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67
#1266.
조사하다 (1)
“후욱, 후욱…….”
눈이 부신 조명 아래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후끈한 열기가 장내를 가득 채운다.
“후욱, 후욱…….”
그 사이를 한 남자가 방황한다.
어깨를 떨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즐기기 위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내딛지 못한 발이 꺾이며 사내가 옆으로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쿵!
“아, 뭐야?”
“취했으면 곱게 집에나 갈 것이지!”
비틀거리며 몇몇 사람과 부딪친 사내가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술병과 잔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다.
“아니…… 뭐야, 이 새끼?”
“후욱.”
테이블을 꾹 누르며 몸을 일으킨 사내가 시퍼런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이들을 바라본다. 그 기이한 박력에 살짝 질린 이들이 입을 다물자, 사내가 비틀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 새끼 뭐야?”
“……몰라. 미쳤나 봐.”
등 뒤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사내의 귀까지 닿지는 못했다.
아니, 설사 들렸다 하더라도 사내의 반응은 달라질 게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에게는 저런 말에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까.
덜덜 떨리는 손이 얼굴을 움켜잡는다. 몸을 살짝 웅크린 채 사내가 눈을 감는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귀를 찢는 함성 소리가 웅웅거리며 고막을 울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온다.
‘어디?’
고개를 든 사내가 주변을 돌아본다.
눈에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데다가, 주변이 워낙에 어두워 사람의 얼굴을 식별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사내는 필사적으로 눈에 힘을 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그가 마침내 누군가를 발견한 듯이 한쪽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틀비틀 걸어간 그가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두 남자 앞에 섰다.
“……돈 가져왔어요.”
무심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두 남자의 시선이 사내에게로 돌아갔다.
“무, 물건 좀…….”
“쉿.”
남자 중 하나가 손가락을 펴 입에 가져다 댄다. 그러고는 턱짓으로 밖을 가리켰다.
“따라 나와.”
“예.”
세 사람이 말없이 걸어 클럽을 빠져나갔다.
입구를 나와 조금 걸어 골목으로 들어간 이가 한쪽에 보이는 건물 뒷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다른 이들도 말없이 그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뒷문으로 들어가자 작은 공간이 나온다.
폐업한 가게.
앞쪽은 전면 유리지만, 셔터가 내려져 있어 외부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중앙에 놓인 의자에 한 남자가 앉고, 다른 한 남자는 자연스레 들어온 입구로 가서 선다. 마치 달아나지 못하게 만들려는 듯이 말이다.
“돈 가져왔어?”
“예! 예! 가져왔어요!”
사내가 떨리는 손을 품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의 손에 돈뭉치가 잡혀 나왔다.
“얼마?”
“……일단 배, 백만 원.”
남자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백만 원으로는 부족한데. 백오십은 줘야 돼.”
“저, 저번에 분명 백만 원이라고……. 지금까지는 백만 원 주고 샀잖아요.”
“하…… 이 새끼, 시장 법칙을 모르네. 수요와 공급 몰라?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공급이 딸리면 가격이야 당연히 오르는 거지. 몰라?”
“…….”
“돈 더 가져와. 아니면 물건 못 줘.”
“이, 이게 지금 구할 수 있는 전부예요!”
“그럼 못 팔지.”
남자가 일어나려 하자, 사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소매를 잡고 늘어졌다.
“제, 제발! 저 그거 없으면 죽어요.”
“……안 놔?”
“제발요, 제발! 그것도 정말 힘들게 구한 돈이에요. 제발 이번 한 번만.”
“하…….”
남자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사내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그래. 그래도 너는 단골이니까, 이번에는 특별히 백에 준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백오십 안 가져오면 국물도 없다. 알았어?”
“예! 예! 감사합니다!”
남자가 품 안으로 손을 넣더니, 작은 앰플 병 하나를 꺼냈다.
“돈.”
사내가 서둘러 남자에게 돈뭉치를 넘겼다. 돈을 받아 든 남자는 세어보지도 않은 채 품 안으로 돈뭉치를 찔러놓고는 앰플 병을 사내에게 가볍게 던져 주었다.
사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앰플 병을 받아 든다.
그러고는 품 안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주사기.
아직 뜯지 않은 새 주사기가 부러져 있다. 아마 아까 넘어질 때 부러진 모양이다. 사내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자, 앰플을 넘긴 남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이 새끼야, 급하다고 난리를 치더니 주사기 하나 관리를 못해서 그러고 있냐?”
“아…….”
“쯧쯧, 하기야 이건 우리 잘못이기도 하니까……. 야, 주사기 남는 거 있냐?”
“여기 있어.”
“저 새끼 좀 줘라. 저러다 숨넘어가겠다.”
문을 지키고 있던 남자가 품 안에서 주사기를 꺼내 사내에게 던졌다. 사내가 주사기를 받아 들고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남자가 이죽였다.
“고객님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 먹는 걸로 만들어야 하는데…… 수준이 떨어져서 주사제밖에 못 드려서 우리가 죄송하지. 값이 한두 푼도 아니고. 이해해라. 오히려 약이 숨겨오기 더 빡세서 그래.”
사내는 남자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고는 주사기를 뜯어 앰플 병에 찔러 넣었다.
“천천히 해, 천천히. 여기 누가 오는 것도 아니고.”
그 순간이었다.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앰플에 찔러 넣으려던 주사기가 멈춘다. 그와 동시에 남자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쪽으로 돌아갔다.
문.
굳게 닫혀 있는 문.
“뭔 소리지?”
“누가 온 것 같은데?”
남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물론 누가 오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이 사무실은 이전부터 그들이 약을 거래하는 곳으로 쓰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고객들은 대부분 이 사무실의 존재를 알고 있다.
클럽 안에서 그들을 찾지 못한 고객이 이쪽으로 직접 찾아오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약에 취한 이들은 잠시 기다리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봐봐.”
“잠시만.”
문을 지키던 이가 가만히 문 쪽으로 다가가 문에 귀를 댄다. 두꺼운 철문. 이쪽에서 열지 않으면 강제로 열고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다.
똑똑.
두 번째 노크 소리가 들리자 남자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뒤쪽으로 창이 나 있지 않아 문을 열기 전에는 누가 왔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 CCTV를 설치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어설프게 설치하면 의심만 늘릴 뿐이라 시행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순간, 바깥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있는 거 안다.”
“…….”
“열어.”
남자들의 눈이 살짝 떨렸다.
‘짭샌가?’
‘짭새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떻게 대응할지 정하기도 전에 기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드득.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홱 돌아갔다.
우드드득.
문이 뒤틀린다.
문고리가 있는 부분에서 쇠가 요동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손잡이 부분이 기이하게 꺾이기 시작했다.
“…….”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꺼거거걱.
손잡이 부분이 완전히 우그러진다. 저렇게 뒤틀려 버리면 잠금쇠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끼이이이익.
완전히 뒤틀려 버린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꿀꺽.
남자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열리는 문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문이 활짝 열리고, 그 뒤로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정장.
말끔한 구두.
그리고 포마드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
“…….”
영화에 나오는 이탈리아 마피아 같은 느낌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의 이탈리아 마피아들은 그래도 나름 온화한 느낌이 있는 반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남자에게서는 사람의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얼음으로 조각한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기이한 감각이었다.
“누구…….”
정장의 남자가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러더니 뒤쪽에서 사내처럼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조금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입구를 막았다.
정장의 남자가 주머니에서 손을 뺀다.
그의 손에는 붉은 포장의 담배가 잡혀 있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옆에 있던 이들이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스으읍.”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인 남자가 천천히 연기를 내뿜는다.
“후우.”
고개를 두어 번 내저은 남자가 차가운 눈으로 안에 있던 이들을 바라보았다.
“너.”
“…….”
앰플을 넘긴 트레이닝복의 남자가 움찔하며 정장의 남자를 바라본다.
“이리 와봐.”
“…….”
남자가 손가락을 까딱했음에도 트레이닝복을 입은 마약상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러자 정장의 남자의 눈이 살짝 꿈틀거렸다.
“한 번 더 말하게 하면 좋은 꼴 못 본다. 이리 와.”
“……누구신데요?”
정장의 남자가 살짝 짜증 어린 눈으로 마약상을 바라봤다.
“말귀를 못 알아먹네.”
정장의 남자가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갔다.
“아니…….”
미처 뭔가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정장을 입은 남자의 발이 트레이닝복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아아악!”
트레이닝복 남자가 정강이를 움켜잡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름 험한 삶을 살아오면서 사람에게 맞아본 경험도 많지만,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살짝 걷어찬 것 같은데 다리가 부러진 듯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왔다.
정장의 남자가 싸늘한 눈으로 바닥에 쓰러진 이를 그대로 밟기 시작했다.
한 번 발을 뻗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가게 안을 울렸다.
“시, 실장님!”
“실장님, 그러다가 죽습니다! 실장님!”
그 말을 듣고도 몇 번 더 트레이닝복 남자를 걷어찬 정장사내가 소매를 털고는 몸을 돌렸다.
“의자 가져와.”
“예!”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재빨리 앞으로 튀어 나가 중앙에 놓여 있는 의자를 들고 왔다.
의자에 앉은 사내가 다리를 꼬더니 입에 새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으으…….”
트레이닝복의 남자가 미처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을 흘렸다.
“일어나.”
사내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트레이닝복 남자가 낑낑대며 몸을 일으킨다. 제대로 일어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지만, 차마 사내의 명령을 거부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잘못 걸렸다.
상대가 격이 다른 존재라는 걸 실감한 이상 더 이상의 저항은 의미가 없다.
“이리 와.”
트레이닝복 남자가 비틀비틀 걸어가 의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딱히 무릎을 꿇으라는 말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담배를 문 사내가 가만히 트레이닝복 남자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대답만 잘하면 살려 보내 준다. 이해했나?”
“예…….”
“그래.”
사내가 기껍다는 듯 가볍게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이 진짜 웃음이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아주 간단해. 니가 팔아먹는 그거. 그 약 어디서 났어?”
“…….”
“대답 안 해?”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건 정말 무서운 분들에게 받은 거라…….”
“그래?”
의자에 앉은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얘들아.”
“예.”
“이 새끼, 손가락 하나씩 잘라. 몇 개쯤 잘랐을 때 대답할지 한 번 보자.”
“예.”
사색이 된 트레이닝복의 사내를 보며 의자에 앉아 있던 이현수가 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