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42
#1241.
재고하다 (1)
‘뭐지?’
보육원 안으로 들어온 박유민이 눈을 크게 떴다.
정확하게 집어낼 수는 없지만, 뭔가 변했다는 느낌이 확 든다.
“오빠, 왔어?”
“어, 미혜야.”
“일이 바빴나 보네, 이 야밤에 돌아오고.”
“응, 좀.”
박유민이 머리를 긁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바쁜 정도가 아니다.
박유민으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박유민이 우승했다는 사실은 업계 역사에 다시없을 대사건이 되어 있었다.
기삿거리에 목이 마른 기자들이 포장을 하고, 화제성에 목을 매는 협회가 날뛴 덕분에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온갖 행사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힘들어 죽겠네.’
박유민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인터뷰를 하고 행사에 참여하는 건 박유민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아직은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게 버거운 박유민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쏟아지는 행사를 마다하지 않는 건, 이런 일들이 모이고 모여서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베테랑은 그저 자신의 성적에만 목을 매서는 안 된다. 후배들이 더 큰 판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파이를 키워주는 게 베테랑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자고 갈 거야?”
“아니. 그냥 잠깐 들렀…….”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웅.
박유민을 향해 무언가 다가온다.
“…….”
박유민은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괴이한 물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동그랗고.
작고.
이상하게 귀엽기도 한…….
“……저거 뭐야?”
“응?”
조미혜가 고개를 돌렸다가 피식 웃었다.
“로봇 청소기.”
“갑자기 웬 로봇 청소기?”
그러고 보니 로봇 청소기뿐만이 아니다. 거실 한쪽에서는 커다랗고 하얀 뭔가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공기 청정기.”
“응?”
박유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갑자기 어디 돈 많은 후원자가 다녀가기라도 했나?
그때, 문이 열리면서 방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
질끈 묶은 머리.
꽃무늬 수면 바지.
한 손에 들고 있는 과자.
“……최연하 씨?”
세상 편한 복장으로 걸어 나오던 최연하가 박유민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어? 유민 씨 왔어요?”
“…….”
박유민의 눈이 흔들렸다.
아니, 저 사람이 왜 이 시간에 저 방에서 나오는가. 그것도 자기 집인 것 같은 복장으로.
“웨, 웬일로?”
“아, 오늘 좀 심심해서 여기서 자고 가려구요.”
자고 가?
여기서?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지만, 최연하는 딱히 설명을 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삐이이이! 삐이이이이!
그때, 세탁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빨래 다 말랐다!”
그 순간, 좌우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이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
밖으로 나오자마자 세탁실로 밀려들어 간 아이들이 한 아름씩 빨래를 들고 나온다.
“와, 이거 따뜻하다.”
“뽀송뽀송한데?”
“야야, 빨리 개.”
아이들이 거실 중앙에 빨래를 가져다 놓고는 둥글게 둘러앉아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최연하가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사람인 거야. 어디 쥐방울만 한 것들이 아주머니들한테 빨래 맡기고 방에서 굴러다니고 있어? 앞으로 니들 빨래는 니들이 돌리고 갠다. 알았어?”
“예!”
“공기 청정기 가져다 놨다고 환기 안 시키다가 걸리면 밖에다가 널어버릴 거야. 아침저녁으로 환기시키고! 알았어?”
“예, 언니!”
조미혜가 기합이 바짝 들어간 얼굴로 대답했다.
그 광경을 보며 박유민이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가 바뀌었나 했더니, 보육원 안이 전체적으로 깨끗해졌다.
아이들 수십 명이 같이 지내는 공간이다 보니 아무리 청소를 하고 쓸고 닦아도 미묘한 난잡함을 어찌할 수 없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그런 어지러움이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재수생.”
“아, 아직 재수 결정 난 것 아니에요!”
한진성이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을 했다.
“쓸데없는 미련은 버리는 게 좋다, 재수생.”
“아, 진짜…….”
“여튼 너, 이제 자립관으로 옮기지?”
“네.”
“자립관 꼬라지 개판이면 니 면상도 개판 되는 거야. 관리 잘해!”
“……네.”
박유민이 최연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누가 보면 여기서 한 십 년은 산 것 같은 모습이다.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박유민조차도 이상함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대단하네.’
배우, 특히 여배우들은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프로 게이머인 박유민조차도 후줄근하게 입고 밖을 나갔을 때,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면 민망한 마음이 먼저 드는데, 최연하는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저런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는 건, 이곳의 아이들을 남처럼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애들이 저렇게 따르겠지.’
눈칫밥만 십 년씩 먹어온 아이들이다.
겉으로는 똑같은 웃음을 보인다고 해도 그 뒤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는지 귀신같이 알아챈다.
하지만 최연하에게는 가식이 없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말은 거칠고 강압적이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최연하 스스로도 아이들을 편안하게 느끼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도 최연하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온 박유민이 최연하에게 물었다.
“진호는요?”
“네?”
“같이 안 왔어요?”
“네. 지금 집에 있을 건데.”
아, 혼자 왔구나.
보면 볼수록 진짜 대단하네.
박유민이 빙그레 웃었다.
이런 사람이니까 그 강진호도 감당할 수 있는 거겠지.
이상하게 마음이 훈훈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최연하는 조금 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유민 씨, 요즘 보육원에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네?”
“그러니 애가 재수를 하잖아요, 재수를!”
한진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재수 아직 결정 난 것 아니라니까요!”
“시끄럽고.”
가볍게 한진성의 말을 잘라 버린 최연하가 말을 이었다.
“얼마나 공부를 안 했으면 재수를 하냐, 재수를.”
“그럼 누나는 어느 대학 나오셨는데요!”
“나 대학 안 갔어.”
“…….”
최연하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배를 내밀었다.
“대학 간판 같은 건 그게 있어야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나 노리는 거야.”
“와…… 진짜 재수 없다.”
“응. 나는 재수 없지. 너는 재수 있고.”
“아, 하지 말라구요!”
그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도 재수 없는데,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게 더 재수 없다.
하기야 최연하에게 대학 간판이 왜 필요한가, 얼굴이 간판인데.
“그런데 선생님들은?”
“퇴근시켰어요.”
“네?”
최연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애들 보는 게 얼마나 중노동인데, 쉬는 날도 있어야지. 오늘 밤에는 내가 있을 거니까, 다 퇴근하시라고 했어요.”
박유민이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그 추진력과 과감성은 과연 강진호의 여자 친구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했다.
“너희도 그게 좋지?”
“그럼요, 언니!”
“언니랑 같이 자는 게 제일 좋죠!”
여자 아이들은 물론이고, 남자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연하와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편안하다.
“영광인 줄 알아, 이것들아. 지금은 스케줄이 좀 비어서 그렇지, 나 다시 바빠지면 여기 와서 못 자.”
“그럼 저희가 가면 되죠.”
“촬영장에 놀러 갈게요.”
“호오, 똑똑한데?”
최연하가 마음에 든다는 듯 조미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미혜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웃는다.
“흠, 그럼 너무 바빠지기 전에 다 같이 놀러나 한 번 갈까?”
“어디요?”
“스키장?”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스키장이요? 다 같이 가는 거예요?”
“인솔 교사들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니들 스키 타봤어?”
“아니요.”
“……한 번도 못 타봤는데요.”
“한심한 것들.”
최연하가 혀를 찼다.
“언니는 스키 잘 타세요?”
“아니. 나 타본 적 없는데?”
“…….”
“…….”
사람이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도 재주다.
“잘됐지, 뭐. 이 기회에 단체로 배우면 되지! 너희 방학 언제야?”
“이달 말이요.”
“그럼 방학하고 다 같이 스키장 한 번 가.”
최연하가 박유민을 돌아보았다.
“유민 씨도 같이 가요. 진호 씨도.”
“아, 저…… 시간이…….”
“유민 씨, 바빠요?”
“조금 그러네요.”
“나보다?”
“…….”
박유민의 눈이 흔들렸다.
물론 그는 바쁘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최연하보다 더 바쁘지는 않을 것이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거지. 얘들아, 유민 씨는 바빠서 니들이랑 놀아줄 시간이 없으시단다. 어쩌겠니, 니들이 이해해라.”
“가, 갑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겠습니다!”
비난의 눈빛들이 쏟아지기 전, 박유민이 먼저 항복 선언을 했다.
“흐응.”
최연하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농담이에요. 바쁘면 안 가셔도 되요.”
“아뇨. 저도 가고 싶어요. 스키장 가본 적이 없거든요.”
“뭐야? 다들 왜 이리 경험이 척박해?”
댁도 안 가봤다면서요.
“아, 그런데 이달 말은 어려울 것 같아요. 대회가 있어서.”
“스케줄 빌 때 이야기해 주세요. 그럼 우리가 맞춰볼게요.”
“감사합니다.”
박유민이 빙그레 웃었다.
참 이상하지.
그는 보육원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최연하가 그보다 더 아이들을 챙기는 느낌이었다.
‘진호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많구나.’
괜히 마음이 훈훈해진다.
“자, 이제 다들 들어가서 자.”
“벌써요?”
최연하가 눈을 찌푸렸다.
“미모의 비결은 수면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미인 되는 거야. 그리고 공부도 마찬가지야. 쓸데없이 새벽까지 공부하는 애들은 성적이 안 나온다니까. 봐.”
자신을 가리키는 손짓에 한진성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네,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어요.”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야 공부도 잘되는 거야. 차라리 아침에 더 설쳐. 이제 얼른 들어가서 자.”
“예, 언니!”
“빨래 다 갰으면 일어나자!”
아이들이 삼삼오오 빨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민 씨.”
“네?”
“그럼 저도 들어가서 잘 테니까, 알아서 할 것 하고 가세요.”
“…….”
“갈 때 문단속 잘하고.”
“아…… 네.”
“그럼 다음에 봐요.”
최연하가 과자 봉지를 든 채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여자 방의 문이 닫히자 박유민이 멍한 눈으로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한진성이 그 광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정신없지, 형?”
“……그러네.”
“그래도 음…….”
한진성이 볼을 긁었다.
“진짜 고마운 사람이야.”
“그렇지.”
박유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잠깐 남을 돕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특히나 최연하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정말 좋은 사람이네.’
예전에 진호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딱히 돌아오는 것이 없음에도 보육원을 매번 들락날락하며 자신이 도울 건 없는지 찾던 진호처럼.
방식은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최연하도 참 좋은…….
그때, 문이 벌컥 열린다.
“야! 재수생! 자라고! 너, 그러다가 삼수한다!”
“아아아아악! 하지 말라구요! 진짜!”
…….
아니, 좋은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