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58
#1257.
조율하다 (2)
“흐음.”
장민이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손목 아랫 부분이 붉게 물들어 있다.
상처.
그건 명백한 상처다.
육체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걸 바라보는 장민의 시선에는 미묘한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잘도.’
그의 몸에 상처를 낸 것은 장로들이 아니었다. 악에 받친 얼굴로 달려들던 마염들이 남긴 상처다. 그저 스친 정도에 불과하지만,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 장민의 몸에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이 대단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장민은 마염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조금 다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된 길을 밟지 않고 마존의 인정을 받은 그들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쪽이 맞다.
중국의 마인들은 정파의 무인들에게 박해받으면서도 마교도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곳의 마인들은 그저 강진호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상급의 마공을 전수받고 마인으로서의 이득을 누리고 있다.
나름의 테스트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장민의 마음에 찰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본 원정은 장민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마공이 무엇인지 모르고, 마교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마교가 어떤 곳인지, 마공이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알려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존을 지근거리에서 모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게 해줘야지.’
때로 사람은 자신에게 그냥 주어진 것을 쉽게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태어난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음식을 당연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극빈국에서 태어난 이들에게도 그럴까?
마찬가지다.
마염들이 누리고 있는 자리는 마교의 수많은 교도들이 지금 이 순간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자리다. 마존의 친위대가 된다는 것은 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더없는 영광이다.
감히 자각도 없는 자가 함부로 누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로 몰아붙이기 시작한 수련이지만, 막상 마염들을 상대하다 보니 그의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마염들의 독기와 살기는 장민으로서도 함부로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과연 마존께서 선택한 놈들이란 건가.’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한 놈들을 불과 1년 사이에 여기까지 끌어올리다니, 새삼 마존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장민이었다.
궁금하다.
과연 저들이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지.
마존과 그가 부여하는 수련을 이겨내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마교도들과의 경쟁을 이겨낼 수 있다면…… 저들은 과연 얼마나 더 강해질까?
‘어쩌면…….’
과거, 천하를 공포로 물들이던 마염의 전설을 재현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전설을 재현하는 게 제대로 된 마교도가 아니라는 점은 조금 거슬리지만.
‘나도 변해야 한다.’
장민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장민은 알고 있다.
마존은 더 이상 마교만의 마존일 수 없다. 그분은 과거처럼 단순한 중원의 지배자로 만족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이제 더 많은 것을 휘하에 두고 더 많은 것을 호령하려 하신다.
이미 마존께서는 마교뿐 아니라 한국의 총회와 유럽의 원탁을 발아래에 두셨다. 그리고 이제는 일본의 무인계마저 지배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리 변해가는데 마존의 관심이 오로지 마교에만 머무르기를 바라는 것은 오만이고 욕심이다.
장민은 마교의 장로로 남을 수 있지만, 마존은 더 이상 마교의 교주일 수만은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있다.
마존께서 앞으로 어떤 세력을 손에 넣고, 어떤 이들을 부릴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마존의 휘하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충심 넘치는 곳은 마교가 될 것이다.
그건 장민에게 있어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마존의 은혜를 실감할 줄 모르는 한국인들과 마존의 힘에만 굴복하는 유럽 놈들에게는 결코 넘겨줄 수 없는 자리다.
이 시대에 새로 쓰여질 마존의 신화. 그 신화를 이룩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마교가 될 것이다.
우득.
장민이 천천히 손을 움켜쥐었다.
마기가 몰려들며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상처를 치료하는 속도로만 따진다면 정공은 감히 마공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물론 그만큼 치러야 할 대가도 많다. 장민은 마교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마공을 무작정 신뢰하지는 않는다. 더없이 날카로운 칼. 너무도 날카로워서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주인을 해칠 수도 있는 칼이 바로 마공이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공을 수련한 장민조차도 마공이란 언제나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무학이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알고 있는 것은 장민만이 아니다.
“아마 곧 다른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네게도 도움이 되겠지.”
장민이 눈을 살짝 감았다.
이미 전설로만 전해지는 과거의 강대함을 연상시킬 만큼 강해진 마존이지만, 마존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공을 연구하고 무학을 연구하면서 더 나아가기 위해 애쓰고 계신다.
장민에게도 전해줄 수 있는 새로운 마공이라니.
‘허허, 이 나이에 더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흥분이 가시지를 않는다.
이미 관짝에 들어가고도 남을 나이건만,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장민을 흥분시키고도 남았다.
더 강한 마공, 그러면서도 더 안정적인 마공.
그건 꿈과 같은 이야기다. 수많은 마인들이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건 마공이 이루어야 할 마지막 목표이자,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신기루와도 같았다.
하지만 장민은 조금의 의심조차 품지 않았다.
‘마존께서 못하신다면 세상 누가 해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분은 확신하지 않는 것을 입 밖으로 내시는 분이 아니다.
우드득.
뼛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움켜쥔 장민이 두 눈을 붉게 물들였다.
그 순간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장민이 끌어 올린 마공을 천천히 거둬들였다.
“들어와.”
끼이이익.
살짝 낡은 문이 열리며 안으로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와 고개를 푹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장로님.”
이명환.
장민이 문을 열고 들어온 이명환을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 새삼스럽다.
그가 이어온 마교의 기치는 이제 이 아이들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중국에서 넘어온 이들 역시 최선을 다하겠지만, 후대의 교를 이끌어 나갈 이들이 이 녀석들이라는 건 이제 부정할 수가 없다.
이명환이 장민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고개를 깊이 숙였다.
장민의 분위기가 이명환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명환.”
“예, 장로님.”
“하나 묻겠다.”
“예. 말씀하십시오.”
“너희에게 마존은 어떤 존재인가?”
“…….”
이명환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 뜻밖의 질문은 아니지만, 막상 대답하려 하니 정리가 되지 않는다.
“회주님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저는…….”
이명환은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장민은 그런 이명환을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조금은 긴 시간이 지나고, 살짝 말라 버린 듯한 목소리로 이명환이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듣고자 하던 대답은 아니다.
하지만 장민은 실망한 기색 없이 이명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희가 회주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회주님께서 저희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다만…….”
이명환이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하지 않다?”
“예. 저희는 그저 회주님의 수족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회주님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과도한 생각과 과도한 의미는 수족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라고 생각합니다.”
“허.”
장민이 헛웃음을 흘렸다.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다. 분명 그건 아니었다.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대답이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대답은 다른 의미로 장민을 만족시켰다.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대답이다. 그렇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분의 의지를 그저 따르는 것이지.”
“…….”
“이명환.”
“예, 장로님.”
“나는 늙었다.”
“아직 정정하십니다.”
정정하지.
과도하게 정정하지.
하지만 장민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육체에 힘이 얼마나 남았는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가는 내게 큰 의미가 없다. 확실한 것은 나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새로운 것만이 옳은 것은 아니잖습니까?”
“제법 듣기 좋은 말을 할 줄 아는구나. 하나 그것은 틀린 말이다. 왜냐면 마존께서 새로운 것을 바라시기 때문이지.”
“…….”
“그분의 의지는 우리의 의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다른 장로들은 물론이고, 젊은 마인들도 여력이 부족하다.”
이명환은 침묵한 채 장민의 말을 경청했다.
장민이 단순히 몇 가지 명을 내리겠다고 그를 부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현 상황에서 나의 의지를 이어 마교를 이끌고, 마존을 보좌할 이는 너희밖에는 없다.”
“……장로님.”
“건방진 오해는 하지 마라. 물론 나는 너희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존을 보좌하기에 너희는 너무 나약하고, 너무도 아는 것이 없다. 마교를 이끌기에는 더더욱 부족하다. 그러니…….”
장민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너희를 가르쳐 마존을 보좌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 만들어주겠다. 단순한 강함이 아니라, 진정한 마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명환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원래라면 무릎이라도 꿇어야 할 상황이지만, 그들의 무릎은 강진호 이외의 누구에게도 굽혀지지 않는다.
“감사드립니다, 장로님.”
“쉽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버틸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이명환이 고개를 들어 장민을 바라보았다.
때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던 일이다.
마염들은 마공을 익혔다. 그리고 총회의 명령 체계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그렇다면 마염들의 소속은 총회인가, 아니면 마교인가.
지금 장민이 그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저희는 오로지 회주님의 명령만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저희가 교를 이끈다는 것도…….”
“어리석은 놈.”
장민이 씹어뱉듯 말했다.
“교는 단순히 마공을 익힌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마존의 의지를 잇고, 마존께 충성하며, 그분께 자신을 바친 자들이 모인 곳이다. 너희가 이 조건에 한 가지라도 어긋남이 있더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마교를 이끌지 못할 것도 없지.”
이명환이 다시 한 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교를 이끌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부족하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이끌어주십시오, 장로님.”
“흐음.”
장민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결국 마인이란 실전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다. 각오해라. 질릴 정도로 피를 보게 해주마.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마존을 놀라게 만들어 드려야지.”
이명환이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강진호를 놀라게 만든다?
가능하다면 그 이상의 쾌감은 없을 것이다.
“저희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좋다. 그럼 준비해라. 내일부터는 바빠질 테니까.”
“예. 그럼.”
이명환이 조심스레 방을 빠져나가자 장민이 상처가 났던 손을 쥐었다 폈다.
‘흥.’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호오가 교의 행사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마음에 들게 만들면 그만이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존의 영광을 위하여.
장민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