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87
#1286.
정비하다 (1)
회의실 안의 공기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되레 한 고비를 넘겼다는 듯한 안도감이 가득했다.
“주인.”
바토르가 살짝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처벌이 너무 약한 것 아닌가?”
강진호가 뚱한 얼굴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이미 회칙을 다 확인했으면서 이제 와 저러고 있다.
“회칙에 정해져 있는 내용이다.”
“그 회칙이 너무 약하지 않냐는 말이다.”
“얼마나 해야 약하지 않지?”
바토르가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몽골에서 같은 일이 있었다면, 마약을 건드린 놈들은 전신을 제압하여 바위에 묶어 들짐승의 먹이로 만들었을 것이다.”
“……기이한 일이네. 머리를 뽑아버린다고 할 줄 알았는데.”
“피가 섞인 죽음은 부정하다. 그리고 그런 편안한 죽음은 너무도 자비롭지.”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확실히 모자랄지도 모르지.”
회원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강진호 역시 이런 식으로 처벌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금고니 뭐니 거추장스러운 방법을 쓰는 것보다는 죄의 대가에 따라 패버리거나 죽여 버리는 쪽이 강진호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한 집단을 이끌어가는 이는 자신의 성향과 스타일만으로 행동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역시 이해하고 있다.
“다 목을 쳐버리면 속이야 편하겠지.”
바토르가 콧김을 뿜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없을 때는?”
“…….”
“네가? 너마저 없으면?”
“…….”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몇 사람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지 않는 규칙은 규칙이 아니야. 죄를 저지르는 이도, 그걸 처벌하는 이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맞습니다.”
이현수가 치고 들어왔다.
“법이라는 건 언제나 사람들의 감정보다는 냉정해야 합니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막 접하고 감정이 격앙되었을 때와 훗날 감정이 식었을 때,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흐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바토르가 눈을 찌푸렸다.
강진호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바토르의 심정도 이해한다.
무인계의 규칙은 가혹하다. 바깥세상에서는 별게 아닌 일로도 목이 날아가고, 전신이 뜯겨 나간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법이나 규칙이라는 건 탈선을 막는다기보다는 탈선으로 인한 피해를 막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런 면으로 봤을 때, 무인과 일반인을 동일한 잣대로 처벌하는 건 불가능하다.
같은 폭행이라 해도 일반인이 일반인을 폭행하는 것과 무인이 일반인을 폭행하는 건 전혀 다른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런 엄벌에 익숙해져 있던 바토르의 눈으로 본다면, 총회의 회칙은 지나치게 물렁할지도 모른다.
“아직 완성이 아냐.”
그러니 강진호도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말했듯이, 규칙은 이제 막 만들어졌을 뿐이야.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수정되고 더 나아지겠지.”
바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엄벌이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위긴스가 첨언했다.
“예를 들어 엄격한 법을 적용하여 일반인을 폭행한 이를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지정했다고 칩시다. 그럼 일반인을 폭행한 무인이 어찌 행동하겠습니까?”
“그야…….”
바토르가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걸리면 죽는 건 매한가지니까 패 죽여서 증거를 인멸하려 들 겁니다. 엄벌주의는 속은 시원한 면이 있지만, 죄를 막는 데 꼭 유용하지만은 않습니다.”
“벌이 엄하면 애초에 폭행을 안 할 수도 있잖아.”
“물론 그런 면도 있습니다만…….”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엄벌은 자신을 숨기게 만듭니다. 고래로 엄벌주의를 택한 나라치고 오래간 곳이 없었습니다. 불만은 쌓이고, 불신이 만연하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흐음.”
바토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팔짱을 꼈다.
“그렇지 않습니까, 회주님?”
“…….”
“사실 행동은 이렇게 했지만, 심정적으로는 바토르 님께 동의한다는 얼굴을 하고 계시군요.”
“……서양 마법에는 독심술도 있나?”
“잘하셨습니다. 이끄는 자는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어렵군.”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이건 잘하신 겁니다. 애초의 법이라는 건 형량을 낮추는 게 형량을 높이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시작부터 과도한 기준을 잡아버리면, 훗날 반드시 문제가 될 겁니다.”
“그렇겠지.”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슬쩍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알아서 잘했겠지.’
이곳에는 그보다 일을 잘 처리해 줄 사람이 많다. 단순무식해 보이는 바토르도 의외로 강진호보다 상식적이고 지식이 뛰어나다. 위긴스나 이현수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방진훈마저 오랫동안 자신의 일파를 이끌어온 경험이 있어서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감히 강진호가 따라갈 수 없는 비범함이 있다.
그런데 강진호가 왜 이런 부분을 고민하겠는가.
강진호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이현수가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일단은 어플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으니, 그 상황을 보고 이 부분은 다시 회의를 했으면 합니다. 지금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의견이 들어오고 나면 다시 수정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아니, 뭐, 뭘 바꿔야 한다는 말은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바토르가 어색하게 웃으며 한 발을 뺐다.
“어플로 의견을 받는데, 내가 어플에다 의견을 올리면 좀 이상하니까 직접 의견을 전하는 거라고 이해하면 된다.”
“아,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이현수가 살짝 웃으며 상황을 무마했다. 몇 번의 헛기침으로 분위기가 환기된다.
“그건 그거고…….”
그러고 나서 강진호가 입을 연다.
“그…… 안대현 이사의 말도 일리가 있다.”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그 개소리에 일리라고 하셨습니까?”
위긴스답지 않은 거친 말이었다.
“화가 많이 난 것 같군.”
“……죄송합니다, 로드. 개인적으로 그런 유형은 끔찍이 싫어하는 편이라…….”
“이해한다.”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강진호도 그런 스타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가 이득을 볼 때는 입을 꾹 닫고 이득을 즐기다가 동일한 사안이 손해로 다가올 때는 핏대를 세우는 자들.
사람이라면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유형이다.
“인간은 쓸데가 없지만, 말은 쓸모가 있지.”
“어떤 말을 말씀하시는지…….”
“이현수.”
“예, 회주님.”
“회를 나간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전체적으로 조사해 봐.”
“……모두 말씀이십니까?”
“‘살아 있는 이들 중에’겠지.”
이현수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중걸 체제에서 강진호 체제로 넘어오며 중년 이상의 무인들은 대량으로 회를 이탈했다. 그들을 모두 조사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하지만 회주님.”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나는 그런 호인이 아니야.”
“아…….”
강진호는 이현수가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강진호가 그들마저 지원하겠다고 나서겠다고 할까 봐 겁이 난 것이다.
‘호구도 아니고.’
지금의 총회는 강진호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중걸 체제를 살다 강진호를 겪지 않고 총회를 떠난 이들을 강진호가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상황만 보자는 거야.”
“예. 알겠습니다, 회주님.”
듣고 나니 새삼 이현수도 궁금해졌다. 과연 회를 떠난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흐음.”
살짝 얼굴을 찌푸린 이현수가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하지만 굳이 조사해 보지 않아도 짐작은 갑니다. 그리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왜?”
“사실 회주님 대나 되어서야 회원들의 삶에 신경을 쓴 거지, 그전에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시에 태권도장을 차린 이들이 돈은 더 벌었을걸요?”
“…….”
강진호가 멍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하자, 강진호의 시선이 방진훈에게로 돌아갔다.
“뭐, 그랬죠.”
방진훈마저 동의를 하자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무인이면 나름 고급 인력 아닌가? 그게 가능한가?”
과거, 중원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마교에 속한 이들은 오히려 당시의 일반적인 양민들보다 굉장히 풍족하게 사는 편이었다. 무학을 배우고 마두가 된 이들뿐 아니라 그저 마교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균 이상의 삶이 보장되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당시의 마교는 사교로 배척받는 곳이었다. 그만한 메리트가 없다면 누가 마교에 투신하겠는가.
그런데 과거의 중원도 아니고, 현대의 총회가 평범한 이들만큼의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는 건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리 적은 돈을 받은 게 아닌 것 같은데?”
“그건 저 때문입니다.”
방진훈이 어깨를 으쓱한다.
“원래는 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는데, 제가 세력을 모으기 시작하니까 달래겠다고 월급을 올린 거죠. 실제로 효과도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런 불합리를 참았다고?”
“그게…….”
방진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인식이 그렇게 박히면 가능합니다. 무인이 물질에 연연하면 발전할 수 없다든가, 무학을 익히는 이들은 돈에 관심을 끊고 수련에만 전념을 해야 한다든가.”
“……그게 통한다고?”
“한국에서는 통합니다.”
“하.”
강진호가 헛웃음을 지었다.
무인이라고 이슬만 먹고 사는 게 아니다. 심지어 과거에도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정파들조차 사업을 크게 벌였다.
소림은 당시에도 천하에서 가장 큰 절이라 향화객이 끊이지 않았고, 무당 역시 수많은 후원금을 받으면서도 따로 사업까지 진행했다.
당연히 소림이나 무당에서 무학을 배우는 이들도 삶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부유한 문파가 그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으니까.
“수완이 좋다고 해야 할지…….”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건 총회의 문제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이 겪어온 사회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IMF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이 돈에 집착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으니까.
굳이 총회로 국한하지 않아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을 착취하던 사회였다.
“일단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 근데 그전에…….”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급한 불은 껐으니까 휴가 다녀와, 다들.”
“오!”
“휴가 좋지요.”
바토르와 위긴스가 미소를 지었다. 딱히 할 일이 없다고 해도 휴가는 언제나 좋은 일이다.
“에이, 휴가 가려면 일 몰아서 해야 하는데…….”
“그럼 안 가실?”
“갑니다! 왜 안 갑니까!”
방진훈마저 항복하자 회의실에 웃음꽃이 폈다. 그 안에서 웃지 못하는 이는 하나뿐이었다.
이현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정말 가도 됩니까?”
“그럼 가짜로 가?”
“아니, 좀 어색해서…….”
이현수가 답지 않게 어물쩍거렸다.
“뭐가?”
“제가 이 업계에 투신한 지가 20년이 넘었습니다만…….”
대체 언제부터 이 짓을 한 거지?
20년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뭔가 어마어마하다.
“여하튼 그랬는데, 제가 20년 동안 휴가를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20년 동안?”
“예.”
“…….”
멍하니 이현수를 바라보던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눈가를 꾹꾹 눌렀다. 다른 이들도 차마 이현수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직장인이 여기에 있다.
회의실이 일시에 슬픔에 빠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