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86
#1285.
처벌하다 (5)
“총회의 규칙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면 찾아와라. 합리적인 불만이라면 언제든 받아들이고 수정해 주겠다.”
강진호가 이현수를 슬쩍 바라봤다.
그러자 이현수가 바로 입을 열었다.
“내게 오면 된다. 첫 번째로 나와 상의한 후, 합리적이라 생각된다면 회주님께 보고하겠다.”
강진호가 싸늘한 눈으로 쓰려져 있는 안대현을 바라보았다.
“그가 마약에 손을 대기 전, 내게 찾아와 불합리함을 논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마약에 손을 대고, 이제와 불합리를 논하고 있다. 같은가?”
같을 수 없다.
그 사실은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다.
“살인한 자를 죽음으로 다스리는 건 어쩌면 불합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살인자가 논한다는 건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지.”
강진호가 안대현의 옆에서 떨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안대현의 말대로 저들이 총회에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들이 받아야 할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리 생각했다면 정식으로 따져 물었어야지. 저따위 방식을 사용하는 건 평범하게 노력하는 이들을 모욕하는 짓이다.”
김원혁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강진호의 말도 맞다.
어쩌면 그가 저리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상황이 꼬이고 꼬여 도달할 미래의 일이다. 지금의 그는 그래도 성실하게 총회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규칙이 다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규칙이 틀렸다고 해서 그 규칙을 어겨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너희가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도 노력한다. 불합리한 것은 듣고 생각하고 바꿔 나가겠다. 그러니…….”
강진호가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역시 노력해라.”
“예!”
순간적으로 산이 무너질 것 같은 대답이 터져 나왔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봤다.
“계속해.”
“예, 회주님!”
앞쪽으로 달리듯 뛰쳐나온 이현수가 소리쳤다.
“고민성, 조영화, 박경호, 최찬일. 죄목, 마약 밀매, 폭력, 갈취, 횡령!”
다른 죄목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마약 밀매라는 말만이 듣는 이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인정하는가?”
고민성들이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들의 대답을 지켜본 이현수가 싸늘하게 일갈했다.
“상기한 이들은 총회의 회칙에 따라 무공을 폐하고, 사지 근맥을 잘라 총회에서 추방한다! 그리고 마약 밀매로 벌어들인 돈뿐 아니라 지금의 재산도 몰수한다!”
김원혁이 두 눈을 부릅떴다.
“와…….”
“너, 너무 심한 거 아냐?”
주변의 반응도 비슷했다. 조금 전 강진호가 분위기를 눌러놨음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반응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이나 여기에 있는 이들이 고민성들이 받는 벌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재산의 몰수 정도는 당연하다.
그리고 총회에서 추방하는 것 역시 간단하게 납득할 수 있었다. 마약에 손을 대는 건 총회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일이었으니까. 목숨을 부지한 게 오히려 다행인 수준이다.
하지만 무공을 폐하고 근맥을 자른다는 건 이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문제였다.
내공이 없어진 무인은 평범한 이들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무학을 익혀온 가락이 있으니 내공이 없다 해도 평범한 이들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지 근맥마저 잘린다면?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강해지기 위해서 평생을 바쳐 온 이들에게 일반인보다 더 약해진다는 건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하늘을 날던 새의 날개를 잘라 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주동자 안대현도 같은 형벌에 처한다. 하지만 안대현은 그 죄가 깊은바, 총회에서 추방하되, 추가로 이십 년의 금고형에 처한다.”
무공을 폐하고 사지 근맥을 자른 뒤, 감옥에 이십 년 동안 넣어놓겠다는 뜻이다.
상상도 하기 싫은 처벌 수위에 김원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팔다리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몸으로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지하 뇌옥에 갇힌다?
김원혁이라면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미쳐 버릴 것이다.
안대현이 의식을 잃은 게 다행이었다. 만약 지금 그가 의식이 있었다면, 무공이 폐쇄되기 전에 어떻게 눈치를 봐 자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중이었을 테니까.
“끌고 가.”
“예!”
넋이 나간 고민성들이 질질 끌려간다.
그 광경을 보는 총회 회원들의 가슴속에 서늘한 공포가 밀려 들어왔다.
“끝났습니다, 회주님.”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두를 훑어보았다.
표정이 얼어 있다.
딱히 그럴 의도는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이 일련의 과정이 그들에 대한 협박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회칙을 어긴 이들은 자비 없이 처벌할 테니, 절대 회칙을 어기지 말라는 협박.
조금은 오해를 바꿔줄 필요가 있다.
강진호가 조금 온화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회칙이라는 건 회의 규칙이다.”
“…….”
“다시 말하자면, 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정하는 규칙이다. 회칙을 만드는 건 너희고, 그 회칙을 지키는 것도 너희다.”
김원혁들이 의아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너.”
그때, 강진호가 김원혁을 가리켰다.
김원혁이 움찔했다.
“저, 저 말씀이십니까?”
“이름.”
“기, 김원혁입니다!”
“말해봐.”
“……예?”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할 말 있는 것 같던데, 그냥 말해봐. 피해 안 갈 테니까.”
김원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강진호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덜덜 떨린다. 심장이 쿵쾅대고,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김원혁은 용기를 짜내 입을 열었다.
“이, 이미 회칙이 지정되었는데, 저희가 그걸 정한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똑똑한가?”
“예?”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여기냐는 말이다.”
“아…… 그건 아닙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설사 이곳에 있는 이들이 다들 천재급으로 뛰어나다고 해도 모두가 참여해서 회칙을 만들라고 하면, 아마 10년으로도 부족할 거다.”
“…….”
분명 그럴 것이다.
모두의 의견을 모은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러니 똑똑한 놈을 굴려서 초안을 만들었다.”
“……네네, 편안히 사용해 주십시오.”
이현수가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강진호는 이현수의 불만 아닌 불만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만, 있는 것을 비판하고 보완하는 건 생각보다 쉽다. 사람이란 애초에 불만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니까.”
김원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분명하다.
법에 대한 지식이 조금도 없는 이들도 자신과 관련된 법이 불합리한지 합리적인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지정된 회칙을 확인하고 불만을 이야기해라. 이현수가 상대해 줄 테니까.”
그 순간, 이현수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아, 아니, 불만은 어플로 받겠습니다. 게시판을 만들 테니, 거길 이용해 주십시오. 한 명, 한 명 일일이 찾아오면…… 저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리고 이놈들이 제 앞에서 뭔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강진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수가 회칙을 나눠 줄 거다. 자신이 아는 부분을 확인하고 보완할 방도를 올려라.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택한 방식을 제안하는 이들에게는 회에서 상금 정도는 준비해 줄 테니까.”
“헐……. 회주님, 그건 미리 상의를 안 하셨는데…….”
“내가 주면 되잖아.”
“아, 예. 뭐, 그럼.”
부자가 자기 돈 푼다는데 할 말이 뭐가 있나.
“물론 그렇다고 너희에게 모든 걸 정하게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게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들은 너희가 불만을 토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다.”
강진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사실에 불만을 가지는 이들은 없었다.
애초에 총회는 회주 일 인이 모든 것을 정하는 시스템이다. 이만큼 회원들에게 뭔가를 내준다는 것도 대단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법. 언젠가는 회주가 가진 권한조차도 손을 대려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때가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 경고하지.”
강진호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여기에 있는 이들 중에서도 회칙을 어기고 죄를 저지른 이들이 있을 거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겠지. 감사를 한다고 모두가 걸리는 건 아닐 테니까.”
“…….”
등에 힘이 들어간다.
죄를 짓지 않은 김원혁조차 그 말에는 전신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들에게 경고한다. 운은 계속되지 않아. 앞으로도 내 눈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해봐.”
“…….”
“대가라는 게 뭔지 알려줄 테니까.”
김원혁은 이 순간 확신했다.
아마 적어도 한동안은 총회 내에서 회칙을 어기는 이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저 모습과 저 목소리를 듣고도 회칙을 어기는 이가 나온다면, 그놈은 반드시 크게 될 놈이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이 실장, 정리해.”
“예, 회주님.”
강진호가 돌아가 의자에 앉자 이현수가 소리쳤다.
“가까운 시일 내에 회칙에 대한 부분을 책임지는 감찰 기구를 설립할 생각이다! 총회 내의 경찰 같은 느낌이 되겠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감시보다는 뒤처리에 가깝다. 회는 여러분이 자의적으로 회칙을 준수해 주는 쪽을 선호한다. 그러니 회칙을 여러분이 고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해했나!”
“예!”
“회칙의 요약본과 원본을 어플에 업로드해 둘 테니, 다들 다운받아 확인해라. 미리 말하는데, 나중에 잡히고 나서 ‘저는 그런 거 할 줄 몰라서 못 받았습니다’라고 지껄이는 놈 있으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 버릴 거다.”
“…….”
“주변에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서라도 확인해. 알았어?”
“예!”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등 뒤로 누군가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플에 업할 수 있었으면, 우리도 그냥 그렇게 줬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생색내고 싶었나 보지.”
“쪼잔한 새끼.”
이현수가 등 뒤에서 들리는 말을 최대한 무시했다. 저 사람들에게 말리면 뒤가 없다.
“이상. 그리고 회주님께서 그동안 여러분의 고생을 감안하여 전체 휴가를 주기로 했다. 기간을 지정할 테니, 그 안에 휴가 날짜를 선택해서 제출해라.”
회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휴가?
이건 총회의 설립 이후로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실시간으로 채찍과 당근이 교차로 날아오고 있었다. 덕분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공지한다. 해산!”
“해산!”
연무장을 채운 이들이 어정쩡한 걸음으로 연무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강진호도 몸을 돌려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이현수가 재빠르게 강진호의 옆으로 다가가 나직하게 말했다.
“살인자가 범죄자를 처벌할 수 없다면, 그들 스스로 처벌하게 만들면 된다.”
“…….”
“그렇지 않습니까, 회주님?”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이현수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
완벽한 답은 그 누구도 내놓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완벽한 답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가다.
스스로가 가진 딜레마를 극복할 수 없다고 해도, 언제나 더 나은 방향은 존재한다.
강진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나아졌겠지.’
그리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