늘 이 자리는 그런 격식을 차릴 자리는 아닌 것 같소.”
아키노리의 시선이 발언한 이를 쫓았다.
‘누구더라?’
거물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이였다. 그런 이가 거들먹대며 말하는 꼴을 보니, 순간 부아가 치민다.
“아시다시피 이번 전쟁에서 우린 패했습니다.”
“크흠!”
“하지만 한국 무도 총회의 강진호 회주께서는 열도에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열도의 무인계를 모두 주살하고 무너뜨리는 대신 복종을 통해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더없이 자비롭고…….”
“그게 무슨 개소리요, 국장! 한국에서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치더니, 정신이 나가 버린 모양이지? 뭐? 복종? 우리가 저 반도의 조선인들에게 복종한다는 말이오?”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걸 국장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소?”
“우리는 일본 무인계의 대표들이오. 아무리 신니치카이가 이번 전쟁을 주도했다지만, 누구 마음대로 일본을 저들에게 들어 바친단 말이오? 미쳤소이까?”
“미쳐도 제대로 미쳤지. 뭘 처 받았기에 그딴 말을 지껄이는 거요!”
분위기가 순식간에 흉흉해졌다.
아키노리가 단호한 눈으로 모두를 노려보았다.
“그게 여러분의 의견입니까?”
“국장이나 자신의 입장을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요. 신니치카이가 기둥뿌리도 남기지 않고 무너졌는데, 국장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대표에 그 강진호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에게 충성을 바친단 말이오?”
“협정이 있었든 거래가 있었든, 모두 무효요! 당신은 자격이 없소!”
각지에서 모인 구미의 두목들이 핏대를 세워가며 아키노리를 성토했다.
“그만한 대패를 겪었으면 할복이라도 할 것이지, 잘도 뻔뻔하게 돌아왔군! 그것도 모자라서 항복하고 복종하라고? 무사로서의 자존심도 없소?”
“선조들이 지금 그대로 보면 지하에서 통탄할 것이오!”
“긴말할 것 없소. 저 아키노리 국장의 목을 베어버립시다. 그렇게라도 자존심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 강진호라는 놈의 목을…….”
그 순간이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비단 폭을 찢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소리치던 이의 몸이 길게 세로로 찢어졌다. 그것도 한 조각이 아니라 다섯 조각이 났다.
털썩.
찢겨진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사방으로 피를 뿜어냈다.
“…….”
그 참혹한 광경에 할 말을 잃은 이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아키노리, 아니, 그의 뒤에 있는 장민을 향해서.
장민이 길게 자라난 손톱 형태의 강기를 회수하고는 손끝을 가볍게 핥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군. 먼저 이야기해 주는 것을 잊었어. 통역해라.”
“예!”
저벅.
장민이 천천히 걸어 나가며 말했다.
“너희에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몇 가지 일러두지. 이건 뇌리에 똑똑히 박아 넣는 게 좋을 것이다.”
짐승이 으르렁대는 듯한 말투.
그와 동시에 장민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첫째, 나는 지금 대화를 하러 온 게 아니다. 주둥아리는 다른 곳에서 놀리도록.”
재빠른 통역이 이어지자 구미장들의 얼굴에 노기가 치솟았다.
아무리 그들이 전쟁에서 패했다고는 하지만, 본토가 점령당한 것은 아니다. 아직 일본에는 수많은 무인들이 남아 있다. 그런데 저런 오만한 작태라니!
“둘째, 이 세상의 온전한 지배자이신 마존께서는 일본을 완전히 복속시키라 말하셨다. 굴종하지 않는 이들에게 돌아갈 것은 죽음뿐이다.”
저벅.
장민의 걸음이 한 사람에게서 멈췄다.
장민이 자신의 앞에 멈춰 선 것을 본 이가 살짝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셋째.”
장민의 손이 자신을 바라보는 구미장의 얼굴에 가닿았다.
촤아아아악!
찢겨진 몸이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인간의 몸이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는 것을 본 이들의 얼굴에 노기가 밀려나고 공포가 감돈다.
“감히 그 하찮은 주둥아리로 마존의 성함을 담는 불경을 저지르고도 살아 있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네놈들의 살을 한 점, 한 점 발라 죽는 그 순간까지 고통을 주어야겠지만, 자애로우신 마존께서 너희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 명하셨기에 깨끗한 죽음을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하라.”
장민의 눈이 완연한 광기에 물들었다.
“마존께서는 너희에게 항복을 명하셨다. 그런데 너희가 감히 마존의 명을 거역한다?”
마기가 흘러나온다.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장민이 핏발 선 눈으로 모두를 노려보며 길게 손톱을 뽑아냈다. 강기로 만들어진 손톱, 검붉게 자라난 악마의 손톱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렇다면 그 아무짝에서 쓸모없는 머리를 쪼개 버려야겠지. 아키노리!”
“예, 장로님!”
“이들이 아닌 다른 이들을 모아라.”
“예!”
이들은 어찌할 것이냐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감히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장민이 뿜어내는 기세에 질려 버린 아키노리가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장민의 시선은 아키노리가 아닌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너희는 알아야 했다. 마존께서는 한없이 자비로우시다. 그분은 마의 종주답지 않게 여리고 섬세하시지.”
장민의 얼굴이 일순 몽롱하게 풀린다. 강진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주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하나…….”
하지만 그 얼굴은 오래가지 않았다.
악귀의 얼굴이 된 장민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나는 아니다.”
저벅.
장민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구미장들에게 다가갔다.
“감히 그분의 명령을 전하러 온 곳에서 언성을 높인 놈들을 살려둘 정도로 나는 자비롭지 않다. 네놈들의 시체로 세상에 전해라, 그분의 의지를 거역하는 이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네놈들의 쓸모없는 몸뚱아리로 마존의 이름을 일본 전역에 알릴 것이다.”
시뻘건 혈기를 뒤덮은 장민이 광소를 터뜨리며 구미장들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