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40
#1239.
수립하다 (4)
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웅!
삑!
“으…….”
움직이지 않는 손을 뻗어 휴대폰 알람을 끈 이현수가 얼굴을 비볐다.
‘몇 시지?’
알람이 울렸지만 정확한 시간을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알람이라는 건 5분 간격으로 스무 번은 울리기 마련이니까.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 시계를 바라봤다.
6시 30분.
“아우, 씨!”
6시까지는 일어났어야 하는데.
‘그냥 사무실에서 잘걸.’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집까지 왔단 말인가. 그냥 사무실에 간이침대라도 펴고 잤으면 두 시간은 더 잘 수 있었는데.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비척비척 일어났다.
이놈의 침대는 구입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불편하고 어색하다. 그에 반해 새로 산 지 한 달밖에 안 된 사무실 의자는 평생 함께해 온 친구처럼 편안하고 안락하다.
‘뭐, 침대만 그렇겠냐마는.’
이현수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나 괜찮은 아파트다.
이현수 정도 되는 나이에 이만한 크기의 아파트를 대출 하나 없이 소유하고 있다는 건 꽤나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 뭐 하는가.
집을 쓸 일이 없는데.
이현수가 집에 돈을 들이는 건 컴맹이 최고급 사양의 컴퓨터를 맞춰서 인터넷 고스톱이나 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높은 가격의 집이 제공하는 수많은 안락함을 느껴볼 일이 없지 않은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장만한 최고급 홈 시어터에는 먼지가 쌓여 있고, 저 반짝반짝한 양문형 냉장고 안에는 생수 말고는 들어 있는 게 없다.
큰마음 먹고 장만한 가전제품들은 중고 가전 업체가 보면 다들 군침을 흘릴 만큼 최상급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하…….”
혀를 한 번 찬 이현수가 고개를 내젓고는 커피 머신으로 향했다. 손이 덜 가는 캡슐 커피를 내리고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딱히 볼 게 있어서나, 보고 싶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발자국 소리마저 크게 울리는 이 적막이 여전히 어색해서였다.
“쯧.”
향기를 뿜는 커피를 두고 서랍장으로 다가간 이현수가 서랍을 열었다. 첫 번째 서랍이 열리자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수십 종류의 영양제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약물중독이야, 약물중독.”
무인이 영양제라니.
이사들이 봤으면 ‘이 머저리 같은 놈아, 그런 거 처먹을 시간에 수련을 해라!’라며 발악을 했을 게 빤하다.
하지만 그것도 모르는 소리.
‘그럴 시간 있으면 내가 이렇게 안 살지!’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현수는 무학에 관해서는 범재……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둔재에 가깝다.
천재와 둔재의 차이?
그건 아주 간단하다.
같은 성과를 내기 위해 요구되는 시간이 얼마나 다른가에 따라 재능이 결정 난다. 다시 말하자면, 위긴스가 5분만 투자하면 할 수 있는 일도 동일한 조건의 이현수는 1만 시간쯤 들여야 이룩할 수 있다.
그 양반들이야 5분만 투자하면 되는 일을 왜 그렇게 미련하게 구냐고 하겠지만, 그들의 5분과 이현수의 5분은 전혀 다르단 말이다.
‘앓느니 죽지.’
텁!
이현수가 입안으로 영양제를 과감하게 털어넣었다. 알약이 서른 개쯤 되자 거의 밥 한 공기를 원샷하는 기분이다.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알약을 넘겨 버린 이현수가 미묘한 얼굴로 배를 문질렀다.
‘뭔가 약 먹는데 배부른 느낌이라니까.’
그라고 해서 처음부터 영양제를 이리 과다복용한 건 아니다. 그에게도 젊은 시절은 있고, 약 따위에 기대지 않아도 얼마든지 과로를 버틸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냐고?
물론 야근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하지만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동일 시간 대비 할 수 있는 업무량에서 차이가 난다. 이 영양제들은 그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조금이나마 젊은 그의 활력을 되찾게 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더부룩한 배를 문지르며 욕실로 향하던 이현수가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휴대폰 액정에 뜬 이름을 본 이현수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여보세요.”
[일어났어요?]“어, 아까.”
[목소리 보니 지금 일어났구만.]여하튼 귀신이라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제때 출근만 하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거긴 요즘 어때?”
[거기만 하겠냐마는, 요즘 여기도 정신없어요. 아무래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그래도 이제 안정화될 때도 되지 않았어?”
[안정화야 됐죠. 안정적으로 일이 많아서 그렇지.]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사람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이현수가 느끼고 있는 걸 이현주도 그대로 똑같이 느끼고 있는 걸 보면.
“일 없이 널널한 회사가 어디에 있겠어. 불만 갖지 말고 그냥 일해. 죽었다고 생각하고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좀 편해지는 순간이 온다.”
[일이 없어져서요?]“아니. 익숙해져서.”
[악담 적당히 하시죠, 실장님.]이현수가 고소를 머금었다.
그래도 늦지 말라고 깨워주는 사람이 있으니 좋다. 예전에는 바랄 수 없던 일이다. 오로지 혼자서 스스로의 삶을 지탱해야 했을 때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네요.]“뭐가?”
[일이 많으면 제일 우는소리를 늘어놓던 사람이 전혀 그런 말을 안 하네. 일할 만한가 봐?]“그냥 뭐…….”
[네, 알았어요. 끊을게요. 얼른 출근하세요.]“알았어.”
전화를 끊은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우는소리를 안 한다라…….
‘마음속으로는 벌써 천 번은 했습니다.’
욕실로 들어가며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부우우우웅.
‘매번 후회한다니까.’
출근을 할 때마다 전날 밤 집에 돌아온 것을 후회한다. 총회 근처나 사무실에서 대충 잤으면 이런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왠지 퇴근에 대한 욕망만은 포기할 수 없다.
‘칼퇴는 무리더라도 말이야.’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불만 없이 일한다라…….’
예전에는 그랬다.
과거, 김석일의 밑에서 일할 때는 방향성에 대한 불만은 존재했을지언정, 일이 과도하다는 불만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는 쪽이 결과가 더 낫고 속이 편하니까.
타인에게 일을 넘긴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의 이현수는 어떻게든 자신의 일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안달이었다.
일을 하기 싫어서?
아니. 그런 게 아니다.
과거, 이현수가 일에 집착한 것은 그것만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관계는 그의 능력을 기준으로 맺어졌고,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사람을 믿지 못했지.
하지만 지금은?
‘뭐가 다른가?’
총회 내에서의 관계가 그의 능력을 기준으로 한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이건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현수에게 능력이 없었다면, 그가 지금처럼 총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일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다른 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현수로서도 뭐가 다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건 어렵지만, 확실히 그가 이룬 관계는 그저 능력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조금 더, 그러니까…….
“음…….”
딴생각에 빠져 총회로 올라가는 소로를 놓칠 뻔한 이현수가 다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그러자 차가 과격하게 꺾이며 이차선 도로로 올라갔다.
자주 올라가는 길이지만, 이 길을 올라갈 때면 항상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미묘한 긴장과 미묘한 편안함을 동시에 느낀다고 해야 할까?
인도를 오르는 회원들을 보며 이현수가 차의 속도를 높였다. 그의 차를 발견한 이들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하지 말라니까.’
총회에 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이 몇 없다 보니 그의 차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람도 아니고, 차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짓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다.
어색한 얼굴로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댄 이현수가 주차장을 빠져 나와 총회로 향하는 이들의 행렬에 합류했다.
“안녕하십니까, 실장님!”
“일찍 나오셨네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인사에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어색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다들 뭐 이렇게 일찍 나왔어?”
“출근 시간 뭐 정확하게 있는 것도 아닌데, 일찍이란 말도 이상하죠.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거지.”
“하기야 니들은 그런 게 없으니까.”
“요새 사무직 애들이 곡소리 내던데요?”
“불평 심하냐?”
“네, 심하죠. 더 굴려주십시오. 그 새끼들, 만날 사무실에 앉아서 꿀 빠는 거 보는 것도 짜증 났는데, 이 기회에 아주 탈탈 털어버리시죠.”
“……저기 뭐 떨어졌다.”
“네?”
“니 인성.”
“에이, 저 정도면 여기에서는 착한 편입니다.”
이 말이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인사와 농담을 받으며 이현수는 새삼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인사라…….’
과거, 그가 영남회의 이인자였을 때는 아무도 그에게 인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영남회 안에서조차 그는 경원시되는 존재였다.
자신보다 상사라는 걸 알지만, 무력이 약한 이현수는 존중받지 못하고 되레 무시당했다. 이득을 위해서 무슨 수라도 쓰는 그를 경멸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더욱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 애썼다.
그랬는데…….
“이따 안 바쁘시면 점심이나 같이 드시죠. 요즘 궁금한 것도 많은데.”
“……궁금?”
“전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랫사람들은 잘 모르잖습니까. 썰 좀 풀어주십시오.”
“밥은 저희가 삽니다.”
이현수가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너스레를 떠는 이의 얼굴이 눈에 익다. 분명 과거 영남회에 있던 이다. 과거에는 그를 경멸하던 이들이 웃으며 다가와 친근함을 표하는 모습은 뭐랄까…….
‘짜증 나야 하는데.’
생각보다 나쁜 기분은 아니다.
“오늘은 바쁘다. 나중에.”
“만날 나중에 보자고 하시잖습니까. 안 바쁜 날이 있기는 합니까?”
“……글쎄.”
“노동청에 고소해야 돼.”
“진짜 진지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현수가 어색하게 웃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간다.”
“예, 실장님. 오늘 하루 고생하십시오.”
“건강 해칩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아니면 수련장에 좀 나오시든가요. 저희가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개소리하지 말고, 얼른 가.”
“예!”
멀어지는 이들을 보며 이현수가 묘한 표정이 되었다.
‘남들에겐 이게 흔한 일이었겠지.’
함께하는 이들과 서로 농담을 던지고, 감정을 나누고, 별것 아닌 흰소리를 늘어놓는 일.
하지만 이현수에게는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 일이다.
이현수가 고개를 내젓고는 본관으로 향했다.
‘어색한 사람이라…….’
언제부터였더라, 스스로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때가. 평범한 이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단정지어 버린 때가.
우스운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안다고 단정해 버렸다. 그가 쉴 곳 정도야 얼마든지 있는데.
이현수의 시선이 로비를 향했다.
어쩌면 그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여.”
손을 살짝 드는 강진호를 보며 이현수가 깊은 미소를 지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회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