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98
#1297.
거래하다 (2)
“쿠데타요?”
“예.”
이현수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간다.
북한과 쿠데타.
맞물리는 느낌은 아니다.
‘아니, 이상할 것도 없지.’
불과 몇 년 전에 한 번 일어날 뻔한 일이다. 전임 위원장이 죽고 지금의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던 과정에서 쿠데타에 대한 우려가 쉼 없이 제기되던 시절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아무리 권력 구조를 확고히 만들어놓았다고 해도 새파란 어린아이에게 머리를 숙이는 게 그리…….”
순간, 이현수가 입을 닫고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왜?”
“회주님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
“아니, 생각해 보니 회주님이 걔보다 어린 것 같아서…….”
“……하던 거 계속해라.”
“예.”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러니까…… 지금 쿠데타의 기미가 감지되고, 그 뒤에서 중국이 은근히 지원하고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 먼저인가가 그리 중요한 상황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지요.”
중요한 건 쿠데타에 대한 시도가 있다는 거지, 그걸 누가 주도하고 있느냐가 아니다.
“제가 알기로는 북한에서 쿠데타 시도가 이미 몇 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게 모두 진압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김명찬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시도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모두 진압되고 세습이 이어지는 중이지요. 다만, 이번엔 그 경우와는 다릅니다. 그동안 북한의 수뇌부들은 은근히 중국의 비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쿠데타를 시도하는 쪽에서도 마지막까지 과격하게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국이 오히려 쿠데타를 시도하는 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김명찬이 물로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 북한의 국방위원장은 전대들보다는 입지가 확고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나이도 어린데다가 여러 가지 일로 민심을 꽤나 잃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쿠데타 세력들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거기에 중국의 지원까지 합쳐지면…….”
김명찬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희는 쿠데타 성공 확률이 매우 높다고 파악하는 중입니다.”
“……얼마나?”
“최소 구 할.”
구 할.
그것도 최소라…….
‘성공한다는 말이네.’
실패 확률이 10%라면 모든 걸 걸어봐도 될 만한 확률이다. 거기까지 갔다면 쿠데타는 무조건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
“그쪽은 알고 있습니까?”
“안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습니다. 생존을 도모하는 법은 타국으로 망명하는 것뿐입니다만, 군부가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음…….”
이현수가 미간을 좁혔다.
김명찬의 말대로라면 쿠데타 시도를 파악한 뒤에도 저항이 불가능할 만큼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뜻이다.
‘상황이 거기까지 가버렸다는 건가.’
턴이 바뀌었다고 느낀 이현수가 슬쩍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그 쿠데타에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는 겁니까? 어차피 지금도 막장 아닙니까? 그 돼지 새끼가 무슨 인격자도 아니고, 심심하면 사람 죽여 대는 놈인데.”
“물론 그리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외적으로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만…… 정치라는 건 호오를 가리는 게 아닙니다. 이득이 되는 이와 이득이 되지 않는 이를 가리는 거지요.”
“이득이 된다?”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금의 국방위원장이 꼭 필요하다 판단하고 있습니다. 리기광은 굉장히 과격한 자이고, 한국에 대한 인식이 무척이나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표적인 친중파이기까지 합니다.”
“한국이 싫어할 만한 요소는 다 모아놨네요.”
“예. 리기광은 상대하기 너무 어려운 자입니다. 그가 북한을 장악한다면 지금까지 만들어둔 관계가 모조리 파탄 나는 건 물론이고,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될 확률이 높습니다.”
“전쟁입니까?”
“생각이 있다면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다는 건 해외의 투자가 감소된다는 소리죠. 평범한 이들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이현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북한을 지배하는 이를 보호할 가치가 있는가.
솔직히 이현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막장인 인간이 북한을 장악하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김명찬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런 사정이 있었습니다. 회주님, 기분이 나쁘실 만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정부의 잇속을 채우려 드린 말씀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 주십시오.”
강진호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상황은 이해했다. 그리고 그 상황이라는 게 처음 들은 것처럼 기분 나빠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그 일을 직접 행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강진호가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뿜으며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북한으로 잠입하여 그 리기광인가 하는 놈을 죽이고 돌아오라?”
“절대 아닙니다.”
김명찬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되레 당황한 건 강진호였다.
“……아니라구요?”
“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북파 공작원에게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회주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이건 죽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들키지 않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무리수까지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뭘 부탁하고 싶다는 겁니까?”
김명찬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강진호가 조금 더 협조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다행히 호기가 있습니다. 저희가 입수한 정보대로라면 다음 주 경에 리기광이 중국을 방문할 것 같습니다.”
“중국?”
“예. 아마 쿠데타 전에 중국의 고위층에 직접 접촉해 허가를 받겠다는 의미 같습니다.”
“음…….”
알 것 같았다.
“리기광이 북한에서 죽는다면 문제가 되지만, 중국 내에서 죽는다면 타국에 책임을 떠넘기기가 어렵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북한 내에서 사망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로 정리가 됩니까? 쿠데타 세력은 그대로 남아 있을 텐데?”
“기본적으로 쿠데타에 가담하는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합니다. 결행 직전까진 철저한 점조직으로 운영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야 한쪽이 걸린다고 해도 일망타진당하지 않기 때문이죠.”
김명찬이 목이 탄다는 듯 다시 물을 들이켰다.
탁, 소리가 나게 물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김명찬이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그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배어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이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렇기에 중심축이 붕괴한다면 단번에 힘을 잃어버리는 게 쿠데타입니다. 저희는 리기광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저들의 시도를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대충 이해했다.
정리하자면 북한 내에 쿠데타의 움직임이 있고,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이가 한국에서는 환영할 수 없는 이다. 그래서 제거할 수 있으면 제거하는 게 좋은데, 마침 그자가 다음 주에 중국을 방문한다.
그 기회를 틈타 중국으로 넘어가 리기광을 제거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현수가 슬쩍 강진호에게 시선으로 동의를 구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이현수가 살짝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총리님께서 뭘 원하시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전에 몇 가지를 먼저 확인하고 싶습니다.”
“예.”
“저희보다는 특수부대를 운용하는 쪽이 더 낫지 않습니까?”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김명찬이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그게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를 떠나서, 타국의 영토에 군인을 파견하고 암살을 시도한다는 건 용인될 수 없는 일입니다.”
“들켰을 때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김명찬이 멋쩍게 웃었다.
“사실 세계 곳곳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의 주도로 살인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평범한 이들은 알 수 없을 뿐이지요. 저도 깨끗한 척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가지고 올 이익 이상으로 리스크가 크기에 시도를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는 민간인 신분이고 말이죠.”
“정확합니다.”
“그 말은…… 혹여 걸리게 된다면 국가에서는 입을 닦겠다는 말 같은데요?”
“……그것도 정확합니다.”
“흐음.”
이현수가 턱을 쓰다듬었다.
굉장히 뻔뻔한 말이지만, 이해가 간다는 게 아이러니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잡아뗄 수밖에 없다. 아니면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사태니까.
“결국 지원은 바랄 수도 없고, 우리가 알아서 중국으로 가 북한 놈을 암살, 그것도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자연사로 위장하여 암살한 다음에 알아서 중국을 빠져나와 한국으로 돌아오면 된다?”
김명찬이 대답 없이 멋쩍게 웃었다.
이게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 김명찬도 잘 알고 있었다.
“거절하겠습니다.”
“…….”
하지만 대답이 이리 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 실장님.”
“무리한 요구입니다. 받아들일 이유가 없지요.”
이현수가 고개는 내저었다.
“마약과 관련해서 문제가 된 부분은 저희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과도한 불이익이 돌아온다면 반발하겠지만, 최대한 이해하고 감수하겠습니다. 그럼 그걸로 끝이지요. 이 사안과 그 사안을 교환하자는 건 거래가 아닙니다.”
이현수의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협박이죠.”
김명찬이 당황한 듯 움찔한다.
“절대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이가 맞지 않는 조건을 내미는 걸 협박이라고 하는 겁니다.”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 저는 실장님이 생각하시는 만큼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감히 총회를 협박할 입지도 못 됩니다.”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이 정할 일이지요.”
부드러운 말속에 칼날이 숨어 있다.
강진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다. 그리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지요.”
강진호가 두 사람의 말을 끊었다.
“서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테니, 다음에 다시 뵙는 걸로 하겠습니다.”
“회주님.”
김명찬이 다급하게 강진호를 불렀다.
“이 일은 저나 정권의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정 의심스러우시다면 야당의 당대표를 동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오로지 애국을 위한 일입니다.”
“그래서요?”
“……예?”
강진호가 무심한 눈으로 김명찬을 바라보았다.
“그럼 뭐가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
김명찬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생각을 짜낸 끝에 꺼낸 말은 그가 생각해도 궁색했다.
“이건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위한 일입니다. 회주님께서 결단을 내려주시면…….”
“미안하지만…….”
강진호가 김명찬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잘라 버렸다.
“애국과 희생은 자발적으로 나올 때 그 의미가 있는 거겠죠. 타인이 애국을 강요하는 순간, 이미 애국은 사라지는 겁니다.”
“…….”
“거래는 깔끔한 게 좋습니다. 균형을 맞춰 오십시오. 그럼 한 번쯤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강진호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자, 이현수도 김명찬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강진호를 따라 나갔다.
홀로 방 안에 남겨진 김명찬이 살짝 떨리는 손으로 새 담배를 입에 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밥이라도 먹고 가지.”
혼자 먹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