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68
#1267.
조사하다 (2)
이현수는 손에 들린 앰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감기약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유리병 안에 든 투명한 액체는 약이 아니라 마약이다.
“악마의 눈물이라…….”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유치한 이름이다. 하지만 작명의 조악함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 마약의 이름은 한국에서 지은 게 아니니까.
Tears Of Devil. 일명 TOD.
지금 북미와 남미에서 유행하고 있는 신종 마약이다. 과거 한때 기승을 떨친 TOG. Tears Of God에서 따다 붙인 이름 같았다.
하지만 그 조악한 이름과의 반대로 중독성과 약효는 진짜다. 마약이라 부르기에도 애매한 암페타민이나 엑스터시 같은 것들이나 종종 들어오던 한국에 기존 마약 이상의 환각성을 가진 TOD가 풀리며 아주 개판이 났다.
경찰 당국이 이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이지만, 공급책들이 워낙 은밀히 움직이고 있어서 검거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현수가 앰플을 품 안에 넣고는 고개를 돌렸다.
“야.”
“으으…….”
“정신 좀 차려봐, 인마.”
이현수가 한숨을 쉬며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숫제 입에 거품까지 물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사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지만, 이현수가 이 사내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니었다. 약효가 떨어진 중독자가 저 스스로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미친 약이네.”
이현수가 혀를 찼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처음 본 건 아니다.
말 그대로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이현수인 만큼 마약 중독자도 여러 번 봤다. 기본적으로 마약에 중독된 이들은 극심한 금단현상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마약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신체적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약물 과다로 죽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약물 부족으로 죽는 이는 없는 게 마약이다. 그런데 지금 이현수의 눈앞에 있는 이는 약을 투여하지 못한 것뿐인데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기세였다.
‘이거, 안 좋아.’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이다?
그건 상황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오해일 뿐이다. 애초에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이라면 마약 부서 같은 곳이 존재할 리 없다. 대한민국에도 마약은 암암리에 돌고 있고,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마약으로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약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돌고 있던 그 약들과는 분명 달랐다.
이런 게 퍼져 나간다면 금세 난리가 날 것이다.
“죽지는 않겠지?”
“괜찮을 겁니다. 이 새끼가 좀 심한 편인 것 같은데…… 여튼 금단현상으로 죽었다는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럼 다행인데.”
영 찝찝하다는 얼굴로 이현수가 눈앞의 중독자를 바라보았다.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어쩌다가 약에 쩔어버렸는지.
경련하는 중독자의 어깨를 두어 번 흔들어본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대화가 통할 상황이 아니다.
“병원에 던져 줘.”
“약물중독으로 바로 걸릴 텐데요.”
“그게 낫겠지. 얘가 자체적으로 약 끊을 수 있을 것 같냐?”
“……무리겠죠.”
이만큼 중독된 이가 자력으로 약을 끊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마음먹는다고 바로 끊을 수 있다면 마약이 마약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빨간 줄 하나 간다고 해서 인생 끝나는 거 아냐. 그런데 약 못 끊으면 인생이 끝난다. 너희 집에 데려가서 묶어놓고 밥 먹여줄 의리 있어?”
“없죠.”
“그럼 병원에 던져 놔.”
“예.”
쓰러진 중독자를 어깨에 들쳐 멨다.
이현수가 살짝 눈을 찌푸리며 실려 나가는 중독자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마약이라는 건 남이 강제로 투여하는 게 아니다. 호기심이든 다른 이유든 시작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실수로 딱 한 번 투여한다고 해서 중독되지는 않는다. 저만큼 중독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마약을 구해서 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저 사람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저기 있는 놈들처럼 말이다.
“으으으…….”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신음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전신이 곤죽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손가락 자르라니까, 왜 애들을 패고 그래?”
“이게 낫잖습니까.”
“자르는 게 훨씬 더 깔끔하지.”
“…….”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뇨. 뭐…….”
“야야, 손가락 자른다고 문제 생기는 것 아니잖아. 요즘은 병원에서 잘 붙여줘.”
“그럼 지금이라도 자를까요?”
“그럴까?”
바닥에 쓰려져 있던 이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날아오던 주먹과 발길질이 말해준다. 이놈들을 정말 자르고도 남을 놈들이다.
“살려주십시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덜덜거리는 팔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여 이현수 앞으로 기어간 이들이 간절한 눈빛을 보내온다. 하지만 그 간절한 얼굴을 바라보는 이현수는 그저 피식피식 웃을 뿐이었다.
“살려줘?”
이현수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달라붙는 마약상들을 걷어차 밀어냈다.
“마약이나 팔아서 남의 인생 망가뜨리는 것들이 자기 목숨은 중요한 모양이지?”
이현수가 조금은 서늘해진 눈으로 앞의 놈들을 노려보았다.
“니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내가 너희한테 들을 게 있기 때문이야. 그 대답도 제대로 못하면 너희 같은 것들을 살려둘 이유가 없지.”
“말하겠습니다!”
“저희가 연락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특정한 시간에 약속된 곳으로 나오면 와서 약을 주고 갑니다.”
“그래?”
이현수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정보가 잘못된 거 아냐?”
“왜 그러십니까?”
“우리 애새끼들이 저런 방법을 쓴다고? 그만한 머리가 있는 놈들이 없을 텐데.”
“아, 왜 애들 무시하고 그러십니까! 그래도 기본적인 머리는 있는 놈들입니다!”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머리를 쓰는 게 귀찮은 겁니다! 싸잡아서 무식한 놈인 양 취급하지 마십시오!”
“왜 성질들을 내고 그러냐. 사람 열 받게.”
이현수가 눈을 부라리자 다들 고개를 푹 숙였다. 순간 욱하기는 했지만, 이현수와 대거리질을 할 용기는 없다.
실없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한 번 환기시킨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니들이 접선하는 장소가 어딘데?”
“…….”
“아직 말 안 해?”
“아, 아뇨. 말을 안 하려는 게 아니라…… 이거 발설하면 정말 죽는다고 그랬거든요.”
“걱정 마. 우리도 말 안 하면 죽일 테니까.”
“진짜 본보기로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봐서 그렇습니다. 이거 말했다가 진짜 죽을까 봐.”
“……뭐?”
“말하면 정말…….”
“아니, 그전에. 본보기로 사람을 죽였다고?”
“예.”
“너희가 그걸 봤고?”
“예.”
이현수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총회의 룰은 엄격하다.
일일이 명문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슨 짓을 하면 안 되는지 모르는 이들은 없다. 강진호는 마약의 유통과 일반인에게 손을 대는 짓거리를 철저하게 금지시켰다.
그런데 마약에 손을 댄 것도 모자라 일반인을 죽였다?
이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이현수의 분위기를 파악한 호위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현수가 진짜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총회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금이야 워낙 둥글어져서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는 거지, 처음 이현수가 총회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감히 눈을 마주치는 사람도 없지 않았는가.
“잘 들어.”
“……예.”
“더는 장난칠 기분 아냐. 너희가 접선 장소와 접선 시간을 정확하게 말해준다면 우리가 너희를 보호해 준다. 그놈들이 너희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만들어준단 말이다. 알겠어?”
“예.”
이현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더 시간을 끈다면 너희는 그놈들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지금까지 너희가 겪은 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 이쪽도 나름 원칙이 있어서 지금 최대한 사정을 봐주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너희가 그놈들을 감싼다면 이야기가 달라. 우리도 진심으로 할 수밖에 없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나?”
“……예.”
“자, 이제 그럼 알고 있는 걸 읊어봐. 듣고 나서 판단할 테니까.”
이현수의 표정을 본 이가 지체 없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타닥.
담배 끝이 거칠게 타들어 간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현수에게 호위가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세 번 들어봤는데, 틀린 부분이 없습니다. 지어낸 말 같지는 않습니다.”
“흠.”
이현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확인 작업은 필요하다.
원래라면 이런 사소한 일에 이현수가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만큼 중요했다. 마약이라는 게 더없이 민감한 문제기도 한데다…….
‘회주님이 신경을 쓰고 계시단 말이지.’
강진호가 지시한 일을 대충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현수가 손을 들어 미간을 꾹꾹 눌렀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편두통이 찾아온다.
“쟤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현수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마약상에게로 향했다.
“보호해 준다고 했으니, 보호해 줘야지.”
“회로 데리고 갑니까?”
“가까운 경찰서에 넘겨.”
“……예?”
호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보호를…….”
“경찰보다 확실하게 보호해 줄 사람이 어딨냐? 유치장에서 살인 났다는 소리 들어본 적 있어?”
“없죠…….”
“경찰에 넘겨. 죗값은 치러야지.”
“알겠습니다.”
경찰에 넘긴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마약상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끌려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경찰에 잡히는 쪽이 나을 거라는 판단을 내린 건지, 아니면 정신이 없어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현수가 깊게 담배를 빨았다.
입맛이 쓰다.
담배 때문은 아니다. 담배에서 느껴지는 쓴맛보다 속에서 느껴지는 쓴맛이 더 진하다.
‘예전에는 이런 게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영남회의 이인자일 때는 문제를 일으키는 인원들을 직접 처단하기도 했다. 워낙 그 손속이 잔인했기에, 영남회의 회원들이 이현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그때의 이현수는 내부를 단속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현수는 그때는 느끼지 못한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한 식구라는 건가.’
이현수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금은 이런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다. 단 한 놈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잡아내기 위해서는 냉정하게 상황을 몰아가야 한다.
“정리해.”
“예, 실장님.”
이현수가 바닥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수한 약은 경찰에 가져다주고.”
“예.”
이현수가 몸을 돌려 밖으로 빠져나갔다.
‘생각보다 규모가 더 클 수도 있겠는데…….’
영 마음이 좋지 않다.
지금까지 그들은 외부의 적과 싸워왔다. 하지만 조직이 비대해지만 반드시 내부적인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강진호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부적인 문제가 드러난다면 총회의 분위기도 예전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 마음 같지는 않구나.’
입구로 나온 이현수가 씁쓸한 얼굴로 벽에 등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