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53
#1252.
연합하다 (2)
“그래도 우리가 가족 아니겠습니까?”
“가족일수록 돈 거래는 철저하게 해야 하는 법이죠.”
“그게 말이 그런 거지, 그렇게 철저하고 돈 문제 따지고 들다가는 의가 상하는 법이죠.”
“잠깐 의가 상하는 게 불만을 감추다가 의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배웠습니다.”
“MK엔터테인먼트 매출도 어차피 MK 그룹의 매출인데…….”
“계열사 간에도 매출 경쟁은 있는 법이죠.”
이현수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와, 이 새끼…… 뭐지?’
그냥 최연하 옆에 붙어 있는 옵션 같은 놈인 줄 알았더니, 한마디도 안 지고 바락바락 대드는 중이다. 아무리 최연하가 옆에 있다지만, 평범한 일반인이 이현수를 상대하면서 느끼는 중압감이 만만치 않을 텐데 말이다.
“실장님.”
“네.”
한은솔이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사실 저희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가격을 깎아주지 않는 게 불문율입니다. 어느 한쪽을 더 낮은 가격으로 계약하면, 그 순간부터 다른 쪽 계약에서도 그 가격이 나오기 때문이죠.”
“함구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 바닥에 비밀이란 없습니다.”
이현수가 끄응, 침음을 흘렸다.
한은솔이 살짝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은 같은 계열사니까 비용을 깎는 게 아니라, 같은 계열사니까 비용을 조금 더 쳐주는 게 관례입니다.”
“네?”
“생각해 보십시오. MK에서 업계 최고 대우를 해주면, 다음에 다른 곳에서 CF 계약을 할 때 그 가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죠.”
“그러니 보통 회사 연관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는 가격을 높여줍니다. 그게 이 바닥에서 매출을 올리는 법이죠. 그런데 올리지는 못할망정 깎아달라고 하시면 좀…….”
이현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무인계와 관련된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게 없는 이현수지만, 이 바닥의 일은 솔직히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지금 한은솔이 하는 말이 옳은지 틀린지 구분할 수가 없다.
“본사에서 계열사를 생각 안 해주면 누가 생각해 주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모델료를 조금 더 올려주시는 게…….”
“네?”
“고려해 주십시오.”
“…….”
돌직구를 던지며 밀고 들어오는 한은솔을 보며 이현수가 살짝 웃고 말았다.
‘얘 괜찮네.’
자신이 나이가 어리다는 걸 무기처럼 사용하고 있다. 경험이 일천해 보이는 아이가 우기기 시작하면 어른들은 호통을 친다. 하지만 그것도 자리 나름. 계약 자리에 앉아서 호통을 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등 뒤에 저리 최연하가 버티고 앉아 있으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분명히 몇 번이고 계산한 방법이다.
평소의 이현수라면 이쯤에서 항복하고 양손을 들어 올렸을 것이다. 한은솔의 말처럼 그냥 계약 관계도 아니고, 한솥밥을 먹는 사이에 이만큼 협상을 잘해주는데, 기특해서라도 그렇게 해줄 만하다.
하지만…….
‘너무 자신만만한 얼굴이 거슬리는데…….’
끝까지 저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알려줘야겠지, 세상이 넓다는 걸.
때로는 칭찬보다 채찍질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법이니까.
“음, 그럼 고려를 해봐야겠네요. 사실 이사님의 모델료가 너무 높아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본사의 돈을 끌어서 모델을 쓰는 건 의미가 없거든요. 자립이 중요한 부분이라…….”
“아쉽지만, 그렇다면 저희도 어쩔 수 없죠.”
한은솔이 강하게 나온다.
하지만 애초에 이현수가 노리는 건 한은솔이 아니었다.
“모처럼 회주님도 모델을 하기로 해서 잘 어울리는 그림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누구?”
움직였다.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연하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이현수는 한은솔이 제지에 나서기 전에 재빨리 대답했다.
“아, 회주님이 아니라 회장님이죠. 회장님께서 남자 모델을 맡아주기로 하셨습니다.”
“진호 씨가요?”
“네.”
“그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누, 누나, 여긴 제가 계약을…….”
“너, 나와봐.”
“네?”
“나와보라고.”
“…….”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은솔을 보며 이현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직 어려, 인마!’
어디 건방지게 벌써 나랑 놀려고? 더 배우고 와!
한은솔은 아주 잘해주었다. 하지만 그가 하나 놓친 것이 있다면, 결국 계약은 배우 마음이라는 점이다. 최연하와 같은 절대갑이라면 더더욱.
“진호 씨가 웬일로 그런 걸 다 한대요?”
“그만큼 이번 사업을 회장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장님께서 부추기신 건 아니구요?”
“……그런 일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네요.”
“흐음.”
최연하가 재미있다는 듯이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강진호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현수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아니,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친구들보다 더 자주 듣게 되는 것이 바로 이현수라는 이름이었다.
실제로 대화를 나눠본 이현수는 뭐랄까…….
‘이 사람, 보통 아니네.’
연예계에서 온갖 능구렁이들을 상대해 온 최연하다. 하지만 느낌으로만 보자면 지금까지 그녀가 상대한 능구렁이들은 이현수의 앞에서는 한 끼 식사거리일 뿐이었다.
살짝 긴장한 듯 어색하게 웃고 있는 얼굴 뒤로 형용할 수 없는 날카로움이 숨어 있다.
자신을 숨기는 타입?
‘아니겠지.’
말투에 살짝살짝 냉정함이 묻어난다. 지금 이현수가 그녀의 앞에서 저자세로 나오는 이유는, 그저 최연하가 그의 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호 씨랑 비슷하네.’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끝도 없는 공격성과 잔인함을 보이지만,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부드러워지는 타입.
게다가 오히려 강진호보다 그 폭이 더 좁아 보이기까지 했다.
‘과연.’
강진호가 마음에 들어할 만했다.
성격이 배배 꼬인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비슷하게 배배 꼬인 인간이 신기하고 재미있었겠지. 어쩌면 친근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고.
“실장님.”
“네.”
“성격 안 좋다는 말, 많이 듣지 않아요?”
“…….”
뜬금없이 날아온 돌직구에 이현수가 눈을 크게 떴다.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감히 실장님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없던 건 아니구요?”
“하하…….”
이현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해도 그 말을 그쪽이 하는 건 영 이상한데.’
최연하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떤 분인가 궁금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괜히 궁금해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실망시켜 드려 죄송합니다.”
“아뇨. 실망이라기보다는…… 음, 뭐랄까, 익숙한 느낌이라서요.”
최연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상한 기분이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강진호와 이현수는 비슷한 면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이현수에게서는 강진호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왠지 강진호의 옆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자, 조금은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앞으로 실장님을 꽤 자주 뵐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안 그래요?”
이현수가 고개를 들어 빤히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입을 열었다.
“네. 자주 뵐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죠. 하지만 분야가 너무 달라서 그리 자주 뵐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우리가 하기 나름 아니겠어요?”
“……지금 우리라고 하셨습니까?”
“네.”
최연하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그렇게 말하면 안 되나요? 역시 조금 건방졌나?”
“아닙니다. 그런 의도로 물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 실장님.”
최연하가 고개를 앞으로 쭉 뺐다.
이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훅 물러났다.
‘와, 장난 아니다.’
최연하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경험 같은 건 웬만한 사람은 해볼 수 없는 경험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이현수가 생각한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현주가 알면 날 씹어 먹으려고 하겠는데?’
순간적으로나마 머리가 멍해졌다.
이현수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최연하를 근거리에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현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경험을 처음 하면서도 말을 더듬지 않는 이현수를 칭찬해야 할 일이다.
“죄송한데, 저는 말을 돌려할 줄 모르거든요. 성격이 나빠서 그런지 이리저리 말을 돌리다 보면 두드러기가 돋아요.”
“아…….”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는데요, 우리 친하게 지내는 게 어때요?”
“거절합니다.”
이현수가 단호하게 최연하의 말을 잘랐다.
“공적인 관계가 딱 좋습니다.”
“…….”
최연하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저기, 저도 그쪽이랑 사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생각 없어요.”
“…….”
“딱 봐도 성격 나쁘게 생겼구만.”
“하하, 그건 이사님도 마찬가지시죠.”
“하하하, 그렇죠?”
“하하하하…….”
‘이 새끼가?’
‘이 여자가?’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살짝 최연하를 노려보던 이현수가 자신의 실책을 알아채고는 헛기침을 했다.
‘이게 아니지.’
최연하와 대립각을 세우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그건 이현수에게는 마이너스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최연하를 상대하다 보니 이상하게 뭔가 울컥울컥 흘러나오는 느낌이다.
“그런 식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게 아니에요. 우리끼리 나름 정보를 공유하자는 이야기지.”
“정보요?”
“아무래도 그쪽은 제가 모르는 진호 씨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냥 제가 한 번씩 물어보면 진호 씨가 뭐 했는지 이야기만 해주시면……”
이현수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거절합니다.”
“…….”
“회장님에 대한 제 충성심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저는 오로지 회장님의 이득을 위해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건 상대가 이사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회장님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진호 씨가 우기는 거 있을 때, 제가 한 번 막아줄게요.”
“협력하겠습니다.”
“…….”
“…….”
최연하와 이현수가 미묘한 시선으로 서로 마주 보았다.
‘최악이네.’
‘끔찍하네.’
최연하는 머릿속에서 이현수가 강진호와 비슷하다는 말을 지워 버렸고, 이현수는 머릿속에서 최연하가 예쁘다는 정보를 삭제했다.
“크흠.”
한 번 헛기침으로 주위를 환기시킨 이현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미 조금 늦어버린 느낌은 있지만, 어쨌든 수습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처음으로 돌아가 모델료 이야기 말입니다만.”
“아, 그거요?”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MK가, 그리고 진호 씨가 새로 사업을 하신다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일정만 잘 잡아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최연하 이사님께서 모델로 나서주신다면 저희 프렌차이즈도 인지도를 확 키울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다행이겠네요.”
“그럼 혹시 모델료는…….”
“아, 모델료.”
최연하가 더욱 환하게 웃었다.
“십 원 한 푼 못 깎아주니까, 꿈도 꾸지 마세요.”
“…….”
그렇게 이현수와 최연하의 공식적인 첫 만남은 존재할 수 있는 최악의 형태로 마무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