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05
#1304.
정진하다 (4)
“협상은 대충 끝났습니다.”
“음.”
강진호가 이현수의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총회보다는 MK 쪽에서 지원을 받는 게 나을 것 같아 이현주 실장과 상의해서 요구 사항을 확정했습니다. 회주님의 허가만 떨어지면 바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진행해.”
“……보셔야죠.”
“내가 본다고 뭘 아나?”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회주님, 정말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래도 회의 중요한 안건은 회주님이 직접 확인을 하시고…….”
“이 실장이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이현수의 이마에 핏대가 선다.
“그렇게 부려 먹지 마시고! 최소한 확인이라도 하시란 말입니다!”
“허허허, 나는 이 실장의 말에 동의한다, 주인.”
바토르가 이현수를 지원사격했다.
순간 신이 난 이현수지만, 바토르가 쏜 포탄은 방향을 틀어 이현수에게로 떨어졌다.
“주인이 그런 걸 확인 안 하고 자꾸 맡겨주니까 사람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자꾸 목소리를 높이는 것 아닌가. 초원에서라면 저런 부하는 허리를 뒤로 접어버렸을 텐데.”
“…….”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허리를 뒤로 접는다니, 좀 잔인하지 않습니까?”
“원탁에서는 어떻게 했는데?”
“저희는 그냥 지하 감옥에 가두는 정도로 해결합니다.”
“감옥에는 돈이 들잖나.”
“그래도 꼴에 무인이랍시고 밥 안 줘도 안 죽더군요. 물론 방역으로 쥐를 모조리 잡아버릴 수 없다는 게 귀찮은 일이지만.”
“…….”
아니, 그거 지하 감옥에 갇혀서 쥐 잡아먹고 산다는 말 아닌가.
차라리 허리를 뒤로 접어 죽이는 게 더 자비롭겠다.
“사람이라는 건 말이지, 이상하게 잘해주면 기어오른단 말이야. 보통은 잘해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자기도 좀 더 공손하려고 애써야 할 것 같은데.”
“이치대로만은 살지 못하는 게 사람인 법이죠.”
“그렇지.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주인?”
이현수가 땀을 뻘뻘 흘렸다.
하지만 강진호가 던진 폭탄은 이번에는 바토르에게로 갔다.
“……너나 좀 잘하자.”
“내, 내가 왜?”
“기어오르는 게 문제라고? 그게 네가 할 말인가?”
바토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닫았다.
“잘해주면 기어오른다. 공손해야 하는데 공손하지 않다. 이거 완전…….”
“생각해 보니 내로남불이군요.”
강진호가 머리를 꾹꾹 눌렀다.
‘외국인이 내로남불이라는 말 자연스레 쓰지 마!’
이제 위긴스는 한국에서 한 30년 산 사람 같다. 아무리 워낙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언어에 대한 습득력이 높다지만, 최근에는 강진호보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 느낌이었다.
방진훈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내로남불이 아니라 동족 혐오라고 하는 겁니다.”
“오, 일리가 있군.”
“둘 다 입 닫아라…….”
바토르가 살짝 으르렁대자 방진훈과 위긴스가 딴청을 부렸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내저었다.
“계속하지.”
“……네.”
이현수가 입을 삐죽이고는 다시 브리핑을 시작했다.
“자잘한 요구 사항이 있긴 하지만, 핵심은 몇 가지 안 됩니다. 첫 번째는 일본 진출에 대한 지원을 받을 겁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몇 가지 사안에 예외를 적용받기로 했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지속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2년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살짝 헛웃음이 나온다.
사실 이 모든 일이 시작된 이유는 총회가 대한민국의 실정법을 위반하고 제멋대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 일에 대한 책임은 강진호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주는 대가가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거라니.
‘머리가 어디 있고, 발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군.’
아무리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 곳이라지만, 입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두 번째로는 기숙사 문제를 해결할 생각입니다. 개발 제한구역 중 일부에 기숙사 설립을 허가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자체적으로 해결하라고 하지 않았나? 굳이 그럴 필요가…….”
“기숙사를 세운 지역에 개발 제한이 풀리면 땅값이 스무 배는 뛰겠죠.”
“…….”
“기숙사비를 받는 쪽으로 진행하면 손해가 없습니다. 금전적으로는 이득만 볼 테고, 애들 관리도 용이해지니 괜찮습니다.”
위긴스가 살짝 손을 들었다.
“예.”
“말을 끊어서 미안한데, 혹시 MK에 재직하는 이들은 다들 기숙사에 들어가겠다는 의지가 있는 건가?”
“예. 생기기만 한다면 당장에 입주하겠다고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추세입니다.”
“……동양인은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없나?”
“아, 있죠. 그런데 프라이버시가 돈보다 세지는 않습니다. 강남에 가서 원룸 한 번 구해보시면 돈으로 프라이버시를 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실 겁니다.”
“굼벵이 앞에서 주름 잡는군. 런던 집값이 얼만지는 아나?”
“……번데기입니다.”
“아, 그래. 번데기.”
그러니까 외국인이 그런 속담 쓰지 말라고.
이번에는 방진훈이 손을 들었다.
“예.”
“내가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그게 가능한 일이야? 개발 제한 구역은 말 그대로 개발을 제한한 거잖아. 그런데 건물 설립하라고 그걸 풀어준다고? 너무 티 나는데?”
“아니요. 협의하에 매입할 땅을 선정하고, 매입하고 나면 그때 제한을 풀 겁니다. 아마 몇몇 구역이 같이 선정되겠죠. 그럼 저희는 그때 가서 기숙사를 만들면 됩니다.”
“그럼 오래 걸리잖나.”
“방법이야 많죠. 적당한 곳에 기숙사를 짓는다고 미리 준비하는 겁니다. 자재 수급해 놓고, 선조립할 건 해두고, 살짝 기다리다가 개발 제한이 풀리면 부지를 이동해서 공사를 시작해 버리면 됩니다. 나중에 말 나오면 원래는 다른 곳에 지으려고 했다고 해버리면 그만이죠.”
“……진짜 더럽네.”
“인생, 원래 그런 겁니다.”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그 외에도 자잘한 내용은 많습니다만, 그건 총회보다는 MK와 관련된 일이니 황민수 사장님께 직접 들으시면 됩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진행해.”
“예, 회주님.”
이현수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준비한 일이 잘 풀려 진행될 때의 쾌감은 아직까지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힘들다.
“그리고 음…….”
이현수가 살짝 표정을 바꿨다.
“이번 중국행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중국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사들의 안색이 바뀌었다. 회의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사실 홍왕계와 저희는 서로 동맹을 맺은 사이라 그렇게까지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허울뿐인 동맹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음.”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은근히 뒤통수는 치는 놈들인데, 대놓고 뒤통수는 치지 않는다?
절대 믿을 수 없는 놈들인데, 은근히 믿을 구석이 있다?
‘말이 안 되잖아.’
웬만해서는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 이현수지만, 이번 사안은 영 어려웠다.
그런 이현수의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강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구차하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예, 제 생각에는.”
“흐음, 흥미롭군.”
위긴스가 빙그레 웃으면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 실장은 지금 개인의 생각이라는 아주 유쾌한 이유로 로드를 중국에 보낸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말이지?”
“…….”
이현수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정리하자면 그렇게 된다.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그럼 그 생각이라는 게 틀렸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지? 그 생각이라는 걸 떠올린 머리를 잘라내는 정도로는 그 죄를 다 갚을 수 없을 텐데?”
“위긴스.”
“예, 로드.”
“따로 한국어를 배우는 곳이 있나?”
“…….”
“아니, 좀 이상해서.”
“독학입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서 천재들이랑은 상종을 하면 안 된다.
“그건 이현수를 탓할 일은 아니야. 내가 정한 거니까.”
“로드.”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제가 가게 해주십시오. 로드께서 중국에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 가서 염색하고 피부색 바꾸고 와.”
“…….”
방진훈이 낄낄대며 맞장구를 쳤다.
“코도 좀 깎아야겠는데.”
“크흠.”
방진훈이 손을 들려는 순간, 강진호가 방진훈의 말을 가로 막았다.
“중국어 할 수 있어?”
“…….”
“바토르는 입 열지 마라.”
“끄응.”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억울하면 좀 평범하게 생기든가. 나라고 좋아서 가는 건 아냐. 그리고 위험성도 잘 알고 있고. 그런데 이건 해야 하는 일이다. 위험하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야.”
이사들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현수가 말을 이었다.
“일단 이번에 가야 할 북경은 홍왕계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곳입니다. 북경은 창왕계의 영토니까요. 하지만…… 예기치 않은 변수가 벌어진다면 창왕계마저 적으로 돌아설 확률이 있습니다.”
“지금은 적이 아니라는 건가?”
“창왕은 굉장히 셈이 빠른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기본적인 셈만 할 수 있다면, 저희를 굳이 건드려 전력을 낭비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겁니다.”
“모두 예측일 뿐이지.”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머릿속에서 계산한 일이 모두 그대로 벌어지지는 않는다. 어떠한 변수가 있을지 몰라.”
“예. 알고 있습니다.”
“동원할 수 있는 힘은 모조리 동원하고, 지원할 수 있는 힘은 모조리 다 지원해야 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긴스가 이리 나오는 이유를 이현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총회는 강진호를 잃으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곳이다. 아무리 장기말이 많이 남아 있어도 왕이 잡히는 순간, 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복잡하게 굴지 마.”
“……예?”
“나 혼자 간다.”
“회주님!”
“로드!”
“주인, 그건 절대 허락할 수 없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잘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인데, 전에 내가 중국에 갔을 때 죽을 뻔한 것 기억하나?”
바토르가 박수를 쳤다.
“크으, 그 쪽팔린 일을 잘도 입에 담는군. 역시 주인은 대장부다. 감탄했다.”
“나가서 머리 박고 있어.”
“…….”
바토르가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다들 고소하다는 얼굴로 그런 바토르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토록 위험했던 이유는 하나야. 짐이 너무 많았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마교도들을 탈출시켜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강진호는 손쉽게 몸을 뺐을 것이다. 하지만 마교도들이 모두 탈출하도록 시간을 벌어야 하다 보니 큰 위기에 휘말린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가 혼자면 움직이기가 편하다. 일을 쉽게 봐서 혼자 가겠다는 게 아냐. 오히려 일이 어려울 수 있으니 혼자 간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머리로는 알겠는데, 이해하긴 힘듭니다. 그래도 혼자는 안 됩니다. 일본에 있는 마염들이라도 데리고 가십시오.”
“걔들 중국에서는 바보 될 텐데? 길도 모르는 애들을 데리고 가라고?”
“아…….”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딱 좋은 인원들로 제가 선발을 해뒀습니다.”
“응?”
강진호가 이현수를 돌아보았다.
이현수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