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2
#131.
행동하다 (1)
국방부의 시계는 참 이상한 것 중의 하나였다.
가만히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사람을 놀리는 듯이 느릿느릿 초침을 움직이지만, 막상 시간을 잊고 살다 보면 언제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는지 놀랄 만큼 빠르게 지나가 있기도 했다.
강진호는 상병이 되었다.
일병이 된 지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상병을 달다니, 시간이 참 빠르구나 싶었다.
하지만 상병이 되고도 강진호의 생활은 그리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진 것은 되레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었다.
“장재환.”
“일병 장재환!”
“빨래가 덜 됐어.”
“지, 지금 말리고 있습니다.”
“어제 해야 하는 빨래 아니었나? 그런데 왜 빨래가 오늘 마르고 있는 거지?”
“고치겠습니다.”
“나는 그저 왜 어제 해야 할 일이 오늘로 밀렸는지를 묻고 있는 것뿐이야.”
“그게…….”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나?”
“죄송합니다!”
장재환이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성태호가 강진호를 말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진호야.”
“상병 강진호.”
“애들 좀 그만 잡아라. 탈영하겠다.”
“저는 그저 물은 것뿐입니다만?”
성태호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강진호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보아온 강진호는 후임를 괴롭히는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선임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강진호인데 왜 후임을 괴롭히겠는가.
하지만 당하는 후임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야, 장재환.”
“일병 장재환.”
“그냥 그럴 때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고 내가 몇 번 말하냐?”
“죄송합니다.”
“끄으응.”
비단 장재환만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나도 이걸 하는데, 너는 왜 이걸 못하니’라는 것을 강진호 때문에 알게 된 성태호였다.
만약 사단장이 완전군장을 메고 행군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아랫사람들도 당연히 완전군장을 메야 한다.
사단장이 너희는 체력이 약하니까 적당히 해도 된다고 말한다 해서 그 말대로 적당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저…… 씨, 퇴근 안 하는 부장 같은 놈.”
그나마 회사 부장님은 퇴근 안 하는 대신에 일이라도 별로 안 하지 않는가. 강진호는 상병이 된 지금도 이등병 때와 그리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애들을 시켜도 될 짬이건만, 자신의 일은 죽어도 자기가 알아서 하는 강진호였다. 그 와중에 분대의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으니, 아랫것들은 딱히 강진호가 뭘 시키지 않아도 항상 좌불안석이었다.
“끄으응.”
“장재환 일병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보이냐?”
“이러다 원형 탈모 오지 말입니다.”
“끄응.”
머리라도 길면 모를까, 이 짧은 머리에서 원형 탈모가 오면 그만큼 우스운 일이 없었다.
“강진호 상병님은 뭐하시냐?”
“지금 개인 정비하신다고 빨래 빨러 가셨지 말입니다.”
“빨래 빨았잖아?”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입니다.”
“끄으으응.”
장재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군대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아랫놈들을 제 장난감으로 아는 선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동화책에서 나온 것 같은 선임이다. 아랫것들을 존중하며 절대 괴롭히지 않고 잘해주는데, 자기는 FM이다.
그러고는 말한다.
‘이게 어려운가?’
장재환의 인내심이 깊지 못했다면 언젠가 한 번은 ‘그럼 어렵지, 안 어렵냐!’를 외치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이 다 자기 같으면 세상이 왜 이렇겠냐고.”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를 알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장구류 검사하신다고 하셨지 말입니다.”
“끄으으응.”
장재환이 얼굴을 감쌌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총기 정비 상태를 검사 받는다고 해서 죽어라고 깨끗하게 닦아두었더니, 제대로 보지도 않고 다시 정비해 오라고 하는 강진호였다. 그래서 항의를 했더니, 말도 없이 자신의 총을 보여준다.
“……새건 줄 알았지.”
“총에서 광나는 거 처음 봤지 말입니다.”
“인간적으로 총을 그렇게 만들어놓는 것도 전투력 낭비 아니냐? 어차피 전쟁 나면 야전에서 구를 건데.”
“그런데 야전에서도 강진호 상병님 총은 반짝반짝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으니 또 그랬다.
그리고 그게 더 소름이 돋는다.
“그래도 강진호 상병님이 먹을 건 잘 사 주시지 않습니까?”
“많이 먹고 열심히 일해라 같지 않냐?”
“……그런 느낌이 조금은 있지 말입니다.”
이미 포대 전체에 강진호의 악명은 자자했다.
‘이등병 때부터 그랬다던데.’
얼마 전에 전역한 전혁수 병장은 후임들을 괴롭히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던 사람이었다. 구타나 가혹행위를 하지는 않지만, 항상 짓궂은 장난을 치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전혁수 병장도 강진호 상병만은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쟤는 그냥 없는 사람 치는 게 속이 편하다.”
명언 중의 명언이지만, 선임은 몰라도 후임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서글픈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포대 내의 병장들도 아무도 강진호 상병에게는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래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뭐가?”
“하는 것마다 다 잘하지 않습니까. 저희 들어오기 전에 유격 최우수 올빼미였다던데, 그거 말고도 전투력 측정 나가서 1등해서 휴가증 따오고, 응급처치 파견 가서 1등해서 휴가증 따오고…….”
“휴가 머신이지.”
그리고 그 휴가증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왔다. 강진호 상병은 지금 있는 휴가도 다 나가기 어렵다면서 휴가증을 따는 족족 분대원들에게 돌렸다.
“……사람이라도 나쁘면 한 번 반항이라도 해보겠는데 말이야.”
전혁수 병장이 전역하자마자 분대 내에 전해지던 부조리를 모조리 없앤 것도 강진호였다. 성태호 역시 강진호의 의견에 동의해 주었기에 찰리 포대에서 가장 악명 높던 3분대가 순식간에 포대에서 가장 민주적인 분대가 될 수 있었다.
“그럼 뭐하나.”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가 이렇게 무서운 일일 줄이야. 그냥 군인을 FM대로 돌리는 것만으로 가혹행위 이상의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진귀한 경험이었다.
군 실무자 놈들은 다들 미친놈이 틀림없다. 아니면 자기들도 절대로 FM대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고 규범을 만들었든가.
“그래도 옆 분대 동기 말 들어보면 관물대 정리 잘 안 되어 있다고 엎어버렸다는데, 그거에 비하면 우리 강진호 상병님은 진짜 천사지 말입니다.”
“그래. 관물대는 절대 안 건드리고 다시 정리하라고 하지.”
“…….”
“정리하고 나면 또다시! 또! 또다시!”
“진정하시지 말입니다.”
“이러다가 진짜 내가 죽지.”
그 말이 씨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장재환.”
“일병 장재환!”
“정신 안 차려?”
“죄송합니다.”
장재환은 고개를 흔들었다.
‘감기인가?’
오전부터 정신이 좀 어질어질한 느낌이었다. 어제 씻고 자라는 강진호의 말을 무시하고 씻지 않고 자서 그런지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다.
“오늘 방열하는 거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예.”
장재환은 한숨을 쉬었다. 왜 오늘 같은 날 방열이란 말인가.
방열이란 포를 접었다가 탄을 쏠 수 있게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말로 들으면 간단한 일이지만, 7톤짜리 포를 들어서 돌리고 밀고, 해머로 고정하고 작키로 밀어 올리는 것까지 해야 하는 중노동인데, 이걸 타임 어택으로 측정까지 한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방열 한 번을 하고 나면 진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할까?’
몸이 좋지 않다고 말을 하고 교육을 빠지는 것도 방법이지만, 내무 작업도 아니고, 방열을 해야 하는데 몸이 아프답시고 빠지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자신 한 명이 빠지면 다른 분대원들이 그의 몫만큼 더 힘든 법이다.
장재환은 고개를 젓고는 포에 달라붙었다. 포상에 있는 포를 5톤 트럭에 연결한 장재환이 멀찍이 떨어져 포를 바라보았다.
“진짜 더럽게 무겁네.”
평소에도 포를 한 번 들고 나면 허리가 빠지는 느낌이 났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아무리 두 바퀴가 바닥에 닿아 있는 상태에서 다리만 드는 거라지만, 승용차 일곱 대의 무게를 가진 포를 사람 손으로 밀어 올리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오늘만 버티면 돼.’
내일은 주말이니 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오늘 저녁만 되어도 몸이 아프다고 하면 강진호의 성격상 바로 자리를 깔고 누우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 일과만 버텨내면 된다.
장재환은 그렇게 다짐하고는 앞서가는 트럭을 따라 연병장으로 내려갔다.
“포대 전투력 측정 있는 거 알아, 몰라?”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 늦으면 어떻게 된다?”
“안 됩니다.”
포대장이 인상을 쓰고는 말했다.
“알파나 브라보한테 지면 너희는 포대장이랑 같이 죽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쪽팔리게 그 새끼들한테 질 수는 없잖아. 솔직히 그 새끼들 비리비리한 거야 니들도 알고, 포대장도 안다. 그런데 혹시 지기라도 해봐. 내년 전투력 측정까지 계속 놀림당하는 거야. 그 꼴 당하고 싶냐?”
“아닙니다.”
“그래. 그러니까 빡세게 훈련하고! 빡세게 쉬자! 오늘 빡세게 하는 대신에 포대장이 주말에는 당직사관들한테 말해서 아무것도 시키지 말라고 해둘 테니까.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힘찬 대답이 돌아오자 포대장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준비하고.”
다들 제 위치를 찾아 섰다.
방열이야 2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하는 훈련이지만, 할 때마다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건 사고 전파를 듣더라도 방열을 하다가 실수로 죽는 일이 간간이 있었으니까.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그 흔하지 않은 일이 내게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뛰어!”
포대장에게서 방향 지시가 떨어지자 분대원들이 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차량에서 분리해 낸 포를 들어 올리고 방향을 돌려 자리를 잡는다.
‘정신 차려야 하는데…….’
집중을 해야 하는데 자꾸 정신이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포를 들고 다리를 좌우로 벌린다. 선임들이 버티고 있는 틈을 타 100㎏ 가까이 나가는 포 발톱을 빼내 옮기던 와중 갑자기 머리가 핑 돈다.
“아…….”
“뭐해?”
“아, 아닙니다!”
서둘러 발을 옮기려 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바삐 발을 놀리다 보니 연병장에 움푹 꺼져 있는 아랫부분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몸이 푹 꺼지며 균형을 잃었다.
다리가 꼬인 장재환이 앞으로 쓰러진다. 동시에 발톱을 함께 들고 뒷걸음질 치던 후임도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악!”
장재환이 앞으로 쓰러지며 비명을 내지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00㎏이나 나가는 날카로운 쇳덩어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함께 넘어진 후임의 가슴 쪽으로 떨어지는 광경이 눈에 생생하게 들어왔다. 저걸 정통으로 찍히면 가슴뼈가 함몰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 안 돼!”