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17
#1316.
공조하다 (1)
“현지에서 저희 요원들이 접촉할 겁니다.”
강진호는 미묘한 얼굴로 이종욱을 바라보았다.
물론 이종욱에게 불만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우선 첫째로, 전에 봤을 때에 비해 이종욱의 얼굴이 굉장히 수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주 업무는 부처마다 다르겠지만, 부 업무는 다 동일하다. 바로 예산과 싸우는 일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쓸데없이 낭비되는 돈이겠지만, 그 나름으로는 다 쓸데가 있다. 그렇기에 예산을 배정하는 시기만 되면 다들 목소리를 높이고 싸우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와중에 추가적인 예산을 타내야 했으니, 좋은 소리는 못 들었을 게 분명하다.
아니, 표정만 보면 좋은 소리를 못 들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지옥을 겪고 돌아온 것 같다.
‘하기야.’
강진호가 이종욱의 상사 된 입장이라고 해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강진호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건,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대충 알고 있다.
더구나 국정원쯤 되면 강진호의 재산에 대한 파악은 애저녁에 끝냈을 것이다. 그런 이의 체류비를 내야 한다고 결제를 올렸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체류비에 대한 것은 이현수 실장에게 전달했습니다. 문제없이 처리될 겁니다.”
“아, 네.”
강진호가 안쓰러운 얼굴로 이종욱을 바라보았다.
‘참, 여러 사람 고생하네.’
강진호에게는 더없이 유용한 사람이 이현수지만, 강진호나 이사진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마의 현신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이현수다.
이현수의 가장 좋은 점은 눈치가 빠르고 능력치가 높아서 일처리가 깔끔하고 빠르다는 점이고, 이현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을 괴롭히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점이다.
거래를 하든, 협상을 하든, 상대가 가장 곤란해할 만한 부분을 귀신같이 포착하고 찔러 들어간다. 그 수많은 희생자의 대열에 이종욱이 합류한 것뿐이다.
“실시간으로 계속 연락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상황을…….”
“저…….”
강진호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이종욱을 보며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해도 됩니까?”
“아!”
이종욱이 살짝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그럴 수밖에. 여기는 공항 로비니까.
“괜찮습니다.”
“…….”
“어차피 남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대화만으로는 무슨 일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야 그렇겠지만.
“저희라고 매번 밀실에서 대화한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실제로는 이런 거리에서 말을 나누는 게 보안이 더 잘됩니다. 요즘은 유리창의 떨림만으로도 도청이 가능한 세상이니까요.”
“유리창으로 도청?”
“미국의 기술이라는데, 여하튼 그렇습니다.”
참 신기한 세상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학이 마법 같다고 하겠지만, 강진호의 입장에서 보면 진짜 마법은 무학 따위가 아니라 과학이다. 특별한 수련이나 소모값도 없이 어마어마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아무쪼록 성공하시길 빌겠습니다.”
“예.”
이종욱이 입구 쪽을 슬쩍 바라봤다.
“이쪽 수속은 마쳐 뒀습니다. 검색대는 통과될 겁니다. 하지만 중국 쪽 검색대는 저희가 어찌할 수 없으니, 무기 같은 건…….”
“그건 괜찮습니다.”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이미 몇 번 해보기도 했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 잠시만. 제 건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 와중에 이종욱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저희가 쓸 무기는 이미 중국에 보내놨습니다. 그 정도야 알아서 처리해야죠. 나랏일 보시는 분들이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서야 되겠습니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이현수를 보며 이종욱의 입술이 달싹였다.
하고 싶은 말이야 너무너무 많겠지. 하지만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는 게 어른이 되는 첫 번째 과정이 아니던가.
“반드시 성공하셔야 합니다.”
“아, 물론 그건…….”
“반드시!”
“…….”
이종욱의 눈에서는 이번 일이 실패할 경우 이현수를 살려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렬히 빛나고 있었다. 물론 그게 가능할지야 별개의 문제겠지만.
“국운이 걸린 일이니 실수 없이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회주님?”
“…….”
이상하게 얄밉다.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같이 안 가십니까?”
“저는 저쪽에 얼굴이 알려져 있을 확률이 있습니다. 공항에 입국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길 겁니다.”
“…….”
“음.”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이종욱과 강진호 중 중국에서 좀 더 신경을 쓰는 이가 누굴까?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강진호다. 위장 신분증을 쓴다고는 하지만, 중국에 도착하는 순간 강진호가 포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강진호의 표정을 본 이종욱이 빙그레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철저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허술하기도 합니다. 지금 가시는 공항은 하루 이용객이 30만에 달합니다.”
“……30만?”
“네. 그 30만 명 중 몇몇을 특정한다는 건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요?”
강진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앞에서 한 말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네. 솔직히 저는 국내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알겠습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이종욱이 옆에 붙어 있으면 불편한 건 되레 강진호다. 아무리 두 사람 간의 격 차이가 난다고 해도 정부에서 나온 인사를 우대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회주님.”
“예.”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어쩌면 회주님이 생각하시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방법이 먹히지 않았을 시, 정부가 준비할 수 있는 플랜 B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중국에서 암살하는 것에 실패한다면 북한으로 돌아간 리기광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 마지막 수단은 북한으로 암살대를 파견하는 것뿐일 텐데…….
‘그게 먹힐 리가 없지.’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실제로 실현 가능하다고 해도 문제다. 리기광이 중국에서 죽는 것과 북한 내에서 죽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고, 성공한다 해도 위험성이 극도로 오르는 플랜 B 따위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아아.”
이현수가 이종욱의 말을 잘랐다.
그러고는 조금 시니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말은 접어둡시다. 이건 그냥 거래니까요.”
“…….”
“애국심은 좋은 거죠. 하지만 일에 애국심을 가지고 들어오지 마십시오. 받은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지불한다. 그게 딱 좋은 관계 아니겠습니까?”
이종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할 말 다 한 것 같으면 저희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중국에 들어가면 전화는 불가능하겠죠?”
“방법은 있습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음, 그럼 다행입니다.”
“아무쪼록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네, 그럼.”
이현수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강진호도 그에 따라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종욱이 구십 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한다. 강진호는 이종욱이 고개를 들기 전에 몸을 돌렸다.
‘부담스럽군.’
유형을 굳이 따지자면 장민과 비슷하다.
강진호의 주변 사람들은 다들 철저할 정도로 개인주의가 강한 이들이다. 다들 자신의 삶과 자신의 목표를 우선시한다. 강진호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유도 자신의 삶과 목표가 강진호의 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민은 다르다.
장민은 자신의 삶보다 마교의 안위를 더 우선시한다. 그렇기에 다른 이사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때가 많다.
이종욱에게서 그런 느낌이 전해져 왔다.
자신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이. 그 간절함이 결코 가식이 아니라는 게 강진호를 더욱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유형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으니까.
국가라든가 단체를 자신이나 자신의 주변인들 위에 둘 수 없는 강진호에게 이종욱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종욱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확실히 좀 부담스럽네요.”
거리가 좀 멀어지자 이현수가 강진호의 기분을 알아챘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이해는 갑니다. 워낙 중대한 사안이다 보니.”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총회의 분위기가 그렇고, 강진호의 성향이 그래서 별일 아닌 것처럼 논의가 오간 것뿐이지, 이건 정말 심각한 사안이었다.
중국에 들어가 북한의 요인을 암살한다. 만약 암살 도중 문제가 벌어진다면 국제 문제로 비화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리고 만약 암살에 실패한다면 남북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성공한다고 해도 수많은 부작용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실패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그럼에도 이현수가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강진호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강진호가 직접 나선 이상 이 일이 실패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막상 출발한다고 생각하니 위가 좀 쓰립니다. 부담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몸은 솔직한 모양이네요.”
“그럼 여기서 쉬어.”
“에이, 위 아픈 거야 위장약 좀 먹으면 낫는 거죠.”
“……그러지 말고 좀 쉬어.”
“괜찮습니다.”
“좀 쉬라고.”
“괜찮다니까요.”
회주는 쉬라고 하고, 부하 직원은 쉬기를 거부한다. 얼핏 보면 매우 이상적인 관계인 것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게 썩어 있는 관계도 흔치 않다.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게이트로 향했다.
일전에는 VIP 게이트를 이용했지만, 이번에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일반 게이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항공권과 여권을 확인하겠습니다.”
강진호가 새로 지급받은 여권을 꺼내 내밀었다. 여권의 사진과 강진호의 얼굴을 교차하며 확인한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여권과 항공권을 다시 내밀었다.
“네, 감사합니다. 좋은 여행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김철수 님.”
움찔.
강진호가 받은 여권을 펼쳐 들었다.
‘김철수…….’
물론 이름이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뭐랄까,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가장 무난한 걸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느낌이랄까…….
“풉.”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현수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꼬리를 감출 수는 없는 법이다.
“길 막지 말고 들어가 주시죠, 김철수 씨.”
“…….”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쉬고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예민한 청각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확인되었습다. 좋은 여행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영……희 님.”
“…….”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떨리는 눈으로 여권을 확인하던 이현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갑시다, 이영희 씨.”
“…….”
철수와 영희가 무사히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