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09
#1308.
잠입하다 (3)
“예.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김명찬은 소리 나지 않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목구멍 너머로 담배 연기가 넘어가는 감각이 오늘따라 꽤나 불쾌하다.
“후~”
짧게 끊어 담배 연기를 내보낸 김명찬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협의된 사항은 확실히 이행할 겁니다. 예. 하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아무리 파리 목숨이라지만, 아직은 버틸 만하니까요.”
김명찬이 펜을 들어 몇 가지를 끄적였다.
“예. 그럼 준비는 금방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마저 통화하시죠.”
별 의미 없는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김명찬이 전화를 끊고 의자에 늘어졌다.
“휴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빌어먹을 놈.’
이현수는 정말 이상한 자였다.
그 나이를 감안한다면 아직은 치기가 넘쳐야 할 사람이건만, 냉정하기는 정치인보다 더하고, 날카롭기는 기자 뺨을 때리고도 남을 정도다.
특히나 은연중 한 번씩 느껴지는 섬뜩함은 천하의 김명찬마저 편히 말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총회라…….’
김명찬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현수는 강진호의 수족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겨우 강진호의 수족을 상대하는 일에도 김명찬은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나이가 들었군.’
저런 애송이에게 버거움이라니.
김명찬이 한 손을 들어 얼굴을 주물렀다.
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정치인이 정말 몰락할 때는 민심을 잃었을 때가 아니다. 그전에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다. 대단한 자는 잘못을 저지를 리가 없고, 실수를 할 리가 없다.
자신의 무능과 실책을 인정하지 않을 때, 정치인은 아집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몰락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
새파란 애송이에게 조금은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대책을 강구할 수 있으니까.
‘확실히 무서운 자이지만…….’
김명찬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어려.’
급하다.
김명찬이 이현수의 입장이었으면, 단기간에 뭔가를 얻어내려 하기보다는 길게 보고 관계를 충실히 하는 쪽에 집중했을 것이다.
이득으로 이어진 인연은 이득이 사라지면 끝나지만, 한 배를 탄 이들은 이득과 관계없이 끝까지 운명을 함께하는 법이니까.
‘아니지. 어쩌면 저들은 우리를 끝까지 함께 갈 사이로 생각지 않을 수도 있지.’
또 무의식중에 이현수를 무시했다. 좋지 않은 버릇이다.
“총리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그런가?”
김명찬이 한숨을 내쉬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안색이 좋을 리가 없지.’
부담감에 위가 찢어질 지경이다.
아무리 김명찬이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인물이라고는 하나, 이번 일은 그런 김명찬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총리님.”
“말하게나.”
“저는 이번 일이 과연 옳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김명찬이 미간을 좁혔다.
“이보게, 이군.”
“예.”
“자네가 나를 도운 지 얼마나 됐지?”
“3년째입니다.”
“그렇군.”
김명찬이 미소를 지었다.
3년이라…… 오래도 했군.
“정치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딜레마에 빠지게 되지.”
“어떤…….”
“나의 선과 국가의 선이 일치하지 않는 시점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거든.”
이종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여러 번 들은 말이다.
“국가란 결국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것에 불과하네. 문제는 그 수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선이 제각각 다 다르다는 거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국가는 절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주지 않아. 모든 이들의 의견을 절충한다는 말은 나의 생각과 방향 역시 깎여 나간다는 말이 되니까.”
“…….”
“그렇기에 국가에서 하는 일은 네 가지로 나뉘지. 해야 하는 일, 해도 되는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김명찬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네 가지를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 정권과 국가의 성향이 갈리는 거지. 그리고 이번 일은…….”
김명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 어떤 정권이나 국가라고 해도 해야 하는 일로 분류해야 하는 일이지.”
“…….”
“자네가 정치인으로 살겠다면 하나는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국가에는 도덕이라는 게 없네. 도덕은 인간의 감정이고, 인간의 방향일 뿐이야. 국가는 인간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인간은 아닐세. 인간이 가지는 감정 따위는 국가에 개입되지 않아.”
이종욱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는 말이지만, 머리로는 알되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좋은 행정가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좋은 정치인으로서는 실격인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다 감안하고서라도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리스크는 크지. 하지만 손을 놓았을 때 벌어질 결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성공한다면요?”
“……무슨 말인가?”
“만약 이 일이 성공한다면, 저희는 총회와 공범이 되는 겁니다. 잃을 것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더 많은 것을 쥔다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의외로 이종욱은 이 일의 본질을 제대로 짚고 있었다.
북한 고위층에 대한 암살을 총회의 의뢰한다는 건, 총회에게 이쪽의 치부를 그대로 노출하겠다는 말과 같다. 아무리 국가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지만, 국가가 개인에 대한 암살을 의뢰하는 게 정당할 수는 없다.
외부로 이 일이 밝혀진다면 거대한 스캔들이 되고도 남을 일이다.
그 파트너로 총회를 선정한 것은, 앞으로 함께 가자는 노골적인 제안이다.
“저는 솔직히 우려됩니다. 저희는 그들에게 노출되어 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저희가 모두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이보게, 이군.”
“예, 총리님.”
“사람은 멍청할 수 있지.”
“…….”
“하지만 국가는 멍청하지 않아. 아니, 이 말은 틀렸군. 국가도 멍청할 수 있네. 하지만 그건 사안에 따라 다른 일이지.”
김명찬이 깍지 낀 손에 얼굴을 얹었다.
“그들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검토했네. 그리고 그들을 억제할 방법도 수없이 고민했지. 이 일도 그 일환일 뿐이야. 자네, 최악의 사태가 뭔지 아는가?”
“그들이 저희의 약점을 파악하고 저희를 휘두르려 하는 겁니다.”
“틀렸네. 최악은 그들과 우리가 적대하는 거야.”
“…….”
“대화를 할 수 있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상대는 무섭지 않네. 결국은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통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진짜로 우려해야 하는 상황은 대화를 할 수 없는 상대를 만들어내는 일이지.”
김명찬이 고개를 내저었다.
총회와 완전히 틀어진다?
그건 김명찬도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사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내에 인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무력 집단이 적으로 돌아선다는 뜻이니까. 이런 사태에 대한 대처법은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지.’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저희는 총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까?”
“이군.”
“예, 총리님.”
“자네는 정치인인가, 행정가인가?”
“…….”
이종욱이 대답을 하기 전, 김명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가 행정가라면 그리 생각해도 좋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집 앞에 사나운 들개가 있다면 적당히 사료를 던져 주고 친해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 그 들개가 우리 집을 지켜줄 수도 있지 않은가.”
이종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네가 정치인이라면 하나가 더 추가되지. 친해지는 와중에서도 덫을 놓을 줄 알아야지.”
“…….”
“적당한 사료로 적당한 친분을 만들고, 적당히 타협하는 게 행정가가 할 일이고, 질 좋은 고기를 준비하고, 개와 완전히 친해지는 와중에 개를 삶을 솥도 준비하는 게 정치인이네.”
이종욱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인즉슨, 지금 김명찬은 총회와 친분을 다지는 와중에도 그들을 옭아맬 밧줄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걸 그분도 알고 계실까?’
심증은 있다.
아무리 김명찬이 대한민국의 총리라고는 하지만, 이만한 일을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권한의 문제다.
하지만 김명찬이 부인하는 이상 더 물고 늘어지는 건 어려웠다.
“그리고 자네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예.”
“이번 일을 어떻게 성공시키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네. 사사로운 감정 같은 건 나중에 찾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김명찬의 눈이 가라앉았다.
‘잘해줘야 할 텐데.’
이번 일은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작은 실수라도 하나 벌어지는 날에는 중국과 북한을 동시에 적으로 돌리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아무리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해도, 그 눈을 가리느냐 가리지 않느냐에 따라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게 국제 관계 아니던가.
“걱정되십니까?”
“물론이지. 왜 그리 빵한 걸 묻는가?”
“……일의 사안에 비해 총리님께서 그리 긴장하지 않으신 듯해서 말입니다.”
“…….”
김명찬이 고개를 들이 이종욱을 힐끗 바라보았다.
‘눈은 있군.’
어색하게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이 자신의 속내를 들켰다는 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니까.
이종욱의 지적은 틀린 점이 없었다. 이번 일이 가지는 중요도와 위험성에 비해서 김명찬은 그다지 큰 긴장을 하지 않는 중이다.
실패했을 시에 벌어질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 상황에 대한 가정이 위기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왜?
‘아무래도 상상이 안 가는군.’
그 강진호가 자신이 맡은 일에서 실패한다는 상황 자체가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이 시점에서 강진호를 가장 과대평가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명찬일지도 모른다.
‘아쉬워, 아쉽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더없이 힘이 될 텐데.
하지만 김명찬은 알고 있다. 그가 발 담은 세계에 영원한 친구라는 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짓밟아야 하는 세계가 바로 이곳이다.
“준비는 다 됐나?”
“미리 해뒀습니다.”
“관련된 것들을 그쪽에 넘겨주게나. 그리고 그쪽에 추가적인 요구 사항이 없는지 확인하고.”
“예.”
“특히나 중국에 있는 정보원들과 어떻게 접촉할 것인지를 확고히 하게. 잊지 말게나. 이번에 자네가 만나는 이들은 요원이되 민간인이야. 지금까지 하던 방식대로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걸세.”
“두 번, 세 번 고민하고 또 고민하겠습니다.”
“그래. 나가보게나.”
이종욱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가자, 김명찬이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가 늘었군.’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김명찬이 피식 웃고 말았다.
“일을 벌이는 것도 나고, 책임을 지는 것도 나라…….”
눈 가리고 아웅.
하지만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세계.
‘아직은 내가 여기까지인 거지.’
하지만 언젠가는 오를 것이다. 일을 벌이고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위치까지 말이다.
어쩌면 총회, 아니, 강진호가 그 열쇠일지도 모른다.
김명찬이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는 눈을 감았다.
진득한 수마가 그를 한없이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