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89
#1288.
정비하다 (3)
“요즘 카페가 어떤지 아십니까? 길 가다 고개만 돌리면 카페예요. 세 발짝마다 하나씩 있단 말입니다.”
“그렇지.”
“역 주변이랑 번화가는 프렌차이즈가 점령하고, 조금 벗어나면 개인 카페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밥집보다 카페가 더 많은 상황인데, 뭔 놈의 카페 프렌차이즈입니까!”
“그도 그렇지.”
구정범이 불같이 성토해 댔지만, 황민수는 태연했다.
“거…….”
“이 사람아.”
황민수가 구정범의 말을 잘랐다.
“처음으로 맡은 일이야. 어렵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못하겠다 소리부터 할까?”
“끙…….”
구정범이 앓는 소리를 냈다.
‘만날 말은 저렇게 한다니까!’
황민수의 속내가 전혀 다르다는 건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여기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황민수는 황정후의 양육 방식을 굉장히 증오하는 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증오스런 황정후의 가르침은 황민수의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
덕분에 누가 봐도 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황민수는 쉽게 포기할 줄 모른다. 일단 머리를 들이대 보고 깨지든 터지든 겪어보고서야 발을 빼는 타입이 되어버렸다.
그걸 막는 게 여기 있는 세 사람의 역할이긴 하지만…….
‘눈에 의욕이 너무 보이는데.’
저렇게 스위치가 들어가 버린 황민수는 아무도 못 말린다. 황정후가 불도저라 불리듯이, 황민수도 불도저는 못 되어도 포클레인 정도는 된다.
“일단 커피 맛은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최병찬이 가볍게 커피를 들이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 이사.”
“예?”
“가서 따뜻한 걸로 네 잔 다시.”
“……예.”
구정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군말 없이 카운터로 가 커피 네 잔을 주문했다.
“자리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자리로 돌아온 구정범이 살짝 눈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커피 맛이야 괜찮다지만, 어차피 카페가 커피 맛으로 승부하는 곳은 아니잖습니까? 쟤는 믹스커피랑 드립 커피 맛도 구분 못할 텐데, 이틀에 한 번은 카페에 가는 놈이라구요.”
구정범의 지적에 노태광이 움찔했다.
“뭘 구분을 못한다고?”
“아냐?”
“…….”
노태광이 딴청을 부렸다.
사실 그는 커피 맛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냥 향이나 맡고 따뜻한 걸 뱃속에 밀어 넣는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리고 카페 수익은 커피로 내는 게 아닙니다. 커피보다는 다른 음료나 케이크 등으로 내는 거죠. 어차피 아메리카노 같은 건 저렴해서 수익도 잘 안 나잖습니까.”
노태광이 피식 웃었다.
“저거, 또 버릇 나오네.”
“뭐?”
“야, 그렇게 다 잘되어 있는 곳이면 자기가 알아서 프렌차이즈가 되지. 알아서 잘될 곳을 무는 게 사업이냐? 어? 그럼 너는 돈 왜 받는데? 지나가는 중학생 데리고도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면서!”
“…….”
“모자란 게 있으면 채우면 그만이지.”
노태광의 말을 들은 최병찬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노 이사 말이 맞다.”
최병찬까지 노태광의 편을 들고 나서자 구정범이 침음을 흘리며 살짝 물러났다.
“그런데 구 이사의 말이 틀린 건 또 아닙니다.”
최병찬이 진중한 눈으로 황민수를 바라보았다.
“커피 맛이 괜찮다고는 하지만, 카페라는 건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곳이 아닙니다. 공간과 문화를 파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여기는 특별하게 사람을 잡아끌 요소가 없어 보입니다.”
“으음.”
“그런데 굳이 여기를 프렌차이즈화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회장님이 가보라고 하시더군.”
“회장님이라면?”
“MK 회장님 말일세.”
“으음, 그렇군요. 여기를…….”
네 사람이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본다.
“인테리어가 너무 촌스럽지 않습니까?”
“촌스럽다기보다는 싸구려인 것 같은데? 저런 자재로는 아무리 잘 꾸며도 애매할 수밖에 없지.”
“손봐야 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전문가가 아닌 우리 눈에도 이렇게 보인다면, 답이 없다고 봐야죠.”
카운터에서 네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성주천이 눈을 질끈 감았다.
‘끄응.’
물론 저 사람들도 매너가 없는 건 아니라, 성주찬의 귀에 들리지 않게 작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무인으로서 닦여진 날카로운 감각은 그 작은 대화를 외면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듣지 않고 담담한 척하려고 해도 모든 대화가 귀로 쏙쏙 빨려 들어온다.
“여기로는 무리지.”
“음,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됩니다.”
“기초부터 다시 짜야겠는데요.”
세 사람의 반응에 황민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는 영 찝찝해하더니.”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어느 회사든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시키는 일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나뉘는 거죠. 아무리 불합리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이왕 할 거면 확실하게 성공시켜야 합니다.”
노태광과 구정범이 뜨거운 눈으로 황민수를 노려보았다.
황민수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고 말았다.
‘옛날 생각이 나는구먼.’
과거에도 이랬다. 시작하기 전까지는 티격태격대고 맞는 게 하나도 없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지금처럼 하나의 의견을 냈다.
이상하게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었다.
“아아, 감정 넣지 마시고!”
“담백하게 갑시다, 사장님.”
“누가 감정을 넣어!”
다급하게 도리질을 친 황민수가 어색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담배 피우고 올 테니까.”
“잠시만요.”
최병찬이 황민수를 저지했다.
“그러지 마시고, 자리 옮기시죠. 제가 추천하고 싶은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오?”
황민수가 눈이 휘둥그레져 최병찬을 바라봤다.
최병찬은 완벽한 확신 없이는 말을 가리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최병찬이 말을 꺼낼 때는 분명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멀어?”
“차 타고 가면 금방입니다.”
“가자.”
황민수가 볼 것도 없다는 듯 가방을 집어 들었다. 구정범이 일어나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빠르게 피우고 출발하자.”
“저희 담배 안 피운다고 했잖습니까.”
“아, 그렇지. 그럼 차 가지고 와. 나는 일단 한 대 피울게.”
“어휴.”
네 사람이 투닥대며 밖으로 나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주찬이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회주님은 또 뭘 하시려는 건지.”
기대보다 걱정이 더 앞서는 성주찬이었다.
* * *
“여기야?”
“예!”
“……빈티지하네.”
황민수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뭔가 느낌이 그가 원하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여기는 뭐랄까, 프렌차이즈라기보다는…….
‘공방이라던가?’
조금 삭막하게까지 느껴지는 인테리어나 미니멀하다는 건 최근 트렌드와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일단 앉아보십시오.”
“음.”
황민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서버가 주문을 받으러 온다.
‘올드해.’
황민수가 눈을 찌푸렸다.
요즘 세상에 주문을 받는 서버라니. 시대착오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한 20년 전으로 워프한 기분이었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네 잔.”
“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교육은 잘 받은 듯하지만, 그게 전부다.
없어야 할 것은 없어야 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예쁘게 단장한다고 해도 기능성이 받쳐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황민수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최병찬이 슬쩍 입을 열었다.
“일단은 커피 한잔하시고 이야기 나누시지요.”
“으음, 커피는 좋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 보이십니까?”
황민수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카페 안을 사람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저녁 아홉 시쯤에 접어드는 시간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장사가 잘되다 못해 터져 나가는 수준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이다.
‘내가 감이 떨어졌나?’
생소한 분야라 해도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다는 자신이 있는 황민수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몰리는 곳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다?
황민수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일단 드셔보시면 압니다.”
“음.”
최병찬이 장담했지만, 구정범과 노태광도 영 불안하다는 얼굴이었다.
다행히 금세 커피가 나와 어색한 분위기가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무늬 없는 흰색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본 황민수가 미묘한 얼굴을 했다.
‘이건 차라리 낫네.’
인테리어 센스로 봐서 어설프게 예쁜 잔을 고르려 했다가는 대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별생각 없이 커피를 들고 입가로 가져가던 황민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잔을 살짝 밀어냈다.
‘뭐지?’
코로 밀려 들어오는 향이 지금까지 먹던 커피와는 전혀 달랐다.
“와…… 이거?”
노태광이 놀란 눈으로 황민수를 바라봤다.
노태광도 느낀 모양이다.
이 중 입맛은 가장 둔하다고 할 수 있는 노태광이 느낄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니, 아니지.’
황민수가 얼굴을 굳혔다.
‘내가 감이 떨어지긴 했구나.’
사업을 하는 이가 항상 경계해야 하는 건 흥분이다.
아이템에 목을 매는 이는 조금만 새로운 아이템만 봐도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평소 침착한 눈으로 본다면 별것 아닌 아이템도 흥분한 이의 눈에는 천금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카페 프렌차이즈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니, 조금만 괜찮아 보이는 것에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황민수가 마음을 가다듬고 커피를 다시 들었다.
“아니, 그런데 진짜 향이…….”
침착한 마음으로 향을 맡아봤지만, 이번에도 향이 확연히 다르다.
“향이 진짜 좋습니다.”
“……잘 만든 커피라는 건 이런 거구나.”
다른 이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황민수가 기대감을 품고 커피를 입에 한 모금 머금었다.
‘커피다.’
그냥 커피다.
굉장한 맛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당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만큼 특이한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뭐랄까…….
“이게 잘 만든 커피라는 거네요.”
“잘 ‘뽑은’이라고 해야지, 인마.”
“그거나 그거나.”
황민수의 생각도 노태광과 비슷했다.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입안에서 감도는 맛에서 뭔가가 느껴진다. 커피를 잘 알지 못하는 그들마저 느낄 수 있을 만큼 확연한 뭔가가.
“비슷해서 모셨습니다. 커피는 괜찮고, 인테리어라든가 감각은 애매한 느낌이…….”
“확실히 그러네.”
굳이 따지자면 여기가 진짜고, 그쪽이 마이너 카피인 느낌.
“확실히 참고가 되네.”
황민수의 말에 최병찬이 미소를 지었다.
“인테리어 같은 부분은 저희가 어떻게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료는 연구에 돈을 바른다고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지. 그래, 그렇지.”
“협조를 얻을 수 있다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겁니다.”
최병찬의 말에 황민수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 맛까지는 무리겠지만,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확실히 차별화를 둘 수 있다.’
어디 카페가 맛만으로 승부할 수 있겠냐마는, 우선 맛을 잡아두면 한 가지는 해결된 것 아닌가.
황민수가 단호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음료를 날라준 서버에게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저기…….”
“네?”
“여기 사장님 계십니까?”
“예?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닙니다. 사업적인 일 때문에 사장님을 잠깐 뵈었으면 하는데요.”
“아, 그럼 저쪽에…….”
서버가 가리킨 곳에서 한 남자가 신중한 얼굴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황민수가 그 남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미묘하게…….
아주 미묘하게 안면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