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71
#1270.
조사하다 (5)
고민성은 가만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무릎 어림을 바라보았다.
피로 물든 옷이 말라 피부에 달라붙어 있다. 험한 무인계를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는 경험들이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 고민성의 옷을 적신 피는 그의 것이 아닌 적들의 것이지만, 지금 그의 옷을 적시고 있는 피는 다름 아닌 고민성 본인이 흘린 피라는 점이었다.
가만히 몸을 적신 피를 바라보던 고민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의문이 있다.
의식이 있을 때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
알 수가 없다.
왜 들켰을까?
그만큼 조심했는데.
아니, 그게 아니겠지.
고민성이 실실 웃었다.
‘언젠가는 걸릴 일이었지.’
끝까지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총회의 능력을 알고, 이현수들의 능력을 안다. 굳이 이현수가 아니더라도 방진훈이든 누군가가 눈치를 챘을 것이다.
사실 이건 이사진들까지 올라갈 것도 없는 일이다. 그전에 누군가가 눈치를 챘겠지.
그렇다면 어디서부터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철컹!
그 순간,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불이 켜졌다.
“…….”
고민성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갑자기 안구로 파고든 불빛에 눈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으…….”
눈이 불빛에 조금 익숙해지자 아픔이 가신다. 고민성이 찡그린 얼굴 그대로 눈을 살짝 떴다.
흐릿한 시아에 한 사람이 잡힌다.
고민성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빙그레 웃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민성아.”
“…….”
고민성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현수가 어느새 의자를 가져다 그의 앞에 앉아 있었다.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인 채 그를 바라보는 이현수의 모습이 더없이 섬뜩하다.
“서로 의미 없이 시간 끌지 말자.”
“…….”
“보아하니 너도 머리가 조금 돌아가는 놈 같고. 네가 알다시피 나도 바보는 아니잖아. 그런데 네가 마약을 밀수했다는 걸 나더러 믿으라고?”
고민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이현수를 노려볼 뿐이다.
“자, 보자. 그러니까…….”
이현수가 손에 든 서류를 손바닥을 탁탁, 쳤다.
“조사해 보니까 그 컨테이너…… 멕시코에서 왔더라. 너, 멕시코 말 할 줄 아냐?”
“…….”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쓴다는 건 알고 있냐?”
“…….”
“모르겠지.”
이현수의 눈이 가면 갈수록 차가워졌다.
“멕시코 말도 할 줄 모르고, 그쪽 카르텔이랑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도 모르는 놈이 밀수를 한다라…….”
이현수가 싱긋 웃었다.
“고민성.”
“…….”
“너, 영남회 출신이지?”
고민성이 멍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럼 너는 알잖아, 내가 어떤 놈인지. 내가 마음 먹으면 니 입 하나 여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도.”
차갑다.
딱히 위협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기세를 내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하듯 담담하게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담담한 목소리가 그 어떤 협박보다 더 두려웠다.
이현수가 말했듯이 고민성은 이현수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그가 얼마나 잔인하고 차가운 사람인지 모르는 이가 영남회에 있겠는가.
하지만…….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현수가 나직하게 말했다.
“니 뒤에 있는 사람 누구야?”
고민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현수가 그런 고민성을 말없이 바라봤다. 차가운 눈이 점점 더 무감정해진다. 이내 돌덩어리를 바라보는 듯 무감정한 얼굴이 된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현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무언가가 형광등 빛을 받아 밝게 빛난다.
고민성의 시선이 이현수의 손에 들린 것으로 향했다.
면도날.
보기만 해도 섬뜩함이 느껴지는 면도날이 이현수의 손에 들려 있다.
“아, 미안하다. 아직은 아니야.”
이현수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나는 피 보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찰칵.
이현수가 불을 붙인 담배를 고민성의 입에 물려주었다. 양손이 묶여 있는 고민성의 의문 어린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피워.”
“…….”
“자백제 같은 건 안 묻었으니까 그냥 피워. 니들한테 그런게 먹히기나 하겠냐.”
고민성이 천천히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쿨럭! 쿨럭!”
부상을 입은 몸이어서 그런지, 몸이 담배 연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고민성은 필사적으로 담배를 빨았다. 어쩌면 이 담배가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잘 들어.”
이현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게 대답을 들을거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대답을 듣는 방식은 그렇게 부드럽지는 않아.”
고민성의 시선에 의자에 놓인 면도칼이 들어왔다.
알고 있다.
사고를 치거나 문제를 일으킨 자, 그리고 영남회를 배신하려 한 자들. 그래서 이현수에게 잡혀간 이들은 다시는 복귀하지 못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너무도 빤한 일 아닌가.
고민성의 운명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전에 하나 묻고 싶은데…….”
이현수가 면도칼을 치우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고민성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랬냐?”
“……뭘 말입니까?”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어서 그런다. 왜 마약 같은 거에 손을 댔냐?”
“…….”
이현수는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있었다.
총회는 마약을 철저하게 금지한다. 마약에 손을 대면 총회에서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고민성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마약에 손을 댄단 말인가.
“왜냐구요?”
고민성이 피식 웃었다.
“실장님답지 않게 굉장히 멍청한 질문을 하시네요. 답이라고 해봐야 하나밖에 더 있겠습니까? 돈 때문이지.”
대답하는 고민성의 말투에 허무함이 묻어났다.
“돈?”
이현수가 어이없다는 듯 고민성을 바라봤다.
“총회가 장악한 한국에서 마약으로 번 돈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리 멍청해 보이지는 않는데?”
“멍청한 건 실장님입니다. 한국에서 왜 삽니까? 적당히 벌어서 평생 먹고살겠다 싶으면 해외로 나가 버리면 그만이지. 왜요? 동남아까지 쫓아오시게요?”
“…….”
이현수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래서…….”
이현수가 눈을 찌푸린다.
“그냥 돈을 벌려고 이런 미친 짓을 했다고?”
“그냥 돈?”
고민성이 이죽이는 듯한 얼굴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실장님, 돈 많이 버셨나 보네요. 그냥 돈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다니.”
“…….”
“되레 제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해봐.”
“정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제가 미친놈일 것 같습니까, 아니면 총회 놈들이 미친놈일 것 같습니까?”
이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약? 미친 짓?”
고민성이 피식 웃는다.
“칼 들고 사람 쳐 죽이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양반들이 그깟 마약 좀 유통했다고 쓰레기 보는 눈으로 보지 마시죠.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까, 아니면 시체를 공구리 쳐서 바다에 처넣기를 했습니까?”
고민성이 핏발 선 눈으로 이현수를 노려보았다.
“대답해 보시죠, 잘나신 실장님. 그래서 실장님은 지금까지 살면서 몇 명이나 죽이셨죠?”
“…….”
“셀 수도 없죠?”
이현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고민성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이현수는 수도 없는 사람을 죽여왔다. 그의 의지로 죽이지 않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의 의지로 사람을 죽였다.
일반적인 사회의 시선으로 보자면, 고민성은 그깟 마약 밀수업자일 뿐이다. 살인자인 이현수에 비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이현수가 고민성에게 죄를 묻는다?
개가 웃을 일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현수도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돈 때문에 마약을 파는 게 이상합니까? 그럼 실장님은 왜 사람을 죽이시는데요? 뭐, 대단한 목적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독립운동이라도 하세요?”
“그만해, 새끼야.”
“그만하긴 뭘 그만해!”
고민성의 눈에 핏발이 섰다.
“내가 미친 것 같아? 내가 맛이 간 것 같냐고! 이 개새끼들아!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너희지! 바깥세상을 봐, 새끼들아! 돈이면 가족도 팔아!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니들이 미친 거지! 꼴랑 입에 풀칠할 돈 처 받고 평생 산속에 처박혀서 칼질이나 해 대는 니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새끼들아!”
고함을 지르는 고민성의 기세에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힘이 있으면 뭐 하냐고! 씨발, 내가 마음만 먹으면 경찰이고 나발이고 나를 못 잡는데, 내가 왜 참고 살아야 해! 마음만 먹으면 떼돈을 벌 수 있는데! 그 돈이면 평생 편하게 살 수 있어! 가지고 싶은 건 다 살 수 있고, 여자고 뭐고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왜 내가 이런 데서 썩어야 하냐고!”
고민성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들썩이는 몸을 보면 지금 고민성이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씨발! 총회가 돈을 얼마나 처 버는지 모르는 사람 있어? 그 돈 다 어디 갔는데, 이 개새끼야! 니들이 다 처먹은 거 아냐? 니들은 총회 굴려서 돈 처 벌고! 우리는 산에서 풀 뜯어 먹으면서 평생 수련이나 하라고? 개 같은 소리 하지 마!”
거의 광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소리를 질러 대는 고민성이었다. 이현수는 그런 고민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러니까 돈을 벌고 싶으셨다?”
“왜? 안 됩니까?”
고민성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제가 고매하지 못했네요. 그리고 실장님 앞에서 이렇게 웃으면 안 되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오네요. 그래서 실장님은 이번에 사람을 몇이나 죽이셨습니까?”
“…….”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일본 애들이 얼마나 뒈졌죠? 천 단위로 죽었죠? 안 그렇습니까? 사람을 천 명 단위로 죽이는 양반들이 그깟 마약 좀 팔았다고 무슨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부들대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같잖아서 웃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현수가 피식 웃고는 면도칼을 움켜잡았다.
“지껄이고 싶은 대로 지껄여. 괜찮으니까.”
이현수가 고개를 모로 꺾였다.
“다만, 나는 네게 듣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그 말은 하고 마저 지껄여 줬으면 좋겠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씨발! 어차피 뒈질 것 빤히 아는데, 내가 니들한테 협조할 것 같아? 미쳤다고? 이 개새끼들아, 예전에 이중걸이 회장일 때가 나았어. 적어도 이중걸 때는 회원들을 사지에 처 밀어 넣고 지들끼리만 배 불리지는 않았어! 마음대로 해봐, 이 새끼야! 으아아아아아아!”
발악을 하는 고민성을 보며 이현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막 면도날을 휘둘러 고민성의 입을 갈라 버리려는 순간.
철컹.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현수와 고민성의 시선이 동시에 문 쪽으로 돌아갔다.
저벅저벅.
강진호가 무심한 얼굴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고민성의 얼굴이 일순 새파랗게 질렸다.
“아…….”
강진호와 고민성의 시선이 마주쳤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재미있는 말을 하던데.”
저벅저벅.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강진호가 고민성을 향해 다가갔다.
“계속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