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19
#1318.
공조하다 (3)
“고생이 많지?”
“…….”
“내가 그 마음 안다. 힘들 텐데.”
“……아니요. 뭐.”
“조금만 더 힘내. 좋은 날 올 테니까.”
식은땀이 삐질 배어난다.
‘자리 배치가 뭐가 이렇지?’
그냥 배정해 준 자리에 앉은 게 큰 잘못이었나 싶다. 모르는 사람과 옆자리에 앉아 가는 건 조금은 불편한 일이지만, 다른 선택권은 없으니까.
하지만 한은솔은 오늘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모르는 사람과 옆자리에 앉는 것보다 미묘하게 아는 사람과 같이 앉아 가는 게 세 배는 더 불편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그 미묘하게 아는 사람이…….
“윗사람 모신다는 게 다 그렇지.”
왜 이현수냐고.
한은솔은 불편했다. 매우 불편했다.
‘당신도 저한테는 상사거든요?’
아무리 한은솔이 MK의 실장이고, 이현수는 MK에 제대로 된 직책이 없는 야인이나 마찬가지인 처지라고 해도 현실의 권력 관계는 반드시 직책이나 권한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이현수가 강진호의 제1비서인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강진호가 MK의 회장인 이상, 실질적으로 이현수는 MK의 비서실장이라고 봐야 한다.
과거, 독재정권 당시 비서실장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독재자와 가장 많이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현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한은솔의 입장에서는 이현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리 한은솔이 본사와는 거리를 조금 두고 있다지만, 지내는 곳이 MK고, 마주치는 사람이 MK의 사람들이다 보니 강진호나 이현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강진호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알고 있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은솔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어려워하고, 조금 무서워하는 기색도 있지만, 확실히 강진호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있었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도 강진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을 조심한다는 기색이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현수는…….
― 마귀야, 마귀!
― 지나가다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말고 꼭 소금 뿌려, 꼭!
― 회장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아냐? 악마를 비서로 부리신다.
― 분명히 세상에 엑소시스트들이 있을 텐데, 왜 저 인간은 안 잡아가나 모르겠다. 아니면 경찰이라도 오든가.
‘굉장한 평가지.’
살면서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은 최연하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다.
‘이쯤 되면 오히려 강진호 씨를 의심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무슨 포X몬 마스터도 아니고, 암흑 속성을 모으는 취미라도 있는가?
어떻게 직장에서 가장 많이 붙어 다니는 사람과 여자 친구의 평가가 나란히 최악일 수 있단 말인가.
‘친해지지 말아야겠다.’
강진호든 이현수든 말이다.
하지만 그런 한은솔의 마음을 헤아려 줄 생각이 전혀 없는지, 이현수는 자꾸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무시하고 싶다.
엮이고 싶지 않다.
문제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다는 점이었다.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자꾸 솔깃하게 된다.
“낮도 없지, 밤도 없지, 열심히 일을 해도 알아주지도 않지.”
“……그렇죠.”
“그럼 없어도 잘 지내든가. 조금만 자리 비우면 뭔 일이라도 난 것처럼 찾아대지.”
“마, 맞습니다.”
“그거 맞추는 게 사람 할 일이냐? 어휴, 진짜.”
“제명에 못 죽죠.”
이상하다.
친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자꾸만 맞장구를 치게 된다.
이건 기묘한 동질감이었다.
한은솔이 다른 매니저들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들과는 동질감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최연하는 일반적인 연예인들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과는 아무리 대화해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들이 힘들다고 징징대면 한은솔의 입장에서는 엄살로밖에 느껴지지 않고, 한은솔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들 무슨 차원 게이트를 타고 가 드래곤을 잡아온 용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반응한다.
그러니 말을 할 수 없을 수밖에.
하지만 이현수는 다르다.
이현수는 어쩌면 한은솔보다 더한 사람을 상대하는 이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 강진호 씨가 더 심하지.’
그 최연하를 바꾸고 있는 사람이니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매니저와 소속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도 답을 내놓지 못한 21세기 대한민국 연예계의 최대 난제를 별 어려움 없이 해결해 버린 사람이 아닌가.
물론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한은솔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현수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저…….”
“응?”
한은솔이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강진호 씨…… 아니, 회장님도 심하십니까?”
“회장님이 심하시냐고?”
“아니, 뭐, 그런 의미는 아닌데…….”
“한 실장님.”
“예?”
“회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시다.”
한은솔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니, 이 새끼가 자기만 빠져나가려고?
“문제는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닐 경우가 있다는 거다.”
“예?”
이게 무슨 말인가.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 거지. 너, 군대 다녀왔지?”
“예. 병장 만기 전역했습니다.”
“군대에서 제일 지랄 같은 놈이 누군지 알아?”
“……또라이 같은 선임 아닙니까?”
“아니. 훌륭한 선임이다.”
“예?”
이해를 못해 갸웃거리는 한은솔을 보며 이현수가 손을 내저었다.
“군대에 ‘가라’라는 게 왜 생기겠냐? FM대로 모든 걸 처리하는 건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하기 때문 아니냐. 심지어는 그 미군조차도 가라를 친다니까? 사람이 FM대로 살면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1초도 안 쉬고 뛰어다녀야 하거든. 아냐?”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떨 것 같냐?”
“…….”
한은솔의 얼굴이 살짝 질렸다.
이현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부대는 지옥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런 인간이 있으면 그놈은 악당이어야 된다. 성격도 나쁘고, 애들을 막 구박하고 괴롭히는 인간이어야 해.”
“성격이 좋은 게 낫지 않습니까?”
“모르는 소리. 쯔.”
이현수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런 인간이 성격이 좋으면 무슨 사태가 벌어지는 줄 아냐? 성격 나쁜 놈은 ‘야, 이 병신 같은 놈들아! 너희는 내가 하는 걸 왜 못해? 그러니 니들이 안 되는 거야. 닥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고 하겠지.”
“예.”
“하지만 성격이 좋은 사람은!”
이현수가 느끼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니야. 나도 했잖아. 그러니까 너희도 할 수 있어. 내가 특별한 게 아니야. 너희도 노력하면 다 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같이 힘내보자.”
소름이 돋는다.
몸을 부르르 떤 한은솔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상상하기도 싫다.
“……회장님이 그런 분이시라구요?”
“아니. 비슷하기는 한데, 디테일은 좀 달라. 회주님은 쉽게 말하면 선의로 돌진하는 폭주 기관차 같은 양반이야. ‘이렇게만 노력하면 이만한 결과를 낼 수 있는데, 왜 지금 노력하지 않지? 노력만 하면 다 되는데’라는 말을 태연하게 하시는 분이지.”
“……노력충이네요.”
“궁극의 노력충이지. 문제는 그 말에 토를 달고 싶어도 자기가 직접 눈앞에서 해버리니까 할 말이 없다는 거지.”
알 것 같다.
유능한 상사는 배울 점이 있지만, 너무 유능한 상사는 오히려 해가 되는 법이다. 따라 할 수가 없으니까. 아무리 노력해 봐야 남는 건 자괴감뿐이다.
“그런 상사랑 같이 지내는 건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다. 인간적으로 괴롭히는 건 없지만, 일로 사람을 괴롭히거든.”
최연하와는 확실히 다른 타입이다.
최연하는 일적으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쪽으로는 좀 무던한 편이다. 일적으로 온갖 트러블을 만들어내는 다른 톱스타들에 비하면 기이할 정도로 일에는 불만이 없다.
오죽하면 촬영장에 가 있는 시간이 한은솔이 가장 마음 편해하는 시간이겠는가.
‘우열을 가릴 수가 없네.’
세상에 최연하 이상으로 그를 괴롭힐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현수의 말을 듣고 보니 강진호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둘 중 하나를 고르기가 힘이 든다.
성향상 한은솔은 최연하에게 최적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으으음.”
난형난제다.
“참 신기한 일이네요.”
“뭐가?”
“어떻게 그런 사람들끼리 저리 만난 걸까요?”
“아니지.”
“예?”
“그런 사람들이니까 만난 거지.”
“…….”
묘하게 설득이 되는 말이다.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여하튼 너도 참 고생이 많다. 그 성격 버티려면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괜찮습니다. 이제 익숙합니다. 그보다 실장님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저는 강진호 회장님이 그런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야. 나보다야 네가 더 고생이 많지. 내가 겉으로 보는 성격이 그런데, 실제로는 오죽하겠냐? 안 보이는 데서 무슨 일을 겪을지를 생각하면…… 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해하며 돕고 살아야지.”
묘한 동질감을 느낀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순간, 누군가 이현수의 팔을 꾹 찔렀다.
“뭐?”
이현수가 자신의 팔을 찌른 이를 돌아보았다.
“왜?”
“……라고.”
“응?”
“누가 찾아오신 것 같은데…….”
“응?”
이현수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메두사를 본 사람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
“…….”
왜…….
여기에 최연하가 있는가.
이현수가 떨리는 눈으로 의자 옆 통로에 서 있는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살짝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꼬리와 입가가 미묘하게 경련하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그들의 대화를 중간부터 들은 모양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더라?’
굉장한 기억력을 자랑하는 이현수지만, 머리가 새하얗게 탈색된 듯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여, 여긴…….”
그 순간, 최연하가 한은솔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핸드크림.”
“아, 네!”
한은솔이 번개 같은 손길로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최연하에게 내밀었다.
“건조하네, 꽤. 챙겨 오길 잘했다. 그렇지?”
“네. 그, 그럼요.”
“내 마음도 건조하고.”
“…….”
한은솔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최연하를 아는 사람이라면 저 웃음이 절대 웃음이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추, 춥다.’
갑자기 비행기 안의 공기가 차가워진 기분이다. 그 감각을 느낀 게 그들만은 아닌지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최연하가 빙그레 웃으며 이현수를 본다.
“그쪽 성함이?”
“……네?”
“이름.”
“……이영희입니다.”
“아, 그러네요. 이영희 씨,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랄게요.”
끝까지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최연하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태연한 걸음걸이로 앞쪽으로 멀어져 갔다.
한참 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현수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나 엿 된 거냐?”
“아니요.”
한은솔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엿 된 거죠.”
“…….”
이현수와 한은솔이 나란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