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4
#123.
다짐하다 (4)
“아침부터 사람 이렇게 안 굴리면 입에 가시라도 돋나!”
조원구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뼈마디가 쑤셔오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전역을 한 달 남기고 유격을 뛰어야 한다는 것도 짜증이 나 죽겠는데, 올해의 유격은 유별나게 힘들었다.
“저것들이 다들 미쳤나?”
조교들이 이를 악물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야, 웅철아.”
“상병 석웅철.”
“지금 내가 체력이 떨어진 거냐, 아니면 이 새끼들이 나를 죽이려고 악을 쓰는 거냐?”
“작년이랑 비교하시는 겁니까?”
“그래. 올해가 작년보다 빡센 건 맞지?”
“에이, 분대장님. 잊으셨습니까? 작년에 우리 훈련 오기 전에 사고 났잖습니까.”
“사고?”
“그때, 레펠에서 애 하나 떨어져서 대퇴부 부러졌잖습니까. 병원 실려 갔다가 사망한 거 잊으셨습니까?”
“……아, 그랬지.”
“그래서 난리 났지 말입니다. 조교들도 다 쫄아 가지고 훈련 제대로 안 시켰지 말입니다. 그때 상급 부대에서 감사 뜨고 난리 났지 않습니까.”
조원구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작년에 우리가 받은 유격이 제대로 된 유격이 아니었던 거냐?”
“그런 것 같지 말입니다.”
“……근데 왜 이리 기분이 찝찝하지?”
“기분 탓이지 말입니다.”
“그렇지?”
이치상으로는 맞는데, 뭔가 시원하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납득하게 해줄 사람이 있었다.
“88번 올빼미.”
“88번 올빼미!”
“열외!”
“…….”
“복명복창 안 합니까?”
“열외에에에에!”
찝찝한 기분 같은 것은 바닥을 구르다 보면 날아가기 마련이다.
“으아아아, 못해 먹겠네!”
“뭐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아아아아!”
유격은 아주 재미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장애물을 돌기 위해 대기를 타는 동안 조교들은 훈련병들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의욕 고취를 위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훈련을 잘 받은 훈련병에게는 상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521번 올빼미! 열외!”
암벽을 평지처럼 오른 강진호가 옆으로 빠졌다.
“휴식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선임들은 죽어라고 땅을 구르고 있는데, 강진호는 장애물을 넘는 족족 옆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물론 강진호는 그냥 앉아 있는 것뿐이지만, 다른 선임들이 보기에는 지들은 죽어라고 구르는데 옆에서 꿀을 쪽쪽 빨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강진호, 이새끼!’
‘너, 막사 가서 두고 보자!’
하지만 아무리 배가 아프고 얄밉더라도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혹한기와 함께 군대에서 가장 힘든 훈련이라 불리는 유격이 아닌가. 조교들은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굴리기 위해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고, 여지를 조금이라도 주는 순간 온몸 비틀기가 바로 시행되었다.
“일고오오옵, 여더어어어얼, 아호오오오옵…….”
조원구의 생각에 온몸 비틀기를 만들어낸 사람은 극한의 새디스트이거나, 아니면 정신병자가 틀림없었다.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이런 고문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대한민국 남자들이 모두 한번은 거쳐 가는 유격장에서 이런 일을 시키는가!
이런 지옥과 같은 고문은 대공분실과 함께 사라졌어야 하는 것이다.
“88번 올빼미!”
“악!”
“똑바로 안 합니까? 후임 보기 부끄럽지 않습니까?”
“…….”
조원구의 얼굴에 열이 뻗쳤다.
“똑바로 합니다! 알겠습니까?”
“아아악!”
이제는 악에 받쳐서 죽어라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조원구였다.
‘강진호, 이 새끼!’
오늘 훈련만 끝나면 이놈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한 조원구지만, 오후가 되자 생각이 백팔십도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진호야아아아아!”
강진호가 그야말로 우사인 볼트처럼 달려 나갔다.
“진호야! 여기 산이다! 진호야!”
오후 훈련은 독도법.
지정된 위치에서 지도 한 장을 받아 표시된 지점을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는가를 겨루는 훈련이었다. 원래라면 깊은 산중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훈련이지만, 유격 훈련의 특성상 그 많은 인원을 깊은 산중으로 데리고 가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조난에 대한 위험성도 있기에 대부분의 경우 독도법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낮은 야산에서 누가 더 빨리 산을 타는가로 승부가 갈리게 된다.
오전 훈련 내내 강진호에게 이를 빠득빠득 갈던 조원구가 강진호에게 내린 명령은 단 한 가지.
누구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해라.
그리고 강진호는 그 명령을 마치 기계처럼 이행하고 있었다.
지도를 순간적으로 눈으로 훑은 강진호가 가공할 속도로 산을 뛰기 시작했다.
분대원들이 필사적으로 강진호를 쫓았지만 저 인간은 산을 평지처럼 달리는 것만으로는 모자란지 무슨 육상 선수처럼 달리고 있었다.
“야! 쫓아가! 쫓아가라고! 놓치면 안 된다!”
이제는 조교들이 그들을 훈련시키는 것인지, 강진호가 그들을 훈련시키는 것인지 아리송한 분대원들이었다.
“쫓아! 쫓으라고오오!”
조원구가 입으로 침을 흘리면서도 필사적으로 강진호의 뒤를 쫓았다.
분대원 한 명이라도 가장 먼저 도착하는 순간 랩 타임이 매겨지게 되지만, 그렇다고 뒤에서 산책이나 하면서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미연의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쫓아가는 모습은 보여줘야 했다.
“저기 휴가증이 간다! 얘들아, 힘내라!”
전속력으로 산을 뛰느라 탈진 직전인 분대원들을 독려하며 조원구는 필사적으로 강진호를 따라 뛰었다.
“……뭐야, 니들? 왜 벌써 와?”
도착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던 교관이 황당하다는 듯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찰리 3분대입니다.”
“어어, 그래. 3분대라고?”
교관이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다 시계로 눈을 돌렸다.
‘전 분대가 도착한 지 5분밖에 안 됐는데.’
훈련은 대개 10분 간격으로 다섯 분대를 서로 다른 목적지로 출발시켜 시간을 측정한다. 즉, 강진호는 앞 분대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수고했다. 쉬어라.”
“악!”
강진호는 목적지에 준비되어 있는 수통을 들어 물을 마시고는 그 옆에 앉았다.
저 멀리 분대원들이 헉헉대며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순조롭군.’
삼 일 차.
“진호야.”
“일병 강진호.”
“그…… 조금 살살 던지지 않을래?”
“잘 못 들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적군도 아니고 같은 군인인데, 그렇게 던지면 좀 아플 것 같으니까 살살 좀 던져 주지 않을래?”
“명심하겠습니다.”
“으응.”
조원구는 새삼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유격이 두 번째인 그는 이미 참호 격투를 겪어보았다.
일반적으로 참호 격투라는 것은 깊게 판 구덩이 안에서 서로를 밖으로 밀어내는 승부가 된다. 말은 격투지만, 서로 주먹질을 할 수는 없기에 결과적으로는 단체 씨름 같은 형태가 되고 만다.
두셋이 한 사람에게 달려들어 밀어 올리기도 하고, 나름 일대일로 승부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단체 씨름 같은 형태가 되어 구르고 엎어지고 밀어 대는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참호 격투 시작 전에 교관으로부터 최우수 분대 평점에 가장 많은 점수가 할애되어 있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오늘 이 참호장은 수많은 군인들의 피와 땀이 녹아날 격전지가 되어야 했다.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이게 뭔…….”
조원구는 참혹한 참살의 현장을 바라보았다.
“으아아아아아!”
“야! 팔! 아, 팔! 팔!”
“내가 그냥 나가면 안 되냐? 내가 알아서 올라갈게.”
강진호는 평소에는 터미네이터지만, 이곳에서는 효도르였다.
전략?
전술?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그냥 손에 잡히는 사람을 잡아서 가볍게 들어 참호 위로 던져 버린다.
사람이 사람을 들어 던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들은 그저 입을 쩌억 벌릴 수밖에 없었고, 초등학생을 거친 이후 처음으로 사람에게 던져져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정신 줄을 놓아버렸다.
그나마 조원구가 융통성을 발휘하고 나서야 사람들 들어 얌전히 위로 내려놓는 정도로 상황이 정리되어 갔다.
“잡아! 잡으라고!”
한 사람을 번쩍 든 채 가는 강진호의 허리춤에 서넛이 매달렸지만, 강진호는 불도저처럼 전진하여 들어 올린 사람을 참호 밖에 내려놓고 허리춤에 매달린 이들을 하나하나 들어 다시 밖으로 밀어냈다.
“……이게 무슨 참호 격투냐.”
호송법이라고 하는 게 더 말이 된다.
강진호는 제외한 분대원들은 끼어들기도 뭐해서 그저 멀뚱멀뚱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쟤 좀 너무하지 않냐?”
“너무하다 뿐입니까.”
전혁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쟤가 우리 분대에 들어와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지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저 꼴은 안 당하잖냐?”
머리 위로 들려진 병사 하나가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본 조원구는 그 참혹한 현장을 차마 더 지켜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보병 애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포병은 힘세다는 것 하나가 유일한 자랑인 병과다.
7톤짜리 포를 다루느라 부러져 가는 허리와 유산소를 극단적으로 배제한 노가다 훈련의 반복으로 팔다리는 굵어지고 배가 나오는 극적인 체형의 변화를 눈물로 받아들이면서도 늘어나는 벤치프레스와 악력만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사는 포병이 아닌가.
그런 이들이 상대에게 장난감처럼 들어 올려지는 것은 굴욕 중의 굴욕이 아닐 수 없었다.
“……진호야, 살살해라.”
“예, 알겠습니다.”
“아니, 살살 잡으라는 말이 아니고…….”
저 피도 눈물도 없는 놈.
“분대장님.”
“응?”
“생각해 보면 그나마 군대에서 쟤 만나서 다행인 것 같지 않습니까?”
“왜?”
“사회에서 만났으면 저는 쟤 눈도 못 마주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도 그렇다.”
강진호는 아군과 적군, 양쪽에 대미지를 주고 있었다.
“……우리 최우수 분대 되겠지?”
“거의 확정이지 말입니다.”
딱히 그들이 한 것은 없지만, 이미 독도법과 참호 격투에서 우승을 했다. 이제 행군에서 낙오하지 않고 남은 훈련을 제대로 수행하기만 해도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진호가 하드 캐리하고 있는데 괜히 옆에서 초치지 말고… 열심히만 하자, 열심히만.”
“예.”
조원구는 포상으로 사다 준 초코파이를 흡입하고 있는 강진호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많이 먹어라.”
“예.”
같이 다니다 보면 가끔 사람 속을 뒤집어놓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휴가증을 가져다줄 고마운 놈 아니던가. 지금까지 강진호를 돌보느라 썩은 속이 휴가증으로 보상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절로 풀리고 있었다.
“그런데 분대장님.”
“응?”
“내일 저녁에 장기 자랑 있는데, 이것도 휴가증 아닙니까? 따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혁수야.”
“예.”
“솔직히 우리 애들이 힘세고 근면하기는 하지만, 예능감은 극도로 부족하잖아.”
“……그렇습니다.”
“가능한 것만 욕심내자.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가 비웃음거리 되지 말고.”
“지당하시지 말입니다.”
그때, 묵묵히 듣고 있던 성태호가 입을 열었다.
“분대장님.”
“응?”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안 웃기고도 우승할 수 있는 장기 자랑이 있지 말입니다.”
“뭐?”
성태호가 고개를 돌려 초코파이를 먹고 있는 강진호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차력을 할 수 있지 말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강진호를 향해 돌아갔다.
강진호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을 보는 분대원들을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