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79
#1278.
협력하다 (3)
종로의 한 일식집.
내실의 룸 안에 네 사람이 앉아 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네 사람은 무거운 얼굴로 서로를 노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음식을 든 서버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손길.
익숙한 일을 하는데도 한 번 더 생각하는 게 느껴지는 서비스다.
음식을 모두 옮긴 서버들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탁.
문 닫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한숨을 내쉰다.
“숨 막힌다. 술이나 한잔하자.”
얼음 안에 든 사케 병을 든 사내가 주변을 둘러본다. 술병을 든 지 한참 됐지만 아무도 잔을 들지 않는다.
“이 새…….”
“우리가 같이 앉아서 술 퍼먹을 사이인가?”
“…….”
“괜히 입에 댔다가 골로 가기 싫으면 술병 내려놔라. 가오 잡지 말고.”
“아니,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술병을 든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쉬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쓰레기 새끼들.”
“주둥아리 함부로 놀리지 마라. 쓰레기한테 칼 맞고 쓰레기장에서 향냄새 맡기 싫으면.”
도발적인 말이 날아왔지만, 이제는 사내도 딱히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긁지 마라.”
“어쭈? 화나셨나?”
사내가 한숨을 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성질 같아서는 진짜.’
사내가 참는 이유는 눈앞의 놈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아무리 눈앞에 앉아 있는 이놈들이 만만치 않은 놈들이라고는 하지만, 사내가 겁을 집어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사내는 서울을 양분하는 폭력 조직인 이수파의 이인자 박종구니까.
“박종구, 얼굴 오랜만에 보니까 아주 좆같고 좋네. 다른 데서 봤으면 그 못생긴 얼굴 더 엿같이 만들어줬을 텐데.”
“하…….”
살살 긁는 도발이 들어옴에도 신종수가 꾹 참는 이유는 이 자리는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는 자리기 때문이다.
“걸지 마라. 야마 돌면 진짜 자리고 뭐고 다 죽이고 나도 죽는다.”
“어휴, 무서워라. 이래서 깡패 새끼는 상종을 하면 안 된다니까.”
“아니, 이 새끼가!”
“적당히들 합시다.”
쪼르르륵.
신국파의 유범영이 술잔에 술을 따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린지 몰라서 그런다면 나도 할 말 없고. 난리 치다 뒈지든 말든 구해줄 의리까지는 없으니까.”
박종구가 날카로운 눈으로 유범영을 노려봤다.
“근데 다른 사람한테 피해는 주지 맙시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서 돌아가고 싶으니까. 여기서 죽는 거보다 개죽음이 또 있겠소?”
“…….”
박종구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팽팽하게 힘이 들어간 그의 몸에 느슨하게 풀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박종구가 문제를 만든 모양새가 되었지만,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박종구가 아니더라도 문제는 반드시 벌어졌을 것이다.
왜냐면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절대 한자리에서 마주 봐서는 안 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전국은 아니더라도 수도권을 통틀어 가장 큰 네 개의 조직. 그 조직의 실권자들이 이 자리에 모여 있다. 이리저리 얽힌 일이 많아서 다른 곳에서 봤다면 칼부림이 나도 벌써 났을 것이다.
자존심 빼면 시체라는 놈들이 모였지만, 말로만 이죽거릴 뿐 서로에게 주먹이나 칼을 들이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깡패 새끼들이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네. 야, 창문 열어라. 양아치 냄새 난다.”
박종구가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농담이야, 새끼야. 앉아.”
“……예.”
박종구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한민국에서 이들을 마주하고도 저런 말을 지껄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설사 검사나 검찰총장이라 할지라도 저런 말을 함부로 지껄이지는 않는다.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조폭의 머리를 후려쳐 가며 수사하는 열혈 형사나, 조직 폭력배를 소탕하기 위해서 수사를 독촉하는 열혈 검사 같은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설사 그만한 정의감과 능력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만한 이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샌님 같은 사내는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이 동네 양아치쯤 된다는 듯 굴고 있었다.
“니들 것만 시켰냐?”
“……아닙니다. 사람 오면 달라고 했습니다.”
“센스는 있네. 근데 그 센스로 조폭 짓이나 하고 사냐? 한심한 새끼들.”
박종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돌겠네, 진짜. 저 개새끼.’
다른 이들도 속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성질 같아서는 진짜.’
‘아, 쪽팔려. 애들이 못 봐서 다행이지.’
“오, 표정이 안 좋은데? 야, 너.”
“예?”
지적당한 박종구가 화들짝 놀라 사내를 바라보았다.
“왜? 열 받냐?”
“아닙니다.”
“열 받은 거 같은데?”
“절대 아닙니다.”
사내가 피식 웃는다.
“화나고 열 받으면 이야기해. 그 화, 풀어줄 테니까. 내가 또 그런 건 잘하거든.”
“절대 아닙니다. 진짭니다.”
“그럼 다행이고.”
박종구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쪽팔린 일이지만, 그는 절대 저 사내의 눈 밖에 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손에 회칼을 들고 검찰총장의 집에 돌진하는 게 낫지, 저 사내의 눈 밖에 나고 싶지는 않다.
그랬던 이들이 어떤 꼴이 되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 바닥에서 높은 곳까지 기어 올라온 이들은 어떻게든 한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름은 적어도 이 업계에서는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는 지옥의 악마와 동급으로 취급된다.
“저…… 이…… 이…… 죄송하지만, 지금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이 실장이라고 해. 소속 바뀐 지 한참 됐잖아.”
“예, 이 실장님.”
박종구가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이, 일단 축하드립니다.”
“뭘?”
“소속 바뀌신 것.”
“하…….”
사내.
이현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
“축하받을 일인지, 동정받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맙다. 내가 살다 보니 조폭 새끼들한테 축하도 다 받아보네.”
“하하…….”
“됐고.”
이현수가 앉은 이들을 쭉 돌아봤다.
“고마운 줄 알아, 새끼들아. 대가리들 모이라고 하려다가 그래도 네가 너희 체면 봐줘서 적당한 급으로 골라 보내라고 한 거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형님은 얼어 죽을.”
이현수가 인상을 썼다.
“형님이라고 하지 마라. 내가 언제부터 너희 형님이었다고.”
“죄송합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서버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살짝 겁을 먹은 듯한 서버들의 표정을 보고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얼굴 안 펴, 새끼들아? 종업원분들이 곤란해하시잖아. 안 그래도 인상도 어디 삼청교육대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처럼 생겨서는 어디 그 면상으로 인상 쓰고 있어? 웃어.”
“예.”
살짝 일그러진 얼굴들이 억지로 펴진다.
그 광경을 본 이현수가 한숨을 쉬며 서버에게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이 새끼들이 얼굴이 더럽게 생겨서 그렇지, 병아리도 못 잡는 놈들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네? 아…… 아, 네.”
하지만 그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병장이 이등병을 데리고 상병에게 욕해보라는 꼴이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이해한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놓고 저희가 부르기 전까지는 안 오셔도 됩니다.”
“코스가 남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괜찮아요.”
“그럼…… 필요하시면 벨을 눌러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빙그레 웃으며 서버를 내보낸 이현수가 문이 닫히자마자 짜증 어린 얼굴로 돌아왔다.
“요새 조폭 새끼들은 다 왜 이런지 모르겠네. 평소 하던 대로 공사장이나 술집 같은 데서 보면 되지, 왜 멀쩡한 사람들 사는 일식집에 자리를 잡고 지랄이야? 니들 얼굴 보면 사람들이 밥 먹겠냐?”
“그래서 룸으로 왔잖습니까.”
“뭐?”
“……죄송합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유범영이 가만히 말을 건넸다.
“이 실장님.”
“왜?”
“죄송하지만, 왜 부르셨는지부터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이현수가 가만히 유범영을 노려봤다. 유범영이 살짝 시선을 내렸다.
“그래.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현수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찰칵.
그러자 박종구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담배를 꺼냈다.
“왜? 너도 피울려고?”
“……불 붙여 드리려고.”
“창문 열어, 새끼야.”
“예.”
안쪽에 따로 나와 있는 룸이라 암묵적인 흡연이 허락되는 곳이다. 하지만 다른 조폭들은 감히 담배를 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창문을 연 박종구가 다시 자리에 앉자, 이현수가 낮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너희, 이번에 마약 때문에 뒤집힌 거 알고 있지?”
“예.”
“말도 마십시오. 그거 때문에 저희도 식겁했습니다.”
“갑자기 여기저기 단속 들어오는데, 아니라고 잡아떼도 자꾸 의심하고……. 지들이 경찰이면 경찰이지, 죄도 안 지었는데 그래도 되는 겁니까?”
“어, 그래도 되지.”
“…….”
“그럼 평소에 착하게 살든가.”
박종구가 입을 꾹 닫았다. 괜히 말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여하튼 그거 때문에 그러는데, 니들이 일 좀 해줘야겠다. 너희, 이번 마약 퍼뜨린 놈들 누군지 알지?”
“알죠.”
“걔들 정리해.”
유범영이 슬쩍 이현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그거 그쪽이랑…….”
“어. 우리 애들이 벌인 일이다. 그 새끼들 우리가 싹 다 잡아들였으니까, 그 밑에서 움직인 새끼들은 니들이 정리해. 이쪽에서 절대 보복 안 들어가게 해줄 테니까.”
유범영이 머리를 긁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벌인 애들이 칠성파 놈들인데, 칠성파가 생각처럼 만만한 애들이 아닙니다.”
“니들이 정리 못해?”
“실장님, 여기 모인 조직이 넷입니다. 하나만 나서도 그 새끼들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시대가 시대 아닙니까. 요새는 조직끼리 전쟁 나서 싸워도 폭행으로 경찰에 잡혀가는 시대 아닙니까. 한두 놈 제끼는 것도 아니고, 조직 하나 박살 내는 건데…… 이거 잘못 걸리면 저희도 줄줄이 엮입니다.”
“그래서 못하겠다?”
“아니…….”
이현수의 눈빛을 본 유범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이게 좀…….”
“경찰을 이쪽에서 막아주면 정리 가능해?”
유범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게 됩니까?”
“대답이나 해, 새끼야. 어디 건방지게 되묻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경찰에서 개입만 안 한다면 칠성파 하나 조지는 건 일도 아닙니다. 저희가 제일 가까우니 저희가 하겠습니다.”
박종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새끼가 장난하나! 어디 씨발, 그걸 꿀꺽 처먹으려고! 니들, 씨…….”
퍼어억!
순간, 야구 방망이로 뭔가를 후려치는 소리가 나더니, 박종구의 몸이 직선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끄륵!”
벽에 처박혔다 바닥에 떨어진 박종구가 머리를 뒤흔들며 바닥을 기었다.
치이이이.
이현수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벌레 같은 것들이, 사람이 좀 편하게 대해주니까 정도를 모르네.”
이현수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가서 다 죽기 싫으면, 해 뜨기 전까지 너희 대가리들 집합하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