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54
#1253.
연합하다 (3)
크르르르르르.
“뭐, 뭐야!”
“아니, 뭔 개가…….”
사람들이 질색을 하며 길가로 물러났다.
거의 작은 송아지만 한 크기의 개가 쇠사슬로 목을 감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탄탄한 근육과 날카로운 이빨은 이 개의 품종이 과거에 험한 곳에 쓰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 개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모두 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크르르르르.
송아지만 한 개가 이를 드러내고 위협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애가 좀 사나워서…….”
사람을 위협하면 주인은 당연히 개를 교육하고 혼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맹견의 목줄을 잡은 사내는 개를 교육시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사람들이 다가올 때마다 줄을 살짝 느슨하게 풀어 개가 달려들게 만들고 있었다.
‘에이, 개 같은 놈.’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지? 입마개도 안 하고.’
지나는 이들이 불만 어린 눈으로 주인을 바라보지만, 입을 열어 주인을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맹견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과 실랑이를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존, 가자.”
배석명은 은근한 우월감을 느끼며 개의 등을 쓰다듬었다.
‘쪼는 꼴 하고는.’
사람들이 이렇게 그의 개에게 겁을 먹고 물러나면 은근한 우월감이 느껴진다.
저들이 저렇게 겁을 먹는 맹견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맹견을 그만이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이 평소에는 채워지지 않는 감각을 채워주는 것이다.
산책을 할 때 대형견은 입마개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배석명은 절대 입마개를 씌울 생각이 없었다. 입마개를 하면 사람들이 그의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니, 무서워하기는 하지만, 입마개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확실히 그 강도가 덜하다. 법이 어쩌고 하지만, 단속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설사 경찰이 단속하러 온다고 해도 경찰 역시 개를 무서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엄마아아아아아아!”
자기 덩치보다 큰 개를 본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며 엄마에게 달려갔다. 보통 어른들은 큰 개를 본다고 당장 등을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컹! 컹컹!
등을 보고 달아나는 작은 아이를 보자 개가 흥분하여 날뛰기 시작했다.
“존! 자자, 진정하자!”
손목에 강한 힘을 느끼면서 배석명이 목줄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존이 조금 더 흥분한 느낌이었다. 목줄을 잡아당기는데도 진정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되레 목줄을 잡고 있는 배석명의 몸이 휙휙 딸려갔다.
대형견의 힘은 건장한 사내도 쉽게 감당할 수 없다. 굳이 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개의 운동 능력은 사람 정도는 간단하게 압도하는 법이다.
“존!”
배석명이 크게 고함을 치며 목줄을 확 끌어당겼다. 그가 존을 제어하는 데 힘겨워하자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그 와중에도 그 광경을 보며 은근히 쾌감을 느끼는 배석명이었다.
“자, 진정…….”
그때였다.
뚜둑! 뚜두두둑!
팽팽하게 당겨진 목줄에서 갑자기 뭔가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쇠사슬이 끊어지며 줄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컹! 컹컹!
그러더니 흥분한 개는 총소리를 들은 경주마처럼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뭐, 뭐야! 씨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난다. 하지만 개의 시선은 오로지 한곳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이의 등에 시선을 고정시킨 거대한 맹견이 침을 줄줄이 뿜으며 맹렬하게 돌진한다.
“누가 말려봐요!”
“경찰! 경찰 불러!”
자신이 타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들은 미묘한 안도와 동시에 커다란 공포를 느꼈다. 저만한 개가 아이와 여성을 덮친다면 저항조차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개 주인에게로 향했지만, 배석명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맹견이 자신의 아이에게 달려드는 것을 발견한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감싸 안고 고개를 숙였다.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우선은 어떻게든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순간, 개가 도약하며 아이의 어머니를 덮쳐 갔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누가 좀 막아봐!”
반쯤 울음 섞인 소리가 터져 나오며 다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어지는 참상을 차마 눈으로 목도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곧 저 날카로운 이빨이 연약한 피부를 파고들 것이다. 끔찍한 비명과 거친…….
거친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질겁하여 눈을 감은 사람들이 슬그머니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응?”
달려들던 맹견이 어느새 바닥에 내려앉아 있다. 바로 앞에는 아이를 감싼 여인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
하지만 맹견은 달려들 생각이 사라졌는지 그 자리에서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이리저리 고개를 휘젓는다.
당황이라는 감정이 몸짓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그것도 잠시.
개가 이내 등을 둥글게 좁히더니, 꼬리를 말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깨앵, 깨애앵.
그러고는 구슬픈 소리를 내며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다.
“……뭐야?”
“쟤, 왜 저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겁에 질린 개를 바라보았다. 동물 중에 가장 다양한 표정을 짓는 게 개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개의 얼굴에 어려 있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 굉장히 생생하다.
“……왜 저러지?”
“뭘 보고만 있어요! 사람부터 어떻게 해요!”
“아!”
건장한 남자들이 주변의 눈치를 본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아이를 감싸고 있는 어머니와 개 사이를 파고들지 못했다. 아무리 개가 겁에 질려 있어 보이지만,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겁에 질린 아이의 울음소리만이 날카롭게 귀를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뒤쪽에서 한 남자가 태연한 걸음으로 걸어간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멈춰 있는 상황이라 그 태연한 걸음걸이가 더욱 눈에 띄었다.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아이를 감싼 어머니에게 다가간 사내가 살짝 몸을 굽혀 여인을 잡아 일으켰다.
“괜찮아요?”
“네? 아…… 네.”
“놀랐을 텐데, 이제 괜찮아요.”
“…….”
정신없는 표정으로 아이를 챙긴 어머니가 뒤로 살짝 물러났다. 사내는 울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울지 마.”
“…….”
울던 아이가 신기하게 울음을 그쳤다. 더는 자신을 위협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다.
사내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개를 바라봤다. 사내와 눈이 마주친 개가 움찔하며 등을 더욱 둥글게 말았다. 파들파들 떠는 떨림이 모두에게 보이고 있었다.
끼잉, 끼이이잉.
샛노란 오줌이 바닥을 타고 흐른다. 사내가 그 광경을 가만히 보다가 맹견을 향해 다가갔다.
“저, 저…….”
“위험할 텐데.”
바로 앞까지 다가간 사내가 가만히 개를 내려다봤다. 개는 덜덜 떨면서도 차마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슬쩍 발을 내밀려다가 다시 끌어당기고, 고개를 살짝 들어 눈치를 보고는 고개를 푹 숙이기를 반복한다.
마치 작은 강아지가 화난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가 손을 뻗어 개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사람한테 달려들지 마. 이도 보이지 말고.”
컹!
알아들을 리가 없음에도 뭔가 대답하듯 짓는 개였다. 사내는 가만히 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허락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개가 사내에게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배를 보이며 몸을 뒤집었다.
“착하다.”
사내.
강진호가 배를 보인 개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을 위협하고 으르렁대던 개가 작은 애견이라도 된 것처럼 발랄하게 애교를 부린다.
‘뭐지?’
‘전생에 개였나? 아니면 애견 훈련사인가?’
‘개장수일 수도 있잖아.’
‘개장수치고는 너무 잘생겼는데? 나이도 젊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자 배석명이 끊어진 목줄을 들고 개에게 달려왔다.
“존!”
강진호에게 애교를 부리는 자신의 개를 본 배석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리 와!”
그가 달려들어 개의 등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강진호가 몸을 일으켰다.
“주인?”
“……예? 아, 예…….”
배석명이 슬쩍 강진호의 눈치를 살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로트와일러는 한 번 이성을 잃으면 주인도 말리기 힘든 견종이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높지만, 적이라고 판단한 대상에게는 자비가 없다.
해외에서도 로트와일러와 관련된 인명 사고가 심심찮게 벌어질 정도다. 그런 로트와일러가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는데 이리 싱겁게 사태가 정리되다니.
“개가 사람에게 달려드는데 뭐 하고 있지?”
“…….”
강진호의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가 배석명의 상념을 끊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살짝 울컥한 마음이 든 배석명이지만, 잘못이 명확하니 화를 내기 힘들다. 강진호가 아니었다면 오늘 큰 사고가 났을 것이고, 배석명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존, 가자.”
배석명이 끊어진 줄을 대충 엮고는 목줄을 당겼다. 하지만 바닥에 배를 보인 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자니까!”
배석명이 짜증을 내려 하자 강진호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잠깐.”
“……네?”
“보여?”
강진호가 턱으로 개의 옆쪽을 가리켰다. 샛노란 개의 오줌이 바닥을 적시고 있는 게 보였다.
“아, 예.”
“닦아.”
“……네?”
“닦으라고.”
“…….”
배석명이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존의 목줄을 잡고 있는 그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오줌을 어떻게 닦으라고…….”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으로 배석명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끼이이잉.
애교를 부리던 개가 슬그머니 강진호의 눈치를 보더니, 몸을 돌려 납작 엎드린다.
“…….”
강진호와 존을 번갈아 보던 배석명이 살짝 겁먹은 얼굴로 뒤로 물라났다.
“닦게 해줘?”
“아, 아닙니다.”
배석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주섬주섬 상의를 벗었다. 그러고는 그 상의로 바닥의 개 오줌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가만히 보던 강진호가 낮게 말했다.
“감당 못할 거면 키우지 마. 그런다고 네가 강해지는 게 아니니까.”
“…….”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줌을 닦던 배석명이 고개를 푹 숙였다. 강진호가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엎드려 있는 맹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너도 혼난다.”
끼이이잉.
개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한 대 먹인 강진호가 허리를 폈다. 무서운 게 뭔지 알게 되었으니, 이 개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을 향해 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동물은 인간보다 솔직하고 단순하니까.
걸음을 옮기려는 강진호를 향해 한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새 개장수로 전직하셨습니까?”
“…….”
능글맞게 웃는 이현수를 보며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취미는 없어.”
“개 다루는 솜씨를 보니, 애견 숍도 괜찮겠네요. 추진합니까?”
“…….”
절로 한숨이 나오는 강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