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07
#1306.
잠입하다 (1)
‘불합리하다.’
인생은 합리적이지 않다.
누군가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평생 걱정없이 살아가고, 누군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세상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설파하지만, 세상을 조금이라도 겪어본 이들은 이 평등이 얼마나 허울뿐인 소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누군가는 조각상 같은 외모로 태어나고, 누구는 오징어로 태어나는 세상에서 평등을 찾는 것만큼 허무한 일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불합리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세상을 발전시켜 왔다.
근본적으로 벌어지는 차이를 보정하고, 누구나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체계와 시스템을 만들어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체계와 시스템이 되레 사람의 목을 조여오는 상황을 강진호는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시스템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왜…….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
바토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물론 주인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세상 일에는 반드시 변수라는 게 존재하기 마련이지.”
“맞습니다.”
위긴스가 맞장구를 쳤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계획대로만 일이 풀린다면 세상에 전쟁이란 없을 겁니다. 언제나 계획대로만은 흘러가지 않는 게 사람이 하는 일인 법입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놈이 변수에 대처하는 능력은 나름 뛰어나니 데리고 가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강진호가 멍한 눈으로 이현수를 가리켰다.
“저 짐 덩어리를?”
“로드의 능력이라면 짐 하나 짊어지는 정도로는 티도 안 날 테니까요.”
그런 가벼운 짐이 아닌 것 같은데?
강진호의 시선이 다급하게 방진훈을 찾았다.
총회의 이사는 모두 세 명. 그리고 이사와 동급, 그 이상으로 취급되는 마교의 장로 장민이 있다.
장민이 자리를 비운 이상, 방진훈만 동조해 주면 강진호를 포함하여 의견이 이 대 이로 갈린다. 그럼 희망을…….
“그냥 관광 간다 생각하시고, 데려가십시오.”
“…….”
“어차피 회주님이 혼자 가시면 또 삭막하게 일만 하고 돌아오시겠죠. 최근에 큰일이 많았으니, 좀 쉰다고 생각하시면 되죠.”
흐뭇하게 웃는 방진훈을 보며 강진호도 마주 웃었다.
‘제정신이 아니네.’
홍왕계가 이를 뿌득뿌득 갈고 있는데, 그들의 땅인 중국에 뭐?
휴가?
휴가~아?
강진호는 지금 이 사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야.’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도 하나같이 PTSD에 시달리는데, 평생을 전투 속에서 살아가는 무인들이 제정신이기를 바라는 게 무리다.
아무리 심법이 최대한 보호를 해준다고 하지만…….
‘그러고 보면 예전 중원에서도 제정신인 인간이 드물었지.’
대부분의 무인은 나이가 들고 강호를 겪을수록 삭막해져 갔다. 그게 아니면 마교도들처럼 애초에 인성에 문제가 있거나.
‘아무래도 농담이 아니라 진짜 트라우마 상담을 권장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강진호가 미간을 긁었다.
단순히 복지 차원이 아니라 총회의 전력 강화를 위해서도 이건 해볼 만한 생각이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들보다는 트라우마가 없는 이들이 더 잘 싸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의사가 문제군.’
트라우마 케어라는 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의사에게 무인계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 털어놓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무인계의 정보를 외부에 발설하는 것도 껄끄럽고, 무엇보다 의사들이 무인들의 말을 황당한 망상 정도로 취급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외부가 아닌 총회 내부에 트라우마 센터를 설립하고 적절한 의사를 영입해야 한다는 건데…….
‘무인 출신 정신과 의사가 있을까?’
당장은 없더라도 육성할 수 있다면…….
그때, 위긴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십니까, 로드?”
“아, 총회 내에 정신병원을 만드는 일에 대해 살짝 고민하는 중이었다.”
“…….”
“…….”
“…….”
주변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항변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강진호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런 의도가 아니라…….”
“괜찮습니다. 독재도 좋은 방법이지요.”
“그래도 정신병원이면 밥은 제대로 주겠지.”
“안 그래도 이번에 그 회칙인지 뭔지를 발표하면서 감옥을 좀 증설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괜찮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대체 이곳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강진호는 깊은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이현수는 데리고 가십시오.”
강진호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좋지 않은 생각 같은데…….”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솔직히 회주님, 딱 까놓고 말을 해보십시다.”
강진호는 나날이 늘어가는 위긴스의 어휘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그 어휘력이 강진호를 공격하는 데 사용된다는 건 서글픈 일이지만.
“저희가 회주님을 혼자 중국에 보내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강진호는 도무지 위긴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중국에는 강진호에게 위협이 되는 강자들이 존재한다. 홍왕과의 승부에서 강진호는 승리를 얻어내지 못했다. 홍왕과 비견되는 강자인 다른 삼왕들 역시 만만찮은 상대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강진호가 홀로 그들을 상대하러 중국에 갈 때나 통용되는 논리다.
강진호가 그들과 맞서지 않고 혹여 문제가 생긴다면, 혼자서 탈출하겠다고 선언한 이상은 문제가 될 게 없지 않은가.
“회주님이 혼자 중국에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연락이나 되겠습니까?”
“…….”
강진호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언제 무슨 일을 벌이고, 언제 작전에 돌입하는지 저희가 들을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다 회주님에게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알고 지원을 해야 합니까?”
“그…….”
“연락 제대로 하겠다는 말씀은 할 생각도 마십시오. 사람이란 평소의 행동을 바탕으로 평가받는 법입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하는 말에는 진실성이 없죠.”
쟤 왜 저렇게 말을 잘해? 짜증 나게.
“감시역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현수는 그러니까…… 음, 예. 경보기 같은 겁니다.”
강진호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현수는 강진호의 기대와는 다르게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경보기 취급을 받았는데 웃음이라니!
중국에만 갈 수 있다면 무슨 취급을 받아도 좋다는 기세였다.
강진호가 손을 들어 얼굴을 주물렀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초기의 총회가 그리워졌다.
그때는 강진호가 헛기침만 해도 다들 그의 눈치를 보기 바빴는데, 지금은…….
순간, 강진호의 뇌리에 얼마 전 들은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아아, 아버지.
이런 기분이셨군요.
삶의 경험에서 나온 아버지의 조언을 이해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회주님께서 그럼에도 혼자 가시겠다면, 저희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사진들은 모두가 회주님이 이현수를 데리고 가는 걸 추천드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막을 수 없다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리는 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결국 백기를 내민 강진호가 양손을 들고 말았다.
“알았다. 데리고 가지.”
“현명하신 선택이십니다.”
“크으, 민주주의.”
“회원과 함께하는 회주!”
저 입을 찢어놓고 싶다.
강진호가 살짝 멘탈이 나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위긴스가 그 광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해해 주십시오, 회주님. 사실 저희가 판단하기에 이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드러난 일만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게 없지만, 워낙 많은 것이 얽혀 있어 사건이 어디까지 번질지 계산하기가 힘듭니다.”
“그렇지.”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제가 봐도 좀 신기하긴 합니다. 이게 무슨 북파 공작원도 아니고, 중국에 가서 북한 놈을 때려잡고 오라니. 나라가 이런 걸 시켜도 되는 겁니까?”
이현수가 방진훈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그런 의뢰를 한 적이 없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방진훈이 혀를 끌끌 찼다.
그러자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저는 이번 일은 정부가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명분이라든가, 아니면 도덕이라든가……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게 자국민의 이익이죠. 국가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죠.”
“살인인데?”
“죽는 게 나은 놈입니다.”
방진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
이 바닥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은 그가 살인에 거부감을 느낄 리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일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라는 점이다.
방진훈이 그런 부분을 가지지 못했기에 국가는 조금 더 도덕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이해하지만.
“이미 결정 난 일이니 왈가왈부할 것 없어.”
강진호가 가볍게 방진훈의 말을 끊었다.
“예.”
방진훈도 군말 없이 수긍했다.
그냥 궁금했던 것뿐이지, 크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범죄와 살인이라는 요소를 벗어나고 싶으면 애초에 무인계에서 손을 씻는 게 빠르다.
“한 번씩 착각하는 것 같아 말하는데…….”
강진호가 조금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 해서 스스로가 깨끗해지고 있다는 착각은 하지 마라. 우리는 범죄자고, 평범한 이들의 피를 빨아 먹고사는 사회의 기생충이다.”
“와우, 노골적입니다.”
강진호가 위긴스의 리액션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사회에서 무시받는 범죄자들조차 우리보다는 깨끗하다는 것을 잊지 마.”
“알고 있습니다.”
방진훈이 조금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한 번씩 잊게 된다.
특히나 강진호가 온 이후, 이런저런 범죄에서 손을 떼게 되면서 말이다.
‘원죄는 사라지지 않아.’
총회는 애초에 범죄와 함께 성장했다. 이중걸은 총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정권의 뒤를 닦아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무리 추악한 일이라도 서슴없이 저지르고, 그 대가로 정권의 비호를 받아냈다.
흑역사이긴 하지만, 그 흑역사 덕분에 총회가 이만큼의 명맥이라도 유지했다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총회의 녹을 먹고 살아온 방진훈도 이러한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이번 일은 적어도 그리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습니까?”
“…….”
이현수의 말에 강진호가 피식 웃어버렸다.
사람을 죽이러 가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는 이현수의 사고방식도 우습지만, 그 말을 듣고 순간 고개를 끄덕일 뻔한 자신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이번 일을 완전히 끝내놓고 생각해도 늦지 않다.
“이현수.”
“예, 회주님.”
“조율해서 출발 일정 잡아.”
“즉시 시작하겠습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이라…….’
강진호의 시선이 서쪽으로 향했다.
우스운 일이지.
어쩌면 위험하고, 어쩌면 골치 아픈 일일지도 모르는데…….
조금 전부터 피가 빠르게 도는 느낌이 나니까 말이야.
강진호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게 웃음을 속으로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