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74
#1273.
응징하다 (3)
“이번 일은…….”
그 순간, 방진훈이 손을 들었다.
“음?”
“외람되지만 한마디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강진호가 허락하자 방진훈이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어설픈 위로는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지.”
“음.”
바토르와 위긴스가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가 그 모습을 보며 황당한 얼굴을 했다.
“아직 말도 안 했는데.”
“뭐, 빤한 소리 하시겠죠. 이번 일은 우리 책임이 아니고, 관리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회주에게 있다. 그러니 따지자면 나의 책임이다. 그러니 앞으로 잘하면 된다.”
“…….”
강진호가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정말 저렇게 말하려고 했다.
강진호의 표정을 본 방진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회주님 패턴은 너무 빤히 들여다보입니다.”
“그렇지.”
“동감이야.”
“인정합니다.”
이현수까지 거들고 나서자 강진호가 헛기침을 했다,
“뭐, 그런 얼굴 하실 것 없습니다. 여기서 제일 충격받은 건 저희가 아니라 회주님이시니까요.”
“……응?”
“그럼 저만한 애들을 모아놨는데 일이 안 터질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이 정도면 양호한 겁니다. 오히려 관리가 엄청 잘되고 있다는 겁니다.”
“…….”
방진훈이 피식 웃으며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미묘하게 순진한 면이 있다니까.’
사람이란 착하지 않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모여 있으면 그 안에 착한 사람만 있을 수는 없다.
평범한 이들도 범죄를 저지르고 사고를 친다. 무학을 익힌 이들은 기본적으로 평범한 이들보다 거칠고, 그들보다 많은 것을 참으며 살아가야 한다.
“사람이 모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직이란 곳에서는 항상 사고가 터집니다.”
“그렇지.”
바토르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래서 원탁은 자체적으로 회원들을 감시하고 심판하는 기구를 따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진호가 침음을 흘렸다.
그런 강진호를 보며 위긴스가 낮게 미소를 지었다.
“로드, 이 모든 게 교육과 규범이 올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십니까?”
“조금은.”
강진호가 순순히 인정했다.
“그 말도 틀리진 않습니다. 하지만 로드,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법칙을 정해두었다고 해서 정한 대로만 움직이진 않습니다. 당장 로드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더하지.’
강진호는 대한민국의 법률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법률들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교육받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대처를 잘못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저 사람이란 그런 법이죠. 애초에 사람들이 교육받은 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법이란 걸 만들어서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고 벌 줄 필요도 없는 겁니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반박할 수가 없다.
방진훈이 그런 강진호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가만 보면 순진한 면이 있으시다니까?”
“순진은 얼어 죽을.”
바토르가 눈을 부라렸다.
“남들은 애들 관리하고 가르치고 살 동안 다른 놈들에게 다 미뤄 버리고 띵까띵까 살았으니 조직의 생리를 모르는 거지.”
“…….”
답지 않게 핵심을 찔러 들어오는 바토르였다.
“로드.”
위긴스가 냉정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런 자리에서 말씀드려도 되는지 조금 우려되긴 하지만, 기회가 왔으니 그냥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드께서는 총회를 너무 온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온정?”
“저들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
“스스로의 일에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는 성인들입니다. 회주님이 가르치고 교화해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이곳을 회사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회사에서 직원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그 책임을 집니까?”
“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방 이사에게 관리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은 좋은 의미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에 방 이사에게는 그들을 관리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단속할 책임이 없으니까요.”
“…….”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방진훈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마주 봤다.
먼저 시선을 피한 쪽은 강진호였다.
“무학을 가르치고 전수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회에 소속된 이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지정하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해했다.”
위긴스가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로드께서 왜 그러시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로드의 시선으로 보기에 회원들은 다들 아이고, 이끌어줘야 할 존재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시선이 그들을 짓누를 수도 있습니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한 번씩 회의를 거를 수가 없다니까.’
강진호는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특정 분야에 한해서는 강진호 이상의 식견을 가진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 특정 분야는 너무도 좁디좁았다.
무학 등에 관해서 강진호는 타인의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을 대하고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데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방 이사의 말도 사실입니다. 이만한 조직에서 터진 문제가 겨우 이 정도라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벌을 면해주시는 게 아니라 상을 주셔야죠.”
방진훈의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크으, 위긴스 이사님이 뭔가를 좀 아시네. 회주님, 제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건 진짜 관리 잘한 겁니다. 제가…….”
“알았어.”
“……거, 사람 성격 급하시긴.”
방진훈이 투덜대자 강진호가 피식 웃어버렸다.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책임이라…….’
강진호가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위긴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 강진호는 단순히 총회에 소속한 회원들을 관리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까지 이끌어야 한다는 미묘한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주변이 그랬고, 마교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강진호의 가족이 아니다. 스스로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다. 그들을 어린아이나 이끌어줘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저들의 한계를 그어버릴 수도 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강진호가 단호하게 이사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건 저지른 잘못에 대한 확실한 책임이 동반될 때의 이야기겠지.”
“물론입니다.”
위긴스도 당연하다는 듯이 동의했다.
“모르고 저지른 일도 아니고, 알고 저지른 일이다. 당연히 벌은 피할 수 없지!”
바토르가 눈을 부라렸다.
고개를 끄덕인 강진호가 이현수를 돌아보았다.
“이 실장이 서둘러 줘야겠군.”
“염려 마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예, 회주님.”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마약은 용서하지 않는다.”
“이해했습니다.”
이현수가 눈을 빛냈다.
그 역시 과거에는 마약에 손을 댄 적이 있다. 김석일이 여러 방면으로 자금을 마련하길 원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현수는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 심심하면 TV나 영화에 등장하는 소재이기에 오히려 평범한 이들은 마약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한다.
그리고 강진호나 다른 이사들이 이렇게 민감하게 구는 이유는 단순히 마약이 위험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회주님.”
“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이현수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마약을 밀수하는 데 동조한 이들이 있습니다.”
“잡아.”
대답은 간단했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입니다.”
“…….”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수완이 좋다고 해도 무인들만으로 이만한 일을 벌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경찰에 넘기면 되는 일 아닌가?”
“그게 좀 어렵습니다. 경찰에 넘기려면 증거를 같이 넘겨야 처벌할 수 있는데, 그럼 우리 쪽 애들이 마약에 손을 댔다는 걸 그쪽에 알려야 합니다. 그럼 경찰에서는 체포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음…….”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기도 그렇습니다. 고기 맛을 본 놈들입니다. 애초에 질이 좋은 놈들이면 마약 거래에 뛰어들지도 않았겠죠. 우리 애들을 싸그리 정리해 버리면, 지들이 대가리가 되어서 마약을 유통하겠다고 나설 놈들입니다.”
골치 아픈 문제였다.
총회의 원칙 중 둘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하나는 ‘총회의 문제는 총회의 내부에서 해결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일반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고민성 등을 총회 자체적으로 처벌할 경우에는 그들의 신상을 경찰에 넘길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버리면 경찰은 이 일에 관여한 일반인들을 구속할 명분이 사라진다.
저들을 처벌받게 하려면 고민성들의 죄를 경찰에 넘길 수밖에 없다. 그럼 당연히 경찰은 고민성들을 처벌하려 들 것이다.
어느 한쪽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적당히 이쪽에서 한 일을 그놈들의 짓이라고 해버리면 안 되나?”
“어렵습니다. 증거를 조작하는 것도 쉽지 않고…….”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한 번 마약으로 돈을 벌어본 놈들이니, 내버려 두면 또 마약에 손을 대다 잡힐 것이다. 대한민국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사이에 반드시 피해자가 생긴다.
그걸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낮은 침묵이 회의실 안을 감돌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위긴스였다.
“그게 그리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의 시선이 위긴스에게로 돌아갔다.
“이미 우리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음?”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가지고 있다고?
“로드.”
“음.”
“총회의 범위는 어디까지입니까?”
“글쎄?”
“간단합니다. 총회의 명을 받는 무인들까지가 총회의 범주입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고도 확실한 기준이다.
“그럼 여쭈겠습니다. 총회의 명령을 받되 무인이 아닌 이들은 총회입니까, 아닙니까?”
“아니겠지.”
“그렇지요. 그럼 간단하지 않습니까? 총회가 움직일 수 있는 이들 중 무인이 아닌 이들을 이용하면 됩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폭력 조직들이 총회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지 않습니까?”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법인화를 하기 전까지 그 모든 사업장들을 대리해서 관리하던 게 그들이다. 총회는 실질적인 대한민국 암흑가의 지배자니까.
“적당한 놈들에게 이야기해 처리하면 그만입니다. 동양에는 이독제독이라는 좋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너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아닌가?”
위긴스가 윙크를 했다.
“이 바닥이 다 그런 법이지요. 그리고 이 기회에 마약에 부정적인 조직들을 좀 더 밀어주십시오. 그놈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경찰이 나서는 것보다 단속이 더 쉬울 겁니다.”
이현수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왜?”
“아뇨. 예전에 태어났으면 대단한 간신이 되셨겠다 싶어서.”
“원탁에서 배운 게 그런 것들이지. 협잡, 음모, 그리고 계략.”
위긴스는 한 치의 부끄럼도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배운 걸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될 수 있으면 위긴스에게는 거스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