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13
#1312.
출발하다 (2)
“…….”
성주찬이 멍한 눈으로 실내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반도 차기 힘들던 카페가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차 있다.
심지어 자리에 앉지 못한 이들까지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 가득가득 들어서 있고, 일부는 귀찮다는 듯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기까지 했다.
“야! 여기 커피 안 주냐?”
“손님이 왔으면 커피를 내와야 할 거 아냐! 빠져 가지고!”
“이러니까 장사가 안 되지!”
원수 같은 새끼들.
이마에 핏대를 세운 성주찬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주문을 해야 커피를 줄 거 아냐!”
“주문은 얼어 죽을! 동기가 왔는데 커피 한 잔 내오는 게 예의지! 동방예의지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각박해졌어!”
“나는 카라멜 마키아또. 휘핑크림 빼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하게!”
뭐래, 미친놈아! 아이스가 어떻게 따뜻하게 나가!
“빨리빨리 커피 내려, 인마! 손이 보이잖아!”
“저 새끼가 빠져 가지고!”
“동기 사랑 나라 사랑, 인마!”
성주찬이 흐뭇하게 웃었다.
‘다 죽었으면 좋겠다.’
운석 하나 안 떨어지나?
“그런데 여기에 왜 모이라고 한 거야?”
‘내 말이!’
성주찬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오랜만에 선후배와 동기들을 만났으니 기분이 꽤 좋을 수도 있었다. 만난 곳에 자신의 카페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회주님이 모이라고 했으니 모여야지.”
“야, 그런데 우리 이제 총회 소속 아니잖아. 그런데도 회주님이 모이라면 모여야 하는 거냐?”
“그럼 넌 가든가.”
“미쳤어?”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자리는 분위기가 나쁠 수가 없다. 함께 부조리의 지옥을 빠져나온 군전역자들이 모여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 마련 아닌가.
따져 보면 군대보다 더한 부조리와 훈련을 참아낸 이들이다. 당연히 끈끈하기 마련이다. 총회에 있을 당시에는 서로 사이가 그리 좋지 않던 이들조차 마주 보며 웃고 떠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하나…….
“그래, 살 만하냐?”
“…….”
“…….”
누군가 눈치 없이 던진 한마디로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차라리 떠들어, 이 미친놈들아.’
성주찬의 속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간다.
빤히 영업하는 카페를 점거하고 초상집 분위기를 만들면 어쩌자는 건가. 물론 자리가 꽉 차서 다른 손님들이 들어오지는 못하겠지만, 바깥에서 슬쩍 내부 분위기를 보고 돌아가는 손님들의 모습에 뱃속이 뒤집어질 지경이다.
“……살 만하고 싶다.”
“쉽지가 않네.”
여기저기서 땅이 꺼지는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남의 가게에서 왜 한숨질이야! 복 나가게!”
버럭 소리를 지르자 고개가 일제히 성주찬에게로 돌아간다.
“그러고 보니 저 새끼는 번듯한 카페 사장이네.”
“그러게. 앞치마 입은 거 봐라. 생긴 건 산도적처럼 생겨 가지고.”
“완전 귀요미네. 깨물어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카페 사장이고 뭐고, 죽창 한 방이면…….”
성주찬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렸다.
원래 대가 세지 않은 성주찬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대가 센 사람도 저 살기 어린 눈빛들을 본다면 입을 다물고 공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 새끼가 분위기 파악이 안 되나?”
“커피 대신 지가 갈려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
성주찬이 가만히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흉포한 맹수를 진정시키는 법은 먹을 걸 주는 거란 사실을 예전부터 뼈저리게 경험해 본 성주찬이다.
“……나도 미리 바리스타 자격증이라도 좀 따둘걸.”
“니가 탄 커피를 사람들이 잘도 돈 주고 사 먹겠다.”
“왜? 나도 손재주 있는 편이야.”
“안타깝기 그지없네. 그 재주가 손이 아니라 얼굴로 갔으면 그래도 사 먹을 사람이 조금은 있었을 텐데.”
“……나와, 새끼야.”
“하지 마라. 싸울 힘도 없다.”
“그건 그래.”
다시 한숨이 이어진다.
성주찬이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힘드냐?”
“사장이 알 리가 없지.”
“더러운 자본가 같으니.”
“아니, 이 새끼들아.”
성주찬의 얼굴이 달아 올랐다.
“나는 뭐 월급 두 배씩 받았냐? 같은 돈 받고 탈회해 놓고, 왜 딴소리야!”
다들 허망한 눈으로 성주찬을 바라보았다.
“돈이 있으면 뭐 하냐, 쓸데가 없는데.”
“일한다고 해도 써주는 데는 없고…… 공사장에서는 좋아하더라. 일 빠르게 잘한다고.”
“그럼 거기라도 나가지.”
“회사가 부도났어. 경기가 개판이래.”
“…….”
살짝 침묵이 감돌았다.
“그래서 요즘은 뭐 하고 있는데?”
“집에서 놀지.”
“나는 오락실 다니고 있다.”
“인력시장 나가는데, 영 재미가 없네. 거기 나오는 중국 동포들이랑 친해진 거 말고는 뭐…….”
성주찬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도 미리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놓고 선배의 가게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저 꼴이 났을 것 아닌가.
‘아니, 이 대책 없는 새끼들.’
한소리 하고 싶지만, 딱히 할 말이 없다.
이들이 자의로 이렇게 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총회의 복지는 웬만한 기업을 뺨을 후려치는 수준이다. 예전에야 주먹구구로 돌아갔지만, 강진호가 온 이후로는 복지에 관한 한은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대접이 좋아지는 걸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데, 그냥 싫다고 나올 이들이 어디에 있는가.
탈락자.
이곳에 모인 이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뭐 좀 제대로 된 데 취직이라도 해보지.”
“마, 이력서에 쓸 게 없는데!”
“고등학교는 나왔잖아.”
“……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본 적 있냐?”
“아니.”
“한 번 봐봐라. 참혹할 거다. 나도 보고 기겁했다.”
“왜? 이상한 거 적혀 있어?”
“아니……. 선생님이 최대한 포장해 주시는데, 포장해도 이것밖에 안 되는 걸 보니 죄스러워서.”
“…….”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여기 있는 이들은 다들 어릴 적부터 총회에서 무인으로 살 줄 알았지, 사회에 뛰어들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뭘 준비했겠는가.
“사회에 나오고 나서 내가 느낀 게 뭔지 알아?”
“뭔데?”
“총회에 있을 때 나는 반병신이었거든?”
“그런데?”
“사회에 나오니까 그냥 병신이더라.”
“…….”
“다음 생에는 말미잘로 태어나고 싶다.”
뭐가 이렇게 우울해?
하지만 다른 이들의 반응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이 많은 이들이 하나같이 궁상을 떠는 꼴을 보자 속이 영 좋지 않다.
“나름 계획들은 다 있었을 거 아냐.”
“이 새끼야, 계획대로 됐으면 지금쯤 대통령이지!”
“어…… 그렇지.”
“인생이라는 게 다 그런 거지. 계획이야 항상 좋지. 그런데 그대로는 안 되는 게 인생 아니냐!”
너무 과하게 안 된 것 같긴 하다만.
틀린 말은 아니지.
“요즘 생각 같아서는 진짜 총회에 다시 들어가고 싶다. 그때가 좋았어.”
“나도. 훈련만 안 받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훈련만 받을 수 있을 때가 편했다. 다른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
“월급 재깍재깍 나오지, 중간중간 보너스 나오지, 기숙사도 있지.”
“받는 돈이나 적나.”
“하~ 안에 있는 새끼들은 이런 줄 모르고 살겠지.”
성주찬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나온 대신에 전쟁은 안 치러도 되잖아.”
“야, 이 새끼야! 사회가 전쟁이야! 여기가 지옥이다, 인마! 칼만 안 들고 피만 안 흘린다고 다 괜찮냐? 사회에서 먹고사는 게 진짜 전쟁이야.”
성주찬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그도 수많은 진상들을 겪고 있다.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매달 매출을 걱정하는 삶이 총회 안에서 느끼던 부담에 비해 낫다고 할 수 없다.
그가 이런 상황인데,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시끄럽고, 속 쓰리니까 커피나 한 잔 타 와봐. 뭐 해?”
“……돈 내라고.”
“하, 새끼. 매정하게.”
“누구는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아나! 나도 먹고살아야 할 것 아냐! 아니, 그거 파는 거라고! 쿠키 그냥 가져가지 말라…… 야, 이 새끼야! 케이크는 안 된다고! 그건 진짜 안 된다고, 인마!”
난장판이 벌어진다.
짤랑.
그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안으로 두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
“…….”
카페 안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앞에 선 이현수의 눈가가 실룩이기 시작한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주…….”
“…….”
“지랄들을 하고 있다.”
“…….”
순식간에 앞쪽에 자리가 만들어졌다.
강진호와 이현수가 앞쪽 테이블을 차지하자마자 재빠르게 따뜻한 커피와 쿠키, 그리고 케이크들이 서빙되었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에 불만을 표하지는 못했다.
아니, 불만이 있어도 핏대가 선 이현수의 이마를 보면 입을 열 수가 없을 것이다.
“아니, 이 새끼들이 빠져 가지고.”
“…….”
“회주님 오시는 거 빤히 알면서 시장바닥을 만들어놔? 니들이 무슨 선생님 오시길 기다리는 초등학생이냐?”
조용하다.
다들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닫고 있었다.
“어이, 최상길이.”
“예!”
“너, 이 새끼야. 니가 그래도 여기서는 나이가 있는 편인데, 너라도 조용히 시켰어야 할 거 아냐! 성주찬이, 너도 마찬가지고.”
“……죄송합니다.”
“회 나가면 끝나? 왜? 형이라고 해보시지?”
“근데 실장님.”
“왜?”
“제가 회주님보다는 나이가 많은데요.”
“…….”
이현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지요, 사실이.”
“너, 고래로 성인들이 왜 명이 짧은 줄 아냐?”
“……글쎄요.”
“입에 바른말만 달고 살아서 그런다. 왜 그런지 내가 지금부터 알려줄 테니까…… 나와, 이 새끼야!”
“지, 진정하십시오.”
이현수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성질 같아서는 싹 밀어버리고 싶다. 이런 것들이랑 같이 사업을 해야 한다니.
“앉아. 너는 지금부터 찍소리도 하지 마라. 입에다가 팔팔 끓는 아메리카노 더블 샷을 때려 부어버리기 전에.”
분위기가 정리된다.
이현수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니들이 그러니까 인간이 안 되는 것 아냐, 이 새끼들아! 사람처럼 살아야지, 사람처럼! 총회고 사회고, 사람같이 굴어야 사람 취급을 받는 거 아니냐고!”
잔소리가 이어진다.
“다른 사람이 부른 것도 아니고, 회주님이 불렀으면 곧 회주님이 오실 거라는 걸 알 텐데, 그런데도 이러고 있어? 너희, 눈치 없냐? 사람이 기본적으로 눈치가…….”
“그만해라.”
“뭘 그만해, 이 새……. 회주님?”
이현수가 기겁하여 고개를 돌렸다. 흥에 너무 취해 강진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
“…….”
“회주님, 그게 아니고, 제가…….”
“……잠깐 나와.”
“네?”
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
이현수가 젖은 눈망울로 모두를 돌아본다. 하지만 아무도 이현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조용히 하고 있어.”
이현수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터덜터덜 걸어 밖으로 나갔다.
짤랑.
문이 닫히자 일제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니, 저긴 뭐가 바뀐 게 없냐?”
누군가의 말이 카페 안에 있는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