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59
#1258.
조율하다 (3)
관조한다는 건 지켜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의 육체를 타인의 육체인 것처럼 타자화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흐름과 변화를 담담히 분석하는 것. 그게 관조다.
현대적인 언어로 하자면 체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육체 안의 기운은 잘 흐르고 있는지, 생각과 다른 부분은 없는지, 혹은 새로운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일정 이상의 수준에 오른 무인에게 있어서 관조는 필수적인 일이다. 자신의 상태를 완벽하게 점검하는 것. 그건 때로는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때로는 면벽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호칭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 많은 호칭들을 관통하는 한 가지는 결국 대화다. 스스로의 육체와 정신과 나누는 대화. 외부의 어떤 것과도 뒤섞이지 않는,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
거창한 말을 걷어내면 결국 의사가 MRI를 통해 환자의 육체와 만나듯, 무인은 관조를 통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점검한다.
그리고 지금 강진호는 평소와 같은 관조 속에서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는 중이었다.
‘뭐지?’
습관적으로 시작한 관조였다. 하지만 하루 사이에 그의 육체는 어제와 분명 달라져 있었다.
경계가 흐려졌다.
아무리 다시 확인해도 결과는 같았다.
단전.
무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무인과 일반인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 내공을 저장하는 그릇.
그 단전의 경계가 지금 미묘하게 흐려져 있었다.
‘입마?’
강진호가 미간을 좁히고는 내부로 침전해 들어갔다. 그가 알고 있는 어떠한 상식으로도 좋은 소식은 아니다. 단전은 확고한 벽으로 내력을 감싸야 한다. 실력이 늘고 무위가 높아질수록 단전은 더욱 단단해져 가기 마련이다.
단전의 벽이 흐려진다는 것은 무위가 퇴화한다는 뜻이다. 결코 좋은 소식일 수 없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단전의 벽이 흐려진 것은 확연한데, 어느 곳에서도 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무위는 낮아지지 않았는데, 단전의 경계만 무너지고 있다.’
기사(奇事)였다.
몸을 몇 번이나 점검한 강진호의 무의식의 안에서 천천히 솟아오른다. 그러고는 가만히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단전이 있는 아랫배가 강진호의 눈에 들어온다.
‘딱히 이상 징후는 없다.’
아니.
오히려 어제보다 더 강한 힘이 느껴진다. 폭발할 듯 용솟음치는 기운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육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힘이 느껴진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는데 상태가 좋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군.’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은 지금 강진호의 무학이 과거 적천마존의 무학과는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진호의 무학은 이전의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길이다.
강호의 역사가 천 년이 넘었다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누구도 정공과 마공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해본 적은 없다. 아니, 시도한 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성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강진호조차 의도하고 이 길로 들어선 게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단전의 벽이 흐려진다. 이대로 간다면 결국 강진호의 몸 안에서 단전이라는 곳이 사라질 것이다.
나쁜 일인가?
과거였다면 그렇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딱히 그런 부분에 집착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보았으니까. 단전이 없음에도 마법을 사용하고, 검강을 사용하는 이들을.
그들을 보며 느낀 게 있다.
결국 단전을 사용하는 동양의 무학조차도 무학을 사용하기 위한 하나의 체계일 뿐이다. 세상에는 동양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학을 사용하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 드넓은 체계를 보았음에도 과거의 체계에만 연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단전이 사라진다?
그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
새로 개척하는 길이 과거 봐오던 길과 다르다고 해서 그 길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의 앞에 한 사람의 형상이 떠오른다.
오만한 눈빛.
타오르는 듯한 마기.
세상 모든 것을 짓밟아 버릴 듯한 패도가 지켜보는 이의 심장을 떨리게 한다.
적천마존.
강진호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형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적천은 강진호다.
하지만 강진호이면서도 강진호가 아니기도 했다.
과거, 이렇게 적천을 대면할 때면 강진호는 감당할 수 없는 그 힘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담담할 수 있다.
자신을 노려보는 적천마존의 형상을 보면서도 강진호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아직 자신의 힘은 적천마존에 닿지 못한다. 이번 전투에서도 확연하게 느끼지 않았던가.
아무리 일본의 정예들이 폭탄을 활용하고 강진호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승부를 걸어왔다 하더라도 과거의 적천마존이었다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들 모두를 짓밟아 버렸을 것이다.
그래, 아직은 아니다. 아직 강진호는 과거 적천마존의 무위를 따라잡지 못했다.
다만…….
강진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다.
이제는 보인다.
그전까지는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던 적천마존의 경지가 이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느껴진다. 물론 그 경지를 따라잡는 것은 아직 멀기만 하지만, 산의 정상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눈에 보이는 곳은 끊임없이 오르고 오르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다. 결국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적천마존의 모습이 점점 흐려진다.
중요한 것은 그저 도달하는 일.
세 번째 삶을 살아가면서 강진호는 수많은 것을 겪고, 수많은 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그저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더 나은 길,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내 과거를 되찾는 게 아니라 뛰어넘어야 한다.
가부좌를 푼 강진호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전신이 흥건한 땀으로 젖어 있다. 이제는 딱히 육체 안에 내보내야 할 탁기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제대로 운공을 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땀이 흐른다.
기운을 돌려 흐른 땀을 싹 날려 버린 강진호가 기지개를 켜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
그러고는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고 있던 강은영과 눈이 마주쳤다.
“……줄까?”
“아니. 괜찮아.”
참 신기한 일이다.
강은영을 볼 때마다 강진호는 과연 과학이라는 것이 맞는 것일까를 의심하게 된다. 과학에 따르면 인체란 받아들이는 칼로리 이상을 소모하지 못할 경우에 지방이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강은영을 보고 있으면 그 상식을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다.
강은영을 볼 때마다 절반 정도는 뭔가를 먹고 있는 모습인 것 같은데, 왜 살이 찌지 않는 것일까?
아니, 아니다.
살은 찐다.
볼록 나온 아랫배라든가, 살짝 둥글어진 어깨선 등을 본다면 강은영의 몸에도 착실히 지방은 쌓이고 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강은영이 먹는 것이 모두 지방으로 전환된다면, 지금쯤 강은영은 걷는 게 아니라 굴러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뭐?”
“……아니.”
강진호가 머뭇대다가 물었다.
“곧 활동하는 거 아냐?”
“맞아.”
“……음, 아니다.”
강은영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지금 나 살쪘다고 뭐라 하려고 그러지?”
“…….”
“이 사람, 안 되겠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지적질이야!”
“딱히 지적한 건 아니다.”
강은영이 슬쩍 내려다보고는 양심에 찔렸는지 얌전히 테이블에 과자를 내려놨다.
“안 그래도 관리하려고 했어. 그리고 지금 내가 과자 먹고 살 찌우는 것도 다 관리거든.”
“세상에 그런 관리도 있구나.”
“진짜야. 지금은 녹음하는 중이란 말이야. 녹음할 때는 살이 좀 있어야 소리가 좋게 나와. 울림통이라는 말도 못 들어봤어?”
“은영아.”
“응?”
“애초에 너한테 가창력이라는 게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나와. 다투자.”
“사양할게.”
피식 웃으면서 욕실로 가려고 하자, 강은영이 강진호를 붙잡았다.
“준비 잘하고 있는 동생을 타박하실 게 아니라, 본인 일부터 좀 신경 쓰시는 게 어때요?”
“내가?”
“요즘 언니랑 실장님이랑 죽어가시던데?”
“실장님? 네가 이현수를 어떻게 알고?”
“이현수? 이현주 아냐?”
“아…… 그 실장님.”
강진호가 슬쩍 눈을 찌푸렸다.
‘이현수의 직위를 좀 올려야겠어.’
이현주가 MK 소속이 되면서 실장 자리에 오르자 도무지 구분이 어렵다. 안 그래도 이름도 비슷해서 구분하기 힘든데, 직책까지 비슷하니 한 번씩 강진호도 헷갈릴 지경이다.
“많이 바쁘데?”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던데? 부하 직원들의 업무량을 파악하고 조절하는 게 상사의 기본적인 일 아니겠어?”
“음…….”
“오빠가 그 언니들의 상사라는 게 납득이 안 가기는 하지만…… 어쩌겠어, 일이 그렇게 됐는데. 그러니 본인 일부터 똑바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음, 그래야지.”
강진호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강은영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 피식 웃고 말았다.
‘진짜 적응 안 된다니까.’
강진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오빠이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조금 독특…… 아니, 많이 독특한 면이 있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최근 강진호가 벌이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자랑스럽다기보다는 기겁을 하게 된다.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생각해 온 강진호가 어느 순간 학교를 안 나가고 뭔가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강남 한복판에 빌딩을 세우고 회사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회사에는 이쪽으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강은영이 보기에도 유능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그 사람들이 강진호의 밑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강진호가 그 사람들 밑에서 일해야 하지 않는가.
‘바지사장인가 하면,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고.’
최연하나 이현주 실장이 강진호를 대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건 아니었다.
“……알 수가 있나, 진짜.”
보통 가족은 다른 이들보다 가족을 더 잘아야 하는데, 강은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강진호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아지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에게 말해봐도 거의 반쯤은 포기한 느낌이라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사기꾼 같단 말이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욕실을 바라보지만, 그런다고 저 사기꾼(?)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한숨을 내쉰 강은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한 번 뒤를 캐봐야겠어.”
의지를 다잡고 있으려니, 강진호가 욕실 문을 열고 나온다. 쾌속한 샤워다.
“출근할 거야?”
“그래야지.”
“오후에도 있어? 나 녹음실 갔다가 오후에 들를 거 같은데.”
“오후에 약속 있어.”
“그래?”
강은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누굴 만나시려고?”
“네가 말한 업무 과다를 해결해 줄지도 모르는 사람.”
“엥?”
강진호가 빙그레 웃었다.
“네가 충고해 준 대로 상사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강진호가 싱긋 웃고는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