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44
#1243.
재고하다 (3)
짤랑.
“아니, 미안하다. 내가 할 말을 좀 덜 한…… 어?”
김원혁이 고개를 돌려 좌우를 살폈다. 카페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담배 냄새?’
김원혁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렸다.
카페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게 말이나 되는가. 흡연실이 따로 있을 텐데, 이런 진한 담배 냄새라니.
담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린 김원혁이 눈을 찌푸렸다.
중앙에 있는 원형 테이블이 난잡하게 어지럽혀진 채 정리가 되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음료가 그대로 올려져 있고, 그 음료 중 하나에 담배꽁초가 둥둥 떠 있다.
‘뭔 일이 벌어진 거야?’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김원혁이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카페 안에는 확실히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김원혁의 눈에 뒷문이 들어온다.
기감을 곤두세운 김원혁이 서둘러 뒷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의 기감이 옆 골목 안에 여럿이 몰려 있다는 걸 파악했다.
지체 없이 골목 안으로 뛰어든 김원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게 왜 깝치세요? 예? 사람 봐가면서 깝쳐야지.”
건달로 보이는 네 명이 성주천을 둘러싸고 있다. 이미 폭행이 이뤄졌는지 성주찬의 입술이 터져 있고, 얼굴도 꽤나 부어 있었다.
“야! 이 개새끼들아!”
눈이 돌아간 김원혁이 주먹을 움켜쥐며 건달들을 향해 다가갔다.
“저건 뭐야?”
“어쭈? 주먹 쥐셨네?”
김원혁이 당장 그놈들을 때려눕히려는 순간, 성주찬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 마!”
“…….”
성주찬의 단호한 목소리에 김원혁이 눈을 크게 떴다.
“야, 인마. 지금…….”
“하지 말라고!”
“…….”
김원혁이 허탈한 탄식을 흘렸다.
저런 인간쓰레기들에게도 주먹을 쓰지 말라는 건가?
“아주 쇼를 하고 자빠졌네, 이 새끼들이. 야, 이리 와봐. 하지 말긴 뭘 하지 마?”
쫘악! 쫘아아악!
앞에 있던 건달이 성주찬의 뺨을 후려친다. 하지만 성주찬은 반항하지 않고 얻어맞기만 했다.
“너, 이 씨발 새끼! 손 한 번만 더 놀리면 그 손모가지 부러뜨려 버린다.”
“오, 그래?”
쫘아악!
한 대를 더 후려친 건달이 이죽이며 김원혁을 바라보았다.
“했다. 이제 어쩔 건데?”
김원혁이 건달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112를 누른다.
“여기 지금 사람이 얻어맞고 있거든요. 예. 주소는…….”
“에이, 씨발!”
“저 좆같은 새끼가!”
건달들이 짜증을 부리며 슬금슬금 물러난다.
“너, 씨발, 운 좋았다. 다음에 걸리면 작살날 줄 알아라.”
입으로는 거친 말을 쏟아내면서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다. 그러고는 일제히 달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씨발.”
김원혁이 달아나는 놈들의 꼬라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닥에 침을 뱉고는 성주찬에게 다가갔다.
“괜찮냐?”
“뭐 별거라고.”
“씨발, 입이 퉁퉁 부었구만, 새끼야!”
“쟤들이 때린다고 아프기나 하겠냐. 그래도 내가 굴러먹은 가닥이 있는데.”
“이 병신아, 무공 쓰지 말라는 게 싸움하지 말라는 게 아니잖아! 그냥 내공만 안 쓰면 되지! 내공 없어도 저런 쓰레기들은 3초면 때려잡는 놈이 왜 얻어맞고 있냐, 등신같이!”
성주찬이 퉁퉁 부은 얼굴로 피식 웃었다.
“내가 등신인가 보지.”
“인마!”
“……시작은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응?”
성주천이 부어오른 입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내공만 안 쓰면 된다, 뭐만 안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은 내공을 써야만 하는 일도 하고 싶어지지. 애초에 안 하는 게 맞아.”
“인마, 그래도…….”
“어설프게 할 거면 시작도 안 했어. 이게 뭐 별거라고. 자영업하는 사람들이 다 겪는 일이면…… 나도 겪어야지.”
“야, 이 병신아. 때린다고 맞고 있는 사람이 어딨어!”
“……살살 말해. 머리 울린다.”
“엄살은, 새끼.”
성주찬이 휴대폰을 꺼내 자기 얼굴을 비췄다.
“……망했네. 이 얼굴로 서빙을 어떻게 보지?”
“빨리 운기해.”
“무공 안 쓰기로 했다니까.”
“인마, 그건 무공 써서 사람이랑 싸우지 말라는 거고, 이런 것도 못하게 만들 거면 애초에 내공 다 폐했겠지!”
“아…… 그도 그러네.”
성주찬이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 정도 외상은 삼십 분 정도만 운기하면 대충 해결은 될 것이다. 속병까지 어쩔 수는 없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건 해결할 수 있다.
운기에 들어간 성주찬을 보며 김원혁이 이를 갈았다.
‘그 개새끼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쫓아가서 아작을 내놓고 싶다. 단순히 성주찬이 당해서만은 아니다. 벌건 대낮에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고 사람을 폭행하는 놈들이다. 가만히 두면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일을 벌일 것 아닌가.
하지만 운기를 하는 성주찬을 두고 갈 수도 없다.
‘다음에 한 번만 걸려라.’
김원혁이 이를 갈았다.
일반인들에게 폭력을 써서 징계를 받는 한이 있어도, 저놈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 * *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경찰에 신고한다는 소리를 듣고 달아난 이들이 담배를 빼 물었다.
“여기까지는 안 쫓아오겠지?”
“대한민국 짭새 새끼들이 열심히 일하는 거 본 적 있냐? 대충 그 주변만 훑다 말겠지.”
“CCTV는?”
“그거 본다고 우리가 누군지 알겠냐? 신경 꺼라, 신경.”
미묘한 흥분이 오간다.
법과 규범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탈법을 저지르는 건 꽤나 큰 흥분을 가져다준다. 내키는 대로 저지르고, 내키는 대로 산다.
몇 번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그 미약한 대가가 이들의 행동을 바꾸지는 못했다.
“생각할수록 빡치네. 저녁에 다시 갈까?”
“팰 만큼 팼잖아.”
“아니, 그 새끼가 처 맞으면서도 실실 쪼개잖아. 사람 기분 나쁘게.”
“됐어. 괜히 그러다가 잘못 엮이면 이번에는 오래 못 나와.”
“니들 안 갈 거면 나 혼자라도 간다. 아주 장사 못하게 뒤집어 버려야…….”
그때였다.
쿵!
지나가던 이와 어깨가 부딪쳤다.
살짝 작은 체구에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들이민 이가 그 자리에 벌렁 나자빠졌다.
“……뭐야, 이 씨발!”
어깨가 부딪친 이가 무심한 얼굴로 쓰러진 건달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터덜터덜 걸어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니, 저 새끼가 미쳤나!”
“야, 잡아! 저 새끼 잡아!”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간 이들은 그새 꽤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 이를 보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도망간다! 당장 잡아!”
“여기 골목 막혔을 텐데?”
“알았으니까, 일단 저 새끼 잡으라고!”
골목 안으로 네 사람이 우르르 뛰쳐 들어간다. 조금 깊숙한 곳까지 따라 들어간 그들이 발견한 것은 벽을 등지고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어휴!”
숨을 몰아쉰 건달들이 목을 꺾으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아니, 이 좆만 한 새끼야. 사람이랑 부딪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동방예의지국 놈이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서 어디다 쓰겠냐? 어?”
“형들이 예의가 뭔지 가르쳐…….”
그때, 사내가 손에 든 무언가를 앞쪽으로 들어 올렸다.
종이봉투.
무언가 가득 차 있는 커다란 종이봉투였다.
“……뭐야? 선물이야?”
“하, 이 새끼. 사람 양아치 만드네. 우리가 뭐 돈 빼앗자고 이러는 것 같냐?”
그때, 사내가 천천히 다른 손을 들어 종이봉투의 아래를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과감하게 종이봉투의 아래를 뜯어냈다.
촤아아악!
종이봉투의 아래가 터지면서 무언가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뭐, 뭐야?”
“원두?”
바닥에 쏟아진 것은 다름 아닌 커피 원두였다.
“아니, 미쳤나. 저걸 왜 쏟아?”
종이봉투에 든 원두가 모두 쏟아진 것을 확인한 사내가 봉투를 구겨 바닥에 던졌다. 그러고는 턱짓으로 바닥에 쏟아진 원두를 가리켰다.
“주워.”
“…….”
“한 알도 남기지 말고 다 주워.”
건달들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한 20대 초반?
몸은 여리여리한 것이, 딱히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자신들에게 시비를 건단 말인가.
“야, 너 돌았냐?”
건달 중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 사내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 새끼가 진짜 뒈질라고. 어디서 영화 좀 본 모양인데, 너…….”
덥썩.
사내의 손이 멱살을 잡은 건달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끅…….”
그러고는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남은 이들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금 잡힌 이의 몸무게는 100㎏이 넘는다. 그런데 저 사내는 그런 이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것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 아악!”
얼굴을 잡힌 이가 몸을 덜덜 떨었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잡은 손을 움켜잡고 떼어내려 하지만, 그 손은 마치 거대한 기계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발버둥을 칠수록 조금씩 더 조여왔다.
“아아아아아악!”
머리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순간!
털썩.
얼굴을 잡은 손이 펴지고 몸이 바닥을 굴렀다.
사내.
강진호가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주워.”
“…….”
건달들은 직감적으로 잘못 걸렸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한 알이라도 빠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아서 생각해. 경고하는데…….”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나 같으면 지금 당장 줍기 시작할 거야.”
“…….”
얼이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들 가운데서 얼굴을 움켜잡힌 이가 바닥에 엎드려 원두를 줍기 시작했다.
“……너, 뭐 하냐, 새끼야?”
“당장 주워, 병신들아! 뒈지기 싫으면!”
입가에 침이 흐른다.
저 손에 잡혀보지 않은 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을 그런 식으로 다룰 수 없다. 폭력과 힘에 익숙한 그인 만큼, 이 여리여리한 사내가 얼마나 거대한 힘으로 뭉쳐 있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거슬렀다가는 진짜 죽는다.
그 위기감이 그를 바닥에 기게 만들었다.
눈치를 보던 이들도 슬금슬금 바닥에 엎드려 원두를 줍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진호가 차가운 눈으로 입을 열었다.
“힘에 꽤나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저벅저벅.
강진호가 앞으로 걸어갔다.
원두가 뭉쳐 있는 부분 앞에 멈춰 선 강진호가 원두를 걷어찼다. 원두가 골목 곳곳으로 흩어졌다.
“한 알이라도 빠지는 순간, 니들이 자랑하던 힘이라는 게 뭔지 보여주지. 십 분 준다. 주워.”
등골이 서늘해진다.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저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다급하고 바쁜 손길이 바닥을 누비기 시작했다. 더없이 바쁜 손이 바닥에 쏟아진 원두들을 주워 담는다.
“저, 저쪽에 있잖아! 이 새끼들아!”
“빨리 주워! 뭐 하냐!”
“이 개새끼야! 빨리 주우라고!”
원두를 찾아 바닥을 기는 이들을 보며 강진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십 분이 지났다.
“다, 다 주웠습니다.”
강진호의 앞에 부동자세로 선 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주운 원두를 봉투에 담았다.
“그래?”
강진호가 원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골목 구석에 있는 돌을 옆으로 치우자, 그 뒤에 있던 원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
가만히 원두를 바라보던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몸을 돌린다.
“내 말을 이해 못한 모양인데…….”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괜찮아.”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이제 이해하게 될 테니까.”
강진호가 웃으며 건달들에게로 다가갔다.
다가오는 강진호를 보는 건달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